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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호 민주노총 위원장이 강력히 추진하고 있는 '사회적 교섭에 관한 건'을 다룬 민주노총 제33차 정기 대의원대회(이하 대대)가 정족수 미달로 유회됐다. 이수호 위원장은 대대를 전후로 언론 등을 통해 '사회적 교섭'관철을 위한 의지를 강하게 내비쳤다. 대대 전날인 1월 19일, 하얏트호텔에서 SBS와 베인&컴퍼니 공동주최로 열린 '미래한국리포트' 포럼자리에 김대환 노동부 장관,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 이수영 한국경총회장 등과 대면한 이수호 위원장은 "조직 안팎의 어려운 점을 해소시켜 사회적 대화를 재개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같은 시간 운동진영 내부에서는 '사회적 교섭'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었다. 이수호 위원장이 호텔의 푹신한 의자에 앉아 '사회적 대화'를 운운하는 동안 민주노총 홈페이지 게시판은 '사회적 교섭에 반대'하는 성명서들이 줄을 잇고 있었다. 대대 당일 대의원들의 강력한 비판에 이수호위원장은 당황해 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결국 대대는 유회되었고,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수호 위원장은 "사회적 교섭안건을 처리하지 못한데 대해 책임과 함께 안타까움을 느낀다"면서 "사회적 대화 참여는 대의원들을 설득해 반드시 실현시킬 것"이라며 2월 1일 열릴 임시 대대에서 관철시키려는 강한 의지를 표명했다.
이처럼 '사회적 교섭'을 관철시키기 위해 안달이 난 이수호 위원장에 비해 노무현 정권은 (너무나 느긋하게) 노동진영을 적절히 흔들어 대면서 '사회적 교섭'을 관철시키려 하고 있다. 노무현 정권은 작년부터 대기업노조에 대한 비판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여 노·노 갈등을 조장했다. 그 와중에 발생한 기아자동차의 비리는 노동운동을 더욱 위축시키고 있다. 노동진영을 코너로 몰아넣어 대대에서 '사회적 교섭'을 통과시키려 한 것이다. 이는 1월 26일 국회에서 열린 열린우리당과의 당정협의회에서 이목희 의원의 발언에서도 드러난다. 이 의원은 "비정규직입법은 노사정위원회 참여를 결정하는 민주노총의 2월1일 대의원대회 결정을 지켜보면서 탄력성을 갖고 처리할 방침"이라며 "노사정 대표자회의가 복원되면 그 틀에서 한번 크게 논의해 볼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는 비정규 개악안에 투쟁할 수도, 하지 않을 수도 없는 민주노총 지도부의 조건을 너무나 잘 알고 흔드는 것이다. 이렇듯 정부는 우위를 차지하고 운동진영을 압박해 오고 있다.
이것이 민주주의인가?
대대가 시작되기 전 이수호 위원장은 무려 20여분에 걸쳐 회의규정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이번 대의원대회는 회의규정이 정하는 바대로 진행하도록 하겠다. 동일사항에 대해 한 명의 대의원은 한번만 발언할 수 있다. 발언시간은 4분으로 제한하겠다. 참관자는 발언권이 없다. 가장 민주적인 조직인 민주노총이 공개의 원칙을 지키는 것은 중요하다. 조합원인 참관자까지는 인정하겠다. 그러나 조합원이 아닌 외부인사는 장소의 협소함으로 제한하겠다. 만약 참관자가가 회의 분위기를 흐린다면 의장의 권한을 행사하도록 하겠다." 이수호 위원장이 이렇게 많은 시간을 쏟아 설명을 한 이유는 아마도 격론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기 때문이리라. '70만 조합원의 민주노총'이 중요한 안건을 처리하는데 있어 대의원들이 아닌 조합원들이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할진데, 참관을 제한하는 것이 가장 민주적인 조직의 모습이란 말인가.
또한 회의 규정에 따른 발언제한은 토론을 제약했다. 토론을 하자는 대의원들의 요청에도 회칙을 들먹이며 표결로 대응했다. '서울대병원 지부장 징계철회건'과 'IT연맹 가맹 불승인건'을 긴급 발의하여 안건으로 상정해줄 것을 요청했지만, 안건상정에 대한 표결을 붙여 부결되었다. 두 가지 사안에 대해서는 토론조차도 이뤄지지 못한 것이다. <1호 의안>이던 "2004년 사업보고·평가 및 결산 승인 건"에서 정원영 대의원(금속연맹)이 A4 8장 분량으로 다른 의견을 제출했고 한 대의원이 "평가는 투표로 할 수 없다. 토론을 하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이수호 위원장은 "찬반토론은 한 번씩만 할 수 있다"며 사업평가 이안(異案) 에 대한 찬반투표에 들어갔고 결국 부결되었다. 심지어 한 대의원은 "중앙위에서 안을 작성할 때 고민해서 작성했을 것이다. 그리고 대대 전에 지역본부에서 이미 토론을 다 했다. 그러면 힘차게 통과시키고 투쟁을 결의하면 되는 것인데 왜 지금 토론을 하려 하나?"며 토론 자체를 비판했다. 결국 수정안에 대한 찬반토론 조차 한 번씩만 한 뒤 표결로 부치는 회의 진행방식 탓에 표결만 여덟 번을 한 이상한 대대가 되어버렸다. 활발한 토론을 통해 사업을 수정·보완하여 우리들의 문제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라는 허울을 씌운 채 가·부결로만 결론을 내는 것이 진정 민주노총이 말하는 민주주의인가. 그러나 이수호 위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민주주의에 대해서 가장 관심이 많은 사람 중에 하나다."
'민주주의에 관심이 많은 사람'의 비민주성은 마지막 유회를 선언하기 직전에 극에 달했다. <4호 의안> '사회적 교섭에 관한 건'을 논의하려는 시점에 대의원 수가 380명으로 의결 정족수에 미치지 못해 유회되자 이수호 위원장은 "어떤 대의원이 빠져나갔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표찰을 앞으로 걷어 달라"고 했다. 곧 대의원들 간에 고성이 오갔고 한 대의원은 표찰을 태우며 항의하기도 했다.
정말 투쟁 할껴?
<3호 의안> "2월 총력투쟁 계획(안) 승인 건"은 부분 수정하여 통과되었다. 그러나 이것을 논의하는 과정에서도 대의원들의 공세적인 비판이 쏟아졌다. "총파업안이 총력투쟁으로 바뀐 이유가 무엇이냐?", "계획안에 나와 있는 '정치권 내부의 친노동 진영을 광범위하게 조직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냐, 총력투쟁을 앞두고 우리가 만나고 설득할 대상이 정치권인가? 정치권 내부는 열린우리당을 지칭하는 것 아니냐?", "이 계획이 도대체 파업을 하자는 거냐, 교섭을 하자는 거냐?" 등의 발언들이 이어지자 이수호 위원장은 이해할 수 없다는 말투로 답했다. "공세적 교섭은 노정교섭을 말하는 거다. 사회적 교섭과는 관련이 없다. 교섭도 투쟁을 쟁점화 시키기 위한 하나의 전술인데 끊임없는 오해가 생겨 아쉽다."
비정규개악입법안을 통과시키려는 정부의 태도는 전혀 달라진 것이 없다. 그런데 작년 9월 21일에 있었던 대대에 제출되었던 '총파업투쟁' 계획이 '총력투쟁'으로 바뀌었다. 이에 대해 이수호 위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이것은 투쟁을 하겠다는 계획이다. 나를 믿어 달라. 투쟁할 것이다!"
그러나 제출된 투쟁계획안을 천천히 뜯어보면 정말 투쟁을 하려 하는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총파업은 '법안심사소위에서 강행 처리시' 돌입하며, 투쟁계획은 '정부여당 및 국회에 대한 교섭을 통해', '비정규 입법과 일자리사회양극화에 대한 공세적인 교섭제안을 통해', '대의원대회의 방침에 따라 사회적 교섭, 또는 노·정 교섭 제안'등의 문구만 난무하고 있다.
이러한 계획이 대의원들에게 믿음을 주지 못하자 이상욱 대의원(현대자동차 노조 위원장)은 "총파업 성사에 대해 투본대표자들이 자리라도 거는 명확한 결의를 밝혀 달라"고 주장했다. 이상욱 대의원은 "작년 11월 26일과 29일 파업을 확정했지만 투본대표자회의에서 6시간 부분파업으로 바뀌었다. 타 사업장도 혼란이 컸겠지만 현대자동차 내에서 얼마나 혼란과 논란이 많았는지 다들 알 것이라고 본다. '파업 조직 못하는 사업장은 간부 파업' 등 관행적인 것이 아닌 투본대표자 자리를 거는 정도의 책임 있는 결의를 밝혀 달라. 투본대표자가 아니지만 나도 자리를 걸겠다"며 투쟁의지를 확인하고자 했다. 그토록 단호했던 이수호 위원장은 이상욱 대의원의 발언 이후 급격히 흔들리는 듯 했다. 한참을 고민하던 이수호 위원장은 "다음 투본대표자회의에서 의장인 내가 책임지고 결의하면서 집행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해 논란은 일단락되었다.
정권의 비정규개악입법 강행이 눈앞에 다가왔지만 여러 공방 속에 2월 총파업을 힘있게 결의하지 못했고, 총파업을 호소하는 비정규직 대의원들의 외침은 메아리로 맴돌기만 했다.
여전히 핍박받는 노동자, 사회적 교섭은 반드시 철회해야
대대가 시작되기 전, 입구에서는 수많은 투쟁사업장의 노동자들이 유인물을 나눠주고 있었다. 하이닉스 매그나칩과 한원C.C, 코오롱 등의 장기투쟁 사업장 동지들은 연대를 호소했고, 서울대병원 지부장 제명 건에 대한 반대를 호소하는 글과 사회적 합의주의를 반대하는 내용들의 유인물이 사람의 손과 손을 통해 전달되고 있었다. 그렇게 투쟁을 호소하는 절박한 이들을 뒤로 한 채 대대는 서로에 대한 비방과 민주주의의 훼손으로 얼룩져 상처만 남긴 채 끝났다. '비정규직 투쟁을 50억 기금으로 하겠다는 것은 투쟁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라던 삭제요청도 부결됐고, 2월 총파업투쟁에서 '법안이 강행 처리되지 않더라도 하루총파업에 돌입하자'는 요구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수호 위원장은 '사회적 교섭 건'이 상정되고 정회한 뒤 중앙위원들을 단상으로 불러모았다. 이 안에 대한 처리가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판단한 이수호 위원장은 휴회를 선언하고 1월 28일 속개하자는 제안을 했다. 그러나 정족수 확인 요청에 의해 할 수 없이 정족수 확인에 들어갔고 과반에 못 미치자 '서울대 병원', 'IT연맹'건 상정에 대해 회칙을 유권해석 했던 발목에 스스로 붙잡혀 '사회적 교섭'건과 '남북교류기금 사용'건 역시 폐기되었다.
대대 직후 이수호 위원장은 1월 28일에 하자던 대대를 2월 1일로 확정했다. 임기 들어 이렇게 신속한 의사결정을 위해 강행하는 의지를 그에게서 보기는 드물다. 현재 민주노총 게시판은 "32차 대대가 끝나기도 전에 퇴장한 대의원들에 대해 징계를 내려야한다"는 의견과 대대를 "2월 1일로 잡은 것은 회칙의 '대대는 15일전에 공고한다'에 어긋난다"는 의견으로 분분하다. 대대 이후 현대자동차의 비정규 노동자가 몸에 불을 질렀고, 옥쇄투쟁을 벌이던 비정규 노동자들이 회사의 폭력으로 피를 흘리는 사건이 있었다. 여전히 노동자들은 피 흘리며 쓰러지는데 이를 대화로 풀어야 한단 말인가? 그들이 사회적 교섭을 관철시키려 하는 것은 투쟁에 대한 태도의 문제이다. 민주노총은 '2005-2006년 세상을 바꾸는 대투쟁을 위해서는 사회적 교섭을 관철시켜야 한다'고 하고 있다. 이는 정부와의 대화를 통해 비정규개악안을 지연시키는 투쟁을 하겠다는 것에 불과하다. 이것이 그들이 말하는 '세상을 바꾸는 대투쟁'이다!
스스로 무장해제하고 호랑이의 소굴로 기어 들어가는 '사회적 교섭'은 즉각 폐기되어야 한다. 급한 것은 노동자가 아니다. 오히려 현장과 지역을 조직해서 총파업에 돌입하기 위한 준비를 해야 할 시기이다!
-노동자의 힘 71호 에 쓴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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