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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와 관련해서도, 인구 부양 정책에 있어서도 일침을 가하는 글이어서리.... 셤공부 안하고 이러고 있당~~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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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2 가족: 사랑, 노동, 그리고 권력
가족은 죽었다, 새로운 가족이여 영원 하라
원제: The Family is Dead, Long Live Our Families
By Judith Stacey
The Socialist Feminist Project 중에서
UN은 1994년 국제 가족의 해를 선언했다. 그러나 가족은 기묘하게도 서양과 근대적 개념이다. 어떤 문화에서는 “가족”이라는 범주를 전혀 다루지 않는다. 그 용어를 사용하는 많은 사회는 다양한 관계를 표현하고 다양한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서 그렇게 한다. UN이 가족을 기념하기 전까지, 중요하게 여겨져 왔던 가족이라는 단어와 혈족 관계는 특히 미국에서, 하지만 세계에 반향을 일으키며, 굉장한 변화와 정치적 논쟁이 있어왔었다. 국제 가족의 해를 선언함으로써, UN은 논쟁적 용어를 현혹적으로 통일시켜버렸다. 또한 그 용어의 사용은 몰여성적으로, 민족중심적이라고 비판을 받아온 몰락하는 근대화 이론에서 나온 것이다.
근대화와 가족
대부분의 유럽과 북미에서, 가족은 결혼한 이성 커플과 그들의 생물학적 혹은 입양한 아이들로 구성된 핵가족과 거의 같은 뜻이 되었다. 더욱 유동적으로 널리 알려진 용어는 혈연, 결혼, 혹은 입양과 연관된 모든 사람들을 포함시키는 개념을 체택했음에도 불구하고, 서양사람들은 가족을 자연과 관련 지어 생각하며 무한한 과거로 역행하여 그 용어를 제출하는 오류를 범한다. 그러나 “고대 로마의 가족은 핏줄이나 결혼으로 맺어진 관계뿐만 아니라 노예와 하인들을 포함한 가부장제였다고 역사가들은 말한다. 그래서, 옥스포트 영사전 (OED)에는 영어인 “family”의 어원은 르네상스 시대 바로 직전, 가족이나 가정의 노예들을 포함했었던 140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한다. 역사가들은 15세기 동안, 가족의 거의 대다수 (모든 가족의2/3내지는 3/4)는 그들의 아이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 키울 수 없었다고 추정한다.
OED는 당시 가족의 일반적 의미를 “사실상 같이 살거나 같이 살지 않는 것에 상관 없이, 부모와 그들의 아이들로 구성된 사람의 그룹”이라고 정의했다. 이는 17세기 후반에 가장 처음으로 기록된 용어를 배치한11개의 정의 중 세 번째 정의에 해단한다. 오직 19세기 빅토리아 시기 동안에 현재의 가족에 대한 대중적 의미가 우위를 점하게 되었다. 19세기 중반까지, 역사가 존 길리스(John Gillis)는 “많은 이들에게 적용되지 않는 가족이 받아들여 졌으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가족이라는 근원에서 자라지 않았다”라는 것을 우리에게 일깨워준다.
그러므로 가장 중요하게 인식해야 할 것은 가족은 일반적으로 근대화되는 오래된 역사 변화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많은 역사가들은 가족을 명명해왔던 특정한 가족 제도를 설명하기 위해 근대 가족의 개념을 사용한다. 서양에서 근대 가족은 역사적으로, 완전히 통합된 가족의 삶과 노동의 전근대적 가족 경제, 그리고 가부장적 경제로부터 발달했다. 미국에서, 근대 가족 시스템은 가사노동이 지불노동에서 제외됨으로써 남자가 가족부양자로, 여자가 가정부가 되게 했던 산업화 시기인19세기에 발생했다. 백인과, 중간계급 사이에서 처음으로, 이 가족 패턴이 근대성과 성공을 의미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미국적 생활방식은, 남성의 가족부양임금에 기초한 남성 노동자들의 실질적 지불 조건을 보장하기 위해 직종별 노조운동이 근 1세기 동안 투쟁해왔던 이 가족 형태와 동일시 되었다. 그러나 20세기 중반까지 대부분의 산업노동자는 핵가족 부양임금을 얻어내지 못했고, 그들의 대부분은 흑인이었다. 노예들은 결혼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고 부모로서의 권리가 전혀 없었으며, 극소수의 흑인 가정만이 전업주부로의 자격이 주어질 수 있었다. 사실, 많은 흑인 엄마들은 상대적으로 특권 계급에 속하는 백인들에 비해 현대 가정에서 가사노동자로서 더 많이 일을 한다.
근대 가족 시스템의 등장은 명백하게 가부장적이었던 가족 경제와 전근대적 경제를 소멸시켰다. 그러므로, 그것은 사회학자 데니즈 칸디요티(Deniz Kandiyoti)가 “가부장적 거래”라고 칭한 것에서의 변화를 의미한다. 고전적 가부장적 거래에서, 여성은 보호와 안전한 사회적 신분을 위해서 공공연하게 매매되는 것을 받아들인다. 근대 가부장적 거래는 신분의 분리와 로맨틱한 사랑이라는 이데올로기로 그것을 잘 포장함으로써 이 매매를 보기 좋게 한다. 중매결혼 대신에, 전체적으로 혹은 부분적으로,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목적을 위한, 부모와 친족에 의해, 우정과 사랑을 찾는 근대의 남성과 여성들은 삶을 위해 자발적으로 그들의 개인적 욕구를 이행하려는 대상과 그들 자신을 결합한다. 분리, 그러나 남성 가족 부양자와 여성 가정주부 간의 동등한 노동 분리라는 외형에서, 여성과 아이들은 점점 더 남성의 수입에 의존하게 되었다. 19세기는 가정생활과 모성애를 찬양하는 “진정한 여성다움”의 예찬을 불러 일으켰다. 이는 서구의 가족 이데올로기를 계속적으로 주입하는 여성성의 개념을 낳았다. 특히 사랑과 돌봄의 모성적 형태가 필요한 어린 아이들의 “미성숙 연령”에 관한 유사한 개념의 확장은 가부장적 가치로서 아이들을 다뤘던 초기의 합법적 개념을 위태롭게 하기 시작했다. 미국 가족의 양상은 19세기와 20세기에 전개되었던 근대 가족 시스템처럼 더욱 새로울 게 없고 비슷했다. 높은 사망률과 재혼율은 전근대적 가족의 양상을 다양하고 복잡하게 유지시켰지만, 사망률의 감소는 증가된 많은 사람들이 평범한 가정 생활을 예견할 수 있도록 했다. 20세기 중반까지, 출산, 결혼, 노동, 육아, 그리고 죽음으로부터의 근대 가족 생활의 양태는 매우 자연 발생적이며, 일반적이고, 새로울 것이 없었다. 가족은 당연하며, 일반적이고, 자명한 것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사회학자들은 그 때의 암묵적인 문화적 상호 이해에 별로 영향을 받지 않는다. 포스트 2차 세계대전 시기에, 미국에서 가족을 연구하는 사회학자들은 미국 가족 역사가 세계화 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가족 근대화 이론을 세웠다. 근대 핵가족은 산업사회의 기능을 지원하기에 이상적이며, 그것은 문명화 과정과 민주주의에 종속적인 산물이라는 논쟁이 있었음에도 사회 학자들은 그 가족형태가 근대화되고 있는 세계로 퍼져 나갈 것이라고 예견했다. 서구 문화 제국주의의 소산물인 가족 근대화 테제는 서구 문화 형태의 우월성이 후진국과 세계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궁극적인 승리를 지켜낼 것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어떤 가족 학자들은 서구의 근대 핵가족의 초기 발달은 성장하는 자본주의에 있어서 서구의 우위를 도왔다고 논쟁하기 시작했다.
서양의 정부들은 그들의 젠더와 가족 형태를 종종 식민지 국민들에게 강요 함으로써 그들 가족 형태의 우월성을 설득시켜왔다. 예를 들어, 미국은 핵가족으로 구성된 단위나 남성 대표에게 독점적으로 땅을 줌으로서 몇몇의 고유한 신대륙 문화 가운데 혈족문화를 확장시키고 모계사회를 붕괴시켰다. 이와 유사하게, 유럽은 완전히 다른 혈족 제도를 가진 아프리카에 핵가족 논리를 강제적으로 강요했다. 예를 들면, 잠비아 구리 지대에서, 광산 소유자는 오직 노동자의 아내와 아이들에게 이윤을 분배함으로써 노동자들의 사실상의 대가족 형태를 무시하고 붕괴시켰다. 그러나 대게, 서양인들은 근대 핵가족 제도의 세계적 확산은 자동적으로 발생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반대로 이러한 상반된 생각-가족은 자연발생적이며 일반적이라는, 그러나 한편으로는 서구의 우월성의 표상이자 동인인 생각-은 대중적, 학술적 담론에서 충돌이 계속적으로 발생하도록 한다.
가족의 모순
우리는 당시 가족의 혼란 속에서 근대 가족 시스템에 대한 이데올로기, 논리, 관습에 존재하는 모순을 인식함으로써 몇 개의 관점을 얻을 수 있다. 그것 중 가장 명백한 것은 의지와 강제 사이의 긴장상태이다. 근대가족 이데올로기는 결혼서약을 독립적 의지의 생산물이며, 낭만적 이끌림과 상호 감정적 욕구에 의해 서로에게 이끌린 두 명의 동등한 개인의 열정으로 설명한다. 그러나 여성이 남성의 월급에 경제적으로 의존하게 하고, 법률적으로 그리고 현실적으로 여성을 복종하게 하는 근대 가족 시스템의 노동의 가족 내 구분은 그들의 개인적 열망과는 다르게 여성이 결혼을 선택하고 결혼을 유지하게 하는 강력한 동기를 부여한다. 그리고 남성은 의심할 여지 없이 결혼의 내외부에서 감정적, 성적 흥미를 실행할 많은 기회들을 갖지만, 꽤 최근까지도 문화적 코드와 물질적 구속은 대부분의 남성이 전업주부의 인격적, 감정적, 사회적 서비스에 의존하게 한다. 정치 풍자 작가인 바바라 에렌라이히는 미국 백인 중산층은 개인 노예로 그들 자신의 멤버를 고용한 역사에서 유일한 부르주아 일 것이라고 비평했다.
억압받지 않는 사랑과 우정의 평등 원리와 물질적, 문화적 강제의 불평등한 형태 간의 모순을 상대적으로 받아들이는 능력은 남성 가족임금에 대한 가능성과 접근성에 의존했다. 페미니즘 역사가들은 전업주부나 엄마들을 부양하기에 충분한 임금을 받기 위해 했던 남성들의 노동조합 투쟁으로부터 옹호되거나, 무시되거나 혹은 이익을 얻는 노동계급의 아내들의 지위에 대해 논쟁해왔다. 헤이디 하트만이 남성 공장주와 노동자간에 합의된 가부장적-자본주의적 거래라 칭한 이 구조를 누가 수립했느냐는 중요한 것이 아니며, 그것은 덧없는 것이라는 게 증명되었다. 산업 노동자의 대부분은 1950년대 혹은 1960년대까지 전업주부를 부양할 충분한 임금을 받지 못했으며, 그들이 충분한 임금을 받게 된 직후, 산업 파괴, 탈공업화 시대가 그들의 직장을 없애고 그들의 임금을 좀먹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생계는 안정되고 살기에 충분한 임금을 받는 남성의 직업에 의존했기 때문에, 불안정이라는 단어가 근대 가족 시스템의 유전자 코드(Y염색체)에 새겨졌다. 1970년대와 1980년대에 거래의 실타래가 풀리기 시작함에 따라, 전체 젠더와 가족의 서열의 붕괴는 선진 산업사회에 “가족의 위기”라는 경악함을 널리 퍼트렸다.
과거 수 십 년 동안, 모든 선진 공업국은 이혼율의 상승, 출산율의 감소, 혼전 동거의 증가, 의붓, 혹은 재혼 가족의 증가, 비혈연 가족의 증가를 경험했다. 미국의 가족 감소를 비난하는 세상을 소란스럽게 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인구 통계상 경향의 다국적 특징을 종종 간과한다. 1977년 비엔나의 한 연구는 만약 1970년대 수준으로 유럽의 이혼비율이 2000년까지 증가한다면, 결혼한 전체 유럽인의 85%가 이혼을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와 같은 시대에, 여성과 남성의 고용 비율은 예전과 다르게 세계적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여성, 특히 어린 아이들을 둔 엄마들은 이제 남편이 직장을 잃고 수입이 없음으로 인해 위태롭게 된 가족을 부양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거나 혹은 부양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노동을 한다. 낮은 교육수준을 가진 남성들이 할만한 안정된 일자리, 혹은 어떤 일자리이든 간에 그들을 위한 일자리의 부족은 꽤 드라마틱하다. 1970년대에 중졸 남성의 2/3 이상이 풀타임으로 일했지만, 10년 뒤에는 그 절반만이 그러한 안정된 직업을 갖고 있었다. 남녀간의 주목할 만한 임금차는 지속되었지만, 여성 고용의 일반화와 남성을 위한 일자리의 감소는 여성의 남성에의 경제적 의존을 다소 감소시켰으며, 그 결과 결혼에 대한 강제적 지향은 약화되었다.
싱글맘이 전세계적으로 증가하고, 한번도 결혼을 하지 않은 싱글맘의 비율이 증가하는 주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시트콤의 영웅 머피 브라운은 어머니 역할을 완전히 무시하기 보다는 싱글맘이 되기를 선택하는, 그 수는 작지만 점점 증가하는 부유하고 전문직 미국 여성이라는 가족 환경의 논쟁적 상징이 되어왔다. 현실에서, 싱글맘 가족의 거의 대부분은 비참한 경제적 상태에 직면해있으며, 그로 인해, 탈공업화 시대에 걸쳐 출산비율은 인구 보충 출생률 이하로 떨어졌다. 카톨릭 국가인 이탈리아에서 현재 선진 공업국 중에서 가장 적은 출생률을 보인다는 것이 특히 더욱 놀랍다. 반면에 스웨덴은 가족의 쇠퇴를 주도하는 나라라는 평판에도 불구하고 출생률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예외적인 국가의 혁신적 세금 정책과 사회복지 정책으로 인해 미래의 스웨덴 부모들, 특히 엄마가 될 사람들의 자신감과 사회보장의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은 이 모순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뉴욕타임즈는 재통일로 인한 국가의 비참한 경제상태 때문에 “동독의 성인들은 출산의 일시적 중단에 가까운 상황”이라고 전했다. 브란덴부르크 주는 아기를 낳을 때마다 $650을 준다는 정책을 제안하기도 했다.
세계 자본주의는 증가된 생산성과 기술적 진보를 통해, 끝없는 이윤추구에 의해 지배되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유일한 사회적 불변율은 변화한다고 확신할 수 있다. 사회변화는 우리 세계의 지속적이며 끊임없는 특징이며, 우리 모두는 가족 생활의 미래는 계속 변화할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최근 출산 기술과 유전자 공학의 발달은 미래 가족 시나리오의 가장 드라마틱하며 급진적인 결론을 일부나마 어렴풋이 보여준다. 아놀드 슈왈츠 제네거가 분한 임신의 과학적 실험에 관한 (남성보다는 여성에게 더 인기가 있었던) 크리스마스 가족 영화 주니어 (1994)는 섹슈얼리티, 태아, 잉태, 출산, 결혼, 육아와 부모역할을 구분하는 파우스트적 능력을 과학이 완성함으로써 닥쳐올 가족 생활의 재정의를 일부 예언한다. 우리는 남성의 정자가 한 여성의 난소에 수정할 수 있고, 그 수정란은 그 아기를 입양하고 키울 계획인 같이 양육할 두 번째 남성이나 네 번째 여성 부모와 함께 키우거나 혹은 그들 없이 혼자 키울 세 번째 여성을 위한 대리모의 역할을 수행하는 두 번째 여성의 자궁에 안착시킬 수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이러한 세상에서 엄마, 아빠 또는 가족은 무엇이며 누구인가?
근대 가족의 양상
놀랄만한 변화는 근대 가족 시스템의 특정한 가부장적 거래가 충돌해온 지점 위에서 일어났다. 대신에, 이제 우리는 초기에 설명된 후기 근대 가족 상태의 조건 내에서 우리의 본질적 삶을 구축한다. 서구 가족 역사에 있어서 현 시점에, 비-한부모 가족이 통계적으로 우세하며, 우리 가족의 형태는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단지 미국 가정의 소수가 아이가 있는 결혼한 커플이며, 이들 중 많은 이들이 이혼하고 재혼한 사람들이다. 가족 생계를 책임지는 아빠와 전업주부인 엄마로 구성된 근대 가족보다 더욱 많은 아이들이 싱글맘과 살고 있다. 후기 근대 가족 양태의 대부분의 특징은 미국과 스칸디나비아에서 가장 두드러진다. 그러나 인구 통계학적 경향은 그들만의 추세가 아니라, 변화 속도, 시간, 범위에서의 변동이 고도로 산업화된 나라들과 비슷하다. 한번은 가족 근대화 이론이 세계 모든 사회가 한부모 가족 시스템-서양 근대 가족 시스템-으로 바뀔 것이라고 예견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대신에 우리는 국제적으로 다양하고, 유동적이며, 불안정한 후기 근대 가족 상태로 변화하고 있다.
포스트모던의 영향아래, 자연발생적이며 불변한다고 했던 젠더, 섹슈얼리티, 부모 역할, 가정 생활의 사회적 특징은 가시화 되었고 정치적으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인구 통계학의 비슷한 경향으로 인해 자본주의적, 산업화된 국가들에서 근대 가족 시스템은 해체되고 있지만, 근대 가족 위기에 대한 국가별 반응은 크게 다르다. 어떤 사회는 아이들에게 너무 많은 고통을 주고, 여성들에게 불평등한 무거운 짐을 지우는 결혼의 붕괴라는 부정적 충격을 다소 완화 하기 위해 돈을 아끼지 않는 복지정책을 고안함으로써 남성 가족 부양 형태의 감소에 적응해 나간다. 스웨덴과 노르웨이와 함께 스칸디나비아는 혁신적 가족 부양책으로 이러한 종류의 정책들을 표준화했다. 두 나라 모두에서, 여자든, 남자든 새로 태어난 아기의 육아비용의 90% 지불과 함께 1년 육아휴직을 받을 수 있다. 매우 적은 수의 아빠들이 이 정책의 특권을 누렸기에, 스웨덴과 노르웨이는 최근 그 특권을 누리게 하기 위한 추가적 동기를 부여하고 했다. 이제 두 나라 모두 기존에 그들의 선택에 따라 남자나 여자 중 한 명에게 할당되었던 12개월 육아휴직 외에 오직 남자에게 추가로 한달 더, 지불 육아휴직을 제공한다. 게다가, 스칸디나비아 노동자들은 전세계적으로 실시되고 있는 가족수당과 성교육, 피임, 낙태 시술을 포함하는 의료 보험과 높은 질의 탁아소 비용 지원 혜택을 받을 뿐만 아니라 아픈 아이들과 친척들을 돌보기 위한 지불 휴가 혜택을 누린다. 이들 북유럽 국가에서 지친 아빠들은 거의 없다. 왜냐하면 육아 비용을 할당하고 축적할 책임을 국가가 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미국에서 한부모 가족의 절반 이상이 공식적으로 정한 빈곤층 보다 더 빈곤하게 살고 있지만, 스웨덴에서는 오직 2%만이 빈곤층이다. 아마도 이것이 스웨덴 여성들이 최근 몇 년간 더 많은 아이들을 갖기 원하는 이유일 것이다. 게다가, 스웨덴과 노르웨이는 미국에서 동성결혼이 가시적으로 정치적 이슈가 되기도 전에 덴마크 다음으로 동성결혼을 합법화했다.
그러나 다른 부유한 사회는 후기 근대의 인구 통계적, 문화적 변화에 더욱 비우호적이라는 것이 증명되었다. 그들은 이러한 변화들에 의해 야기된 불공평하고 파괴적 결과들에 대처할 공적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미국이 가장 이러한 고려를 하지 않는다. 비정상적으로 독점화된 경제, 개인주의적 문화, 그리고 인종 대립으로 인해, 미국에서 빈곤층을 위한 사회 복지는 다른 나라에 비해 부족하고, 가혹하고, 평이 좋지 않다. 그러나 이런 빈약한 제도 조차 현재는 점점 폐지되고 있다. 18개의 선진 공업 국가 중 미국만이 시민들에게 전세계적으로 실시되고 있는 의료보험, 가족 수당 혹은 지불 육아 휴직을 제공하지 않는다. 사실, 3개월 부불 출산휴가를 보장 받는 것은 1993년 가족 휴가법이 통과되기 전에는 불가능했다. 50명 이상의 노동자가 고용된 회사에는 그 권한을 위임했기 때문에, 그 조차 거의 모든 가족에게는 소용이 없었다. 미국에서 복지 정책은 항상 가계조사에 의해 지급되고, 낙인을 찍으며, 인색하다. 그 결과, 일반적으로 선진 공업 국가보다 많은 아이들뿐만 아니라, 많은 수의 미국 싱글맘 가족이 더 가난하다. 현재의 복지 개혁 법안이 걱정스러운 기록에 더 할 이들 통계에 대한 추정은 복지 시스템의 개정을 요구했던 이들 중 한명인 상원 의원 모이니한을 놀라게 했다.
미국에서 가족 부양 정책은 산업국가 중에서 가장 빈약한 반면, 가족 위기를 정치적으로 과장하기 위해 미국만큼 국가 비용을 지출한 나라도 없다. 미국에서 젠더, 섹슈얼리티, 재생산, 그리고 가족에 관한 정책들은 극도로 양극화 되었으며, 폭력적이며, 세계에서 사회적 불화를 일으킨다. 이는 명확하게도, 근대 가족 시스템의 쇠퇴에 관한 사회 구조의 대응이 너무 약하기 때문이다. 이는 페미니즘, 게이 해방, 그리고 “가족 지지”를 거부하는 운동이 정치 스펙트럼에 영향을 미치고 목소리를 내야 하는 주요한 이유이다.
근대 가족 시스템에 대한, 혹은, 보다 정확하게는, 1950년대의 이상화된 형태인 가족에 대한 오지와 해리엇 (한 시트콤의 주인공 이름으로 둘이서 잘먹고 잘사는 미 중산층의 이상적 부부-역주)의 이미지에 대한 만연한 동경은 캐나다와 영국에 은근히 영향을 미쳤으며, 미국에서 점점 더 강력한 이데올로기적 무기가 되었다. 근본주의 기독교인들과 보수적 공화주의자들은 1980년대의 레이건 “혁명”을 선동했던 가족 지지 운동의 선두에 섰다. 그러나 1994년 선거 시즌에, 클린턴 대통령 조차 적은 수의 사회과학자들에 의해 주도된 가족의 가치에 관한 노골적으로 중도적인 이데올로기를 포용했다. 이 계속되는 캠페인은 미국 사회 침체의 첫째 원인이 가족의 해체 때문이라고 주장했으며, 범죄, 폭력, 교육 수준의 감소에서부터 가난, 마약 중독, 성병까지 모든 것들의 원인이 결혼한 커플 가족의 감소 때문이라며 비난했다.
가족의 쇠퇴로 인한 아이들의 좋지 않은 처지에 대한 국가의 과장된 걱정과 그들의 고통을 완화하기 위한 정책이행을 자발적으로 하는 것 간의 역 관계인 것처럼 생각되는 점이 있다. 만약 비판적으로 보면, 이는 모순인 것처럼 보이지만, 가족부양정책은 각 국에서 사회 복지에 대한 공적 책임이 역사적으로 발전해온 것과 모순되지 않는다. 그 정책들은 노동 운동이 주요한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다는 면에서 의회 정치에 있어서 가장 강력한 것이다. 반면에 가족에 대한 립서비스는 사적 영역을 위한 대리행위로서의 역할을 하고 사회 복지에 대한 공적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근본적 이유로서 작동한다. 불행하게도, 더욱 개인주의적이며 시장 중심인 사회는 가족간 결속을 유지하는 것을 더욱 어렵게 한다.
“가족”을 매장시키자
국제 가족의 해를 선언한 UN의 결정은 전세계적으로 가족 시스템이 위기에 놓여있다는 것을 암묵적으로 시인한 것이다. 그러나 언어의 선택은 모순 어법적 프로젝트임을 공언한다. 왜냐하면 그 선언은 일반적으로 공유된 가족의 정의에 대한 문제점을 회피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가족의 해 구성에 책임이 있던 UN 가족 위원회는 이를 인식했지만, 이 딜레마를 교묘히 빠져 나가려 했다. 첫 째, UN은 가족 논리 안내서라는 공식적 문서에서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가족 형태, 다양한 문화와 관습 때문에 가족을 정의 내릴 수 없다”는 주장을 서문에 실었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오늘날 가족을 괴롭히는 위기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가족에 관해 우리가 의미하는 것을 명확하게 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시인함으로써 시작된 “가족의 위기”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이슈화 했다. 마지막으로, 그 문서는 “우리는 가족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라는 놀라운 고백과 함께 결론을 내린다.
만약 우리가 가족에 관해 의미하는 것이 남성 가족 부양자와 여성 전업주부, 결혼한 커플과 그들의 자식으로 구성된 단위인 근대 가족 시스템이라면 가족은 사실상 무의미하다. 그러나 그것의 유령인 가족 이데올로기는 살아남아 그것에 마주하기를 거부하는 모든 이들의 의식에 출몰한다. 근대 가족 시스템의 시체를 사회적으로 부검 해야 할 때이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골치 아픈 영혼이 휴식을 취할 수 있게 할 것이다. 아마도 우리가 잃어버렸던 가족 시스템에 관한 고유의 기억에 의한 업무는 매우 고된 후기 근대 가족 상태 하에서 개인적 관계들을 지속하기 위한 사람들의 분투에 있어서 다양한 욕구들을 대처하는 것에서 우리를 자유롭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경우 비정하며 냉철한 무관심이라는 병리학자들의 자세를 택하는 것은 유쾌하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결혼과 가족 생활에 관한 모든 안정된 시스템은 강제와 불평등의 다양한 척도에 의존해왔다. 가족 시스템은 여성과 남성이 경제적으로 상호 의존적일 때, 가정이 그들 스스로를 재생산 하기 위해 충분한 자원을 가진 생산 단위로서의 역할을 할 때, 그리고 개인들이 경제적, 성적, 사회적 생활의 대안이 결핍되어 있을 때 가장 안정된 것 같다. 이러한 종류의 가족 단위는 항상 혈족, 공동체, 종교적 단위 등의 더 넓은 사회에 의해 인정받고, 지지를 얻는다. 혼란스럽게도 모든 그러한 가족 시스템은 가부장적이었다. 이들 몇 가지 논리로부터 중요한 출발점의 전형이 된 근대 가족 시스템의 안정화는 남성 가족 임금의 신뢰성과 타당성에 의존했다. 그러나 전근대적 가부장적 거래를 붕괴시킨 자본주의적 산업화의 끊임없는 발전은 이제 근대적인 것을 붕괴시켜왔으며 어떤 종류의 후기 근대 가족 영역을 지속적으로 해체할 것이다.
전 역사에 걸쳐, 가족의 위기는 가정 생활의 남성 지배 형태를 다른 것으로 대체함으로써 해결되어 왔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은 우리를 정신 나게 한다. 예를 들어, 중국 형명은 유교적 가부장제를 가부적 사회주의로 대체했다. 서양에서, 가족은 전근대적 가족 경제를 야기했던 산업화의 위기를 해소했다. 근대 가족 시스템은 여성에게 이전의 가부장적 거래에 있어서 득과 실을 모두 제공했다. 그러나 이제 그것은 그 역사적 역할을 너무 벗어났다.
가부장제의 위기는 항상 굉장한 위험과 기회의 순간들이었다. 후기산업 사회에 걸쳐 후기 근대 가족의 양상 하에서, 여성은 교육과 고용에 더 많이 접근할 수 있었으며 이전보다도 더욱 교육과 고용을 필요로 했다. 여성들이 남성의 수입에 덜 의존하게 되면서, 그들은 폭력적, 적대적 관계를 벗어나거나 피함으로써 더욱 자유로워 졌다. 그러나 동시에, 남성은 가족으로서의 부모로서의 책임감에서 벗어나는 듯 하고 여성들은 점점 더 갑절의 책임감에 직면한다. 반면에 동부 유럽에서는, 꼬뮤니즘적 가부장적 거래의 붕괴가 다른 종류의 가부장적 위기를 해결했다. 많은 여성들이 두 번째의 통치 변화와 배급 줄을 서는 것에서 자유로워 졋음에도, 많은 이들이 그들 자신의 삶과 음식에 대한 목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라 고용, 낙태, 육아에 대한 접근권을 잃었다. 조금 놀라운 것은 여성들이 다양한 가부장적 위기에서 살아남기 위한 투쟁을 벌임에 따라, 그들은 이전의, 보다 안정적인, 가부장제 형태에 의해 제공된 상대적 사회 안정망을 더 많이 그리워하게 된다는 것이다.
여성의 가족
1950년대 후반에, 단지 근대 가족 시스템이 무엇인지 해명되지 않았을 때, 휴머니스트적 사진집인 남성의 가족이 미국에서 굉장한 인기를 끌었다. 그 이후로 발생 후기 근대 가족의 양태는 보다 적절하게 “여성의 가족”이라 불려질 수 있었다. 싱글맘과 아빠 없는 아이들의 증가와 함께 공적 담론이 형성되었다. 자주 거론되는 전 지구적 빈곤의 여성화는 근대 가족 시스템이 의존해왔던 근대 산업의 몰락으로 인해 호기를 잡은 가족 생활의 여성화의 직접적 산물이다.
후기산업화와 세계 자본주의의 영향 아래, 결혼의 불안정성과 여성 중심적 가족 관계는 생활의 고유한 사실이 되고 있다. 이는 오직 두 가지의 현실적이며 불완전한 조건들을 가진 후기 산업사회를 발생시켰다. 그러나 국가는 스칸디나비아 사회가 했던 것처럼, 사회 아이들과 시민의 복지에 대한 더욱 거대한 사회적 책임을 짐으로써 새로운 현실을 인식하고 적응할 수 있다. 아니면 미국에서 많이 이용되었던 도덕성의 혼란이라는 과장과 정치적 반격을 통해 후기 근대 가족 생활 실태에 저항하고, 부정하며 비난할 수도 있다.
아마도 후기 근대적 “여성의 가족”은 마침내 가족을 매장시키는데 주요 역할을 할 것이다. 가족이라는 개념은 잘못된 이론적 전제와 그 높으신 양반들이 한번도 여성, 그녀들의 아이들의 이익 심지어 많은 남성들의 이익을 위해 일한적이 한번도 없는 제국주의적 논리에서 나왔다. 우리는 잘못된 젠더 중립성에 의해 잘못 이끌려서는 안 된다. 국제 가족의 해는 대부분의 다른 년도처럼, 여성이 자주 가족 위기의 공격을 받고, 점점 증가하는 힘겨운 일들에 그들의 가족과 영혼을 지키려 고군분투하는 한 해이다. 특히 여성은 가족의 변화에 반발하고 부정하는 권력들에 저항해야 한다. 복지를 공격하는 것은 저항력이 없는 가족을 부양하려 고군분투하는 엄마들을 공격하는 것이다. 가족의 가치를 위한 캠페인에 저항하는 것이 반-가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대신에, 여성은 가족의 정의를 확장하기 위해 공적 부양이라는 개념을 확장하려 노력해야 하며, 우리가 실제로 살고 있는 곳에서의 가족의 형태, 선호, 관계의 다양성을 지지하고 인정하도록 충분히 관대하고 공정해야 한다. 가족의 유령을 무덤에 보내야 할 시간이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가족의 삶을 위한 안전한 세상을 건설하기 시작할 것이다. 가족은 죽었다. 새로운 가족이여 영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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