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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 읽기_ 낸시 홈스트롬 엮음, 『페미니즘, 왼쪽 날개를 펴다』(심광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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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호교차성의 관점에서 억압체계 분석... 적-녹-보라 연대에도 시사

_ 깊이 읽기_ 낸시 홈스트롬 엮음, 페미니즘, 왼쪽 날개를 펴다

(유강은 옮김, 메이데이, 2012.5)

2012년 08월 27일 (월) 18:03:00   교수신문 editor@kyosu.net

 

[그림] 케테 콜비츠(1867~1945), 「죽은 아이를 안고 있는 어머니」, 소묘 드로잉, 1903.화가 자신이 아들을 잃기 전인 1903년에 그린 작품이다. 자식을 잃은 어미의 처절한 아픔을 담담하면서 비극적으로 묘사해냈다. 차갑게 식은 아이를 부둥켜안고 온몸으로 흐느끼는 어머니의 고통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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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에서 페미니즘 하면 자유주의 페미니즘과 급진적 페미니즘을 떠올리는 게 통례이다. 이런 통념은 19세기말에서 20세기 초 양성평등을 주장한 자유주의 페미니즘을 1세대 페미니즘으로, 1960년대 사적 영역에서의 여성 억압과 여성 성욕의 억압이라는 문제를 제기한 급진적 페미니즘을 제2세대 페미니즘으로 구분하는 통상적인 역사적 접근법과도 일치한다. 그런데 이런 통념은 그 자체로 복합적인 여성운동의 실천과 이론을 계급적, 인종적 문제들과 분리해서 보려는 특정한 경향의 산물일 따름이다.

 

장구한 역사 속의 현재진행형 기획 실제 역사에는 여성해방을 노동자계급운동과 반인종차별운동과 결합해 실천하고 이론화하려 했던 다양한 흐름들이 존재하고 있다. 지난 5월에 출간된 『페미니즘, 왼쪽 날개를 펴다』(메이데이)는 페미니즘 역사의 왼쪽 날개들의 두터운 스펙트럼을 풍부하게 소개해주고 있다. 서문에서 엮은이 낸시 홈스트롬은 “계급과 성뿐만 아니라 인종/민족이나 성적 지향 같은 정체성의 다른 측면까지도 통합하는 일관되고 체계적인 방식으로 여성의 종속을 이해하려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사회주의 페미니스트하고 규정”한다.

 

엮은이는 1970년대의 ‘좁은 의미의 사회주의 페미니즘’(‘반마르크스주의적’ 페미니즘)을 넘어서서, 러시아 혁명기의 알렉산드라 콜론타이, 마르크스·엥겔스, 1830~40년대의 유토피아 사회주의 운동과 프랑스 혁명기의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의 『여권의 옹호』(1792)로까지 소급되는 장기간에 걸쳐 전개된 ‘현재진행형 기획’으로서의 사회주의 페미니즘을 제안하고 있다. 또한 엮은이는, 잊혀진 전통을 ‘현재진행형의 기획’이라는 관점에서 적극적으로 재평가하고 진행 중인 연구들을 광범위하게 종합해 소개하려는 이 책이 ‘세계화의 야만적 결과’에 대한 저항이 전지구적으로 활성화하기 시작했던 2002년 당시의 정세를 배경으로 한 것임을 밝힌다. 그리고 1970년대의 사회주의 페미니즘이 1980~90년대에 들어 퇴조하게 된 것은 당시의 이론 내적인 불명료함 때문만이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정치가 전반적으로 우경화하고 포스트모더니즘이 득세하게 된 특정한 맥락에서 비롯했음을 지적하고 있다.

 

그에 반해 노동력에서 여성과 소수민족이 차지하는 비율이 점차 커지는 21세기에 들어와 번성하기 시작한 사회주의 페미니즘은 1970년대와는 달리, 즉 자본주의, 가부장주의, 인종주의 등의 여러 억압 체계들 간의 우선순위를 따지는 방식의 이론화와 달리 이들 간의 상호연관성, 교차성을 일관되게 보여주는 데 주력한다는 점에서 ‘넓은 의미의 사회주의 페미니즘’이라고 명명된다. 홈스트롬은 1970년대 식으로 마르크스주의가 생산관계에 초점을 맞추면서 가족 내부의 노동을 등한시했다고 비판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재비판한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가족과 사회 일반의 성적 평등뿐만 아니라 성적 분업의 종식까지 주장했던 유토피아 사회주의자들의 열망을 공유했고, 온갖 사회적 위계의 자연주의적 정당화에 대한 비판을 심화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마르크스·엥겔스 자신은 물론 이후 마르크스주의에서도 ‘개인적 관계와 정서적 차원으로 확대된 사회이론’을 충분히 발전시키지 않았다는 점에서, 마르크스주의의 기본적인 이론에 중대한 수정을 가할 필요는 없지만 보완할 필요는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관점에서 이 책은 성과 섹슈얼리티, 월경이라는 가장 개인적인 주제로부터 시작해, 사랑과 노동과 권력의 무대로서의 가족과 가부장제의 문제, 생존권, 임금노동, 성노동을 둘러싼 전세계적 투쟁, 사회복지와 공공 정책, 정치와 사회변혁의 다양한 주제들을 다루고, 마지막으로는 인식론과 인간 본성의 문제, 인간 지배와 자연 지배에 대한 저항을 통합하는 이론적 접근, 에코페미니즘과 환경정의의 문제를 다루는 가장 추상적이고 보편적인 주제로 마무리되는 순서로 35인의 글들을 엮고 있다. 필자는 지면의 한계상 여기서는 이렇게 다양한 내용을 하나로 엮어내는 ‘상호교차성’이라는 관점을 부연하는 것으로 만족하고자 한다.

 

상호교차성(intersectionality)의 관점 공동저자의 한 사람인 앤 퍼거슨은 ‘다중체계 사회주의 페미니즘’이라는 입장에서 이 상호교차성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1) 상호작용하면서도 半자율적인 인간 지배체계를 통해 사회를 파악할 때만 인간 역사의 많은 부분을 이해할 수 있다. 인간 지배체계 중에서도 중요한 세 가지는 계급, 인종/민족, 섹스/젠더이다. 2) 나의 독특한 다중체계 사회주의 페미니즘 이론이 다른 이론과 구별되는 지점은 성/애정 생산이라는 개념이다. 양육체계와 섹슈얼리티와 애정의 사회적 조직화는 물질적 욕구만큼이나 기본적이다. 3) 인간의 기본적인 물질적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이라는 마르크스·엥겔스의 생산 개념을 자연의 변형만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의 생산과 재생산(역사적 양육 및 성체계를 통한 사람의 생산과 변형)까지 포함하도록 확장할 필요가 있다.

 

이런 관점에서 부르주아 가족만이 아니라 귀족과 농민 가족 등 다른 형태의 가부장적 성/애정 생산을 개념화할 필요가 있다. 또 밸 플럼우드는 에코페미니즘의 입장에서 기존의 사회생태학이나 근본생태론을 비판하면서, 억압의 복수성을 인식하며 응집성 있는 억압이론을 체계화하려면 “각각의 억압에 모든 억압이 포함된다”라는 관점과 각 투쟁의 상대적 자율성을 동시에 인정함으로써 하나/다수의 딜레마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러 억압이 하나의 그물망을 형성하기에 각각의 부분을 함께 보면서 따로따로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 책에서 풍부하게 소개되는 그물망처럼 연결된 억압체계들의 다중체계적 분석틀과 구체적 투쟁사례들이 최근 한국사회에서도 논의되기 시작한 ‘적-녹-보라 연대’를 위한 이론적-실천적 논의를 촉진하는 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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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광현 한국예술종합학교·미학/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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