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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에 대한 다른 시각, '한반도'와 '괴물'

 

올 여름, 두 편의 블록버스터 영화가 극장을 휩쓸고 지나갔다. 강우석 감독의 '한반도'와 봉준호 감독의 '괴물'이 그것이다. 이 두 영화는 제국주의 질서를 이야기한다는 면에서 정치적으로 닮아있는 것 같지만, 전혀 다르다. 하나는 민족주의, 국가주의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고, 다른 하나는 (평론가 정성일의 표현을 빌어)좌파적 냉소주의라고나 할까?

 

강우석! 보수적인 것은 당신이오!

 

영화 '한반도'에 대한 평가는 대부분 좋지 않다. 우파적 국수주의, 민족주의라는 평가가 대부분이다. 강우석 감독은 '한반도'를 촬영할 당시, "이 영화가 나오면 보수주의자들이 반발할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영화에 대한 혹평이 이어지자 그는 말한다. "지금 보니까 거의 다 보수주의자네…" 그러나 정작 보수주의자는 강우석이다. 그의 전편 '실미도'에서도 그랬고, 이번 영화에서는 그 보수성이 극에 달한다.
영화 '한반도'는 경의선 철도가 개통하는 날, 일본 정부가 경의선 운영권을 영구히 일본에 넘긴다는 1907년의 문서를 내 놓으며 '경의선 개통을 허가할 수 없다'고 전달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일본은 경의선 개통을 중단하지 않으면 157조원을 한국에 빌려줄 수 없고, 한국에 제공된 첨단기술을 회수하겠다고 협박한다. 이를 두고 국가 관료들은 일본의 영향이 크기 때문에 그들의 요구를 들어야 한다는 입장과 민족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경의선 개통을 해야한다는 의견으로 나뉜다. 그런데 여기에서 강우석의 첫 번째 보수성이 나타난다. 경의선 개통을 해야한다는 국가 관료들은 '민족' 운운하지만 사실은 경의선 개통을 통한 기업 이익 감소에 대한 우려가 더 크다. 그리고 현실에서도 모두가 '통일', '민족'을 이야기 하지만 사실은 개성공단, 경의선 철도 등은 모두 자본의 이익 때문이다. 그러나 영화가 중반부를 넘어가면 경의선 개통을 해야한다고 주장하던 관료들은 어느새 국가적 자존심, 애국심으로만 똘똘뭉쳐 일본과 친일파에 대항하고 있다. 기업의 이익이 중요한 정치관료들이 어느새 애국자로 둔갑해 있는 것이다.

 


민족의 자존심을 위해 경의선을 개통해야 한다는 의지를 불태우는 대통령(안성기)은 1907년의 그 문서가 허위임을 밝혀내기 위해 한일합방의 무효성을 연구해온 최민재(조재현)를 만난다. 최민재는 서울대를 나와 강사까지 했지만, 자신의 연구에만 몰두한 외골수로 재임용에서 탈락하고 문화센터에서 주부들에게 교양강좌를 열고있는 사람이다. 여기에서 두 번째 그의 보수성이 나타난다. 명성황후가 시해 당한 11월 17일이 무슨 날이냐는 최민재의 질문에, '빼빼로데이'라고 답하며 '민비는 이미연'이라고 이야기하는 주부들에게, 그는 '무식한 여편네들'이라고 성질을 낸다. 강우석은 여성을 '한국의 역사에는 관심 없지만, 쓸데없는 것에만 관심 있는 무식한 것들'로 묘사한다. 그 이후 영화에서 대통령에게 물을 갖다주는 한 장면의 여성을 제외하고, 여성은 단 한 명도 나오지 않는다. 강우석이 그토록 강조하는 '민족의 자존심'을 지키는 일에 여성은 주변부로 배치하고, 무식한 여편네들로 묘사하는 등 '실미도'에서와 마찬가지로 남성중심주의에서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했다.
최민재는 고종황제가 일본에 국권을 침탈 당할 것을 우려해 가짜 국새를 만들었고, 진짜 국새는 어딘가 숨겨놓았다고 주장해 대통령은 그에게 희망을 건다. 이때부터 일본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국무총리 권용환(문성근)과 이상현(차인표), 그리고 국새를 찾아 민족의 자존심을 되찾겠다는 대통령과 최민재의 본격적인 대립구도가 시작되고, 이때부터 강우석의 보수성은 극에 달한다. 영화 내내 강우석은 '국민의 한사람으로서(이는 영화상에서 대통령이 자주 쓰는 말이다)' 온전한 국민국가의 주권을 회복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줄창 관객들에게 훈계하고 있다. "너희들 국가와 민족을 위해 분노하며 떨쳐 일어나야 하는거야! 자존심을 되찾아야지!"라고. 그러나 우습게도 그의 영화에 국민은 없다. 그는 민중, 개인 등을 철저히 무시한다. 다만 애국주의에 빛나는 정치 관료들과 국가만 있을 뿐이다. 현실에서 정치권은 '민족'을 정치적으로, 자본의 이윤을 위해서 이용할 뿐이다. 그러하기에 팩션(faction, 사실에 허구를 가미한 것)이라는 그의 영화에 현실성은 전혀 없고, 설득력조차 없다. 다만 목청 높여 '민족'과 '통일'을 외치고 정치 관료를 영웅으로 만들뿐이다.

 

 

절반의 아쉬움, '괴물'

 

국민과 국가를 위한다면서 정작 '국민'은 없는 '한반도'와 달리 '괴물'에는 '서민'이 존재한다. 미8군이 한강에 포름알데히드 수백 병을 방류해 돌연변이로 탄생된 괴물에게 빼앗긴 딸 현서를 찾는 것이 이 영화의 주된 내용이다. 한강둔치 매점을 하는 부유하지 않은 서민 강두(송강호)는 국가가 그들을 외면하자 그의 아버지(박희봉), 동생 남일(박해일), 남주(배두나)와 함께 직접 딸을 찾아 나선다. 그러나 그들은 능력도, 힘도, 돈도 없는 서민일 뿐이다. 아버지는 총은 좀 쏘지만 늙었고, 강두는 손님들에게 내갈 오징어 다리나 뜯어먹는 무능력한 사람이고, 남일은 학생운동권 출신이었지만 현재는 백수로 사회 불만만 가득차 술을 입에 달고있고, 남주는 양궁선수이지만 행동이 굼뜨다. 그들은 국가로부터 정신병자 취급당하고, 공무원에게 돈이나 뜯기고, 언론으로부터 있지도 않은 바이러스 보균자로 매도당한다. 다만 그들과 함께 괴물과 맞서 싸우는 것은 노숙인이다. 사회에서 소외된 약자들의 연대로 거대 괴물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 군대를 동원해 고위급 정치관료들끼리 싸우는 '한반도'와의 큰 차이점이라 할 수 있겠다. 이렇듯 그들은 어떤 국가기관으로부터도 도움을 받지 못하고, 감독은 이러한 국가기관들에 냉소적인 시각을 나타낸다. 심지어 영화의 후반부에 한강 괴물출현과 관련한 뉴스가 나오고 있음에도 강두는 밥먹는데 시끄럽다며 발가락으로 TV를 끄며, 세상에 무관심을 나타낸다. 이 영화는 바로 이러한 '냉소'에 문제가 있다. 감독은 미국, 국가, 언론, 심지어 시민운동까지 풍자하고 있지만 그 태도는 냉소로 그친다. 어쨌든 문제는 일단락 됐고, 이제 우리의 관심사가 아니라는 듯이 말이다. 이는 영화가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를 더 이상 진전시키지 못하는 결과를 낳았다. 또한 괴물은 미군이 방류한 포름알데히드 때문이지만, 그 다음의 미제국주의에 대한 이야기는 더 이상 진전시키지 못한다. 오히려 괴물이 처음 등장했을 때 가장 용맹스럽게 싸웠던 것은 미군이었다. 바이러스 퇴치를 위해 '에이전트 옐로우'를 살포하려는 정부에 반대하며 거리로 나온 시민단체들의 손에 들린 'No Virus'라고 적힌 피켓은 현실에서 반전집회 때 볼 수 있는 'No War'가 적힌 피켓모양과 흡사해 미국의 이라크 침략에 대해 반대하는 감독의 의도를 알 수는 있다(이는 봉준호감독이 어느 인터뷰에서 'No Virus'는 이라크전 이후, 사실은 살상무기가 없었다는 미국의 발표를 연상시킨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괴물 출현의 직접적 원인이었던 주한미군에 대한 태도는 괴물의 '원인'에 그친다. 괴물의 '결과'는 개인의 희생일 뿐, 그 '결과'를 낳은 '구조적 원인'에는 접근하고 있지 못하다.

 


봉준호는 남일의 캐릭터를 전대협시절의 운동권을 생각하며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영화에서처럼 부르주아민주주의가 확립된 지금, 운동권들은 불만 가득한 무기력한 자들로 그려진다. 남일 역시 그러한 캐릭터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도움을 얻기 위해 찾아간 운동권선배는 포상금을 노려 그를 경찰에 넘기려한다. '도바리의 천재'였던 남일은 놀라운 기술로 '도바리'를 쳐 노숙인의 도움을 받아 화염병을 제조한다. 이제부터 그의 실력이 발휘될 차례다. 그러나 그가 던진 화염병은 단 한 개도 괴물에게 적중하지 않고, 심지어 마지막 한 개는 어처구니없게도 뒤로 떨어뜨린다. 이렇듯 감독은 운동권 역시 희화화시켜버린다.
그러나 결국 괴물을 쓰러뜨린 것은 영화 내내 한 발의 화살도 쏘지 못했던 남주다. 괴물을 쓰러뜨린 것은 여성이다. 이것 역시 여성을 주변화했던 '한반도'와의 차이라 할 수 있겠다. 또한 강두는 딸의 죽음으로 유일한 생존자인 세주를 가족으로 받아들인다. 세주 역시 매점을 털어 생존을 이어나가던 소외계층이다. 강두는 이렇듯 혈연가족이 아닌 새로운 가족을 구성한 것이다. 또한 강두의 가족은 현서가 납치되기 전에는 한번도 한자리에 모여 본적이 없다. 하기에 이 영화는 '가족영화'가 아니다.

 

현실 민중은 투쟁하고 있다!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미국, 일본 제국주의의 문제를 지적하려 했던 '한반도'는 민족·국가이데올로기에 빠져 현실성도, 설득력도 없고, 시나리오까지 부실해 썩은 웃음만을 내짓게 했다. 2000년 '맥팔랜드 사건'이라는 사실을 기반으로 미제국주의의 문제를 제기하려 했던 '괴물'은 관객을 향해 "끝까지 둔해빠진 새끼들…"이라며, 미국의 실체를 알라고 질타하지만 문제의 구조적 원인에는 접근하지 못하고 그저 냉소적이기만 하다. 물론 하위계급들 간의 연대, 국가장치들에 대한 비판, 여성의 중심화, 가족의 재구성이라는 면에서는 높이 평가할 만 하다.
고이즈미총리의 신사참배, 독도 영유권 분쟁, 평택을 포함한 주한미군철수 투쟁, 작전환수권 논란, 용산기지 이전 뒤의 환경오염문제, 미국의 침략전쟁 등으로 많은 논쟁과 투쟁들이 벌어지고 있는 현실에서, 두 영화는 이러한 사실(fact)을 관통하는 정치성을 띄고 있는 것 같지만 하나는 우파적 정치성을, 다른 하나는 냉소적 정치성(?)을 갖고있을 뿐이다. 민중들의 투쟁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치부하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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