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내 눈에서 멀리서 죽어다오.'
2008/01/16 00:29 女름
마이클 무어의 다큐멘터리 식코를 봤다. 미국의 의료보험 제도에 관한 내용이고 보험제도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보험제도의 어처구니 없는 면을 보여주고 프랑스, 쿠바 등의 의료 환경도 소개해준다. 미국과 프랑스, 미국과 쿠바를 오가면서 비교하는 내용이 후반에 나온다.
내용 중에서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보험혜택이 안되거나 돈이 없는 사람들을 버리는 장면이 나온다. 택시를 태워서 봉사센터 같은 곳으로 보내 버린다. 치료 받을 수 없는 사람들. 환자복을 입고 거리를 배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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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모든 침대와 침상에서 정상인의 틀에서 때로는 끔찍하게 때로는 약간 뒤틀려나온 형체의 유아와 어린아이들을 볼 수 있었다. <,>처럼 가느다란 몸뚱이에 축 늘어진 거대한 머리를 가진 아기 ............. 줄지어 누워서 거의 잠든 채 침묵하고 있는 기형아들. 그들은 말 그대로 약물로 정신이 마비되어 있었다. ... 소독약보다 더 강한 똥 냄새.
도리스 레싱/다섯째 아이 중 p110
지나치게 힘이 세고 지능이 단순한 다섯째 아이 벤은 그의 이성적인 다른 가족들의 손에 의해서 버려진 아이들이 죽어가고 있는 수용소로 보내진다. 벤의 엄마 헤리엇은 죄책감을 참지 못하고 벤을 찾아가고 약에 취해 잠들어있는 벤을 집으로 다시 데리고 온다. 집으로 돌아와 벤은 여전히 힘이 세고 지능이 단순하고 야만적이다.(배고파서 냉장고의 생닭을 입으로 뜯는다)
하지만 버려졌던 기억, 약으로 통제됐던 그리고 차가운 수용소에서 악몽이 몸에 새겨진 벤을 엄마 헤리엇은 '네가 말을 듣지 않으면(얌전히 있지 않으면) 다시 그곳으로 보내버리겠다'는 말로 통제한다. 이 일은 엄마에게도 슬프고 벤에게도 슬프다. 하지만 둘이 사람들 속에서 살기 위해서 헤리엇은 벤을 제어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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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따가운 시선과 목을 죄어오는 탄압으로 부터 자유로울 방법은 '죽음'밖에 없는 것일까. 세상이 원래 벨벨 꼬여있는 데니까 어디서 부터 풀리면 풀린다는 해결이란 없고 이대로 적당히 구간 구간에서(일시적으로) 만족과 기쁨, 행복감을 느끼면서 살아가면 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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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내 눈에서 멀리서 죽어다오.'
그래도 다들 자기를 인간이라고 생각해서 그 알량한 양심들이 있다. 양심과 죄책감.
그래서 비난을 피하기 위해서 제발 이 없어졌으면 하는 존재들이 한 곳에 모여서 소리 소문없이 갔으면 하는 거 같다.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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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벤에 대해서는 아직도 판단유보 중이야. 해리엇은 벤이 돈이 없어서 죽어주기를 바랐던 건 아니잖아. 벤을 되찾으러 가는 해리엇을 보고 나름 '인간적'이라고 생각했지만 죽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부분도 나름 '인간적'이었던 거 같아. '나라면 어땠을까?' 이런 생각은 사실 너무 버거워서 하기도 싫어지더군. 나는 해리엇일 수도 있겠지만 데이비드일 수도 있었을 거 같아. -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