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한 장, 책 두 권
맥켄지가 이때 남긴 사진은 오늘날까지 전하는 사실상 유일한 의병 기록사진이다. 제복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청년들이 카메라 앞에 나란히 선 이 사진은, 문서보다 더 강한 방식으로 그날의 진실을 증언한다. 그는 이 경험을 담아 1908년 '대한제국의 비극'이라는 책을 펴냈다. 을사늑약 이후 조선에서 벌어진 일제의 탄압과 의병의 항쟁을 세계에 소개한 최초의 서양어 기록 가운데 하나였다.
이 책에는 명성황후 시해 사건을 꾸민 일본공사 미우라 고로의 재판 기록까지 부록으로 실려 있어, 단순한 여행기가 아니라 하나의 고발장에 가까웠다.
1910년부터는 런던 타임스로 자리를 옮겨 1914년까지 일했지만, 조선에 대한 관심은 끊이지 않았다. 1919년 3·1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그는 다시 펜을 들었다. 당시 캐나다 출신 선교사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Frank William Schofield, 1889~1970)의 증언을 바탕으로 제암리 학살의 진상을 세상에 알렸고, 이 기록을 바탕으로 1920년에는 '자유를 위한 한국인의 투쟁'이라는 책을 펴냈다. 같은 해 런던에서는 한국친구회를 조직해 "한국의 독립은 한국인뿐 아니라 일본에도 이익이 된다"는 신념으로 독립운동을 후원하기도 했다.
참고로 당시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해 항일 언론활동을 벌였던 영국인 어니스트 토머스 베델(Ernest Thomas Bethell, 1872~1909)도 비슷한 시기, 비슷한 신념으로 목숨을 걸었던 서양인 언론인이었다. 맥켄지와 베델처럼 낯선 땅의 약자 편에 서기를 택한 외국인들이 있었기에, 조선의 참상은 완전히 묻히지 않고 세계에 전해질 수 있었다.
한국정부는 2014년 삼일절을 맞아 맥켄지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조선 땅에 잠시 머물다 간 외국인 기자 한 사람에게, 백 년도 더 지난 뒤에야 갚은 감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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