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약값은 왜 비쌀까... 소비자가 모르는 실상

[그 약이 알고 싶다] 경쟁하지 않기로 한 기업들, 경쟁시키지 않는 정부

26.08.21 07:32최종 업데이트 26.08.21 07:33

미국의 의약품 가격은 세계에서 가장 비싼 편에 속한다. 자료사진.플리커

미국 최대 제네릭 제약기업 중 하나인 산도즈가 제네릭 의약품 가격을 인위적으로 부풀리고 조작하는 가격담합 혐의로 기소된 가운데, 지난 3일 4억 7850만 달러(약 6760억 원)를 지불하는 조건으로 43개 주 및 준주를 대표하는 컨소시엄 등과 합의하였다.

그에 앞서 제약사 글렌마크도 49개 주·준주 정부 법무부 장관과 2960만 달러(약 420억 원) 규모의 합의금을 피해 소비자에게 배분하는 방식에 합의했다. 그 외에도 주요 제네릭 제약기업의 가격담합에 따른 소송과 합의 소식이 잇따르고 있다. 미국에서 100개 이상의 의약품과 30여 개 기업이 연루된 이 대규모 가격담합은 왜 발생한 것일까?

제약산업의 이윤은 주로 독점에서 나온다. 지식재산권 체제 하에서 새 의약품을 개발한 기업은 과학적 성과의 대가로 20년간 독점적 지위를 부여받는다. 그러나 이 제도는 오래전부터 비판을 받아왔다. 성과의 질적 수준을 따지지 않고 어떤 특허이든 독점 기간이 20년으로 동일하다는 점, 생명과 건강이 걸린 질병 앞에서 기업의 독점 이윤을 우선 보장한다는 점 때문이다.

대신 독점 기간이 끝나면 여러 기업이 동일한 약을 생산할 수 있다. 기업들이 가격 경쟁을 벌이는 사이, 환자와 시민은 이미 검증된 과학적 성과를 훨씬 낮은 가격에 누리게 된다. 기존 신약과 성분 및 함량이 같음을 검증받아 허가된 이 제품이 '제네릭 의약품'이다(생물학적 제제의 경우 '바이오시밀러'라고 부른다.).

제네릭의 역할은 명확하다. 같은 품질의 약을 경쟁을 통해 더 싸게 공급하는 것이다. 즉, 제네릭 시장에서 경쟁이 사라지면 제네릭은 존재할 이유를 잃는다.

미국은 높은 약값으로 고통받는 대표적인 나라다. 공적 보험이든 민간 보험이던 환자의 본인 부담금이 크다. 미국 랜드연구소 자료에 따르면 미국에서 처방되는 의약품의 90%가 제네릭이다. 비교 대상 국가들의 평균인 41%보다 두 배 이상 높은 수치다. 그만큼 미국 국민들은 살인적인 약값 문제로 인해 제네릭 의약품에 대한 의존도가 절대적이다.

경쟁하지 않기로 한 기업들

미국에서 오래된 제네릭 의약품의 가격이 2010년대 초반부터 갑자기 폭등하는 일이 벌어졌다. 예컨대 항생제인 독시사이클린 가격은 2013년과 2014년 사이에 무려 18배가 뛰었고, 다른 오래된 약물들도 1년 만에 평균 30%가량 올랐다. 시장 독점이나 원료 파동 같은 외부 요인이 전혀 없었음에도 말이다.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미국 주정부와 의회에서 국정조사 및 청문회가 열렸다. 2016년 코네티컷주 법무부 장관이 헤리티지 파마슈티컬스 등 18개 기업을 제소하면서 법적 다툼이 시작됐다. 2019년 44개 주가 20개 제약기업과 임원들을 추가로 제소했을 당시, 윌리엄 통 코네티컷주 법무부 장관은 이 사건을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카르텔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이후 소송은 주 법무부 장관 연합의 민사소송, 미국 법무부의 형사 수사, 도매상·약국·보험자·소비자가 제기한 집단 소송 등으로 확대되었다.

수사당국이 확보한 수천만 건의 문서에는 담합의 민낯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경쟁사 임원들은 업계 만찬과 골프 모임에서 만나 은어를 주고받으며 가격 인상 시점을 협의했다. 서로의 점유율을 침범하지 않기로 약속하고, 한 회사가 가격을 올리면 나머지가 따라 올렸으며, 입찰에서는 미리 정한 순서대로 양보했다. 흔히 사용하는 항생제, 피임약, 소염진통제, 당뇨약은 물론 항우울제, 뇌전증약, 항암제,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 치료제 등 광범위한 의약품이 포함되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미국의 제네릭 시장은 완전경쟁처럼 보이지만, 실제 특정 성분을 생산하는 기업은 서너 곳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참여자가 적고 서로를 빤히 아는 좁은 업계에서 치열한 가격경쟁을 벌이기보다, '아무도 경쟁하지 않기'로 담합하면 모두가 막대한 이득을 볼 수 있다. 게다가 적발되더라도 부과되는 벌금이 담합으로 번 돈보다 적다고 판단했기에, 이들에게 담합은 합리적인 사업 전략이었다.

지금까지 가격담합 문제로 산도즈가 4억 7850만 달러(약 6760억 원), 타로 파마슈티컬즈가 4억 1900만 달러(5920억 원)를 지불하기로 합의했다. 그 외에 글렌마크, 래닛, 바우쉬, 아포텍스, 헤리티지 등도 9650만 달러(1360억 원)에 달하는 합의금을 지불하기로 했다. 노바티스는 소송 진행 과정이던 2023년 제네릭 사업부인 산도즈를 분사했는데, 이를 두고 담합으로 벌어들인 수익은 챙기고 법적 책임만 떼어내려 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미국 최대 규모의 카르텔 사건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직 많은 제약기업이 민·형사상 소송을 진행 중이다. 분명한 것은, 약값 절감을 위해 도입된 제네릭 의약품 제도가 본연의 목적을 잃었을 때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일반 시민들과 환자들이라는 사실이다.

가격 인하가 벌칙이 되는 시장

한국의 상황은 어떨까. 지난 1일부터 제네릭 의약품 약가 개편안이 담긴 '약제의 결정 및 조정기준' 개정안이 시행되었다. 한국의 제네릭 의약품 가격이 외국에 비해 지나치게 높다는 비판에 따라, 보건복지부가 약가 산정 비율(산정률)을 기존 53.55%에서 45%로 대폭 낮춘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약값을 낮추려는 합리적인 개편처럼 보이지만, 제도의 이면을 면밀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한국의 제네릭 시장은 가격 경쟁을 통해 약값을 낮추는 유인이 전혀 없는 기형적인 구조다. 단지 정부가 기준 상한가격을 정하면 기업은 그 최고가에 맞춰 약을 파는 데 급급하다. 예를 들어 기존 신약이 1000원이었다면, 특허가 만료되고 제네릭이 등재되는 순간 상한가는 450원(가산 대상 제외 시)으로 고정된다. 그리고 이 상한가는 곧 시장의 실제 판매가격으로 굳어진다.

한국은 성분명이 아닌 상품명으로 처방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의사의 선택권이 절대적인데, 의사가 처방 약을 고를 때 '저렴한 약값'은 고려 대상이 되지 않는다. 제약사 입장에서는 약값을 인하해 봐야 처방 증대를 기대할 수 없으니, 굳이 가격을 낮출 이유 없이 정부가 정해준 상한가를 판매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러한 구조 탓에 정부는 약가 인하를 '시장 경쟁 촉진' 수단이 아닌 '행정 처벌'용도로 활용한다. 제약기업이 판매촉진을 위해 의료기관에 금품을 제공하다 적발되면, 복지부는 해당 기업의 약값을 강제로 깎는 방식으로 처벌을 갈음한다. 자발적인 가격 인하 경쟁을 유도하는 해외 사례와 비교하면 대단히 이례적이다.

가격을 정부가 일일이 통제하는 한국의 제네릭 시장에서 제약사가 매출을 늘릴 수 있는 유일한 전략은 오로지 '마케팅'뿐이다. 한국 제약기업들이 연례행사처럼 불법 리베이트 범죄로 도마 위에 오르는 근본적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가격 담합일까, 제약산업 육성정책일까

이번 약가제도 개편안에는 눈에 잘 띄지 않는 '가산 제도'가 함께 포함되어 있다. 혁신형 제약기업, 준혁신형 제약기업, 수급 안정 기여 기업 등에 약가를 얹어주는 특혜다. 정부는 십여 년 전부터 제약산업을 육성한다는 명분으로 연구개발 투자를 열심히 하는 기업을 '혁신형 제약기업'으로 지정하고 세금 감면 등의 혜택을 제공해 왔다.

그런데 이 '혁신'은 소수 정예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현재 혁신형 제약기업으로 지정된 곳은 47개 사로 국내 상위 제약사 대부분이 이 명단에 포함되어 있다. 게다가 이번 개정안에는 '준혁신형 제약기업'이라는 항목까지 신설되었다. 아쉽게 혁신형에 들지 못한 기업들까지 품을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불법 리베이트 처벌로 혁신형 지위를 박탈당했던 기업들을 위한 배려도 잊지 않았다. 기존에는 '행정처분 시점'을 기준으로 자격을 박탈하던 것을 '위반 행위 시점으로부터 5년 이내'로 완화했다. 적발된 기업이 행정소송으로 처분을 미루며 시간을 끌어 5년만 버티면, 혁신형 제약기업의 혜택을 고스란히 누릴 수 있는 면죄부를 주는 셈이다.

가산되는 금액의 규모도 막대하다. 혁신형·준혁신형 기업에는 10~50% 수준의 약가 가산이 붙는다. 예를 들어 연간 투약 비용이 약 80만 원가량인 항응고제가 특허 만료된다고 가정해 보자. 제네릭이 등재될 때 가산 없이 일반적인 45% 산정률을 적용하면 약값은 36만 원으로 떨어져야 한다. 그런데 혁신형 제약기업이 만든 약은 성분과 함량이 동일함에도 가산을 받아 55만 원이 된다. 이 19만 원의 차액은 고스란히 환자의 본인부담금과 건강보험 재정의 부담으로 직결된다.

이 막대한 추가 약제비는 환자의 건강 증진이나 건보 재정의 원활한 운영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오로지 제약기업의 돈벌이를 돕기 위한 국책 사업의 재원으로 쓰일 뿐이다. 백번 양보해 기업이 그 수익으로 훌륭한 신약을 개발한다 쳐도, 이는 개별 기업의 매출 신장에 도움이 될 뿐 환자를 직접적으로 이롭게 하거나 건강보험 재정을 건전하게 만드는 길이 결코 아니다.

미국의 제네릭 가격담합 사건은 소수 거대 제네릭 제약기업들이 카르텔을 형성해 은밀하게 제네릭 가격을 높여 환자의 부담을 가중시킨 범죄였다, 그리고 10년이 넘는 기나긴 소송을 통해 제약사들은 그 불법행위의 대가를 뒤늦게 치르고 있다.

반면, 한국은 정부와 기업들이 각자의 이해관계에 맞춰 합법의 탈을 쓴 채 짬짜미로 약값을 높여주는 행위를 대놓고 벌이고 있다. 왜 애꿎은 환자들이 왜 자신과 무관한 '제약산업 육성'을 위해 지갑을 더 열어야 할까? 국민건강보험은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 조성된 공적 재정이다. 특정 제약기업의 매출을 부풀리기 위해 동원되는 제도가 아니다.

지난 6월 보건복지부의 약가제도 개편에 대해 감사원에 공익 감사를 청구한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는 그 결과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기업들의 사적인 가격 담합은 은밀한 곳에서 이루어지기에 적발이 어렵다. 하지만 국가 제도로 둔갑한 담합은 버젓이 문서에 다 적혀있다. 우리가 그것을 읽어낼 의지가 있는지가 문제일 뿐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에도 실립니다.

#제네릭의약품 #제약회사 #가격담합 #혁신형제약기업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