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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왼쪽 날개를 펴다]를 읽고
[서평] 성,계급,인종의 총체로서의 사회주의 페미니즘
<페미니즘, 왼쪽 날개를 펴다> 책이 번역, 발간되었다는 소식에 관하여 주변 페미니스트들에게 물었을 때 반가워하거나 흥미로워하는 반응과는 별개로, 생경하다는 반응을 접할 수 있었다.
이유의 하나는 한국 좌파들이 페미니즘을 하나의 교양으로 밖에 취급하지 않으면서, 페미니즘이 좌파와 함께 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추세에 덧붙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었고, 다른 하나는 페미니즘이 언제 ‘좌파적’이지 않은 적이 있었냐는 질문이었다.
이런 질문들에 대해 이 책, <페미니즘, 왼쪽 날개를 펴다>는 비켜나갈 수 있는 해답을 주지는 않는다.
사실, 이 책은 현재 서구에서 쇠락의 길을 걷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사회주의/맑스주의 페미니즘’에게 다시 생명력을 불어넣어야 한다는 일념으로 여러 방면에서 활동했던 페미니스트 활동가/여성학 학자들이 그 동안 쓴 글들을 엮은 책이다.
이 책의 의도는 이 책을 편찬한 낸시 홈스트롬이 쓴 서문에 분명히 드러난다. ‘이론적 추상 속에 빠져 허우적거리거나 경제 현실을 등한시하는 페미니즘 이론은(….)아무 쓸모도 없다. 여성 억압이라는 불의를 이야기하지만 자본주의 문제는 언급하지 않는 페미니즘은 여성억압을 끝장내는 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또한 홈스트롬은 생산양식과 별도의 억압체계(가부장제 혹은 섹스-젠더 체계)에 따른 억압을 강조했던 과거 (좁은 의미의) 사회주의 페미니즘이 쇠퇴하게 된 내적인 이유로 ‘억압의 다원적 체계를 수용함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체계를 필요로 하는지 알 수 없다’는 점을 들고, 외적인 이유로는 ‘포스트모더니즘의 발흥과 성/젠더 사이의 구분의 무화’로 더 이상 (재생산)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토대가 없어진 것을 든다.
그러나 한편으로 오늘날은 세계화의 영향, 여성과 소수 인종이 노동력에 차지하는 비중의 증가 등으로 사회주의 페미니즘이 어느 때보다 더 필요하고, 적극적으로 재평가해야 하는 시기이다.
이 책은 계급을 다른 정체성의 측면들과 적극적으로 통합하려는 페미니스트들의 분석 사례들을 통해 사회주의 페미니즘의 전통을 다시 드러내겠다는 목적을 분명히 하고 있다.
물론 이 책은 ‘새롭게 재평가될’ 사회주의 페미니즘의 이론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주지는 않으며, 실린 글들은 짧은 자전적 에세이부터 강연, 이론적 탐구, 사례 분석까지 그 종류와 형식이 다양하며, 기조나 그 질도 일관적이지 않다.
앞의 글을 쓴 저자에 대해 뒤의 글에서 비판하는 경우들을 종종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그 주제는 가족과 노동, 경제학 및 사회복지, 정치, 인식론 및 입장론까지 망라되어 있으나, 이는 편집자의 임의적 분류에 가깝다.
아마도 이론적 전개에 해당되는 글을 한 데 묶고, 사례 분석에 해당되는 글들을 가족과 노동, 복지 등으로 분류했으면 조금 더 책의 전개를 이해하기 쉬웠겠지만, 이 책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건 오늘날 ‘사회주의 페미니즘’의 이론적 전개가 분명하게 하나로 정리되기 어렵거나, 일목요연하지 않은 부분, 그리고 각각의 영역에서 사회주의 페미니즘의 분석 시도가 산발적으로 이루어져 왔던 것과 떨어져서 생각하기 어렵다.
이러한 모호함은 무엇이 사회주의 페미니즘인지에 관한 홈스트롬의 정의에도 드러난다. 홀스트롬에 따르면 ‘계급이나 성뿐만 아니라 인종/민족이나 성적 지향 같은 정체성의 다른 측면까지도 통합하는 일관되고 체계적인 방식으로 여성의 종속을 이해하려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사회주의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다고 폭넓게 규정한다.
즉 이론으로서 사회주의 페미니즘을 일목요연하게 제시하기 보다는 각 영역에서 소위 ‘문화주의’나 ‘후기구조주의’ 등에 경도되지 않는 다양한 정치적 기획과 분석들을 사회주의 페미니즘의 이론적, 실천적 자원으로 삼으려 하는 것이다.
또한 초창기 공상적 사회주의의 지도자들이 선명하게 제시했던 여성 해방의 상상력들을 통해 맑스주의가 오늘날의 여성 해방 기획에 있어서도 살아 있는 준거점이 될 수 있음을 보이고자 한다.
비록 분명하게 이론적 매력을 선사하지는 않으나 이 책은 그 동안 접하기 어려웠던 후기 자본주의 내 젠더/섹슈얼리티/노동 문제에 대한 ‘사회주의 페미니즘’적 이론적 분석과 사례들을 접할 수 있게 한다.
특히 마킬라 작업장에서의 여성/남성의 생산에 관한 레슬리 셀징어의 글이나 로즈마리 헤네시의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원제는 Reclaiming Marxist feminism for a need-based sexual politics: 욕구 기반 성정치를 위해 맑스주의 페미니즘을 재주장하기) 등은 여성성/남성성의 젠더 표현이 맑스주의 이론과 어떻게 결합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글들이다.
데니즈 칸디요티의 ‘가부장제와 교섭하기’나 맥신 몰리뉴의 ‘여성의 이해를 개념화하다’ 등은 사회경제적 젠더 이해가 여전히 우리에게 중요한 분석/개념틀임을 보여주는 고전적 글들이다.
그 외에도 이 책에 실려 있는 다양한 글들은 비록 시기적으로는 매우 다양하나, 현대 사회 분석에 성, 인종, 계급 개념을 단지 교차적으로만이 아닌, 통합적으로 사고하는 것이 중요함을 보여주는 페미니즘 입문서로 부족함이 없음을 보여 준다.
이 책이 2002년에 발간되었으며, 10년 후에나 국내에 번역되었음을 주지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미국 금융위기 발발을 전후하여 이 책에서 비판의 대상이 되었던 후기 구조주의(분명히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퀴어 이론을 포함한다.)는 많은 부분에서 경제적 비판, 대안에 대한 인식을 제시하는 방향으로 옮겨가고 있다.
분명한 건 경제 위기라는 상황 속에서 과거 포스트모더니즘 이론의 영향을 받았던 운동들(여성 운동 뿐만 아니라 성소수자 운동들) 또한 경제적 정의와 요구를 위해 조직될 것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란 점이다. 이러한 경향은 이 책이 선도적으로 예언한 것일 수도 있으며, 이 책을 더욱 빛나게 하는 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서 이들 운동이 단지 문화적인 영향을 과도하게 받은 ‘정체성 정치’라는 비판은 시차와 지역차가 있으며, 서구의 정치적 논쟁을 한국 사회에 적합하게 번역하기는 쉽지 않다. 한국 사회의 정체성 정치는 서구의 그것을 많은 부분 도입했으나 맥락적으로는 많은 차이가 있다는 점을 조심스럽게 지적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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