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검색창에서 '메이데이'라고 쓰고 클릭하면 대략 출판사의 성향을 알 수 있다. 기존에 가지고 있는 책 뿐 아니라 읽은 책 중에서도 메이데이 에서 나온 책은 이 책이 유일한 것 같은데, 이렇게 출판사명을 가지고 궁시렁 거리고 있는 건 별다른 딴지를 걸려는게 아니고, 책장을 굳이 열어보지 않아도 어떤 내용을 담아내고 있는지 쉽게 눈치챌 수 있다는 말을 하고파서다. 대략 교육 문제에 관한 여러 주제들에 관해 평소 관심을 갖고 신문이나 뉴스를 꼼꼼히 챙기신 분들에겐 이 책이 필요없다. 진보성향의 단체 소속의 개인에 의해 한 꼭지씩 쓰여져 엮인 대한민국 교육 비판서이기 때문에 여기 담겨있는 주의주장들은 평소 언론에서 대립구조를 이루는 한쪽의 입장과 별반 다르지 않다.
한가지 걸고 넘어지면 나는 전교조에 그리 호의적이지 못하다. 평소 사회에 관한 내 생각들을 따라가면 전교조로 연결되어야 할 것 같지만 그렇지 못하다. 그렇다고 전교조와 또다른 노선을 걷고 있는 교총이 맘에 드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교총은 전교조보다 조금 더 싫다. 전교조는 단지 그보다 아주 조금 덜 싫을 뿐. 아무래도 하나의 '단체' 안에 여러 다양한 의견을 가진 분들이 모이다보니 내부에 진통이 지속되기도 하는데, 그리하여 나오는 주의주장이나 결론은 그다지 동의해주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 교육 현장에서 흔히 목격되는 비정규직 교원에 대한 태도나 학생을 대하는 태도도 전교조에 소속된 교사와 그렇지 않은 교사와 별다른 차이를 보이지 못한다. 어쩌면 내가 전교조는 이래야 한다, 라고 감당 못할 기대감을 떠안겼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한국 교육이 제 갈 길을 가지 못하는 원인에 대해 파헤치고(?) 있다. 학교 교육이 평등하고 중립적이다, 라는 세간의 시선은 왜곡된 것이라고 시작하며, 공교육이 부실해서 사교육이 번성하는 것인가, 대학입시제도를 고치면 교육문제가 해결되는가, 교원을 평가하면 교육의 질이 높아지는가, 간판이 품질을 보장하는가, 등등의 아주 민감한 '정치적인' 주제들을 다루고 있다. 각각의 글은 여러 사람들이 하나씩 도맡아 작성했다. 필자에 이름 올린 이들은 홍세화씨를 비롯 참교육연구소 소장 이철호, 민노당 정책연구원 송경원, 대안교육연대 사무국장 이치열, 진보교육연구소 사무차장 박유리 등 단체의 이름을 걸고 나온 이들과 교육 현장에 있는 중고등학교 교사들이다.
머릿글에서 이철호 저자 대표는 "소수의 경쟁력 있는 인재가 육성되지 않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다수의 학생들이 현 교육제도 아래서 건강하게 성장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라고 이야기한다. 더불어 "신자유주의 교육 정책은 영어와 컴퓨터에 능숙한 젊은이들을 많이 육성해낼 수 있을지 모르나, 창조적 지식, 높은 수준의 과학적 지식, 문화적 감성과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지식인을 양성해내는 데는 실패하고 있다"고 말한다. 문제 의식에 동의한다. 지금 한국 교육의 문제는 평준화가 아니라 신자유주의적 교육 정책이다. 사회에서, 기업에서 필요로 한다는 이유로 그들이 해야 할 역할을 국가의 공교육에 떠맡기고, '大學'의 이름을 먹칠하면서 학원화시키고 있다.
'경쟁'이라는 이름 하에 모든 것은 용납되고, 마치 '경쟁'만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는양 부추기고 있는 언론과 정치인들에 의해 빈부격차 벌어지듯 학력까지 벌어지고 있다. 잘하는 놈은 잘하는 놈들끼리 묶고, 못하는 놈은 못하는 놈들끼리 묶어서, 잘하는 놈들은 더 잘하게 만들고, 못하는 놈들은 더 못하게 만든다. 여기에 개입하는 게 '자본'이다. 건너들은 어떤 분의 말씀따라 강남에선 초등학생들이 카프카며 니체며 읽고 있고, 강북이나 지방에선 산수와 한글을 배우고 있다. 태어나면서 부모가 가지고 있는 돈의 액수에 따라 맞춤형 교육이 시작되고, 친구들은 영원히 만날 수 없는 타자가 되어간다.
한국 교육은 결코 평등하지 못하다. 과거에 교육에 있어서 평등은 기회의 평등을 의미했지만 이제 더 이상 기회의 평등은 껍데기만 남았다. 애초 시작이 다른 학생들을 놓고 기회의 평등을 논하고, 경쟁에서 진 아이에게 기회를 똑같이 줬는데 네가 졌으니 어쩔 수 없다, 라고 말하는 건 폭력이다. 이제 기회의 평등은 그 의미가 정정되어야 한다. 기회의 평등을 논하기에 앞서 전제되어야 할 것은 '차별'이다. 어릴 때부터 이런저런 혜택을 받으며 자란 아이의 문을 더 좁게 만듦으로써 기회의 평등을 논해야 한다. '역차별'이라는 말이 나올 법 하지만, 그 아이가 자라며 누린 혜택부터가 이미 역차별의 시작이었다. 이러한 또다른 역차별을 막기 위해선 사사로이 가진 자본에 의해 이루어지는 차이를 충분히 인위적으로 메꿔줘야 할 것이다.
한달 평균 50만원의 비용이 사교육에 지출된다는 기사를 읽었다. 왜 사교육을 멈출 수 없을까. 안보내면 그만인데, 안보낼 수가 없다고 말한다. 왜? 학급의 친구들이, 같은 동네 영희, ?수도 다 그만큼의 사교육을 받고 있으니까. 불안해서 불안해서 안보낼 수가 없다. 내 아이만 뒤쳐질까봐. 똑같이라도 따라가기 위해서는 그만의 비용을 매달 지출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생각해보자. 그들 모두가 함께 멈추면 된다. 그런데 멈추지 않는다. 영희가 학원 가면 철수도 학원 가고 철수가 학원 가면 순이, 갑수, 말자 다 따라 간다. 그래야 보통이라도 유지를 하니까. 사실 시작은 다른 아이들보다 더 우수해지기 위해서, 더 앞서나가기 위해서였는데, 종국엔 모두가 평균이라도 따라가기 위해서 다니고 있다. 비극이다.
사교육 번성의 원인은 결코 공교육 부실에 있지 않다. 학교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학교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싶어서 생겨난다. 근데 모두가 두각을 드러내고 싶어하다보니 종국엔 사교육이 공교육보다 우선시 된다. 학교에서 우수해지기 위해서, 그래서 점수를 잘받고 내신을 다지고, 좋은(?)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대학에 잘 가기 위해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따라가면 결국은 대학이다. 그런데 그냥 대학이 아니라, 일류대학이다. 이미 고등학교 정원보다 대학 정원 수가 더 많고, 지방의 몇몇 대학들은 망할 위기에 처해있는 판에, 대학에 가려고 그 고생을 하지는 않는다. 모두가 하늘대학을 꿈꾸기 때문이다. 하늘대학 나와서 대접받고 좋은(?) 직장에 취직하기 위해서, 그래서 성공한 인물로 기억되고 싶어서.
민노당 송경원 정책위원장은 이 책에서 이 짓을 멈추기 위해서 첫째, 일류대 거품을 빼자. 둘째, 60만 명의 희망자에 맞게 일류대 문을 더 열자. 더불어 국공립대통합네트워크를 만들자. 나라에 속한 국공립대만이라도 먼저 네트워크를 만들어 함께 뽑고 함께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대학 이상은 평생교육의 장이 되어야 한다. 고3 마치고 들어가는 코스가 아니라 언제라도 들어갈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국가나 기업이 노동자의 평생교육을 위해 학습휴가제나 학습비 지원 등을 실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사교육을 멈추기 위해서는 공교육에서 그들이 원하는 것을 충족시켜줘야 한다. 저들이 경쟁을 멈출리는 없으므로 경쟁을 멈출 수 있게끔 문을 활짝 열어버리고 같이 뽑고 같이 교육시키는 마인드를 가진다면 어느 정도 해소된다는 것이다. 막연한 꿈이 아니라 모두가 그리하겠다는 합의만 있으면 충분히 실현 가능한 방법이다.
왜 부모는 자식을 남들보다 더 뛰어나게 만들고 싶어할까. 잘 살게 만들기 위해서다. 그럼 잘 사는게 뭔데? 특목고와 일류대학과 대기업이 잘 삶을 해결해 줄 수 있다는 사고방식을 버리자. 돈 많이 벌고 풍족하게 살면 그걸로 충분할까. 왜 스스로의 몸만 살찌우려 하고 영혼을 돌보지 않는가. 결국 부모가 꿈꾸고, 아이들이 꿈꾸는 것은, '행복'이라 할 수 있을텐데, 정말 그것들로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는걸까. 부모가 자식이고 교사고 기타 등등 동일한 공동체에 살아가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이 미친 짓을 멈추고, 생각해야 한다.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 그것들을 통해 내가 이루고자하는 것은 또 무엇이고, 또 무엇이고, 또 무엇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부모의 욕심에 의해서, 혹은 부모가 주입한, 사회가 주입한 대로 내가 세상을 바라보고 있진 않을까,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건 아닐까, 를 고민해야 한다.
이 책은 공교육과 사교육의 문제, 평준화의 문제 뿐 아니라 교원평가, 학벌사회, 대학선발, 대안교육, 조기영어교육, 자립형사립고, 로스쿨, 구조조정 등에 대해서도 다룬다. 우리가 각각의 커다란 주제들을 살펴보며 생각해야 할 것은, 이런 복잡한 제도를 통해서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근본적인 물음이다. 하지만 이 책엔 그런 근본적 물음은 들어있지 않다. 그보다는 언론에서 다루어지는 맥락에 대해, 또 그들이 가진 정치적 교리에 따라 각 주제를 살펴보고 있다. 틀렸다고 말하고픈 것이 아니다. 나는 대략 여기 쓰여져있는 주장에 대해 90%는 동의한다. 10%를 뺀 것은 근본적으로 더 논의할 수 있는 부분이 있지만 미리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바탕에 두고서 작성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기 때문이다. 정치적 맥락을 치고서 시작했다면 더 좋은 생각들이 많이 나올 수 있었을 거란 아쉬움이 든다.
p.s. 진보교육연구소, 범국민교육연대, 참교육연구소 등이 전교조와 관련이 있는지 없는지는 사실 모른다. 앞에서 전교조를 이야기한 것은, 느끼기에 전교조의 주의주장과 여기 거론된 단체들의 대표로 나온 이들의 주의주장이 크게 다르지 않아 보여서이다. 사실상 관련 없는 단체들을 임의로 엮어 개인적 견해를 드러낸데서 오해가 빚어진다면 그건 전적으로 나의 잘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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