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의 용기는 ‘반대편을 공격하는 것’에서 나오지 않는다. 정치에서 용기라는 말을 너무 쉽게 사용한다. 상대 정당을 강하게 공격하면 용기 있다고 한다. 정부를 비판하면 소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진짜 어려운 용기는 다른 곳에 있다. 자기편에게 반대하는 것. 지지자들이 좋아하지 않을 말을 하는 것. 당 지도부가 원하는 방향과 다른 의견을 내는 것. 자신에게 정치적으로 손해가 되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그리고 자신의 판단이 틀렸다면 공개적으로 수정하는 것. 이것이 훨씬 어렵다.
상대방을 공격하면 박수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자기편을 비판하면 박수를 잃을 수 있다. 그래서 정치인의 진짜 소신은 적 앞에서가 아니라 자기편 앞에서 시험된다. 노무현이 남긴 것은 ‘정답’이 아니라 ‘태도’다
여기서 노무현을 지나치게 신격화해서는 안 된다. 노무현이 했던 모든 정책을 오늘날 민주당이 그대로 따라야 한다는 뜻도 아니다. 2000년대의 대한민국과 2026년의 대한민국은 완전히 다르다. 경제구조도 달라졌고, 노동시장도 달라졌고, 기술도 달라졌고, 청년의 삶도 달라졌다. 따라서 노무현의 정책을 복사하는 것은 계승이 아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계승해야 하는가. 나는 태도라고 생각한다. 권력을 대하는 태도. 정치를 대하는 태도. 국민을 대하는 태도. 자기편을 대하는 태도. 그리고 자신의 실패를 대하는 태도. 정치철학은 정책 목록보다 이런 태도에서 더 오래 살아남는다.
소크라테스에게 중요한 철학적 태도는 끊임없이 질문하는 것이었다. “나는 무엇을 알고 있는가?” “내가 옳다고 믿는 것이 정말 옳은가?” “내가 정의라고 부르는 것이 정말 정의인가?” 이 질문을 정치에 가져오면 상당히 불편해진다. 정치인은 자신이 옳다고 확신해야 하는 직업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주주의에서 가장 위험한 정치인은 자신이 틀릴 가능성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 정치인일 수 있다.
자신의 정책이 옳다고 믿는 것과, 자신의 정책만 옳다고 믿는 것은 다르다. 자신의 정당이 필요하다고 믿는 것과, 자신의 정당은 비판받아서는 안 된다고 믿는 것은 다르다. 자신의 지지층을 존중하는 것과, 지지층의 모든 판단을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다르다. 노무현을 계승한다는 말 역시 이 질문 앞에 서야 한다.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정치가 정말 우리가 말하는 정치와 같은가?” 노무현의 ‘지역주의 극복’은 현재에도 유효한가? 노무현의 정치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지역주의다. 그는 자신의 정치적 기반이 불리한 지역에서 끊임없이 도전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정치적으로 상당한 손해를 감수했다.
오늘날 지역주의가 과거와 동일한 형태로 존재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지역주의가 완전히 사라졌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정당은 여전히 지역별 정치적 계산을 한다. 후보 공천도 지역구의 정치적 유불리를 고려한다. 정치인 역시 자신이 어느 지역에서 표를 얻을 수 있는지를 계산한다.
그렇다면 노무현이 남긴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정치인은 지역의 표를 따라가는 사람인가, 지역의 변화를 만들어내는 사람인가. 이 차이는 상당히 크다. 정치인이 유권자의 현재 욕망만 따라간다면 선거는 이길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정치가 사회를 변화시키지는 못한다.
정치의 역할은 때로 사람들에게 박수받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아직 생각하지 못한 방향을 설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노무현은 ‘권위주의적 리더’와 다른 정치문화를 만들려고 했다. 노무현 정치에서 또 하나 중요한 것은 권위의 문제다.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본질적으로 엄청난 권력을 갖는다. 그 권력은 사람을 쉽게 취하게 만든다. 그러나 민주주의에서 대통령과 국회의원은 국민 위에 존재하는 사람이 아니다.
국민에게 권한을 위임받은 사람이다. 이것은 매우 단순하지만 중요한 원칙이다. 정치인은 국민보다 높은 사람이 아니다. 국민에게 권한을 빌린 사람이다. 그렇다면 정치인은 더 쉽게 질문받아야 한다. 더 많이 비판받아야 한다. 더 투명해야 한다. 더 책임져야 한다. 노무현을 계승하는 정당이라면 바로 이 원칙을 가장 먼저 기억해야 한다. 정치적 유산은 말로 계승되지 않는다. 행동으로 계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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