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제목 <내가 춤출 수 없다면 혁명이 아니다>는 20세기 초 유명한 혁명가로서 아나키스트이자 페미니스트, 작자이자 편집자였던 엠마 골드만의 발언에서 따온 것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 책은 불순하다. 그렇기에 자유롭다. 그 불순하지만 자유로운 상상력의 시원(始原)은 어딜까?
이 책에서 언급한 음악가, 미술가, 만화가, 시인, 소설가, 혁명가, 활동가의 작품들을 통해 그 해답을 알 수 있다. 바로 '자유롭고 불순한 상상력'은 인간에 대한 따스한 연민과 옹골찬 연대의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저자는 서문에서 이 부박한 시대에 ‘혁명’을 이야기한다. "혁명은 나날이 계속되는 일상 속에 지속되는 삶 속에서 계속되고 있었고, 계속되어야 하는 것"이라면서 "일상 속의 정치적 논쟁들을 보며 사회를 새롭게 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낮지만 단단하게 역설한다.
이 책의 장점은 바로 ‘혁명’이란 무거운 말을 예술가의 활동이나 일상의 대중문화를 끌어들여 쉽게 이해시킨다는 데 있다. 이론이 아니라 실제 몸으로 살다간 사람들과 지금 우리가 미처 모르고 있던 일상의 정치성을 조곤조곤 풀어냈다.
그 얼개를 훑어보면, 1부 게임, SF, 해킹 등에 감춰진 정치적 이야기, 2부 예술가들의 정치적인 활동이나 사연들, 3부 한국 근대사와 남미의 역사에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이들과 사건, 노래, 너무도 유명해서 쉽게 지나쳐버렸던 사실, 4부 인터넷을 통해 일어난 사건과 그 사회적인 성격을 분석하고 주장 등을 담았다
게임의 정치성
먼저, 흔히 접하는 컴퓨터 게임 속에 담긴 정치성을 분석한다. 저자는 "컴퓨터 게임은 숙고할 시간을 허락하지 않는다. 게임과 하나가 되지 않으면 그 안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비판할 시간을 절대 허용하지 않는다"라며 효과적인 이데올로기 재생산 도구로 작동하는 컴퓨터 게임을 하나하나 설명한다.
<스타크래프트>는 오직 상대방을 이기기 위한 침략이나 학살 말고는 다른 길이 없다. 게임 속에 등장하는 병사들은 가상 전쟁의 지휘자인 게이머에게 소모품 이상의 의미가 없다.
자유방임적인 자본주의 경제제도 아래에서 기업운영을 재현한 게임인 <캐피탈리즘>은 게이머가 모든 수단을 사용해 부를 축적하고, 전 세계에 초국적 독점자본을 건설해서 다른 회사를 이기는 것이 목표다. 자본가가 꿈꾸는 세상, 게임 속 노동자는 단지 자원의 하나이고, 임금을 올려주면 노동생산성이 향상된다.
이외에는 아무런 단서도 없어서 무더기 해고도 가능하고 생산 계획에 맞춰 얼마든지 임금을 조정할 수 있으나 노동쟁의는 일어나지 않는다. 미국 스탠퍼드대와 하버드대에서 경영학 보조 교재로 사용했을 정도다.
도시를 건설하고 경영하는 건설 운영 시뮬레이션 <심시티>은 미국 400여개의 초등학교에서 사회과학의 보조교재로 채택했고 국내 한 대학 도시공학과는 참고교재로 사용했다. 게이머는 비용에 비해 많은 전력을 제공하는 핵발전소를 일부 주민들의 반대를 묵살하고 설치할 수 있다. 세금 수입에 도움되는 상류층을 도시로 끌어들이기 위해 빈민가를 철거하고 상류층을 끌어들여 도시를 화려하게 발전시킨다.
유명한 게임인 <삼국지>도 일반 민중을 넓은 중국 땅덩어리를 차지하기 위한 군주들의 도구로 여기고 있으며 충성심 높은 민중은 높은 세금과 막대한 병사 동원을 통해 군주의 지배체제를 공고히 하는 역할을 할 뿐이다.
SF 소설의 왜곡된 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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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우주전쟁> 가운데 화성인의 지구 습격 장면 |
ⓒ 파라마운트 픽쳐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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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 G. 웰즈의 SF 소설인 <타임머신> <우주전쟁>에 담긴 문제의식이 우리에게 얼마나 왜곡되어 있는지도 짚어준다. <타임머신>은 실제 시간여행 자체보다는 그 여행을 통해 주인공이 바라보는 사회상 묘사에 치중했다. <타임머신>은 지금의 자본주의 체제가 계속된다면 극단적 계급착취로 지옥 같은 세상이 펼쳐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자본주의가 극에 달한 80만년 뒤 미래에 도착해 착취로 인해 서로 다른 종으로 진화해버린 자본계급과 노동계급을 본다. 자본계급의 후예들은 지상에서 부를 누리며 살지만 노동계급은 지하로 내려가 지하생활에 적합한 종으로 진화하고 생존을 위해 죽음과 같은 노역을 한다. 이 디스토피아적인 소설을 우리는 그동안 상큼하고 호기심 어린 시간여행쯤으로 생각한 건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얼마 전 영화로도 선보인 바 있는<우주전쟁> 또한 사실은 제국주의 침략 전쟁에 대한 내용이다. 화성인의 무자비한 침략을 바라보는 지구인의 모습이 바로 피식민 민중들의 모습이다. 아무 이유 없이 엄청난 무기를 들고 들어와 지구인들을 학살하고 착취하는 화성인의 모습이 바로 제국주의자들의 모습이다.
스필버그는 화성인의 폭력에 몰린 지구인을, 테러를 당하고 있는 미국인의 모습과 등치시키고 가족주의로 그 공포를 이겨나가는 것으로 연출했다. 그야말로 미국식 ‘자기 논 물대기’적인 해석이다.
정치적인 예술이 지닌 아름다움에 대해
사람들은 정치성이 예술의 '아름다움'에 치명적인 해가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예술의 바탕에는 인간에 대한 무궁한 애정이 있기에 인간의 고통과 비애에 동조하는 것이 아닌가? 인간사회의 부조리함에 문제를 제기하고 또 수정되어야 한다고 발언하는 건 정치적인 일이자 예술적인 일이다. 이 책에서는 그 정치성이 듬뿍 배인 예술가들을 만날 수 있다.
"어떤 책도 정치적인 관점에서 순수하게 자유로울 수 없다. 예술이 정치와 관계를 가져서는 안 된다는 입장은 그것 자체가 정치적인 태도이다."
<동물농장>과 <1984>이라는 작품으로 유명한 조지 오웰의 말이다. 이 말처럼 그는 자신의 저술이 가진 정치적인 색채에 대해 옹호해 왔으며, 1936년 스페인에서 몸으로 실천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때의 경험을 담은 <카탈로니아 찬가>을 남겼다. 오웰 스스로 <동물농장>에 대해 ‘정치적 목적’과 ‘예술성’을 잘 살렸다고 만족하기도 했단다.
비틀스의 멤버였던 존 레넌 역시 정치적 실천을 음악과 시위 그리고 공연을 통해 수행했던 대표적인 예술가다. 우리에게 너무도 유명한 <이매진>의 가사를 보자.
"국가가 없다고 상상해 봐요… 국가를 위해 죽고 죽이는 일이 없어지는 것을 상상해 봐요… 소유가 없다고 상상해 봐요… 탐욕이나 굶주릴 필요가 없어지는 것을 상상해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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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니매이션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한 장면. |
ⓒ 미야자키 하야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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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레논은 이 노래가 "반종교적, 반민족주의적, 반인습적, 반자본주의적"이라고 했다. 이 얼마나 불순한가, 그러나 또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 외에 불순함들. 클래식 음악가인 바그너와 쇼스타코비치, 프랑스 공산당 당원이었던 피카소.
2002년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으로 베를린 영화제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받은 미야자키 하야오가 1960년대 대학에서 아동문학연구회 활동을 하면서 당시 일본 전공투의 마르크스주의와 안보투쟁에 많은 사상적 영향을 받았고 스스로 심정좌파라고 밝히기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예술과 정치의 상관관계는 꺼림의 대상이 아니라 무해하고 더 나아가 유익한 관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경외감으로 가슴이 뛰다
책은 반환점을 돌아 다소 무거워진다. 뒷부분은 직접적인 혁명가나 정치가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체 게바라, 에밀리아노 사파타, 사파티스타, 호세 마르띠, 단재 신채호 등. 그러나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 무거움이란 건 앞부분에 비해 그렇다는 것이고, 또 전반의 재미는 책을 끝까지 밀고 나갈 충분한 동력을 준다.
이 책은 분명 그 주제의 무거움을 무색하게 할 만큼 치명적이게 재미있다. 그 재미가 내용의 달달함이나 형식의 톡 쏘는 창의성 때문은 아니다. 그러나 뜨거운 재미가 있다.
그 뜨거움은 분명 정치성이고, 정치성이 뜨겁다는 건 그만큼 인간애가 뜨겁다는 얘기와도 같다. 뜨겁게 살다간 사람들의 삶에 대한 경외감으로 책의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가슴이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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