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PJ 보고서 “우린 지옥에서 돌아왔어요”
2023년 10월 가자지구에서 전쟁이 터지면서 많은 팔레스타인 기자들이 붙잡혀 갔고 고문을 받았다. 언론인보호위원회(CPJ)는 미국 뉴욕에 본부를 둔 언론인 단체다. 1982년 창립 이래 ’언론계의 국제적십자사‘와 같은 기능을 맡아 왔다. CPJ는 2026년 2월 19일 “우린 지옥에서 돌아왔다(We Returned from Hell)”는 제목의 보고서를 냈다. 감옥에서 풀려난 팔레스타인 언론인 65명 가운데 59명이 CPJ와의 인터뷰로 생생한 증언을 남겼다. 기자들은 한결같이 “고문과 학대를 받았다”고 몸서리쳤다.
(https://cpj.org/wp-content/uploads/2026/02/EN-%E2%80%98We-returned-from-hell-Palestinian-journalists-recount-torture-in-Israeli-prisons-Committee-to-Protect-Journalists.pdf)
CPJ 보고서에 따르면, 풀려난 기자들이 갇혀 있던 수감시설마다 상황은 조금씩 달랐지만 고문을 비롯한 학대 유형은 놀랍도록 일치했다. 신체적 폭행 방식, 샤바흐(shabach) 라는 고통스런 자세 강요, 시끄러운 음악이 귀청을 때리는 ’디스코 룸‘이란 공간에 며칠씩 가둬두는 음향폭탄 고문, 성폭행, 의료 방치 등은 모든 수감시설에서 저질러졌다. 또한 보고서에 담긴 증언들은 이스라엘 인권단체 베첼렘(B'Tselem)을 비롯한 다른 곳에서 낸 증언집의 내용과 거의 같다. 베첼렘은 ‘지옥에 온 것을 환영한다’(Welcome to Hell, 2024년 8월), '살아있는 지옥(Living Hell, 2026년 1월), 이 두 개의 보고서(증언집)에서 이스라엘 수감시설을 ‘고문 수용소 네트워크’라고 지적했다(연재 14 참조).
풀려난 기자들은 다들 몸무게가 크게 줄었고 얼굴이 야위었다. 몸무게는 평균 23.5kg 줄어들었다.
세계보건기구(WHO) 통계로 보면, 7살 난 어린이 몸무게만큼 줄어든 셈이다. 풀려난 언론인들 가운데는 50kg이나 줄어든 이들도 있다. 팔레스타인 투데이 TV 기자 아흐메드 샤쿠라(Ahmed Shaqoura, 38세) 기자는 2023년 12월 8일 붙잡혀 갔다가 2025년 2월 15일 풀려날 때까지 14개월 갇혀 있는 동안 54kg이 줄었다(126kg→72kg). 그는 말한다. “북부 이스라엘의 알잘라메 감옥에서 보낸 140일 동안의 심한 고문으로 다리 근육이 파열되어 두 달 동안 고통받았다. 그들은 내 갈비뼈를 부러뜨렸다. 또한 플라스틱 수갑으로 내 손을 묶어 심하게 피를 흘리게 했다.”(https://cpj.org/data/people/ahmed-shaqoura/)
CPJ가 인터뷰를 한 59명의 기자들 가운데 10명은 선동, 반국가 활동 또는 테러 조장 혐의로 기소되었다가 풀려났다. 나머지 대부분의 기자들은 어떤 범죄 혐의로도 기소되지 않았고, 악명 높은 불법전투원법이나 행정구금 제도에 따라 구금되었다. 이 제도는 이스라엘에 맞선 ‘범죄’를 저지르는 것을 막기 위해 기소 없이 붙잡아 두고, 6개월 구금 기간이 지나면 연장할 수 있기에 무기한 가둬놓을 수도 있다.
기자의 갈비뼈 부러뜨린 ‘환영식’
2024년 3월 18일, 이스라엘군은 가자지구 알 시파 의료 단지를 공격하여 수십 명의 팔레스타인인을 체포했다. 그날 사진기자 샤디 아부 시도(Shadi Abu Sido, 레바논 베이루트에 본사를 둔 민영 방송사 팔레스타인 투데이 소속)도 붙잡혀 스데 테이만 수용소로 끌려갔다. 그로부터 20개월 동안 지옥을 체험했다. 시도 기자는 알 시파에서 이스라엘군에게 붙잡히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한 병사가 그에게 몸을 기울이더니 영어로 이렇게 말했다. “게임 오버(Game is over).” 한마디로 “더 이상 맞서지 말라”는 뜻이다.
시도 기자는 스데 테이만 수용소로 끌려 들어가면서 그곳 경비병(제100부대 소속)들로부터 혹독한 신고식을 치렀다. 신입 수감자들을 폭력적으로 다루는 의식을 그곳에선 ‘알 타슈레페’(al-Tashreefeh, 환영식)라 일컫는다. 수갑이 채워지고 눈가리개를 한 채 군용 트럭에서 내린 가련한 이들을 향해 이스라엘 경비병들은 마음껏 폭력을 휘둘렀다. 곤봉과 발길질, 그리고 가해자의 고함소리와 피해자의 비명이 뒤섞여 어지러운 복도를 지나가야 했다. 그 악마의 환영식으로 많은 이들이 부상을 입었다. 시도 기자도 갈비뼈가 부러졌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시도 기자는 “하마스 관련 정보를 대라”며 고문을 받았다. 그 때문에 눈을 크게 다쳤다. “그들은 고문 중에 내 시력 손상을 목표로 삼았다고 대놓고 말했다”고 증언했다. “우리가 네 카메라 렌즈를 부쉈으니 이제 네 눈의 렌즈도 부숴서 다시는 카메라를 조작하지 못하게 할 거야"라고도 말했다. 지금 시도 기자는 한쪽 눈으로만 사물을 바라볼 수 있다.
옥중에서 건강이 나빠진 데다 음식이 너무나 형편없어서 시도의 몸무게는 확 줄었다. 붙잡혀 들어갈 때 95kg이었지만, 2025년 10월 휴전협정으로 풀려날 때는 63kg이었다. 이스라엘군 정보장교(504부대 소속)는 감옥 문을 나서는 시도 기자에게 협박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언론계로 돌아가거나 이스라엘에 대한 반대운동을 선동하지 말라. 그러면 다시 체포되어 살해될 것이다.”
스데 테이만에 갇힌 ‘강제실종자’
가자지구의 가족 잡지 알 사아다와 알라이 라디오에 기고를 하던 프리랜서 언론인 모하메드 나페즈 카우드(Mohammed Nafez Qaoud)는 11개월 동안 지옥을 겪었다. 2024년 3월 19일 피난민 친척을 만나러 가던 중 이스라엘군에게 붙잡힌 카우드는 여러 달 동안 행방불명자(이른바 ‘강제 실종자’)로 분류돼 가족들의 애를 태웠다. 다행스럽게도, 변호사가 감옥에 갇혀 있는 그를 간신히 찾아냈다.
카우드 기자가 처음 끌려간 곳은 네게브 사막의 군 구금시설인 스데 테이만이었다. 그곳까지 트럭에 실려 가는 도중에도 심한 폭행이 이어졌다. 함께 붙잡힌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손이 묶이고 눈이 가려진 카우드는 곤봉과 총으로 머리와 등을 줄곧 두들겨 맞으며 갔다. 그리곤 ‘환영식’ 구타가 이어졌다. 3월 하순이라 아직은 쌀쌀한 날씨였지만 스데 테이만 경비원들은 그의 옷을 완전히 다 벗도록 명령했다. 그리고는 고통을 더 주려고 5분마다 찬물을 끼얹고 심한 구타와 욕설을 퍼부었다(차가운 땅바닥에 오래 누워있었기에 카우드는 천식 증세로 고통받았다. 지금도 흡입기에 의존하고 있다).
스데 테이만이 인권의 사각지대라는 사실은 이미 확인했다(연재 15-17회). 카우드 기자는 손이 묶이고 눈이 가려진 채 그곳에서 100일 동안 머물렀다. 그는 특히 덩치가 큰 군견의 폭력에 시달렸다고 증언한다. 훈련된 군견들은 입마개를 하고 있었지만, 날카로운 금속 입마개로 공격할 경우 몸에 상처가 생기고 흉터가 남았다. 그는 또한 경비병들로부터 입에 담기 힘든 언어적 학대에 시달렸다.
오페르 감옥으로 이송되기 직전에는 수십 시간 동안 이어진 고문을 당했다.
CPJ와 인터뷰를 한 59명의 기자 가운데 56명은 감옥 안에서뿐만 아니라 체포 및 이송 과정에서도 반복적으로 구타를 당했다고 밝혔다. 카우드 기자도 오페르로 가는 길에서 퍼부어지는 매를 견뎌야 했다. 모두 합쳐 30명쯤의 언론인이 갇혀 있었던 오페르는 수감 환경이 열악하기로는 스데 테이만 못지않았다. 14명만 수용할 수 있는 감방에 25명이 갇혀 있었고, 겨울에는 열린 창문으로 빗물이 찬바람과 함께 새어 들어왔다. 수감자들은 의료 서비스는커녕 위생용품조차 받지 못했다. 경비원들의 구타로 카우드는 오른쪽 발을 심하게 다쳤다. 치료를 못 하고 방치하는 바람에 감염이 심해져 “상처에서 벌레가 나올 정도였다”고 증언한다. 또한 장기간 구속복(수갑과 가죽혁대를 매단 특수복)을 입고 있었던 탓에 손의 감각을 잃었다. 붙잡혔을 당시 몸무게가 96kg이었으나, 풀려날 때는 58kg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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