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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도로 운전 중 졸려도 그냥 계속 가라
[서평] 교대제, 무한이윤을 위한 프로젝트
오주환(서울보건대학원)
<참세상> 2008년01월10일 16시25분
하품과 함께 졸음이 물밀듯이 밀려온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럴 때는 만사를 제치고 잠을 청하는 것이 제일이다. 그야말로 꿀맛과 같은 단잠을 즐길 수 있도록 눕자마자 푹 잠들어서 넉넉히 자고 상쾌하게 일어나면 그 다음에는 몸과 마음이 가벼워져 새로운 시작을 흥겹게 맞을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잠을 제대로 못자고 활동할라치면 집중도 잘 안되고 늘 몸이 무겁고 피곤한 것은 두 말하면 잔소리다. 이처럼 잠을 자고 싶을 때 아무 걱정 없이 맘껏 잘 수 있다는 것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중의 하나다.
나는 주기적으로 밤에 근무를 해야만 하는 직장에 다니고 있지만, 지금까지 나는 잠에 관한한 아무 고민이 없었다. 항상 누우면 바로 자고 낮에도 점심식사 후 짧지만 깊은 낮잠을 들 수 있으며, 밤이던 낮이던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는 긴 시간 집중도 잘 하였고, 하던 일을 마치면 그 시간이 낮이던 밤이던 아무 상관없이 쿨쿨 잘 잤다. 잠에 관한 내 몸의 이런 훌륭한 적응은 시간차가 있는 외국에 나갈 때 특히 유감없이 그 진가를 발휘했다. 동행한 사람들이 시차적응으로 힘들어 하는 기간 동안 난 거의 불편을 겪지 않는다. 어느 나라에서건, 잠 잘 공간이 얼마나 쾌적하건, 상관없이 난 늘 자고 싶으면 잘 잔다. 이렇게 내 각성과 수면 사이의 이런 손쉬운 전환은 가까이 지내는 많은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곤 했다.
하지만 이런 내게도 변화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몇 년 전부터 밤에 잠을 자지 않고 무슨 일을 한다는 것이 점점 힘들어지기 시작했으며, 밤에 근무를 마치고 다음날 아침에 잠을 자는 것이 쉽지 않게 되었다. 내게는 큰 변화다. 잠에 관한한 어떤 어려움도 겪지 않았던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나이가 한 살씩 더 먹어가는 것 말고는 다른 요인을 찾을 수 없었다. 주기적으로 밤에도 근무를 해야만 하는 직업을 가진 나는 최근 이런 신체상의 변화가 두렵게 다가온다. 젊었던 때 나의 몸은 해가 뜨고 지는 것과는 완전히 무관한 듯 보였지만, 지금의 내 몸은 그렇지 않다. 나는 이제부터 어떻게 일해야 할지 걱정이다. 당장은 밤 근무 시간을 줄이는 선택을 했지만, 이 선택조차도 얼마나 용인될 수 있을지 확실치 않기 때문이다.
최근 나의 이런 상태에 꼭 맞는 화제를 다루고 있는 책이 메이데이 출판사를 통해 세상에 나왔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집필한 [교대제, 무한이윤을 위한 프로젝트]가 바로 그 책인데, 이 책의 183쪽 ‘교대근무에 대한 내성(tolerance)’ 편에 보면 “...(중략)..우선 나이가 들어 4-50대에 이르면 교대근무에 대한 적응력이 줄어든다. ...(중략)...”라는 내용이 등장한다. 결국 야근 후 잠자기 어려운 증상은 내게만 나타나는 예외적인 현상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이런 이야기를 비롯하여 이 책에 실려 있는 모든 내용들은 하나같이 놓치기 아까운 글들이며, 구체에서 추상으로 논리적 전개가 아주 잘 된 읽을거리이다.
확신하건대 이 책은 여러 가지 형태의 교대제에 기초한 야간근무를 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건강을 챙기기 위해 한번은 꼭 읽어야 봐야할 건강지침서다. 야간근무를 하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신체현상에 대해 돌아보고 또 자기주변의 사회생활을 새로운 관점에서 다시 점검해 보게 만드는 훌륭한 책이다. 이 책은 특히 교대근무로 잠을 자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피해자인 당사자를 비난하지 않고 사회적 의학적 관심을 할애하고 있는 몇 개 안되는 책들 중 하나이다. 가족과 도란도란 웃음꽃 피는 대화를 나누는 행복한 가정을 꿈꾸지만 직장 근무 때문에 그렇게 해 본지가 언제인지조차 기억이 가물가물한 야간근무 종사자들이, 자신의 가족을 다시 되찾고 싶다면 역시 이 책을 꼼꼼히 살펴 볼 필요가 있다. 한국에서 일하는 사람들 중 9시-출근-6시-퇴근(9 to 6)이란 행운을 갖지 못한 모든 이들의 마음속에 깊이 새겨질 만한 많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는 책이다.
이 책의 고유한 특징인 다양한 수준의 내용구성은 독자가 어떤 수준의 관심을 갖고 있던지 그 모두를 각각 다른 이유로 매료 시킬만하다. 그 만큼 이 책이 담고 있는 시선은 다양하다. 이 책은 밤 근무 후 숙면을 취하는데 도움이 되는 여러 제안들과 같이 오늘 당장에 일용할 간단한 양식부터 시작해서, 자신이 근무하고 있는 유형과 다른 사람들의 교대제 유형을 비교해서 볼 수 있도록 해주기도 하며, 교대제 근무는 어떤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지, 교대근무에 대한 국내법과 규제사항 그리고 국제기구의 권고안들에는 무엇이 있는지, 교대제 근무는 인간의 신체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 지, 덜 피로감이 오고 더 적응을 잘 할 수 있는 순환근무조의 근무시간 이동패턴은 무엇인지, 교대제 근무를 하는 사람들은 무엇을 가장 힘들어 하는지, 신체에 미치는 영향이 교대제 유형별로 어떻게 다른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교대제 근무를 하는지, 교대제는 고용주 기업주에게는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지, 교대제는 도대체 왜 생겨났고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앞으로 교대제는 어떻게 변해갈 것인지, 어떻게 변화시켜 가야할 것인지 등등 교대제와 관련된 거의 모든 궁금증들이 백과사전처럼 모아져 있기 때문에 다양한 독자들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어 보인다.
하지만 교대제 백과사전으로서 갖는 의미보다 더 빛나는 이 책의 미덕이 있다. 각각의 시선 하나하나도 재밌게 따로따로 볼 수 있어서 충분히 독자들을 사로잡겠지만, 다양한 시선을 통해 구성한 교대제에 대한 입체적 조망이야 말로 교대제에 관한 진실에 보다 완전하게 접근할 수 있는 이 책만의 독특한 백미다. 이런 입체적 접근을 바탕으로, 이들은 ‘야간노동의 사회적 정당성’에 대해 정면으로 문제제기하고 이점과 관련하여 ‘야간노동의 폐절’을 주장한다. 정말 신선하다. 이 책은 이렇게 또박또박 말하고 있다. “사회적 필요성에 의해서 진행되는 야간노동이 아니라 오로지 개별 기업의 경영상의 필요 즉 개별기업의 이윤만을 위해 지금까지 실시되어 오고 있던 모든 종류의 야간노동은 마땅히 당장 철폐되어야 한다.” 저자들은 또한 자신들의 이 주장을 흥분해서 떠들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매우 냉정하게 그리고 아주 꼼꼼하게 이를 논증하고 있다.
이 책 [교대제]는 저자들이 직접 교대제 사업장들 속에 들어가 수년간 조사하고 분석한 다양하고 풍부한 현장 조사 연구결과들을 비롯하여 이 분야에 관해 국제학술지에 실린 주요 논문들, 각종 정부의 법안들과 통계량, 그리고 깊은 사고의 폭을 갖는 관련 사회과학 저작물들을 모두 한데 모아 저자들의 연구와 실천이라는 믿음직한 용광로에서 녹여 새로 만든 탄탄한 줄거리의 창작물이다. 다양한 독자 여러분들의 관심사나 지적 현실적 욕구를 여러 가지 수준에서 만족시켜 주기에 이 책이 충분한 가장 큰 이유는 사실 이것이다.
이 책이 이렇게 짜임새 있게 만들어 질 수 있었던 이유는 아마도 이 책의 저자들이 이 주제에 관한 다양한 접근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라는 점이 그 이유일 것이다. 이 단체는 경륜 많고 헌신적인 노동운동가들과 산업의학 전문의와 내과, 응급의학과 등 임상의학 전문의, 공인노무사 그리고 노동조합의 노동안전보건 담당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렇게 전문성과 현장성을 두루 갖추고 있는 이 단체에 의해 쓰인 책이기에 [교대제]는 구체적이면서도 포괄적이고 원칙적인 권고를 담을 수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구성을 개괄해 보면 다음과 같다.
프롤로그에서 이 책은 우리가 하루의 시작부터 끝까지 살면서 만나는 사람들의 상당수가 교대제 근무자라는 사실을 말하면서 시작한다. 제5부에서는 그 통계도 제시되는 데 한국의 전체 기업 중 40%, 대기업의 50%가 교대제를 실시하고 있다고 하니, 가장 기본형이라고 생각하던 9시 출근 6시 퇴근이라는 형식의 주간 정기근무가 사실은 보편적인 근무형태가 아니고 오히려 부차적인 형태라고 생각하던 교대제근무 형태가 가장 광범위하게 우리사회 깊숙이 들어와 있는 근무양식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 수 있다.
1부 : 이윤을 위한 '시간기획' 교대제의 역사
1부는 자본주의 이후 교대제가 어떤 역사를 갖고 시작되고 있는지를 다루고 있다. [교대제의 기원: 시간을 둘러싼 소리 없는 전쟁]이란 소제목을 갖는 제1부에서는 자본주의 이전에서도 교대제의 형태를 발견할 수는 있으나, 자본주의적 생산이 본격화 되면서 ‘돈이 되는 시간’에 대해 자본 측에서는 이윤을 위한 ‘시간기획’으로서 교대제를 고안해 냈다고 쓰고 있다.
지중해 연안과 라틴아메리카에 전통적이었던 낮잠을 자는 시간인 시에스타가 최근에 폐지되어 일하는 시간으로 대체되었던 예를 비롯하여 노동자의 삶과 필요가 자본의 이윤에 종속된다는 이야기가 서술되어 있다. 칼 맑스가 쓴 [자본(Capital)]중 노동일(workday)이란 장의 내용 중에서 인용 서술한 “...(중략).. 노동력의 정상적인 유지가 하루 중 일하는 시간의 길이(노동일-workday)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노동력의 가능한 최대한도의 일상적 지출[그 지출이 아무리 병적이고 강제적이고 고통스러운 것이라 할지라도]이 노동자의 휴식시간의 한계를 규정한다. 자본은 노동력의 수명을 문제 삼지 않는다. 자본이 관심을 가지는 것은 오로지 1노동일(one workday)안에 운동시킬 수 있는 노동력의 최대한도일 뿐이다. 자본은 노동력의 수명을 단축시킴으로써 이 목적을 달성하는데, 그것은 마치 탐욕스러운 농업경영자가 토지의 비옥도를 약탈함으로써 수확량을 늘리려는 것과 같다”라는 글이 웅변적으로 드러내는 것처럼 교대제는 자본의 이윤을 위한 시간기획의 산물이라고 말한다. 노동자의 투쟁은 결국 이런 자본의 시간기획에 대항하여 하루 중 노동시간을 단축하기 위한 역사적 과정이었다는 점을 1부의 후반부에서 서술하고 있다.
2부 : 뉴패러다임, 사람의 노동력만이 희망이다
2부 기업의 이윤과 교대제와의 관계를 분석 서술한 [교대제의 본질]편에서는 만약 자본이 교대제를 행하지 않고 같은 생산량을 얻으려면 3배로 생산의 공간을 늘려야 하거나 3배로 생산의 시간을 더 들여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자본이 1/3의 적은 비용으로도 지금의 생산을 해내는 방법이 바로 교대제라는 것이다. 앞장의 인용에서 언급한 바대로 공장을 하루 종일 돌려서 생산을 하고 이윤을 얻고 싶겠지만, 인간의 체력에는 한계가 있는 지라 그들을 휴식의 시간과 공간으로 돌려보내주어야 하는 자본의 안타까움을 해결하는 방법이 바로 24시간 생산을 지속하면서 사람들을 순환조로 편성하여 생산주기에 거꾸로 맞추는 것, 바로 ‘교대제’라고 말한다. 교대제라는 이름의 자본의 발명품은 인간을 불만 환히 밝혀주면 밤에도 쉬지 않고 알을 낳는 양계장의 닭과도 같은 처지로 내몰고 있다고 설명한다. 저자들은 교대제를 시행하지 않고 생산의 공간을 3배로 늘려서 일자리를 늘리는 것이 오히려 인간적인 대안이라고 주장한다.
한편 제2부에는 다른 책에서 여간해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호랑이의 눈과 같은 자료들이 돋보인다. 거의 어디서도 대중적으로 비판받아 본적이 없는 소위 뉴패러다임식 교대제에 대한 비판이 책속의 책이라 할 만한다.
‘사람이 희망이다’라는 슬로건과 함께 최근 대선후보로 입후보하여 상당한 득표까지 했던 전 유한킴벌리 사장으로 아이콘화 되어 있기도 하며, 교대제의 새로운 대안으로까지 부상한 이 뉴패러다임의 근무형태 - 평생학습체계와 4조2교대 등등 - 에 대해 이들이 가하고 있는 비판은 그동안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이 책만의 내용이기도 한다. 자세한 내용은 책을 통해 보기 바란다. 간략히 몇 가지만 요약 인용하자면, 이 뉴패러다임은 일본식 노동자관리 방식인 ‘평생학습’과 유럽식 ‘압축근무’ 즉 한꺼번에 많이 일하고 길게 쉬는 방식을 혼합한 것이라고 한다. 앞의 평생 학습방식을 통해 개인당 실제 노동에 투입하는 시간을 약간 줄이더라도 자본의 생산성 향상이란 과제를 노동자가 일상적으로 떠안고 풀어야 할 숙제로 전환시켜 놓는다고 하고 있다. 뉴패러다임에서 운영하는 학습조야 말로 줄어든 노동시간을 만회할 만큼 더 효율적으로 이윤을 생산해 줄 노동자로 바꾸는 바로 그 장치라는 것이다. 이렇게 생산효율을 스스로 높여 자발적으로 자본에게 기여하는 노동자를 뉴패러다임에서는 ‘위대한 근로자’라고 표현한다.
노동시간 단축에 대한 노동자의 요구를 어느 정도 수용하되 그 대신 충성스런 노동자로 길들일 수 있다면 자본으로서는 밑질 것이 없다는 계산을 하는 것이며, 이런 방식과 이런 이유로 생산설비의 첨단화 못지않게 이윤극대화의 원천인 ‘위대한 근로자’를 핵심에 두어야 한다고 하는 것이 바로 뉴패러다임의 “사람이 중심이다”로 표현되는 ‘사람중심 사고’라고 이 책은 말한다. 또한 유럽식 압축근무제도의 장단점과 허와 실에 대해서는 피로의 과도한 누적으로 회복시간이 더 오래 걸리는 문제점을 갖고 있다고 지적한다. 또한 더욱 놀라운 것은 뉴패러다임 체계를 채택한 대부분의 사업체는 이 체계의 채택 이전에 이미 인력의 최소화 즉 인력 감축을 먼저 달성하고 있다는 점이 그 동안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라는 것이다.
한국노동연구원 부설 뉴패러다임 센터의 ‘전환이슈’분석을 보면 “최대한 직무배치 및 공정 효율화를 통해 인력을 최소화한 후 부족 인원을 충원하였다”라고 평가하고 있다고 이 책은 말한다. 즉 이미 인원을 정리한 상태에서 생산에 필요한 인원을 증원하는 과정을 ‘일자리 창출’이라고 포장하여 선전하고 있는 셈이라는 지적이다. 실제로 이 책에 소개된 한 사업체의 인건비를 보면 매출액 대비 인건비가 기존 교대제에서 뉴패러다임식 교대제로 바꾸면서 채용인원을 38명에서 54명으로 늘려서 생산설비를 이제 1년 내내 쉬지 않고 가동시켜 92%에 달하는 순이익의 증가를 얻었으며, 이 과정에서 인건비는 10.54%에서 9.87%로 오히려 줄었다고 하고 있다. 이것은 위에서 설명한 사실들과 완전히 일치하는 결과다.
사람이 중심이라는 뉴패러다임의 슬로건에 숨겨진 진실은, 대신 일해 줄 우렁각시가 존재 하지 않는 한, 이윤의 원천은 역시 사람뿐이라는 사실을 확인시켜 준다. 뉴패러다임은 ‘이윤’을 증가시키는 새로운 패러다임일 뿐인 것이다. 뉴패러다임이 사람을 진정으로 중심에 두는 패러다임이라면 이윤이 줄더라도 야간노동을 먼저 없애는 것이 슬로건인 ‘사람이 중심이다’와 논리적으로 일관성이 있는 태도다. 그러나 뉴패러다임에서 슬로건으로 언급되고 있는 ‘사람중심’성이 사람의 ‘신체와 정신 혹은 건강’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이윤의 원천’으로서의 ‘사람의 노동력’만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뉴패러다임이야 말로 잉여가치의 원천을 제대로 보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즉 목적으로서의 ‘사람’이 아니라 이윤 획득의 수단으로서의 ‘사람’의 가치를 재발견 했다는 선언에 다름 아니다.
이것이 고전적 패러다임과 다른 뉴패러다임의 핵심이라면 ‘야간노동을 통한 중단 없는 설비의 가동’이란 교대제의 핵심을 뉴패러다임은 절대 비껴갈 수 없을 것이다. 이 책은 바로 이런 모순지점을 정면공격하고 있다. 더 나은 교대제라는 환상이 오히려 교대제에 내재된 고유한 야간노동의 폐해를 가리는 효과를 나타내고 있는 현실에서 이 책의 저자들은 인식의 먹구름을 시원하게 걷어내고 있다.
3부 : 교대제의 그늘
3부에는 교대제가 인간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결과인 [교대제의 그늘: 황폐해진 노동자의 몸과 삶]이 담겨있다. “.....(중략)...아무리 노동시간을 줄인다고 해도 생리학적인 관점에서 볼 때는 야간노동을 하면서도 건강을 해치지 않기 위한 대안은 없다.”는 국제노동기구(ILO) 문서로부터의 인용구처럼 교대제는 수면의 여러 가지 질과 양의 저하, 위장관계 질환, 심혈관계 영향, 기존에 가지고 있는 질환의 악화 등등 다양한 문제를 일으킨다는 점이 이 제3부에 자세히 실려 있다.
특히 교대 부적응 증후군(shift work maladaptation syndrome)과 같은 질환은 급성증상으로 교대근무 자체를 못하는 경우 뿐 아니라 만성적인 경우에는 앞서 언급한 개인단위의 질환과 아울러 별거나 이혼 등의 가정 사회생활에서도 나쁜 영향을 끼친다고 언급한다.
4부 : 졸리면 노동을 중단하라는 권고는 없다
4부에서는 교대제의 해악을 최소화 하기위한 법적 사회적 규제와 기존의 개선대안들에 대해 소개하는 [교대제에 대한 규제와 개선안]이 자리한다. 여기서는 기존의 법적 사회적 규제나 국제기구의 제안 등이 사실상 ‘교대제가 해당 사업장에서 불가피한 것인가’에 대한 점검을 하지 않게 만든다는 중대한 지적을 하고 있다. 교대제에 오히려 잘 적응하도록 하여 교대제 생산이 원활하게 되는데 더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운전 중 졸리면 차를 세우고 자라는 일반적인 운전사고 방지에 대한 사회적 권고와는 아주 다르게 산업 생산과정에서는 졸리면 노동을 중단하고 자라는 권고는 없다고 통렬하게 고발한다. 어느 사업장에서도 졸리면 편안히 잘 수 있는 곳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법령에는 이렇게 시설을 갖추라고 하고 있다. 아마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이제 알게 되었다면 내일부터 야간 근무도중 졸리면 당장 자라 하지만 근무태만으로 다른 규칙과 법령으로 당신이 해고될 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이 법령에도 불구하고 주의하라고 당부하고 싶다.
그러나 이런 야간근무 도중 잠을 청하는 것이 실현된다고 하더라도 그 생산이 꼭 그 밤에 이루어져야 하는지에 대해서 문제 삼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 있어서 볼 때 이 법대로 되고 있다고 해도 교대제 자체의 필요성에 관한 문제제기를 할 필요성은 전혀 사라지지 않는다.
5부 : 불필요한 야간노동철폐는 가능하고 현실적인 목표
그리고 마지막으로 교대제를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를 다룬 제5부 [교대제의 미래: 어떻게 할 것인가?]에서는 사회적으로 인정할 수 없는 자본의 이윤만을 목적으로 한 야간노동의 철폐를 주장한다. 아울러 임금보전 목적의 야간근로수당이 제 살을 파먹는 야간노동의 자발적인 선택이라는 악순환의 촉매제가 되지 않도록 기본급의 상향조정을 위한 투쟁을 이 책은 역설하고 있다. 야간노동철폐라는 주장은 매우 파격적으로 들리지만, 이미 이 파격적인 주장은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고 이야기 한다.
현대자동차는 노사합의 사항으로 2009년부터 야간노동을 철폐하고 주간노동만의 2교대제인 ‘주간 연속2교대제’를 실시하기로 하였는데 이 책은 이 사례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이 책은 이렇게 전 산업에서의 불필요한 야간노동철폐는 가능하고 매우 현실적인 목표라고 생각하면서, 이를 달성하기 위한 노동의 단결을 요구하고 있다.
저자들은 교대제라는 현상의 다양함속에 흐르는 본질을 분석하고 그를 통해 교대제 자체를 해체하려하고 있다. 교대제 해체의 과정에서 가장 핵심은 야간노동의 철폐라고 정의하고 있다. 교대제는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 그 자체와 긴밀히 밀착되어 있는 노동과정의 조직형식이자 시간의 기획방식이란 분석에 기초해 볼 때 이것의 해체라는 것은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반대로 노동자들의 자기신체에 관해 통제할 권리 또한 매우 근본적인 문제이므로 이의 해결을 미루고 있을 여유가 없으며 당장 교대제를 해체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언급하면서, 교대제의 해체는 실현가능한 목표란 점을 저자들은 책 전체를 통해 일관되고 당당하게 주장하고 있다.
꼭 필요한 야간노동 방안 다루는 후속 단행본 기대
한편 이 책이 주는 아쉬움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첫 번째 아쉬움을 언급하자면, 저자들이 인용한 맑스의 [자본]에 따르면 이미 자본주의 초기부터 심각한 야간노동이 문제가 되고 있었으며, 특히 미성년 아동들의 야간노동 조차 광범위하게 있었던 것이 드러난다. 오히려 자본주의 초기에는 오늘날의 병원응급실과 같은 야간근무가 필요한 사회적 서비스가 거의 없었고 오히려 앞에서 언급한 개별공장의 이윤을 위해 밤에도 쉬지 않고 누군가 일을 하게 하는 근무형태가 거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에는 릴레이(relay)제도라는 이름으로 유행한 지금의 교대제와 같은 노동방식이 얼마나 가혹한지는 그 당시 런던의 가장 탁월한 내과 의사와 외과 의사들이 영국 하원에서의 증언한 내용을 통해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을 정도다. “...(중략)... 젊어서 일찍 죽는 것(요절)이 어떤 형태로 발생하든 죽음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입법이 필요한데, 이 방식(공장의 작업방식)은 확실히 요절을 야기하는 가장 잔인한 방식의 하나로 간주되어야 한다.(자본 제10장 노동일)” 그러나 이 책은 예전의 교대제에 대한 자본론에서의 언급을 그리 많이 하지 않고 일부 문장만을 인용함으로서, 노동시간 단축투쟁의 역사를 만약 이 책이 다루지 않았다면, 교대제가 자본주의 시기가 진행되는 동안 자본에 의해서 현재의 형태로 천천히 진화한 것처럼 보이는 설명을 채택하고 있다.
이 책은 이런 오해를 낳을 가능성을 일으키지만 노동시간 단축투쟁을 다룸으로서 이점에 대해 완전한 오해를 일으키게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자본주의 시작과 거의 동시에 창조된 괴물인 것으로 보이는 교대제의 실상을 이렇게 함으로써 완전하게 전달하지는 못하고 있다. 오히려 지금의 교대제는 자본주의 초기 당시의 의사들의 증언과 같이 높은 사망률의 증가까지로 현상하지는 않는 다소 완화된 형태일 수도 있는데, 이렇게 완화될 수 있었다면, [자본] 제10장 노동일의 후반부에 나오는 것처럼, 그것은 자본의 선처에 의해서가 아니라 노동자들의 투쟁을 통해서 노동시간과 잔혹한 노동시간형태가 개선되어 얻어진 결과인 것이다. 이런 점들이 바로 우리가 지금 단결해서 투쟁하여 보다 나은 노동환경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실한 역사적 증거이자 교훈이다. 그러나 이 책은 이런 서술들을 인용하지는 않았다. 물론 이런 과거에 대한 언급을 일일이 하지 않고서도 현재와 미래를 충분히 설명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으나 이런 역사적 사실을 활용했더라면 보다 더 주장을 강력히 뒷받침 해 나갈 수 있었으리라 본다.
다음으로는, 이 책이 적극적으로 다루지 않은 야간노동 및 교대제의 유형에 대해서도 필자들이 다소간 운을 떼는 언급이라도 있었으면 더 좋았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화학 산업이나 용광로를 이용한 산업처럼 중단하였다가 재가동할 때 드는 자본의 매몰비용이 매우 커서 설비를 상시가동하고 여기에 노동자가 24시간 교대제로 근무하고 있는 산업에 대한 경우가 경영상의 이유에 의한 교대제와는 과연 진정으로 다른 것인지, 즉 사회적으로 필요한 것이라고 볼 수 있는 지가 두 가지 언급되지 않은 유형의 야간노동 중 첫 번째에 관한 것이다. 둘째 유형이자 거의 필요성이 인정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응급실, 소방, 긴급구조 등등의 사회적 서비스에 대해서도 야간노동을 최소한의 수준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어떤 사회적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인가에 대해 큰 방향만이라도 다루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예컨대 야간노동이 꼭 필요한 사회서비스가 있다면 야간노동은 이루어지더라도 야간노동을 해야 하는 노동자의 근무시간은 최대한 짧게 만들고 야간노동 후 회복시간과 휴식시간은 가능한 길게 설계되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고 본다. 이렇게 되려면 야간노동이 사회적으로 반드시 필요한 사업장의 고용 노동자 수는 다른 사업장보다 훨씬 더 많아야 할 것이다. 이런 점 등의 개선방안에 대해 언급해두고 가지 않은 것이 두 번째 아쉬움이다. 야간노동을 개선하기보다는 철폐하는 것이 확실히 필요한 과제가 있기에 이곳에 집중하기 위해 이런 이야기들을 이번에 다루지 않았다고 이해하고 넘어가면서 다음 단행본에서는 피할 수 없는 영역에서의 야간노동은 사회적으로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에 대한 이야기가 깊게 다루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이제 우리 사회는 앞으로 하루 중 주간만의 8시간 노동이란 목표를 갖고 끊임없는 전진을 해 나가야 하겠지만 야간노동철폐만 이룬다고 해도 이것은 상당한 전진이다. 정부는 근로기준법 적용지침에서 ‘경영효율성을 위해 생산설비 완전가동, 기업 간 경쟁 등의 사유로 조업 및 영업시간을 길게 하는 경우에 교대제를 쓸 수 있다’고 명시함으로써 사회적 정당성이 없더라도 경영상의 이유로 개별기업이 필요하면 교대제를 활용하는 야간노동을 시킬 수 있도록 하는 실행의 근거를 마련해 놓았지만, 이 책에 따르면 사실 노동부는 홈페이지의 노동 용어 해설을 통해 자신도 모르게 (혹은 알고) 비교적 양심적인 고백을 하고 있다.
‘교대근무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는 홈페이지 내용을 이 책으로부터 재인용해 보면, “.....교대제 근로는 근로자에게 생리적 인간적 문화적 악영향을 미치는 것이기 때문에 기업의 생산 공정상의 특수성이나 사업의 공공성에 의한 경우가 아니라 기업채산성을 이유로 한 경우까지 교대제 근로에 의한 심야작업을 허용할 수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라고 언급되어 있다. 이렇듯 사회적으로 꼭 필요치 않은 야간노동 특히 사회적 필요가 아니라 개별기업의 경영상의 이유(즉 이윤)만을 위한 야간노동은 철/폐/되어야 한다는 이 책의 주장은 야간노동을 경험하며 살아가는 노동자들이 전체 노동자의 거의 절반을 장악한 현실에서 매우 혁명적인 주장처럼 들리지만 사실상 노동부의 기본 어휘 수준의 평범한 상식인 것이다. 운전하다 졸리면 휴게소에 차를 세우고 잠시 자고 피로가 풀리면 다시 운전하라는 말이 상식인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도대체 언제까지 졸려도 졸음을 참고 운전을 계속해야 한단 말인가? 밤에도 근무해야하는 모든 노동자들이 이 책을 모두 읽고 나면 밤에도 일해야 하는 상황을 멈출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날이 올 때 까지 그냥 졸음을 참고 기다리지 말았으면 한다. 작업장 옆에 침대가 있는 휴게실을 만드는 요구를 관철하기 위한 투쟁을 하고 작업장 벽에는 이런 구호를 노동자들의 힘으로 붙일 수 있었으면 한다.
“졸리면 작업장 옆에 마련된 휴게실 침대에서 잠시 주무세요. 생산량보다 우리들의 건강과 생명이 우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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