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리영희] 역사의 종말? : 민주당의 진보적 흐름은 건국 전 봉쇄된 평등주의 꿈의 부활이다
안병진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 | 기사입력 2026.10.10. 19:58:28
재건축이 맞는가 아니면 증축이 맞는가? 한국 정치 이야기가 아니라 미국 민주당 내 논쟁 말이다. 지금 미국은 경이로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세상에, 뉴욕 시장 역사상 가장 급진적인 사회주의자인 조란 맘다니가 1% 지지로 선거운동을 출발해서 지금은 당당히 현직 시장이다. 그곳은 원래 진보의 텃밭인 뉴욕이니까 그럴 수 있다고 치자(나는 그 논리에 동의하지 않지만 일단 넘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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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어떤가? DSA(미국 민주사회주의자들) 소속은 아니지만 경합주이자 이번 중간 선거에서 상원의 핵심 승부처 중 하나인 미시건에서 압둘 엘사예드가 이스라엘 원조 중단 등 급진적 아젠다에도 불구하고 민주당 경선에서 승리했다. 현재 그는 대부분의 본선 여론조사에서 박빙 우세를 기록하고 있다.
나아가 민주사회주의 깃발을 전면에 내걸었던 AOC(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르테스) 하원의원이 대선 초반 승부처 중 하나인 뉴햄프셔주에서 현재 민주당 대선 후보군 중 1위를 달리고 있다. AOC는 민주당의 다른 어떤 유력한 대선 후보들보다 젊고(1989년생) 급진적이며 여성 소수계(여성이자 푸에르토리코계 미국인)이고 탁월한 메시지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나는 이러한 AOC의 미래잠재력을 볼 때 이후 민주당 대선 경선판이 본격화되면 승리 여부와 무관하게 그 바람은 과거 버니 샌더스 현상보다 더 의미가 크다고 생각한다. 도대체 트럼프가 제왕처럼 군림하는 오늘날 미국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나는 이 세 사건들을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최근 신간에서도 여전히 버리지 않은 '역사의 종말'(자유 민주주의 이념을 능가하는 대안의 부재)이 아니라 역사의 귀환이자 새로운 시작으로 본다. 역사의 종말 이전에 두 가지 역사를 우리는 기억할 필요가 있다. 즉 하나는 근대 초기 유진 뎁스와 같은 (공화주의적-자의적 지배에 대한 투쟁) 사회주의 부활이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건국 직후 제임스 매디슨 계보의 자유민주주의(혹은 자유주의 헌정주의 민주주의) 최종 승리 이전에 열린 길이었던 급진 평등주의 대안의 부활이다. 짧은 에세이에서 이를 자세히 설명하긴 어렵기에 아래에 간단한 역사를 소개하고자 한다.
우선 유진 뎁스의 부활이다. 2016년 버니 샌더스라는 민주사회주의자가 민주당 예비경선에 등장했을 때 나이 든 좌파 지식인들은 근대 초기 활약했던 사회주의 정당의 리더 유진 뎁스를 머리에 떠올렸다. 가혹한 탄압과 양당제의 구심력, 노동자층의 분열, 아메리칸 드림의 달콤함이라는 악조건 속에서도 미국 최초의 전국철도노조 조직화에 성공했던 인물 말이다.
뎁스는 이에 그치지 않고 민주당 위성 정당에서 벗어난 독자적 노동자 후보로 대선에 도전하였으며 1912년 선거에서는 6%의 득표율을 기록하는 등 강한 인상을 남기기도 했다. 그는 미국판 백기완(87년 독자 민중 후보)이다.
사실 샌더스는 호주머니 속에 뎁스의 이름을 새긴 열쇠고리를 가지고 있을 정도로 그 시절을 잊지 않으려 한다. 비단 백발의 샌더스만이 아니라 밀레니얼 세대의 좌파 스타이자 대선후보인 AOC나 뉴욕시장인 맘다니는 오늘날 모두 유진 뎁스의 정신을 21세기에 재현하려는 후계자들로 언급되고 있다.
건국 전 강렬했던 평등주의 흐름의 부활도 기억하자. 흔히 미국의 주류 교육기관에서 사용하는 교과서나 책으로 공부한 지식인들은 건국 후 매디슨과 알렉산더 해밀턴 류의 자유주의 관점에서 해석한 역사에만 주로 익숙하다. 물론 이 자유주의 주류 가치는 오늘날 미국을 세계적 네트워크와 혁신 국가로 도약시킨 힘으로서 긍정적 역할을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그 빛만이 아니라 그림자를 동시에 보아야 한다.
더구나 이 주류 흐름에 가려진 채 지하실에 봉인된 다른 조류도 놓쳐서는 안 된다.
이를 균형 있게 관찰해 오지 않은 이들은 2016년 트럼프와 샌더스가 강력하게 부상하자 그저 지나가는 에피소드로 취급했다가 부단히 당황하고 있다.
사실은 미국 건국 직전에는 트럼피즘과 마가 경향의 '신정국가' 스타일의 중세적 흐름은 매우 강했다(신정국가 옹호자인 밴스 부통령의 이란 침공은 그래서 무척 기괴하다. 이는 다른 기회에 자세히 다루고자 한다). 여기서 우리는 유진 뎁스 이전인 건국 직전과 직후에 강력하게 존재했던 또 하나의 흐름인 민중적 참여와 통제의 공화주의를 기억해야 한다.
비록 샌더스는 뎁스와 달리 독립적 노동자 정당의 꿈 대신에 민주당 내 좌파 블록 전략으로 꿈을 이어가려고 했지만 추구하는 가치는 그리 다르지 않다. 자의적인 엘리트 지배에 대한 평범한 이들의 반감, 민중적 참여와 통제, 평등주의 공동체 비전 등은 사실은 뎁스가 아니라 건국 전 민중 운동에서부터 그 뿌리가 있다.
사실 우리는 미국 혁명이란 단어를 들으면 매디슨과 해밀턴 등의 자유주의 엘리트들이 봉건 대영 제국을 상대로 한 자유의 투쟁 이미지를 떠올린다. 하지만 매디슨처럼 유럽에서 이주한 백인 후손들이 영국 압제에 대항해 일으킨 미국 혁명 이전에 뎁스의 선조들이 꿈꾼 다른 혁명도 존재했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바로 선주민인 인디언과 흑인 노예들이 유럽 백인 이주자들에게 대항했던 미국혁명 말이다. 아니 유럽 이주민도 하나가 아니다. 토머스 제퍼슨이나 매디슨과 같은 지주가 아닌 다수 민중들이나 여성 등 소수자들의 반 기득권(포퓰리즘) 반란도 미국 혁명의 주요한 흐름이라는 걸 기억해야 한다.
뉴딜 시기는 이 건국 전에 꽃핀 평등주의 흐름이 다시 발전될 수도 있는 계기였다. 물론 프랭클린 루즈벨트의 뉴딜 그 자체만으로도 극단적 시장주의 흐름을 교정한 위대한 성취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이 잊어버린 게 있다. 뉴딜에는 유럽식 사민주의로 더 확장해 나가자고 하는 흐름이 일부 존재했다. 그 대표적 아이콘이 루즈벨트 대통령을 보좌한 부통령인 헨리 왈라스이다.
그를 비롯한 뉴딜 블록 중 급진파들은 국내적으로는 모든 차별을 폐지하는 평등주의(이는 단지 자유주의적 권리 운동을 넘어 모든 인간의 존엄한 존재와 삶의 권리를 위한 제2차 권리장전 아젠다 운동 등으로 표현된다), 국제적으로는 반 제국주의 비전으로 뉴딜을 확장하고자 했다. 하지만 이는 남부에 기반한 보수파를 비롯한 민주당 내 중도파에 의해 건국 직후에 이어 다시 봉쇄되었다.
이후 민주당은 남부 민주당과 동부 엘리트가 주도한 중도화 가속화 및 신자유주의 혁명, 그리고 이 대안을 대표하는 신세대 리더를 내세우면서 연이어 집권에 성공했다. 빌 클린턴과 엘 고어가 바로 그들이다. 이는 레이건 보수주의 시대에 적응하기 위한 대중 정당의 불가피한 선택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진보의 가치로부터 너무 멀리 가버렸다.
클린턴 시대에 좌절한 이후 미국 진보파들 중 일부는 오바마가 뉴딜 진보주의 확장의 부활을 만들어 낼 기수로 한때 착각했다. 하지만 그는 2008년 미국 자본주의 위기를 자유주의적 방식(은행 국유화를 검토하다가 결국 시장 친화적 안정화 조치로 선회)으로 돌파했다. 결국 클린턴과 오바마 시대의 '진보적 신자유주의'(경제는 시장경쟁, 사회문화는 진보적 정체성 강조)는 선거 경쟁력은 가졌지만 기득권 세력의 일원으로 민주당이 편입되는 결과를 낳았다. 그 틈새에서 반 기득권을 내세운 트럼프와 마가 운동이 민중적 에너지를 납치했다.
오늘날 역사의 사이클이 바뀌어 민주사회주의를 내건 DSA 조직의 부상에 전 세계가 놀라고 있다. 물론 DSA는 각종 선거에서 놀라운 성취를 이루어 내고 있다. 한때 추수감사절 폐지(사실 굶주린 백인 이주민에게 선의를 베풀었다가 인종학살을 당했던 네이티브 아메리칸 선주민 입장에서 생각하면 그날은 기념하기 어렵지 않나?) 등 너무 극단적 목소리를 내고도 이번에 민주당 경선에서 석패한 프란체스카 홍 위스콘신 주지사 후보는 DSA의 잠재력을 여실히 보여준다.
홍 후보는 월가점령 시위 이후 오랜 풀뿌리 진보 활동을 해온 단련된 활동가로서 다음 주지사 선거에서는 거뜬히 당선될 가능성이 높다. 위스콘신은 미국 백인 진보주의 역사의 산실이다. 그곳에서도 DSA 회원이자 한국계 미국인 주지사가 탄생될 수도 있는 정도로 미국은 변화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미국 외부에서 DSA 조직에 대한 과도한 평가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현재 DSA와 관련된 후보들이 강력하게 부상하는 이유는 DSA의 사회주의 이념에 대한 동의라기보다는 미국식 자본주의 및 기득권에 대한 절망감과 분노, 대안에 대한 갈망에 더 기인한다. 그러하기에 지금 미국 내 좌파의 부상은 DSA 이념의 부상이라기보다는 반 기득권 포퓰리즘의 부상과 다른 세계에 대한 갈망이 더 정확한 표현이다.
조지아에서 스타 대선 후보로 부상 중인 젊은 존 오소프 상원의원은 DSA와 거리가 먼 중도주의자이다. 하지만 그는 반 기득권 포퓰리즘을 탁월하게 구사한다. 민주당의 또 다른 스타인 미셸 우 보스턴 시장은 DSA와 거리를 둔다. 하지만 뉴딜 진보주의와 실용주의가 적절히 섞인 스타일로 유능하게 시정을 펼치고 있다.
지금 미국은 좌든 우든 이념이 아니라 반 기득권 포퓰리즘을 적절하게 구사하는 이들의 시대이다. 한때 트럼프의 우파 포퓰리즘이 시대의 대세였다면 그의 모순(머스크 등 빅테크에 특혜를 베푸는 반 기득권 포퓰리즘?)과 어리석고 탐욕스러운 짓(이란 침공과 사익 추구 등)에 대한 피로감 때문에 시계추가 좌파 포퓰리즘으로 기울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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