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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2-05
나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아니면 자신감일까요?
이제 저는 마흔을 목표로 달려가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어찌보면 김광석보다 양희은을 더 좋아하게될 나이가 된 것이지요.
서른다섯이 되기 전..........
그러니까 이삼년 전에는 낮선 모든 사람들이 두렵더군요.
나도 모르게 그 모든 낮선이들은 나보다 다 어른 처럼 느껴졌나 봅니다.
알고 보면 가마득한 동생들인데도 말이죠.
그러던 것이, 이제 그런 두려움으로부터 차츰 벗어나고 있는 나 자신을 느낍니다.
나이에 대한 컴플렉스였을까요?
아니면, 아직도 '학생'이라고 오해하는 내 외모 탓이었을까요?
그도 아니면, 그저 나 스스로가 자꾸 나를 작게만 생각한 탓일까요?
어느 하나로 답하기 어렵군요.
아마 어느 하나로 답할 수 없는 문제일지도 모르지요.
그럼, 이제 그것에서 벗어나고 있는 것은 또 무엇 때문일까요?
내 아이가 또렷한 말로 나와 의사를 나눌만큼 자랐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늙어 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일까요?
그도 아니면, 모든 것에 이제 익숙해지고 있는 걸까요?
이것도 하나로 답할 수 없겠지요?
오늘 문득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나이도, 외모도, 개인적인 자신감도,
그리고 내 아이도, 익숙함도..........
모두 나를 어쩌지 못하게 만들고 싶습니다.
아니 그런것들을 무기나 방패 삼아 나의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지는 않습니다.
내 고마운 아내의 노래 가운데 이런 제목을 가진 노래가 있죠.
'여리고 미숙한 나의 인생'
내 아내는 말로는 벗어나고 싶다고 하지만 그런 인생에서
내가 보는 것보다 훨씬 큰 세상을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나는 아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 남을 아픔을 주는 것을
본적이 없습니다.
도리어 자주 상처투성이로 들어와서 나와 우리 아이에게는 짜릿한 아픔을 주긴하지만.
그래서 나도 내 고마운 아내와 함께
여리고 미숙한 우리의 인생을 그냥 살까봅니다.
2002-01-25
어제 저녁엔 중학교때 음악선생님의 시어머니 장례식장에 다녀 왔습니다.
성내동인지, 풍납동인지에 있는 중앙병원 영안실이었지요.
좋더군요.
왠만한 지방 종합병원 크기의 건물에 아주 멋들어지게 지어진 영안실........
지지난주에 저희 큰아버지가 돌아가셨지요.
큰아버지는 국가가 운영하는 보훈병원 영안실에 모셔져 있었습니다.
물론 새 건물을 지을 동안이라고는 했지만
컨테이너 박스를 이층으로 쌓아올려 만든 영안실은 좀 서글펐지요.
이런 생각 해봅니다.
예전에는 부유하고 깔끔한 사람들이
가난하고 추래한 사람들을 곁눈질로 쳐다보며 피해다니는 모습을 자주 보았습니다.
그런데........그런데 말입니다.
이제는 궂이 피하지 않아도,
태어나기 전부터 죽은 후 까지 단 한번도 마주치지 않고 살 자유를
서로가 만끽하고 있다는 생각 말이지요.
왜 서글퍼지는 걸까요.
부유한 사람들은 기쁠텐데
날짜 : 2003.04.02
결국 파병안이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간절한 마음으로
밤과 낮도 없이
때론 목숨까지 내놓고서 반대했는데..........
국회 앞에 모여 울부짖는 사람들을 보고 돌아오면서
이렇게 결심합니다.
내 몸이 사라지는 그 날까지
아니, 그 뒤에라도 영원히........
반역의 무리와 함께 할 것입니다.
정말 주민증을 반납 하고 싶은 날입니다.
날짜 : 2003.04.02
당신이 만일 우주를 에너지의 창고로 보면,
그때엔 에너지의 관점에서 절대로 아무것도 죽지 않는데,
왜냐하면 에너지는 소멸될 수 없기 때문이다.
에너지로서의 당신은 언제나 여기 있을 것이다.
............(디팩 초프라 - 마법사의 길 중에서)
중학교에 갓 입학 하고서 였던 거 같습니다.
죽음.......
나라는 존재가 언젠가는 사란진다는 것을 깨닫고 많이 울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몇 해 전까지도 죽음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지게 아파왔습니다.
증상은 사라졌지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아직도 여전합니다.
그런데 지금 내가 가진 형태대로 나의 존재를 규정짓는 못된 버릇만 고치면........
나 자신을 에너지 덩어리로 인식하기만 하면 그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합니다.
아니, 나는 죽지 않는다고 합니다.
나는 언제나 여기 있다고 합니다.
더많이 두려워 졌습니다.
이렇게 무기력하고,
이렇게 무책임하고,
이렇게 이기적이고,
이렇게 제멋대로인 내 존재가
영원히 여기에 있다니요.
그럴 수 없습니다.
지금 이대로의 에너지로 나를 이곳에 계속 남게 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이제부터라도 착하게 살아야 겠습니다.
이제부터라도 부지런하게 살아야 겠습니다.
어차피 남게 될 에너지라면 좋은 에너지로 남아 있어야지요.
2002년 03월 19일
민주당의 노무현 고문이 각종 여론조사에서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를 앞서서 이 나라 대통령감으로 지목되고 있다고 한다.
좋은 일이다.
노무현 대통령 만들기에 분주한 모든 분께 진심어린 경의를 표한다.
그분들이 항상 이야기 했듯, 나 역시 이회창 대통령을 모시고 사는 것 보다는 노무현 대통령이 몇곱절 이상으로 좋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이회창이 되는것 보다는 노무현이 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허나 이렇게 노무현 고문의 지지율이 높아져 가면서 어쩔 수 없는 나의 염려병이 도진다.
'어허, 이러다가 진보진영 지지층까지 다 노무현으로 돌아서서 또 진보진영은 개죽쓰는 것 아닌가?'
그리고 여기에 또 노고문 지지자들이 쐐기를 박으려 들 것이다.
'다 된 밥에 코 빠뜨리지 말고 우리 함께, 될 사람을 밉시다.'
나 역시 현실 정치인 가운데서는 노무현 고문을 그래도 가장 맘에 들어 하는 사람으로서, 내 한표에 대한 적지 않은 고민을 가지고 있다.
혹시라도 나같은 사람들이 찍어주지 않아서 진짜 다된 밥에 코를 빠뜨리는 일이 생기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그러나 또 이렇게 생각하며 나의 선택과 판단을 확신한다.
"진보진영과 그들을 지지하는 민중들의 존재야 말로 이 오욕의 땅에 제한적이나마 민주정부, 국민의 정부가 가능하게 만들었다"는 사실, 나는 이 사실을 나의 확신으로 삼고 있다.
같은 민주당의 대통령 수험생 이인제 후보가 노고문을 향해 오늘도 이렇게 떠들고 있다.
'파괴적 개혁주의자'
이걸 망국의 색깔론이라고 이야기하며, 노고문 지지자들은 분개하고 있다.
언제나 이 색깔론 때문에 이 사회가 제 빛깔을 내지 못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옳다. 지나친 반공이데올로기, 그것이 우리 사회를 더 빨리 민주화하는데 걸림돌로 작용해 왔다.
그래서, 노고문은 이렇게 응수한다.
'나는 김대중 정부의 정책을 이어갈 것입니다.'
김대중 정도만 개혁하지, 그보다 더 심하게는 하지 않겠다는 말로 들린다.(물론 극성스러운 김대중 팬들을 의식한 측면이 더 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의 민주화 의지를 번번히 꺽었고, 지금 민주당 경선 과정에서도 여전히 힘을 발휘하고 있으며, 앞으로 본선 경쟁에 들어가면 더 한층 기승을 부릴 색깔론은, 그것을 주장하는 사람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로 인해 피해를 본다고 생각하며 정면돌파를 하지 못한 사람들에 의해서 그 생명을 이어 왔다고 나는 생각한다.
빨간색이라고 욕하는 사람들 앞에서 '빨간색이 어때서! 그럼, 그림을 파란색으로만 그리니?!'라고 당당하게 되묻지 못하고, '아니야 난 빨간색이 아니야!!'라고 강변함으로써, 우리 사회는 아직도 빨간색을 두려워하는 사회로 남아있다.(사실 요즘 때아닌 반미열풍에 휩싸여 있다지만 그것이 제대로된 한미 관계로까지 진전되지 못하는 것도 모두 이 빨간색 공포 때문이다.)
물론 이들이 자신들을 진짜 빨간색이 아니라고 믿고 있다면 그건 또 그들 나름대로 이유있는 변명일 수 있겠다.
어쨌든 이들이 자신을 빨갛다고 믿건, 그렇지 않든 새깔론을 잠재우거나, 추방하는데 이들이 한 역할은 조금도 없는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이들이 자신들이 빨간색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이들 역시 빨간색을 경계하거나, 심지어 적대시 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결국 이들도 필요할때는 색깔론으로 상대를 제압하려 들수도 있다는 말이다.
이들이 그토록 염려하는 색깔론은, 자신의 실제 색과 무관하게 다양한 색의 존재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일부의 합리적인 사람들과 또 자신의 색을 당당하게 드러내 놓고 그 색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는 대다수 진보진영에 의해서 극복되어지고 있고, 결국엔 그 종말을 고하게 될 것이다.
그렇기때문에 설사 다된 밥(생각해 보니 그 밥은 노고문과 그 지지자들의 밥이지 내 밥은 아니다)에 코를 빠뜨리는 한이 있어도, 내가 지금껏 지지해온 진보진영에게 잠시 양해를 구하고, 될 사람을 밀어주는 엄청난 실수는 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지금 내 밥 지으러 간다.
* 주변에 많은 친구들이 새롭거나, 변화된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 친구들의 새로운 삶과 또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삶이 결국, 원치 않는 세상을 이롭게 하는 것은 아닌지.............불현듯 두려움이 몰려듭니다.(2002년 3월 9일)
두려움
내가 오늘도 어리숙하고,
게으르게 사는 것은
내 사는 이 곳이 나에게 어색하거나,
짜증나거나,
밉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오늘 내가
더 큰 자신감을 가지고
더 부지런하게 살아야 하는 것은
바로 이곳에 사는 모든 생명들이
신이 주신 나의 이웃이기 때문입니다.
어색하고 짜증나고 미운 이 곳을 위해서는
단 한방울의 땀도 흘리지 않겠습니다.
이웃과 함께 웃는 그런 세상을 위해
모든 땀을 쏟고 싶습니다.
난 오늘 나의 땀이 두렵습니다.
2002-03-09
집에서는 텔레비전을 보는 것 외에 별다른 일을 하지 않는 내게 그럴듯한 다큐멘터리들은 그나마 단순해질 수 있는 나의 여가 시간을 조금이나마 의미있게 해준다.
어제(2/24)는 문화방송의 '이제는 말할 수 있다'가 그 역할을 해주었다.
유언비어처럼 지하로만 돌던 북파공작원들의 증언들.........
이미 알 것은 다 안다고 생각했던 나에게도 50대에서 80대까지, 한국전 당시부터 70년대까지 북파공작원으로 혹독한(이 말은 이들의 훈련을 표현하기에 턱없이 약한 말이다)훈련과 생사를 넘나든 그들의 삶은 충격이었다. 아니 충격이라기 보단 분노였다.
국가가 스파이를 양성하고, 그 스파이로 하여금 적국의 정보를 수집하거나, 그 국가를 혼란스럽게 하기 위해 각종 공작을 펴는 것은, 내가 그것을 옳다고 인정하든 그렇지 않든, 어쩌면 이미 당연한 이야기일 수 있다. (우리는 모두 헐리우드의 '007' 씨리즈에 열광하고 있거나, 혹은 열광했던 기억들이 있으니까............)
하지만 북파공작원들에 대한 국가의 범죄 행위는 어떤 말로도 용서받을 수 없다. 찬란한 미래를 약속하는 국가의 사기에 넘어가 '인간병기'로서 냉혹한 훈련을 감내하고, 임무 수행 도중 죽거나 부상당한 이들은 그저 그렇게 역사의 어둠 속에 묻혀지고 말았다. 지난 수십년 동안 어떤 언론도 이들의 비참한 삶과 죽음을 보여주거나 들려주지 않았다.
혹은 정신병자 수용소에서, 혹은 두메산골 외딴집에서 청춘 이후의 모든 삶을 감춰두고 한달에 20일을 눈물로 보내야 했던 그들의 고통은 그 누구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소복을 입고 차가운 아스팔트에 엎드려 20년 혹은 30년 전 사라진 아들의 생사를 묻고, 남편의 명예회복을 호소하는 우리 어머니들의 손을 누구도 잡아주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도 그렇다.
텔레비전을 함께 보며 나의 아내가 이렇게 말한다.
'세상이 좋아지긴 했나봐. 예전 같으면 어떻게 텔레비전을 통해 저런 진실이 세상에 알려질 수 있겠어.'
그렇다.
나도 국사독재에서 문민정부로, 그리고 다시 50년 만에 첫 정권교체로, 거듭 바뀌어온 정치적 환경이 세상을 조금씩이나마 나아지게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니다.
우리가 저들의 증언을 오늘에라도 들을 수 있는 것은 이제 저들의 삶과 죽음에 대해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더는 이 세상에 없거나, 그 자리에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저 북파공작원들이 훈련을 받고, 임무를 수행하고, 비참하게 죽어가거나, 죽지 못해 참혹한 삶을 이어가고 있는 동안 우리가 전혀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듯이, 우리가 다시 30년 후에나 알게 될 또 다른 공작과 억압이 우리의 등 위에서, 발 밑에서 진행되고 있을 것이다.
그것만이 아니다.
80년 광주를 시작으로 90년를 거치며 우리 민중들이 어렵게 일구어낸 많은 성과들이, 우리가 몇 몇 열매에 스스로 만족해하고 있는 지금, 여전히 이 땅의 유일한 주인이기를 고집하는 자들의 더 새로워지고, 더 치밀해진 전략에 의해 그 가치를 잃어가고 있다.
이 땅의 노동자들이 진정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해 줄 민주 노조를 갖기 시작한 게 얼마나 되었는가? 아무리 길게 봐도 10년 안팎이다.
그럼 그 노조가 제대로 힘을 발휘하고 노동자들의 이익을 대변하게 된 것은 언제부터인가? '아직'이거나, '이제 막'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노동자들은 적어도 절반 이상이 비정규직으로 내몰려, 그 노동조합의 영향 밖으로 쫓겨나고 있다.
무엇이 나아졌는가?
다 같이 잘 살기 위해선 농업 정도는 포기해야 된다는 주장이 넘쳐나고, 그래서 이제 죽어가는 우리 농촌과 농업은 더 이상 국민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현실이, 그래도 군부독재 시절보다 나아진 것인가?
생산적 복지를 이야기하며,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노인들을 방치해 두고, 돈 있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부모를 쾌적하게 버려두기에 좋은 '실버타운' 만들기에만 힘을 쏟는 현실이, 그래도 조금은 나아진 것인가?
여성의 정치 참여가 늘고, 직장내 남녀 평등이 실현되어 가고 있다는 평등사회(?)에서 아직도 우리의 누이들이 거짓 빚에 팔려 다니다가, 갇힌 채 붙타 죽는 현실이, 그래도 많이 나아진 것인가?
노동조건, 작업환경을 개선하기는커녕 더 이상은 비안간적인 노동을 거부하겠다는 우리 노동자들을 탓하며, 외국인 노동자들을 음성적으로 들여와 싼값에 부려먹다, 짐승처럼 내쫓거나 패죽이는 현실이, 그래도 옛날에 비하면 나아진 것인가?
가정도, 건강도 다 포기하고, 동료마저 포기한 채 무한 경쟁에서 살아남는 몇 안되는 사람들만이 떳떳한 국민으로 존중되는 그런 우리의 현실이, 그래도 행복해진 것인가?
더러워진 환경으로 자라는 아이들이 온갖 질병에 노출되어있고, 잘 먹어야할 청소년들이 없어서 굶거나 혹 있어도 못먹고, 늘어가는 대학 졸업자의 숫자만큼 실업자가 늘어가고, 이북의 우리 형제는 굶어도 소용에도 닿지 않는 무기는 사들여야 하는, 지금 우리의 현실이 내 아버지가 겪은 현실보다 그래도 나아진 것인가?
비참하다. 나아진 것은 하나도 없다.
그래도 군사독재보다 나아지려면, 어제 나를 고통스럽게 한 북파공작원들이 이제는 울지 말고, 정겨운 우리의 이웃으로 돌아와야 한다. 영하의 추위에 차가운 아스팔트에 엎드려 우는 우리 어머니에게 그 아들을 돌려주어야 한다.
아직 우리에게 나아진 것은 하나도 없다.
날짜 2002-02-24
올 한해는 무척 다양한 일들이 가득 펼쳐지게 될 것이다.
민주화 투쟁의 한 상징으로만 알고 있던 김대중이 훌륭한(?) 정치인이 되어 고령의 대통령으로 당선되고 이제 임기의 마지막 해가 시작되었다.
올해는 또다시 대통령을 뽑게 될 것이다.
오랜 꿈은 반드시 성취되는 것일까?
30대 기수론을 내세우며, 암울함을 넘어 참담하기만 했던 70년대부터 대통령 꿈을 키워온 사람들, 김영삼과 김대중은 끝내 대통령이 되고, 그 자리의 영욕을 한없이 체험했다.
이제 남은 것은 김종필 뿐인가?
하지만 이제 우리 나라 사람들의 정치의식이 김종필까지 대통령을 시켜줄 만큼, 더 이상은 어리숙하지 않다.
다만 이럴 것이다.
'김대중도 별 수 없네'
'역시 구관이 명관이야'
'지들끼리 다 해 먹으라고 해!'
물론 정치와 정치하는 사람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말은 아니다.
우리 이웃들의 말이고, 생각이고, 또 그 말과 생각은 머지않아 행동으로 옮겨질 것이다.
아니, 행동하도록 강요받을 것이다.
법조문이 보장한 국민 방청권까지 무력하게 만들며, 국민을 정치로부터 소외시키고, 무시하는 정치권이 유일하게 국민들의 정치적 각성과 참여를 독려하는 때가 온 것이다.(물론 이러한 최소한의 배려조차 받지 못했던 오랜 시간을 때론 싸우고, 때론 견뎌낸 결과로)
그런데 이러한 강요는 기존 정치권보다는 신진 정치세력으로부터 더 심하게 받게 된다.
특히 상대적으로 자신들이 진보적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에 의해서......
마치 선거에 참여하지 않거나, 무관심한 국민들의 대다수가 자신들의 편이라고 생각하는 듯 말이다.
맞는 생각일 수 있다. 정치적 무관심(?)을 보이고 있는 사람들 중에는, 어쨌든 찍어야 한다면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쪽에 표를 줄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나 역시 항상 그렇게 해왔다.
하지만 국민을 대상으로 정치적 무관심에서 벗어나 선거에 참여하라고 독려하는 사람들은 여기에 또 다른 자신들의 욕심 하나를 더 보탠다.
'그 중에서도 가능성 있는 사람을 찍어야 합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서, 거기에 반기를 드는 사람들을, 생각 없이 과격한 행동만 일삼는 '단순무식 과격분자'로 몰거나, 현실을 외면하고 공허한 구호만 외치는 '몽상가' 쯤으로 치부해 버린다.
진지하게 생각하는 배우로 한때 나를 매료시켰던 문성근이 지난해부터 노무현을 다음 대안으로 내세우는 활동을 하고 있다.
그가 전남의 한 대학에서 자신의 솔직함을 하나도 감추지 않고 '노무현 사랑'을 이야기하는 것을 얼마 전, 컴퓨터에 떠다니는 동영상으로 보게 되었다.
그의 이야기는 나를 설득하기에 충분했다.
김대중 대통령 만들기에 성공했음에도 이 땅의 정치가 한치의 발전도 없는 것은 모두 우리 사회에 팽배한 '지역주의' 때문이다.
그러니 다음 대통령은 이 지역주의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우리 정치사에서 지역주의의 벽을 넘어서서 실천해온 정치인은 '노무현' 하나밖에 없다.
이제 노무현을 우리의 다음 대안으로 삼아야 한다.
정치 이전에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문제들에 대한 노무현의 생각과 말과 실천들을 잘 알고 있고, 또 그것들에 대해 높은 점수를 주고 있는 나로서는 이 동영상을 이곳 저곳 퍼나르며, '나는 이 사람을 착하다고 생각한다' 라는 말을 덧붙이는데 한치의 망설임도 없게 했다.
그런데 며칠 전 강준만 교수가 '말'지와 나눈 인터뷰 기사를 보면서 나는 나의 판단과 행동이 경솔했음을 가슴 아프게 후회하고 있다.(강준만 인터뷰 기사 보기)
'김대중 죽이기'를 비롯해 많은 책과 말로 김대중 만들기에 큰 공헌을 한 강준만은 그 인터뷰에서 문성근과는 다른 '현실론'을 강조하고 있었다. 물론 그를 비롯해 그와 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현실론'을 내세우지 않은 적은 한번도 없었고, 그걸 다시 한번 확인한 것은 나에게 별로 큰 충격도 아니어야 했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 덕분에 나는 그토록 빠지기 싫었던 '현실론'에 나 역시 빠져들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스스로에게 하고 싶은 욕을 대신 강준만에게 보내고 있었다.
지난 90년대부터 선거 보이콧이나, 현실적 대안으로 나를 설득하는 많은 동료 친구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백기완, 권영길 그리고 진보정당의 후보들에게 표를 던진 나의 생각은 이것이었다.
'현실론도 중요하다. 하지만 지금 내가, 가장 철저하게 평등사회를 향한 실천에 매달리는 사람들을 지지하지 않는다면, 곧 우리에게는 그 어떤 현실적 대안들도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다. 진보를 꿈꾸면서도 현실을 핑계로 진보의 편에 서지 않는다면 더 이상 우리에는 꿈도 희망도 없다'
'현실 정치에는 희망이 없다고 나도 인정한다. 그러나 우리의 꿈을 실현하는 과정에 소중한 공간인 선거를 포기할 수는 없다. 우리의 꿈을 대변할 사람이 국회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해도, 그들이 선거공간을 통해 말하고, 실천하는 것까지 무의미하지는 않다'
오래 전부터 가져온 노무현에 대한 나의 짝사랑을 반성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노무현의 현재를 너무 생각하지 못한 나의 경솔함을 반성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는 이제 현실론에 힘입어 현실 대통령이 되고자 나서고 있다.
그런 그가 싫어진 것도 그런 그를 나쁘다고 이야기 할 생각도 아니다.
그는 어차피 현실 정치인이니까.......
그 역시 현실 정치인일 수밖에 없고, 그런 그가 이제 김대중을 마침내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현실적 대안론에 힘입어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현실적 대안'일 뿐이라는 것을 망각하고, 오랜 경험 속에 만들고 지켜온 나의 꿈과 원칙을 어처구니없게 잊을 뻔한 나를 꾸짖고 싶은 것이다.
나는 문성근의 강연을 퍼나르면서 이렇게 말했어야 한다.
'노무현이라도 좋고, 김근태라도 좋다. 현실에 안주해서 결국 보수를 대변할 수밖에 없는 현실 정당으로부터 나와서, 민주당의 대표가 아닌 진정한 민중의 대표로 대통령 선거에 나서라.'
그리고 이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느끼자마자, 나는 노무현에 대한 짝사랑을 바로 버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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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통일장이론을 활용한 900명 그룹명상 추진동호회
남북한 7000만명의 1%에 해당하는 70만명의 제곱근 837명의 그룹명상을 통해서 다가오는 미래의 모든 문제해결, 개인의 행운, 국가적인 문제, 경제적인 문제, 주가상승, 남북통일을 주도하는 모임입니다.
정신능력이라는것도 그룹명상을 할때, 개발이 빨리되는것이라는것을 수련자들은 경험으로 알고있습니다.본 카페는 그룹명상을 통해 짧은시간에 높은 수준에 도달하여 원하는 정신능력을 얻고, 계제를 달성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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