정통에 관한 교본, 밀리언 달러 베이비

 

양돌규



변칙은 쉽다. 그리고 지름길과 닿아 있다. 타이틀 매치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인간계에 횡행하는 반칙의 세레모니는 사람들의 밝은 눈을 탁하게 하고 스텝을 엉키게 한다. 특이한 재간과 번뜩이는 착상만으로 성공을 향해 돌진하는 인사이더 복서들의 버팅에 정직한 이들은 뼈속 깊은 상처를 입기도 한다. 그러나 게임은 끝난 것이 아니다. 정통은 살아 있다. 그리고 어느 순간 하얀 이빨을 드러내며 ‘투지’와 ‘실력’이란 단어의 뜻을 보여준다.

<밀리언 달러 베이비>는 한마디로 정통이다. 정통은 어렵다. 편한 지름길을 두고 숲을 넘고 강을 건너 에둘러 간다. 그래서 정통은 왼팔을 쭉 뻗어 자신을 보호해야 할 때조차도 팔을 내려뜨릴 때가 있다. 댄저러스한 순간이다. 그러나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눈을 번뜩이며 앉아 있는 관객이라는 적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정통 아웃 복서다. 그리고 마침내 긴 팔을 뻗어 1센트짜리 물건들 중에서 백만 불짜리를 움켜쥐는 것이다.

먹다 남긴 빵 조각을 챙겨뒀다 버스 한 귀퉁이에서 뜯어 삼키더라도 결코 링바닥과 연애하지는 않을 거라는 도도한 패기는 결코 백만 달러라는 돈을 위해서가 아니다. 다름 아닌 ‘백만 불의 가치를 지닌 고귀함’을 빚어내는 것이다. 인생의 한방을 날리겠다는 꿈인 것이다. 정통은 모름지기 그런 것이다. 그래야 하는 것이다. 정통은 화려한 베가스의 특설 링보다 잘 어울리는 곳이 따로 있다. 정통은 시간과 비례한다. 정통은 정직하다. 그러나 정통은 언제나 자신을 보호하려 하지만 늘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정통이 가난, 실패, 패배와 친한 이유다. 판정에서는 무승부가 있지만 링 위에서, 주먹의 세계에서 무승부는 없다. 이기거나 지거나 지거나 이기거나. 허나 뭐 어떠랴. 마우스피스를 허공에 뱉고 링 위에 장렬하게 엎어지더라도 정통은 정통인 것을.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 담대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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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1/07 14:00 2006/11/07 14:00
글쓴이 남십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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