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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을 거역하는 노동조합

혁명을 거역하는 노동조합

                                           - G.무니스

 

 

Unions against revolution - G. Munis

 

 

 경제적인 면과 정치적인 면 두 가지 사이에 가장 명료하게 유기적, 기능적인 구분을 가정한다고 할지라도, 그 둘 사이에 모순이란 존재할 수 없다. 어떠한 반동적인 개념이라 할지라도 이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오늘날, 경제적 조직인 노동조합과 이데올로기 기구인 정치적 정당사이의 상호소통, 동의와 협력은 한쪽이 다른 한쪽을 그리고 다른 한쪽이 그 한쪽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두 가지 모두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열쇠를 제공한다. 이러한 진술은 수천 년의 경험을 통해서 인간에 의해 검증되고, 이성에 의해 증명된다기보다는 오래된, 변하지 않는 원칙으로부터 나온다. : 모든 관념이나 정치적 행동은 경제적 기반으로부터 나오는데 이는 통제하고 결정짓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작업의 과정에서 , 다른 측면에서, 우리는 정치학과 경제학 사이의 상호침투를 시험 할 것이며, 노동조합이 현재에 어떻게 기능하고 있는 지를 살펴봄으로써 노조를 평가할 것이다.

 

 노동계급의 방어적인 조직으로써 처음 나타났던 노조들은 인간이하의 노동환경에 직면했고, 오래된 친목단체나 회사의 확장으로써의 산업적 측면에서 그들 자신을 드러내고 있다.  노조는 그들의 열망에 기반 해서 개량주의 수준에까지도 도달하지 않고 있다.  이데올로기적이며 경제적인 분석을 이용하자면, 개량주의는 혁명적인 행동에 대한 요구 없이 법적인 발전을 통해서,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방식으로 사회주의를 달성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주장한다. 조합들에게는 발전이냐 혁명이냐에 대한 물음은 전혀 없었으며 더군다나 사회주의에 대한 물음조차 없었다. 노조는 착취당하는 노동자들을 위해서, 좀 더 참을만하고 덜 굴욕적인 노동환경을 얻으려 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증명해왔듯이, 자본에 좀더 적합한 노동환경을 얻으려는 시도에서 더 나아가지 않는다.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초기의 노조들은, 혁명가가 아니라면, 적어도 노동계급의식을 가지며 오늘날의 노조들의 왜곡된 계급의식, 타락과는 대비되는 건전한 구성을 가진 조직이었다.

 

 19세기 후반, 20세기 초반에 소위 혁명적 조합주의(생디칼리즘)가 나타났다. 이는 상황에 맞는 취사선택 이론이었으며 , 맑시스트 개념으로부터 나온 소위 무정부주의적 정치주의와 오래된 노동조합부터 만들어진 엄격한 경제적 주장을 압도한다. 가장 위대한 흐름의 시기와 이러한 형태의 조합주의의 공세가 개량주의의 정점과 함께 나타났다는 사실에 역설은 없다.

 

 소렐과 베른슈타인은 동시대인인데다가, 차이점보다 공통점을 더 많이 가지고 있었다. 소렐이 생디칼리즘에서 역사적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안하는 데 반해, 베른슈타인과 그의 경향은 의회주의 안에서, 심지어 자본축적의 필요성 안에서 사회주의 사회에 대항하는 확실하고 조화로운 발전의 행복한 기계장치를 추구했다. 실제로 혁명적인 생디카리즘과 개량주의는 부르주아계급의  무서운 경제적 욕망과 관계있다는 점에서 같았다. 그 기간 안에 부르주아지는 그들의 개화가능성의 절정과 엄청난 크기의 자유의 부여, 좌파에 기대는 (그들의 이상적-경제적 관념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사람들에 대한 환상을 달성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1914년의 정치적 파산은 생디칼리스트들, 개량주의자들과 함께 진행될 수 있었다. 비록 스페인의 군사적 중립이 프랑수의 C.G.T. 의 항복의 문서와 자세에 대해 자비를 베풀었지만 스페인의 C.N.T 조차 예외가 아니었다. ; 뒤에서 살펴보겠지만, 그것의 파산은 1936년과 1939년 사이에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시기에 일어났다.

 

 노동조합의 수치적인 증가와 사회적 힘은 1914년 이후 계속적으로 증가했으며, 프랑스와 같은 몇몇 나라에서는 만약 그들의 수치로 인한 힘이 지난 몇 년간 심각하게 줄어들었다면 그들의 중요성은 점차로 커져왔다. 노동조합들에게 1914년의 참사는 그들 자신의 것으로 들어가는데 있어서 필요한 사건이었다고 이야기 되어져왔다. 이것은 그때까지 자본주의가 노조를 파괴적인 힘으로 두려워했고 노조가 할 수 있는 협력적인 역할을(아마도 영국을 제외하고는)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1차 세계대전 이후로 공장에서의 “노동자들의 지배”라는 수많은 경험들은 자본가들이 만족할만한 효과에 의해 그들을 만족시켜왔다. “노동자들의 지배”는 자본에 대한 노동자들의  투쟁을 약화시켜왔고, 공장의 공정과정을 촉진시키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산출을 증가시키고 있다. 노동조합들은 (특별히 자본주의적인 총체인)조국의 방어자로서 뿐만 아니라 착취의 구조 그 자체 안에서의 효과적인 부역자로서 눈에 띄었다. 그것은 그들의 부를 만들었고 그들에 대한 의심되지 않는 지평으로서 열렸다.(?) 그러나 이는 노조가 그들의 결정적인 방향을 정했던 국제노동운동사안에서의 (여러 가지 이유로)매우 중요한 기점이었던 1936년과 1937년 사이의 일 이었다. 이 기간 동안 그들은 그들이 자본주의 사회의 가장 굳건한 기둥의 하나가 되어가는 데 대해 고마워하는 성질을 보여주었다.

 

 20년의 시간이 러시아와 스페인의 혁명을 분리 시켰고, 이는 자본주의에 대항한 세계 프롤레타리아의 공격의 폭발의 처음이자 마지막이었고, 많은 나라 안에서의 부단한 공격에 의해 주목받는 공격이었다. 스탈린 관료주의가 국가자본주의의 건설을 완성하고 스페인 혁명이 최고조로 달한 그 순간, 스탈린주의자들은 모든 진정한 공산주의자들을 총과  온갖 중상모략, 비방을 통해 제거했다. 이것은 계급투쟁의 조직적인 요소들과 타락한 모든 이데올로기적 요소들을 결정적인 방법으로 변화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오랜 시간 동안 국제적인 노동운동에 대한 러시아의 간섭은 부정적인 것이었다. ; 스페인에서 ‘러시아지배 공산당’은 그 자신의 보존의 요구에 의해 질질 끌려 다녔고, 이는 원칙적으로 반혁명적인 경찰력이었음이 밝혀졌다.  1936년 7월, 대부분의 나라에서 군대를 파괴하려는 프롤레타리아의 반란을 방해하려는 시도는 (다행히도) 헛되이 끝났다. 1937년 5월 공산당은 프롤레타리아를 기관총으로 쏘려했는데 프롤레타이라는 C.P.의 반동적인 경찰에 대항해 반항하고 있었으며, 그것을 물리치고 무장해제 시켰으며 혁명을 부숴버렸다.  1936년에 군대가 하려다가 실패한 것을 스탈린주의는 10개월 후 이룩하였다.

 

 처음에 모스크바는 그자신의 영역에서 벗어나 반혁명적인 힘으로서 직접적으로 행동했다. 현재까지 이사건의 엄청난 반동적인 결과에 대한 진정한 비판은 없었다. 그러나 이것은 다음에서 이야기하는 세계의 중요한 모든 행동들의 원천이었다 : 히틀러-스탈린 협정과 두 번째의 “위대한 전쟁”으로부터 “평화로운 공존”의 정책과 독일, 폴란드, 헝가리에서와 같은 반란까지. 후자는 1937년 5월의 스페인 프롤레타리아의 혁명과 같은 수준에서 일어난 것이 아니라 1936년 7월 폭동과 거의 같은 수준에서 일어난 것이었는데 이는 프랑코의 군대 안에서 스탈린의 군대와 경찰이 함께 했다. 헝가리에서의 Imre Nagy와 그의 동료들은 1936년 스페인의 ‘대중 전선’과 같았다. : 혁명적인 격변기의 부산물이지만 혁명의 핵심은 아니었다.

 

 노조가 자본의 보조적 기관으로서 그들을 명백히 했던 잠재적 특성을 드러냈던 1936년 즈음은 중요하다. 그 과정에서 그 자신을 위해서 (영국과 미국의 노조의 예를 제외하고)노조 안에서 큰 흐름을 성취해낸 것이 스탈린주의라는 것은 당연하다. 자본주의의 경제적 경험론은 러시아의 반혁명적 경험주의 안에서 보다 높은 정치적 표현을 찾아냈으며 그것을 고무시켰고 동시에 완벽하게 했다.  이들 두 가지 요소는 좀 더 나은 사회적 환경을 창조하기 위해서 섞이고 병합되었다.  현재 이러한 환경은 다소간 완결된 형태로 존재한다. : 현 상태에서 “후퇴한” 나라를 포함하여 각각의 국가를 따져 봤을 때 이것은 독립된 하나의 경우가 아닌 세계체제전체의 일부분으로서 그것은 자본주의 이상은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는 파업할 권리에 대하여 좀 더 굳건하다고 자부하며, 그 자신의 민주주의에 대하여 자부심을 가진 서구를 살펴볼 것이다. 실상 이러한 권리는 노동자들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법에 의해서 그들의 대표, 즉 노조가 가진 것으로 인식된다. 노동자 자신들에 의해 일어나는 파업은 그것을 파괴하려는 노조나 국가와의 제휴를 맞이하게 된다- 종종 노동자들의 직접적 패배에 의해서 혹은 노동자들에게 중재안을 받아들이게 함으로써. 1936년의 프랑스의 혁명적 파업이 공산당(토레즈:“누군가는 파업을 끝내는 법을 알아야한다.”)과 사회주의 정당(Blum 정부와 경찰은 “사회주의자들”에 의해 명령받았다.)에 의해(파업이 그들의 정치경제적 이해에 반대하기 때문에) 실패한 이후로, 거의 모든 나라는 파업이 노조에 의해 실패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실제적으로, 그리고 법적으로 파업은 노조에게 위임된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항상 파업이라는 예외적 상황을 넘어서, 계급투쟁이 꾸준히 만들어지고 있는 - 자본과 노동의 일상적 관계 안에서 노조는 둘 사이의 완충장치로서만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으로부터 노동자로의 메신저로서의, 노동자를 자본의 요구에 적응시키는 것을 돕는 앞잡이로서 나타난다. 노조에 의해 독점되어버린, 자본에 대한 노동의 모든 투쟁의 표현은 자본의 이익을 위해 노동자들에게 등을 돌린다.

 

 우리는 위에서 한 논증의 말들이 부인할 수 없는 확고한 사실이라는 것만을 상기해야만 한다. 공장위원회 뿐 만 아니라 매장, 상점 혹은 직업적 영역의 대표들은 국가에 의존하고 있다면 그들의 선출방식이 선거라 할지라도 노동자들의 자유의지의 표현이 아니다. 그들은 노조를 대표하고 있을 뿐이다. 그 안에서 노동자들은 그들이 원하는 누군가를 선출하는데 자유롭지 못하다. : 유명한 영국 상점의 지배인들이 산별노조의 동의를 원한다 할지라도. 대부분의 나라에서 법적으로 노조는 노동계급을 대표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므로 노동자들은 더 이상 자신들이 그들 자신들을 대표할 권리를 가지고 있지 못하며, 국가나 고용주들과의 협상을 하기위해, 그들의 투쟁을 지도하기 위해 노조 아닌 다른 기관을 만들 권리는 더더군다나 없다. 노동계급의 권리와 노조의 권리는 명백하게 둘로 나뉘며 상호 모순적이다.  이 때문에 노동자들과 공장위원회, 상점대표사이의 대립-잠재적인 형태로 늘 상 존재하는 대립-은 고용주와의 대립이 있을 때마다 첨예해지고 투쟁이 광범위해지면 직접적인 대립으로 변한다. 지난 20년간 이름 있을 만한 모든 파업은 노조의 의지에 반하고 공장안에서의 대표자들을 포위해야만 했다. : 노동자들 자신들은 파업위원회를 선출해야만 했다. 그러나 노동자들에 의해 선출된 공장위원회나 파업위원회는 매번 노조지도자들에 의해 그들 스스로 설득당하도록 허락했고 자본은 우위를 점했다.

 

 단체 노동협약의 목적은 다양한 영역에서 고용주의 횡포를 제한하는 것이었다. : 노동조건과 근무시간, 착취의 강도(시간당 생산성), 범주에 따른 임금범위(상하관계), 고용과 해고, 정치적 권리, 발언의 자유와 공장안에서의 위원회, 공장규정 등등. 그러나 (법 아래에서 유일하게 협상하고 그것에 서명할 수 있는)노조의 손안에서의 단체협약은 보통 자본에 대한, 특이하게는 노조에 대한 프롤레타리아의 종속을 위한 무서운 제도가 되었다. 사실, 현재 노조는 부분적으로 혹은 종합적으로 착취의 대리인이 되었다. 사실 클로즈드 샵(조합원만을 고용하는 사업소)의 경우를 제외하고 해고와 고용은 거의 자본의 자비에 위임되어있으며 이것은 노동자들의 보증된 노동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단순하게 말해서 노조에게 파산의 권리를 준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아래 글에서 동구의 노조에 대해 이야기할 때 보게 될 최악의 종류의 반동적인 경제적 탄압이다.

 

 노동계약은 임금의 차이와 노동자들 간의 범주적 ,기술적 기능과 관련된 적대감 때문에 노동계급의 서로 반대되는 그룹으로의 위계적 분화를 찬성하고 장려한다. 노조는 프롤레타리아가 자본에 대한 작은 블록을 형성할 때를 제외하고는, 그들의 본성 때문에, 본능적으로 위계적 기초에 의한 프롤레타리아의 분화를 돕는다. 위계적인 노동관계를 통한 프롤레타리아의 분화의 필요성과 그로인한 최상위층의 이해로부터의  소외의 필요성은 자본만큼이나 노조에게도 중요한 것이다. 한 세기 동안 노동운동은 그 자신안의 위계적 관계에 대항하여 싸워왔고, 넓은 영역에서 그 물적 기반을 제한하면서 위계질서에 찬성하는 편견을 깨부쉈다. 지난 몇 십년동안 노조와 그들의 정치적 격려자들은 폭넓게 위계적 적대감을 재구축하고 노동 영역의 숫자를 늘리는 데 성공하였다. 오늘날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위계적 노동관계가 자연스럽거나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단체 협약의 본래적 이상이, 자본이 완전한 억압을 기대하는 동안 그것의 전횡을 억제하는 것이었다면, 오늘날 그들은 자본주의의 기능적 요구에 부합하는 자본주의 시스템을 통제하는 거의 완벽한 방법을 구성한다. 단체협약에서 협상과 서명을 하는데 노조는 생산수단을 독점한 그룹의 필수적인 일부처럼 행동한다. 미국과 다른 나라에서 많은 수의 노조는 회사 안에서 그들의 구성원을 착취하는 중요한 주주이다. : 이는 사회주의에 대한 기대와는 거리가 먼 것으로 가장 큰 경제적, 이데올로기적 개념 안에서 노조를 착취의 수익자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노조들은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의 계획을 끌어내는데 실제적으로 참여하지 않는 곳에서 이러한 권리를 찾는다.

 

 계급투쟁의 현장인 작업장, 특히 큰 공장은 가장 혁명적인 노동자들에게 영구적이며 원대한 실질적, 이데올로기적 활동을 줄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활동이 노조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은 불가능하다. 빈번하게 단체협약은 어떤 노동계급의 활동에 서 필수불가결한 모임과 토론뿐만 아니라 공장안에서의 정치적 선전과 활동을 금지할 것을 규정한다. 여러 해 동안 노조는 고용주들과 함께 음모를 꾸며왔는데, 그때마다 혁명적인 노동자들을 축출하는 문제가 있었다. 이러한 해고는 현재 단체협약의 조항으로 합법화되거나 은밀히 인정되었는데 왜냐하면 이러한 조항은 모든 공장에서 고용주들에 의해 만들어진 법에 의해 만들어져있기 때문이다. 노조와 그들의 정치적 고무자들은 혁명적 전단을 살포하는 사람들에 대항하여 그들을 진압할 필요가 있다면 경찰로써 행동하는 임무를 맡아왔다. 이탈리아에서 스탈린주의 노조의 지도자들은 고용주들에게 경고 없이 혹은 보상 없이 전단지나 어떤 형태의 선동문구를 살포하는 죄가 있는 노동자들을 해고할 수 있는 권리를 주었다. 프랑스에서, 대부분의 공장법규는 노동자들의 생각을 제한할 수 있는 것을 허용하는 것만큼 대부분의 반항적인 노동자들이 그들 스스로를 표현하게 하는 것을 제한하게 하여 그들을 조용하게 했다. 독일, 영국, 미국에서의 상황역시 러시아나 스페인에서의 상황 이상으로 좋지 않았다. 그러므로 자본과 노조기구의 집중성 있는 행동에 감사하면서, 노동계급은 스스로 작업장에서조차 비밀스러운 행동을 줄였으며 작업장은 학대받고 착취 받는 공간이 되었다.

 

 프롤레타리아는 그들의 정치적 자유를 회복해야만 한다. 그 자유는 현재의 고용주-노조라는 법적 테두리를 벗어던지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노동의 실제적인 측면을 존경하는 사람들의 완전한 자유는 처음부터 미래의 혁명적인 민주주의와 공산주의를 포함한다. 오늘날 스스로를 공산주의자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전혀 공산주의자가 아니고,  그들에 대한 정통성 있는 반감을 통해 진정한 공산주의자가 종종 공산주의를 주장하는 것을 피하기 때문에 우리는 공산주의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엄밀하게 경제적 영역 안에서 노동계급의 상황은 결코 오늘날의 것보다 나쁘지 않았다. 4시간 혹은 5시간 노동에 의해 오래전에 바뀌었어야 하는 8시간 노동은 현재 종이위에만 존재한다. 많은 나라에서 기준시간 이상의 과다노동에 대한 거부는 곧바로 해고로 직결된다. 심사숙고하여 낮게 유지되고 있었던, 생산성 등에 기초한 소위 “기본급(러시아어로 norm)”과 보상금, 보너스는 노동자들에게 하루 10시간에서 12시간까지 일하는 것을 수용하게 강요할 뿐 아니라 가장 나쁜 노동(성과급이라는) 모든 형태의 노동조건을 새롭게 강요함으로써 사실상 일당, 시급을 폐지하였다. 이러한 발단이래로 노동운동은 가장 오래된 모든 형태의 이러한 착취를 끝내는데 노력해왔는데 이러한 착취는 노동자들을 육체적으로 지치게 하고 지적으로 우매하게 만든다.

 

  유럽 대부분에서 이러한 성과급방식의 노동을 제거하는데 성공했다. 20년 전만해도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어떤 종류의 성과급을 받아들이는 것이 품위를 손상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오늘날 성과급은 자본이 이를 강요했기 때문이라기보다 노조에 의한 사기극을 통해서 다시 규칙이 되었다. : 사실 이 부분에서 우리는 노조와 자본의 궁극적 친화성을 확인한다. 시간당, 개인당 생산성이라는 착취의 가장 깊은 면에 대하여 유념할 때 프롤레타리아는 끔직한 상황으로 그 자신이 강요받는 것을 발견한다. 그것으로부터 산출되는 생산성은 매일 엄청난 비율로 증가한다. 먼저, 기술적 혁신은 노동자들을 그들의 노동에 대한 어떠한 창조적인 개입으로부터 분리해내고 그의 움직임을 부차적이 것으로 측정하며 노동자들을 기계의 리듬에 맞게 종속된 살아있는 로봇이 되게 한다. 그다음, 흉악하고 불쾌한 올가미는 사람들을 동일한 도구로 동일한 시간동안 끝없이 일하게 강요한다. 마지막으로 각각의 기업에서의 훈련은 대변을 보거나 담뱃불을 붙이는 것과 같이 일에 대한 가장 작은 소홀함조차 감소시킨다. 이러한 방법으로 각각의 개인으로부터 산출된 생산물은 막대한 것이며, 따라서 같은 비율의 노동자의 정신적, 육체적 소모이다.

 

 이러한 문제를 언급한다는 것은 누군가의 손가락을 현대사회와 그 일부분인 노조의 사악함 위에 놓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문제는 생산과 분배사이의 현재적 관계를 벗어버리지 않고서는, 간단히 말해 혁명을 만들지 않고서는 해결할 방법이 없다. 그러나 이 의문점을 정확하게 다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동구권전체의 모델인 러시아에서 노조가 무엇을 나타내는가와 그것을 넘어선 많은 나라에서 조차 무엇을 흉내 내야만 했는지를 봐야만 한다.

 

 서구에서의 노조의 반동적인 일과 프롤레타리아 상황의 악화에 대하여 언급되어온 모든 것들은 러시아 세계에 대해서는 더욱 사실이다. 스탈린의 방패아래서 러시아의 국가 자본주의가 설립된 이래로 예전의 모든 부르주아 세계는 그것으로부터 착취에 대한 교육을 받았다. 이것들은 경찰진압과도 관련이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우리는 노동과 자본사이의 특별한 관계와 노조의 역할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것으로 우리스스로를 한정시킬 것이다. 이와 같이, 만약 일반적으로 모든 곳에서 오랫동안 ,노조가 노동 계급 안에서 자본의 보조적인 힘이었다면, 노조에게 매우강한 힘을 주고 그들에게 매혹적인 예를 제공함으로써 스탈린주의의 반혁명은 노조의 본질적 운명을 폭로해왔다. 1936년 이후로 서구에서의 프롤레타리아에 대한 착취를 약화시키고 그것의 구체화를 강화하는 거의 모든 수단은 스탈린주의 러시아 안에서 그 모델을 찾았다.

 

 정치적 권리와 공장 안팎에서 모임을 개최할 권리에 대한 완전한 억압 ; 고용주에 의해 강요된 초과노동이나 공식적 노동에 대한 부적합한 기본급(norm) ; 고용주의 결정에 따른 징계수단이나 벌금, 고용주는 또한 공장 법규를 명령한다. ; 시간동작연구와 무수히 많은 통제, 일한 분량에 따라 임금이 지급되는 노동, 기술적 “자격”과 임금에 기초한 프롤레타리아 내에서의 위계적 분화 ; 오직 자본에게만 이익이 되는 단체협약, 생산자들의 손해로 향하는 끝없는 생산성의 증가, 법에 의한 혹은 실제적인 파업금지 ; 짧게 말해, 서구에서 노조조직을 점점 더 부정적인 조직으로 이행하게 하는 모든 것은 1930년대 러시아로부터 강한 자극을 받았고, 전 세계적으로 자본과 노조에게 영향을 주었다.

 

 적어도 러시아의 상황을 알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서 만이라도 잘 알려져 있는 것은 , 기득권층과 피착취계층 사이의 경제적 불평등은 다른 범주간의 노동자들의  질적 차이처럼 다른 곳의 불평등보다 더욱 컸다. 자본주의의 원인이자 동시에 효과인 기득권층과 피착취계층 사이의 불평등은, 그것이 노조의 전망과 발전에 영향을 줄때에만 우리와 관계된다. 다른 나라에서와 마찬가지로 러시아에서 이러한 불평등이 노동자들에 의한 자본의 몰수에 대한 필요성을 높이며, 이는 모든 법체계와 공식적 정당을 포함한 현재의 국가 기관을 완전히 파괴하는 반란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하다. 이러한 순간에 대한 언급은 충분하다.

 

 다른 어떤 부르주아지보다도 스탈린식 관료주의는 노동 주기의 가속화와 가능한 한 최대한의 직업분류로 프롤레타리아를 인도하는 것에 의해 착취를 증대하는 방법을 안다. 생산을 “촉진”하는 전통적인 자본주의의 방식은 프롤레타리아의 역사적 이윤의 동질성을 이질적인 즉각적 이윤의 다양성으로 치환시키는데 이는 일반적 혁명 활동을 방해하는 수많은 장애물인 것이다. 한 번 더 말하자며, 러시아 노조와 정치적 “장애물”은 그들의 서구식 상대방을 제압했다. 러시아에서 노동자 우두머리는 노동을 하고 있는 그들의 동료에 대한 착취로부터 가장 무시무시한 이익을 얻는다. : 스타하노프주의자들은 “기본급”을 능가하며 그들의 팀 안의 노동자들의 숫자 비율에 따른 보너스를 받았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들의 임금이 보통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로부터 증대되는 것을 보며 그러므로 이 착취를 증가시키게 된다. 스타하노프주의자들은 그러므로, (임금이 고정된) 서구의 우두머리들 보다 더 분명하게, 노동에서 그들의 동료들의 적으로 변한다.

 

 러시아에서의 모든 것은 그것의 반대로 변했기 때문에 이 모든 것에서 놀랄 것은 없다. 한때 혁명이 자본주의 독재국가인  반혁명에게 길을 내어주었을 때, 그 반혁명은 스스로를 선동적으로 프롤레타리아 독재라고 칭하며 사회주의자로써 가장 부패된 모습과 전통적 자본주의의 원칙을 보여 준다-실제로는 강요한다.1939년 통과된 노동법은 말한다. : 자본주의 국가 안에서의 임금을 특징화시키는 기본적 특징은 전문노동자와 비전문노동자사이의 임금에 서열화하는 것이다. 노동에 대한 보수로써 소부르주아의 서열화는 사회주의의 가장 큰 적이다. 수년 동안 마르크스주의-레닌주의는 그치지 않고 서열화와 싸웠다. 

 

 수년 동안 스탈린주의자들은 맑스 사상의 충실한 표현으로써 임금노동을 통한 산업발전을 제시함으로써 사람들을 끌어들이려 노력했다. 반대로 맑시즘은 임금노동의 폐지와 사회의 경제적 서열화의 폐지, 모든 개인적 요구의 무제한적 만족의 폐지, 개인적 집단적 만족에 필수불가결한 위대한 자유의 폐지를 확립했다. 우리가 만약 그것을 향하고 있지 않다면 , 혁명적인 어떤 것도 현재의 역사적 고비에 실현될 수 없다. 오래된 자본주의 국가에서 프롤레타리아 안에서의 임금차이는  자본과 노동사이의 직접시장관계에 의해 성립된 조건이다. 러시아에서 이러한 임금격차는 헌법에 의해, 원칙이라는 상태를 확보했으며 결국 이것에 대한 투쟁은 범죄가 된다. 부르주아가 ‘재산권’(사실상 재산은 우리가 재산이라고 생각할 때 그것과 반대로 밝혀지는데 노동의 도구나 생산의 수단이 아니라 물질적 소비와 각각의 인간들의 정신적 발전에 필요한 모든 것이다.) 이라는 거룩한 핑계를 통한 경우가 아니면 절대로 인간 대 인간의 사회적 관계로 인정하지 않는 자본과 노동사이의 전통적 관계는, 러시아에서, 다른 능력을 가진 사람들 사이의 자연스럽고 잠재된 관계로 전이된다. 그러므로 사회적 계급이나 한계가 있는 범주대신에 우리는 재능이나 특별한 기능에 기반 한 법에 의하여 한정된 계급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 부에 기반 한 한정은 그것을 잃어버리는 것 대신에 중요한 것이고, 보다 나쁜 것은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에 대한 생물학적 정당화의 기미가 있다는 것이다. 

 

Grandizo Munis (스페인) 

1912-1989

처음엔 볼셰비키-레닌주의자( Bolshevik-Leninista)였지만 이후  스페인의 좌익 반대파가 되었고, 나중엔 트로츠키의 아내  Natalia Sedova와 함께 좌익공산주의자가 되었습니다. 
이후 그는 좌익공산주의 역사에서도 소개되는 Fermento Obrera Revolucionario (FOR)그룹을 주도합니다.

 

-무니스의 저서로는

  The Bourgeois State in Crisis, 5 April 1937

  The Road to Victory Begins with the Revolutionary Front of the Proletariat, 5 April 1937

  The Bolshevik-Leninists of Spain Demand Your Aid in the Struggle for the Social Revolution, 29 May 1937

  The Programme of the Spanish Bolshevik-Leninists, September 1937

  Spain One Year After Franco's Victory, August 1940

  Franco’s Dilemma, February 1941

  Who Are Hitler’s Agents in Russia?, November 1941

  Observations on the Guerrillas, March 1944

  The Future of the Soviet Union And The Victories of the Red Army, October 1944

  A Correction, March 1945

  Defense of the Soviet Union and Revolutionary Tactics, March 1945  

    

                                                                                                                                                                                                           

Unions against revolution - G. Munis

 

A critique of trade and syndicalist unions from a communist perspective by G. Munis.

 

No contradiction can exist between the economic and the political aspects of a revolutionary conception, even supposing the clearest organic and functional demarcation between them. The same is true for any reactionary conception. Hence the present inter-penetration, the agreement and collaboration between unions - economic organs - and political parties - ideological organs - gives us the key to understanding both, from whichever side one looks at the matter. This statement proceeds from an old and unalterable principle, more than proven by reason and verified by men in the course of a thousand years' experience: every idea or political action arises from an economic foundation which then plays both a controlling and determining role. In the course of this work we will examine, under different aspects, the inter-penetration of politics and economics and evaluate unions by taking a look at how they presently function.

Unions first appeared as defensive organs of the working class, faced with subhuman conditions of work, presenting themselves, on the industrial plane, as extensions of the old brotherhoods and corporations. On the basis of their aspirations unions do not even reach the level of reformism. Reformism, utilizing ideological and economic analyses, claims to demonstrate that, by means of capitalist democracy, it would be possible to attain socialism through a legal evolution and without any need for revolutionary acts. For unions there was never a question of either evolution or revolution, still less of socialism. Unions go no further than attempting to obtain, for the exploited worker, conditions of labor which are less intolerable and less humiliating, but also, as time has demonstrated, more profitable for capital. In spite of this limitation the early unions were organs which, if not revolutionary, at least had a working class spirit and a sound composition compared to the corruption and false class character of today's unions.

At the end of the 19th and the beginning of the 20th century a so-called revolutionary unionism (syndicalism) appeared. This was an eclectic doctrine adapted to the situation then prevailing, drawn from the Marxist conception, the so-called a-politicism of anarchism, and the strictly economic claims made by the old trade unions. There is no paradox in the fact that the period of the greatest influence and the strongest thrust of this type of unionism coincided with the apogee of reformism.

Sorel and Bernstein, besides being contemporaries, had more points in common than differences. While Sorel offered, in syndicalism, the panacea to the problems of historical development, Bernstein and his tendency saw in parliamentarism, and even in the necessities of capital accumulation, the happy mechanism of a certain and harmonious evolution towards socialist society. In reality revolutionary syndicalism and reformism were united by the same bonds to the formidable economic drive of the bourgeoisie. This was the period in which the bourgeoisie attained the zenith of its civilizing possibilities, granting the greatest amount of liberty and illusions to those who, without completely escaping its ideo-economic complex, leaned to the left. For this reason the political bankruptcy of 1914 would carry with it the syndicalists and reformists. Even the Spanish C.N.T. was not an exception, although the military neutrality of Spain spared it the capitulatory phrases and attitudes of the French C.G.T.; its particular bankruptcy, as we will see later, took place at the moment of the proletarian revolution in 1936-1939.

The numerical strength and the social weight of the unions has' grown continually since 1914 and if in some countries, like France, their numerical strength has considerable diminished in the course of the last few years their importance has continued to grow. It has been said that the disaster of 1914 was necessary for the unions to really come into their own. This is because until that time capitalism feared the unions as a destructive force and had not yet seen - except perhaps in England - the collaborative role that unions could play.But since the end of the first world war numerous experiences of ''worker's control'' in the factories have surprised the capitalists by their satisfactory effects. ''Worker's control'' has attenuated the struggle of workers against capital, facilitating the operation of the factories and above all increasing output. The unions stood out not only as defenders of the fatherland - that specifically capitalist entity - but as effective collaborators in the mmechanism of exploitation itself. That made their fortune and opened as yet unsuspected horizons to them. However, it was during the years 1936-1937-years which for many reasons were a very important landmark in the history of the international workers' movement that the unions took on their definitive orientation. In this period they displayed the qualities thanks to which they have become one of the most solid pillars of capitalist society.

Twenty years separated the Russian and the Spanish revolutions, which were the first and the last explosions of the same offensive of the world proletariat against capitalism, an offensive marked by incessant attacks in many other countries. Meanwhile the Stalinist bureaucracy had completed the construction of state capitalism and just at the moment when the Spanish revolution was in full swing the Stalinists got rid of all those who were really communists with guns and slander. This was to modify in a decisive manner all the organic factors of the class struggle and corrupt all the ideological factors. For a long time Russian intervention in the international workers' movement had been negative; in Spain the Russian-controlled Communist Party, dragged along by the requirements of its own preservation, turned out to be the principal counterrevolutionary police force. In July 1936 it attempted-happily in vain to prevent the uprising of the proletariat which destroyed the army throughout most of the country. In May 1937 this same Communist Party would machine gun the proletariat, which was revolting against the C.P.'s reactionary policies, defeat it, disarm it and crush the revolution. What the military had failed to do in 1936, Stalinism accomplished 10 months later.

For the first time Moscow acted, outside its own territory, directly as a counter-revolutionary force. Up to now there has been no real appreciation of the immense reactionary consequences of this event. Yet this was the source of all the acts of world importance which followed: from the Hitler-Stalin pact and the second "great war" till the policy of "peaceful coexistence" and uprisings such as those in Fast Germany, Poland and Hungary. The latter must be situated, not on the level of the revolt of the Spanish proletariat of May 1937, but at the most on the same level as the July 1936 insurrection, this time with the Stalinist army and police in place of Franco's army. Imre Nagy and his friends were in Hungary what the popular front was in Spain in 1936: the by-product of a revolutionary upheaval but not the core of the revolution.

It is significant that it was around 1936 that the unions revealed all their latent characteristics, incontestably manifesting themselves as auxiliary organs of capital. That in such a development it was Stalinism which won for itself the greatest influence in the unions - with the exception of the English and American trade unions - is quite natural. The economic empiricism of capitalism found in Russian counter-revolutionary empiricism a higher political expression, one which inspired it and perfected it at the same time. Both of these elements were mixed and merged to create a more favorable milieu. Now this milieu exists under a more or less completed form: it is nothing other than capitalism at its present stage, taking each country, including the "backward" ones, not as an isolated case but as part of the world system.

We will look at the Western bloc which prides itself on its democracy and more concretely on its right to strike. In reality this right is given not to the workers but to the representatives which the law recognizes them as having: the unions. Every strike launched by the workers themselves has to face a coalition of state and unions which seeks to smash it-sometimes by the direct defeat of the workers, sometimes by making the workers accept arbitration. Since the French revolutionary strike of 1936 was smashed by the Communist party (Thorez: "One must know how to end a strike") and the Socialist party together (the Blum government and police commanded by "socialists") almost every country has known strikes led to defeat by the unions because they ran counter to their economic and political interests. Thus, the strike has been in fact and in law taken over by the unions. But that is not all. Beyond the always exceptional situation of a strike, in the day-to-day relations between capital and labor-which is where the class struggle is forged-the unions appear not only as buffers between the two camps, but as messengers from capital to labor and as agents who help to adapt labor to the requirements of capital. All the natural manifestations of the struggle of labor against capital, once monopolized by the unions, are turned against the worker for the benefit of capital.

We have only to recall certain facts to see that the above line of reasoning is undeniable. Factory committees1 as well as delegates from departments, shops or occupational categories are not the expression of the free will of the workers, whatever may be the mode of their election, depending on the country. They represent the unions, within which workers are not free to elect anyone they want: even the famous British shop stewards need the assent of the trade unions. In most countries the law has decided that the unions which it recognizes represent the working class. The workers therefore no longer have the right to represent themselves as they see fit, still less to create organs other than unions in order to direct their struggles and to deal with the employers or the state. The rights of the working class and the rights of the unions are manifestly two distinct and contradictory things. Because of this the opposition between the workers and the factory committees or departmental delegates-an opposition which is always present in a latent form-sharpens whenever there is a conflict with the employer and becomes a direct encounter if the struggle broadens. In the course of the last twenty years every strike which deserves the name has had to be called against the will of the unions and by outflanking its representatives in the factories; the workers themselves have had to elect strike committees. However, every time that these strike committees or factory assemblies, elected by the workers, have allowed themselves to be influenced by the union leaders, capital has gained the upper hand.

The goal of collective labor contracts was to limit the arbitrariness of the employers in various areas: working conditions and the length of the working day, intensivity of exploitation (hourly productivity), wage range by category (hierarchical relations), hiring and layoffs, political rights, freedom of speech and assembly within the factories, factory regulations, etc. However, collective contracts have become, in the hands of the unions, who alone under the law have the right to negotiate and sign them, a formidable instrument for the subjugation of the proletariat to capital in general and to the unions in particular. Indeed, unions have become, at present, partially or totally, agents of exploitation. Layoffs and hiring are most often entrusted to the mercy of capital, except in the case of closed shops, which far from guaranteeing work for the laborers, simply grants the right of adjudication to the unions. This is reactionary economic coercion of the worst sort, as we will see below when we discuss unions in the Eastern zone.

Labor contracts sanction and encourage the division of the working class into hierarchical groups opposed to one another because of differences in wages and the prejudices attached to the category and technical function of the worker. The unions instinctively, by their very nature, contribute to the division of the proletariat on a hierarchical basis, except for which the proletariat would form a compact bloc against capital. The necessity of dividing the proletariat through hierarchical work relations, and of thus alienating it from its highest interest, is as important for the unions as it is for capital. For a century the workers' movement fought against hierarchical relations within its midst, and in large part it destroyed prejudices in favor of hierarchy while limiting its material bases. In the course of the last few decades the unions and their political inspirers have succeeded in largely re-establishing hierarchical prejudices and greatly increasing the number of work categories. Most workers today, even the worst off, think that hierarchical work relations are natural and ''just.''

Lastly, if the original idea of collective contracts was to put a curb on the arbitrariness of capital while awaiting its complete suppression, today they constitute an almost perfect way to regulate the capitalist system in accordance with its functional requirements. In negotiating and signing collective contracts the unions behave as if they were an integral part of the groups who monopolize the means of production. In the United States and in other countries, many unions are important shareholders in the companies which exploit their own members; which, far from prefiguring a socialist society, transforms the union into a beneficiary of exploitation in the fullest economic and ideological sense of the term. Where the unions do not actually participate in drawing up plans for the exploitation of the workers they seek this right.

The work place, the large factories in particular, which are the scene of the class struggle, afford the most revolutionary workers a permanent and far-reaching practical and ideological activity. But this activity is made impossible by the unions. Frequently collective contracts stipulate that political propaganda and activity within the factory are prohibited, not to speak of discussions and meetings which are indispensable to any working class activity. For many years the unions have conspired with the employers every time there was a question of dismissing revolutionary workers. Such dismissals are now legitimized by a written clause in collective contracts or surreptitiously acknowledged, since they are covered by the rules made by the employers in all the factories. The unions and their political inspirers have undertaken the task of acting as policemen against those who distribute revolutionary literature, when necessary beating them up. In Italy, the Stalinist union leaders have granted to the employers the right to fire, without notice or compensation, workers guilty of distributing literature or any type of agitation.2 In France, most of the factory rules permit as much and the restrictions on thought go so far that even the most rebellious workers are afraid to express themselves and so keep quiet. The situation is no better in Germany, England or the U.S., no more than in Russia or Spain. Thus, thanks to the convergent action of capital and the union organisations, the working class finds itself reduced to clandestinity even at the work place, which is where it is exploited and fucked over.

The proletariat must recover its political freedom, which is impossible without throwing the present employer-union legal framework overboard. The complete freedom of people with respect to the exercise of their labor contains, in embryo, the future revolutionary democracy and communism. We say communism because those who today call themselves communists are not communists at all and through legitimate revulsion towards them, those who really are communists often avoid claiming the name.

In the strictly economic domain the situation of the working class was never worse than it is today. Everything said to the contrary is so much bullshit. The eight-hour day, which should have been replaced long ago by a four or five hour day, now exists only on paper. In many countries the refusal to work overtime is an immediate cause for dismissal. Everywhere the introduction of so-called "basepay" (norm in Russia) which is deliberately kept low, and rewards and bonuses based on productivity, etc., not only forces the worker to accept, "of his own accord," working days of ten to twelve hours but in fact abolishes daily or hourly wages by imposing anew the vilest of all types of labor: piece-work. Since its inception the workers movement has endeavored to put an end to this oldest of all forms of exploitation, which physically exhausts the worker and dulls him intellectually.

It succeeded in eliminating piece-work in most of Europe. Even twenty years ago most workers considered it demeaning to accept piece-work of any kind. Today, however, piece-work is again the rule, less because capital has imposed it than through the deceit of the unions: in fact we have here a proof of the ultimate affinity of unions and capital.

With respect to the most profound aspect of exploitation,productivity per person and hour, the proletariat finds itself forced into a terrible situation. The production that is extracted from it each day increases at an enormous rate. First, technical innovations take away from the worker any creative intervention in his labor, measure his movements to the second and transform him into a living robot subjected to the same rhythm as the machines. Then, time studies, that atrocious and repugnant snare, force people to work over and over with the same tools and during uniform periods of time. Finally, the discipline of each enterprise reduces to a minimum the slightest suspicious of work even the lighting of a cigarette or taking a shit. The output that is extracted from each person by these means is enormous and so, in the same proportion, is the worker's physical and psychic exhaustion.

To mention this problem is to put one's finger on the evil of modern society and of the unions which are part of it. Moreover, there is no way to resolve these problems without overthrowing the present relation3 between production and distribution, in short, without making the revolution. But in order to treat this question properly it is necessary to first of all see what unions represent in Russia which is the model that the whole Eastern bloc, and even many countries beyond it, must imitate.

Everything that has been said about the reactionary work of unions and the deterioration of the proletarian condition in the West is even more true for the Russian world. Ever since, under Stalin's aegis, state capitalism was established in Russia, the whole of the old bourgeois world has been learning lessons in exploitation from it. These pertain to police repression too, but here we will limit ourselves to speaking about the specific relations between capital and labor and the role of the unions. Thus, if unions in general have, everywhere and for a long time, been a complementary force to capital within the working class, the Stalinist counter-revolution, by giving unions a very strong push in this direction and by providing them with a tempting example, has disclosed the intrinsic destiny of unions. Almost all the measures which, since 1936, have aggravated the exploitation of the proletariat in the West and heightened its objectification, have their model in Stalinist Russia.

The complete suppression of political rights and the right to hold meetings inside or outside the factory; overtime imposed by the employer or the inadequate base pay (norm) for the official working day; fines and disciplinary measures at the discretion of the employer, who also dictates the factory rules; time studies and innumerable controls, piecework, hierarchical divisions within the proletariat based on wages and technical "qualifications"; collective contracts which only benefit capital, continuous increase of productivity to the detriment of the producers, prohibition of strikes in fact or by law; in short, everything which in the West transforms the union organizations into more and more negative institutions received a strong impetus from the Russia of the 1930's and was to inspire capital and unions throughout the world.

It is well known, at least by those who are familiar with the situation in Russia, that economic inequality between the privileged and the exploited is greater there than anyplace else, as are the me qualities between different categories of workers. Inequality between the privileged and the exploited, which is at the same time the cause and the effect of capitalism, only concerns us in this essay as it affects the evolution and the prospects of the unions. It is sufficient to note for the moment that this inequality raises in Russia, as in every other country, the necessity for the expropriation of capital by the workers, which is impossible without an insurrection which completely demolishes the present governmental apparatus including the official party and the whole body of law.

Better than any bourgeoisie, the Stalinist bureaucracy knows how to intensify exploitation by accelerating the rhythm of labor and by introducing into the proletariat the greatest possible number of job categories. The traditional means for capitalism to "stimulate" production is to substitute for the homogeneous historical interest of the proletariat a multiplicity of heterogeneous immediate interests, which are so many obstacles to a common revolutionary activity. Once again the Russian union and political "natchalniks"4 have outdone their Western counterparts.5 In Russia the worker foremen receive a direct profit from the exploitation of their comrades in labor: the Stakhanovists receive a bonus which is proportional to the surpassing of the "norm" and to the number of workers in their team. Thus they see their wages increase by the exploitation of the common workers and are therefore led to intensify this exploitation. The Stakhanovists are therefore, still more clearly than foremen in the West (with their fixed salaries), turned into the enemies of their comrades in labor.

There is nothing astonishing in all this, since everything in Russia has been turned into its opposite. Once the revolution gave way to the counter-revolution, a capitalist dictatorship, which demagogically calls itself a proletarian dictatorship, presents - in reality imposes - as socialist the most rotten features and principles of traditional capitalism. The labor law, approved in 1939, says: The basic feature which characterizes wages in the capitalist countries is the levelling of wages between specialised and non-specialized workers. In the remuneration of labor, petit-bourgeois levelling is the worst enemy of socialism. For many years Marxism-Leninism has unceasingly fought against levelling.

For many years the Stalinists have tried to take people in by presenting industrial development through wage labor as the loyal expression of Marxist thought. Marxism, on the contrary, establishes as its objective the abolition of wage labor, and the economic levelling of society, the unlimited satisfaction of all individual needs and the greatest freedom and liberty, which is indispensable to any personal or collective fulfillment. If we do not aim at that, nothing revolutionary can be done in the present historical juncture. In the old capitalist countries wage differences within the proletariat are a condition established by the direct market relation between capital and labor. In Russia these wage differences have, by constitutional law, acquired the status of a principle and consequently it is a crime to fight against them. The traditional relation between capital and labor, which the bourgeoisie never justified as a social relation of man to man but only through the subterfuge of the sacred right of property" which in reality is turned against it when we consider as property, not the means of production or instruments of labor but everything which is necessary to the material consumption and the full psychic development of each person-is transformed in Russia into a natural and permanent relation between people having different abilities. Thus, instead of social classes or categories delimited in fact by wealth we have classes delimited by law on the basis of their talents and special functions. Nonetheless delimitation in fact on the basis of wealth takes on importance instead of losing it, Worse still the whole thing smacks of a biological justification for the exploitation of man by man.

Let us further point out that the principle object of the labor contracts imposed by the Russian unions is to put the working class at the mercy of capital, even juridically, "by guaranteeing the fulfilment and over-fulfillment of the state production plan for the given establishment."6 It is a question of extracting higher and higher rates of production from labor: The main stipulation of the contracted obligation must be an increased demand from every worker. Without strengthening labor discipline and without ruthless struggle against the violators of state and labor discipline -grabbers and loafers there can be no real fulfillment of obligations laid down in the collective agreement.7

The very word contract is a mark of servitude for the working class. Whether collective or individual, verbal or written, "free" or imposed, the labor contract is the legal symbol of its condition as a wage-slave class, to use Marx's term. This fact in itself is sufficient to expose the lies of the Russian exploiters. In a truly socialist economy neither capital nor wage labor would exist, and consequently the labor contract (the agreement for the utilization of the labor force) would disappear with the disappearance of the contracting parties. In a socialist economy, the means of production would cease to be capital and human labor power would cease to be a commodity for sale. United in one economic and social entity, they would be as free from any contractual obligations as an individual is toward himself. By its very existence, the Russian labor contract places itself within the framework of the social bonds characteristic of capitalism. But it is the ''innovations'' of the Russian system, particularly the completely overt way the unions assume the role of slave-drivers towards the workers, that reveal the ominous contours of a society in decline whose despots seem to be more capable than anyone else of checking proletarian resistance.

In effect, these contracts, whose main point is to extract the highest productivity possible from each worker, are drawn up by the unions and, after the formality of government approval, it is the unions duty to insure servility through promises of higher pay, by the use of threats or by turning over to legal prosecution those workers who do not go along with the demands of production. It is through union channels that the Russian government punishes, as if it were a crime, the struggle to work less and earn more (''The Right to be Lazy')8 which the world revolutionary movement has always considered to be a just claim of the working class and a progressive demand.

Thus in the eyes of the Russian workers the unions appear as the organization immediately responsible for their exploitation and for the cruelties characteristic of the counter-revolution. A great number of convincing documents (enough to fill several volumes) testify to this effect. It is impossible to list all of them here. One of the greatest weaknesses of the revolutionary movement, perhaps the cause of its limited support today, is the fact that it did not protest these ignominies. For the purposes of this article however it is enough to recall certain typically reactionary features of the Russian system: the laws forbidding workers to change jobs without the permission of the plant manager - laws which have long since been eliminated in older capitalist countries; laws establishing wages proportionate to the productivity of each individual worker (piece rates) not to mention bonuses for political servility; laws which punish absenteeism, lateness and other "disciplinary" infractions by fines, suspensions, firings and forced labor; laws which transform everything which revolutionary thought considers an outrage into something honourable and profitable; in short, all the laws which crush the proletariat as nowhere else are in Russia the direct work of the unions. This legislation is both proposed and carried out by the unions. Furthermore, the forced labor camps-' 're-education'' according to official jesuitry-the burial ground of workers and especially revolutionaries, the method deliberately chosen to lower wages and to be able to claim that unemployment is non-existent, are also "institutions" created on the initiative of the unions who share the advantages of this system with the state and with its essential instrument: the police.

One can argue that the Russian unions, as everyone knows, do not really act on their own initiative. But their repudiation by the workers is no less absolute. International experience indicates that unions in their structure and function vis-a'-vis the working class, always contained propitious elements for their transformation into a cog in the most centralized and absolute capitalist system.

Certainly the Russian unions blindly obey the orders of the government; they are only its vulgar instruments. But their own leaders are integrated into the highest levels of the Party and the state and thus become both "co-managers" ("co-owners") of an impersonal capital and at the same time "worker" leaders. Never could a company union dream of a more complete subjugation of the workers.

In Russia today the unions' function is part and parcel of the exploitative function of capital itself. The union is at the same time boss, foreman and policeman. In each factory it represents along with managers and technicians-all of whom are distinguished members of the union and of the "Communist " cell the same thing as Hitler's confidential councils (Vertrauenstrat). Furthermore, the complete intermixing of capital and Party-State has erased all trace of any union autonomy or protest activity. No one has to teach Russian workers this fact; they have cruelly suffered its consequences for many long years.

In the trajectory of Russian society, there is a definite break between the Soviet period and the period of the unions. Soviets were organizations which represented the workers, carried out their orders and those of the revolution. The unions on the other hand, are organizations of control over the workers executing the orders of the counter-revolution. The Soviets were paralyzed and finally disbanded while unions gained in importance and prerogatives as the bureaucracy increasingly revealed its counter-revolutionary nature. The proletariat was repressed to such an extent that today its subjection is nowhere as great as in Russia. Certainly it is not the unions alone which inspired the counter-revolution. They themselves are part of a whole series of bourgeois ideas and interests, vestiges from the tsarist period; its main basis was the high administrative bureaucracy, both technical and political, whose numbers and privileges have monstrously expanded. But in their turn the unions~mr if one prefers, their high-level leaders form an inseparable part of the whole category of state capitalists who rule the enormous corporation falsely called the "Soviet Union."

The interpenetration of the unions and the Russian counter-revolutionary bureaucracy was neither artificially imposed by the latter nor was it an accident. It is the spontaneous result of the intrinsic nature of unions from which the government assassinated or purged'' certain union leaders along with former revolutionaries.

The government eliminated them not for their union activities but for their communist attitude, either real or imagined. Because of their adaptive powers, the unions conformed perfectly to the specific aims and routine functioning of the counter-revolution. To understand this clearly, it suffices to examine the nature of unions.

Unions are totally inconceivable without the existence of wage-labor, which in turn presupposes the existence of capital. As long as capital is held by individual owners engaged in competition and represented by many individuals and parties in the government, unions are at least able to bargain for an improvement in the conditions of labor exploitation. Their function is to regularize the sale of labor power, a function which has become indispensable to the modern capitalist system. From this fact comes their importance as complementary structures of the state, if not part of the state itself, everywhere in the world today. But this very function, which in the past allowed unions to at least serve as instruments of the working class was also a narrowness indicating their limitations and reactionary future. Their existence as an organization is entirely dependent on the continued existence of the labor/capital duality. They would be immediately eliminated by the destruction of this duality. However, they can side with capital as much as they choose without destroying this duality. On the contrary, they become increasingly indispensable to the maintenance of the capitalist system. As a result, the more gigantic and anonymous the concentration of capital, the more the unions take the side of capital and consider their role to be directly determined by the great "national" interest. Even Stalinist union leaders in the West, agents of Russian imperialism, are careful to present their union policies as an element of national welfare. They are not lying; their only future is to establish themselves as the firmest bastion of statified capital.

All unions without exception are in the process of changing from the stage of ''free competition'' between the supply and demand of labor power between the working class and the bourgeois into the stage of the control of the supply by the demand: that is, the control of workers by monopolistic or state capital. In most cases the unions already participate, directly or indirectly, in the profits of capitalism or else they sense the opportunity to do so.9 In Russia this evolution was completed with the counter-revolutionary transformation of the country in general. The law bestows on the unions all power over the working class without leaving the smallest possibility for workers, collectively or individually to discuss, accept or reject the conditions of their exploitation. All working conditions-even what the workers should think -are directly dictated by the unions in the name of capital. As always, economics and politics intertwine and end up united in the most strict absolutism.

The historical examples of a truly working-class unionism were all the results of revolutionaries' activities and belong to an age (which ended with the Spanish Revolution) which allowed a certain margin for the class struggle within capitalism. But today revolutionaries who stubbornly persist in regarding unions as any sort of advantage for the future of socialism are condemning themselves to ineffectiveness or worse: betrayal. The past struggles of French, Spanish, or Italian syndicalism were the rest of the activity of revolutionary tendencies, either marxist or anarchist. The Spanish CNT would have been nothing without the FAI (Iberian Anarchist Federation) and it is the FAI itself which must be held responsible for the reactionary alliance with Stalinism during the Civil War. The year 1936 marks the bankruptcy of Spanish syndicalism comparable (in all ways) to the bankruptcy of the French CGT in 1914. Not only did the FAI-CNT voluntarily submit to Stalinism (a submission presented, as usual, in the interests of "national welfare") but it established an alliance with the leaders of the reformist UGT, an alliance which would have meant, in explicit enough terms, state capitalism. The CNT will never pick itself up after such a fall. Any revolutionary group coming from these roots must seek other horizons.

The collectivist experiences in Spain were only syndicalist by default. This movement was set off by the impetus of revolutionary militants and by highly radicalized sections of the masses; the unions found themselves faced with a fait accompli. The same can be said of the uprising against the military on July 19, 1936 and of the magnificent insurrection of May, 1937. When, after revolutionary action, the unions intervene and take over, the entire process is reversed: the activity of the proletariat and the participation of revolutionaries recedes and retreats-the prelude to defeat. In the same vein, the experiences of the strike in Nantes10 in 1956 should be remembered. The strike, the work of several revolutionary militants in the local union, was betrayed by the national union. Hundreds of similar examples can be found in any country in the world. Attempts to give unions a revolutionary content, through the use of internal oppositional caucuses or even by creating completely new unions, are doomed to failure. The only result of such "tactics" is to demoralize the revolutionary experience of those who attempt it or to turn them into simple bureaucrats. Unions bring to bear all the powerful, deformative forces of capitalist society which constantly eat away at men, changing and destroying even the best of them. There is about as much possibility of "changing" unions in a revolutionary direction as there is of "changing" capitalist society in general; unions use men for their own particular ends but men will never be able to make unions serve a revolutionary goal; they must destroy them.

Attempts to "change" unions are futile even from a practical point of view. In most countries workers are no longer in unions. Even if they still carry a union card in their pocket, whether voluntarily or because the law forces them to do so, the suspicion and disgust they feel for unions is no less strong. In countries which have had the most extensive experience with unions, workers have recourse to unions only if they feel that their "rights" under capitalist law are being flagrantly violated. This is a tedious formality but necessary, on the same level as going to the police when something is stolen. But everyone knows it is useless to go to unions to get something outside the limits of capitalist "law" because unions are a part of that law. Consequently, we see, in many cases, a decline in the number of union members and a general desertion from union meetings by the majority of workers. Unions, having a bureaucratic and legal life of their own, merely use the working class as a docile mass to manipulate in order to Increase their own power as a legal institution in our society. Unions and working people have completely different daily lives and motivations. Any ''tactical" work within unions, even if guided by the purest intentions, will impede the self-activity of the exploited class, destroying their fighting spirit and barring the way to revolutionary activity.

Lenin and Trotsky's position on revolutionary work within unions is entirely outside the realm of today's realities. Their position explicitly supposes that the proletariat, otherwise inexperienced and unorganized and full of illusions, meets in the unions where freedom of speech would permit revolutionaries to expose the opportunist leadership and thereby spread revolutionary ideas.11 In addition to the argument citing the prevalence of workers' illusions about unions, the key premise of the Leninist tactic was the fact that unions were considered as ideologically reformist and therefore supposedly interested in wresting concessions from the declining society by playing left-wing to the "liberal democrats" of an earlier age. These conditions no longer exist and those who continue to gear their activity towards them are acting in vain. Fifty times the proletariat has tried the experience of unions and of the parties which dominate them and they have changed in an undeniably reactionary direction. To act towards them as though they were still reformist is a ridiculous expression of today's opportunism.

The most solid basis for a revolutionary critique of unions concerns not tactical or contingent considerations but the question of principle and strategy. These questions had not been taken into account by Lenin and Trotsky probably because the changes in unions had not clearly developed until the last few decades. The fact is that unions and their political inspirers have been completely assimilated by the capitalist world, not as part of the "democratic wing" of the bourgeoisie but as henchmen for the exploitative society and for the new needs of the counter-revolution. The polemic between Lenin, Trotsky and Tomsky on the union question, which occurred before the sinister shadow of the Stalinist police had ravaged revolutionary thought, finds its synthesis after long periods of trial and error, in the political conclusions of this article.

There are still revolutionaries who refuse to see the problem and repeat like a credo: "since the conditions which gave rise to unions still exist, we do not see how today one can deny their utility." At the same time they postpone the elimination of unions until the moment when the ''specific characteristics of bourgeois society disappear,'' that is, when the separation between workers and instruments of production has disappeared.12 This is more sententious subterfuge than reasoned argument. In a sense this argument can be used against itself. If when we speak of conditions which have given rise to unions, we mean the purchase of human labor power by the monopolizers of the means of production, or in a more general way, the characteristic relations of capitalist society as a whole, then it is clear that unions are part of this whole network of relations and that unions continue to exist with it and for it. From this point of view, to attribute a useful function to unions in the revolutionary process is as unthinkable as seeing revolutionary potential in the stock market. Unions are as much a part of capitalist value production as the stock market, even if we examine only the aspects of the dealing and contracting of wage labor, aspects which are not unconnected to the values quoted on the stock market.

In addition to these conditions which gave rise to unions, conditions of a historically more limited nature must be dealt with. In the period of capitalist ascendancy, free competition, including free competition in the labor market, permitted workers to benefit from the greatest number of advantages compatible with the system. The regulation and administration of these advantages constituted the fundamental raison d 'etre of unions. However, with the system's transformation into giant trusts and state capitalism, the unions, which it nourished, naturally began to play a reactionary role. They could not continue to maintain their function without adapting themselves to changing market conditions now no longer free but controlled and despotic, indeed malthusian since it prevents the realization of human and economic potential.

Thus in a strict sense the conditions which gave rise to unions no longer exist; they died at the same time as that which justified the existence of capitalism as a historically progressive social form. Unfortunately it is the revolutionaries who are way behind in recognizing the facts and drawing the logical conclusions.

The reasoning of Programma Communista which offers the best theoretical justification for all tendencies (including anarchism) still clinging to an oppositional or revolutionary unionism, is in fact completely mistaken. Their reasoning is very dangerous especially in the event of a victorious revolution. The subterfuge of putting off the disappearance of unions until the obliteration of all traces of capitalism - until the advent of full communism - would give unions a harmful monopoly over the proletariat in the transitional period. Far from bringing society closer to communism, this would raise still another obstacle, and not a minor one, promoting the growth of state capitalism as it did in Russia. Bordiga 's analysis links the disappearance of unions to the disappearance of violence within the Society, meaning in fact the disappearance of the state. However, the withering away of the state and of all social violence can only be a consequence of a Preceeding disappearance of the exploitation of labor, wage labor to be exact. Unions are in complete contradiction to such a transformation, both in terms of interest and principle.

A century ago Karl Marx reproached unions for restricting their demands to questions of money, hours of work, etc., while they ignored the issue of the abolition of wage labor, the key to the destruction of capitalism. Today, Marx would be treated as a petty-bourgeois egalitarian by the men of Moscow and as a crazy ultra-leftist by those who believe they can reform unions. Marx did not see the elimination of unions as part of the far-distant future, well after the revolution, but as concomitant with the revolution or even its cause. He believed that already in his lifetime the industrialized countries disposed of sufficient material means to tackle the problem of revolution. We, revolutionaries of today, are able to add that unions stand in the way of every aim of social revolution because they have become an indispensable cog in the machinery of the exploitation of man by man. Their role in the present economy is comparable to that of the guilds in the age of small-scale manufacture - with this difference however: guilds proved unable to adapt to large-scale industry whereas unions adapt perfectly to the most resolute type of capitalism, the statified form. Unions will be destroyed only by the victory of the revolution; more precisely their destruction is a pre-condition for this victory, without which the unions will continue to grow into a huge coercive apparatus complementary to the state capitalist machine. That is the greatest counter-revolutionary danger of our time. If humanity proves unable to face this problem in the West as well as in the Stalinist East, it will witness the most ominous era of our history.

After the revolution, all workers (without need of any union affiliation whatsoever) must decide on the economic questions posed by society's progress towards communism. No organization, whether a union or a party can be identified wit the society as a whole or invested with its attributes. The existence of differing ideological currents (based on the foundations of the revolution) all competing for a majority will only further insure the possibility of direct participation of all in social decisions. But a union-style management of the economy will necessarily prove anti-democratic and stifling; it would exclude non-members and impose itself on everyone. Of course ideologies can degenerate or betray but only through the spread and growth of revolutionary ideas can man win his freedom. Even today the proletariat's immediate demands elude union formulations. Faced with exploitation heightened by technology, forced overtime, piecework, speed-up, etc., it is essential to demand a reduction of the work day to a maximum of five to six hours without reduction of wages or bonuses. On such a basis, demands for constantly decreasing work schedules in inverse proportion to technological progress are urgently neeeded. This is the way to challenge today's crushing work day and to prefigure a reorganisation of socially necessary work by eliminating the enormous amounts of waste production in industry as well as in the government and administrative bureaucracies.

The necessary complement to this demand is the refusal to go along with any increase in production, whether caused by improvements in machinery or by speed-up, unless the working class benefits; the working class represents the interests of society as a whole. This is an unlimited demand, not only against capitalism and its threats of constant war, but as an idea of the kind of considerations which would govern a future revolutionary society; underlying this demand is the necessity for the destruction of the present system.

Politically, workers must impose complete freedom at the point of production the rejection of all rules which have not been decided upon by workers' delegates democratically elected and approved in general assembly. In the case of problems or conflicts, workers' committees, elected outside of all union structures, are revocable at any time. Any agreement with management must have the consent of the interested parties themselves and not the unions even if they claim to represent the majority. Finally, co-ordination among the different workers' committees would prepare the way for the demand, as an immediately realizable objective, for workers' control of production and distribution.

A careful study of the problems which face the working class today would only reinforce these conclusions. The three types of problems, which encompass all the others, amply demonstrate the reactionary conservatism of unions and the fact that it is impossible for the workers to make a move ahead without coming up against them. Without getting rid of them, the proletariat will never get out of its present difficulties and will never have a revolutionary perspective.

The future of unions is indisputably linked with that of capitalism and not the revolution. Their ability to adjust to the reac-tionary transformation of society was largely overlooked by even the most far-seeing revolutionaries. An exception must be made for an almost unknown theoretician, Daniel DeLeon, whose thoughts on this subject have proven visionary. From 1905 DeLeon saw that unions and the "official" workers' parties harbored serious counter-revolutionary dangers. The work in which he succinctly expressed his ideas deserves the attention of all revolutionaries.13

DeLeon's judgments are excellent historical analyses which he expresses with revolutionary passion. On the basis of international experience, particularly with the British and American trade unions and their respective labor leaders, he predicts that the victory of these organizations would kill any social revolution.

The present labor leaders represent a disguised position, a strategic point and a force sustaining capitalism and their true nature cannot but produce a disastrous de-moralization of the working class.

He compares the labor leaders and their organizations with the leaders of the plebs in Rome. Just as the pleb leaders used the plebeians to acquire the rights and privileges of the patrician class without giving anything more than crumbs to the dispossessed masses, modern labor leaders and their organizations use the proletariat to consolidate their economic and political position within the capitalist system of exploitation.

Like the leaders of the plebs,labor leaders are practical men as they boast; they do not live on visions or chase rainbows. Like the pleb leaders, labor leaders do not see any alternative to the existing social system, and they aim to put out the flame that devours the working class. Like the plebeian leaders of Rome, today's labor leaders, if we do not counteract them . ..they will nullify all the possibilities which our age offers: they will divert the important and powerful actions of the masses until they lose the name of action.

The aptness of the comparison between the leaders of the Roman plebs and our union (and party) bureaucrats is even clearer if we examine the role of the so-called plebeian party in Roman history. This party, born in the time of the Tarquins, supposedly in irreconcilable opposition to the patrician ruling classes, enjoyed its greatest influence during the Republican period. Its power did not serve the true plebs, the poor masses, either slave' or free, but worked to the benefit of a privileged minority which represented the plebs in name only and belonged to the plebeian class only by the accident of Roman legal definition. Caesar and Augustus, the founders of Empire, constantly used the trick of referring to themselves as originally "plebs" or "on the pleb side." Their victory, the high point of the party of the pleb leaders, destroyed forever all possibility of revolution in Rome. The plebeian usurpers replaced by and large the old patrician class. They did not open the way to a new or superior type of Society but merely prolonged the decadence of the ancient world over which they presided in its final stage.

Despite the great structural and ideological differences between Greco-Roman civilization and capitalist civilization, the analogy between the role of the pleb leaders and today's labor leaders is close Whether they call themselves apolitical, Communist or Socialist they have substituted for the principle contradiction of capitalism that which can only disappear with its destruction-another unessential contradiction inscribed within the functional necessities of capitalism and for which the ''Solution'' makes them indispensable to the exclusion of any revolutionary intervention of the worker’s.

The bourgeoisie and the proletariat are the human profile, the anthropomorphic image of the social contradictions between capital and wage labor. This contradiction is unresolvable except with the abolition of capital-an act which must Simultaneously abolish wage labor itself. Here ends capitalism and begins the social revolution: a new, unlimited horizon of a new civilization.

The Spirit of the so-called labor leaders as well as their organizations are absolutely incompatible with the solution of this contradiction. They attempt to resolve only a secondary contradiction within the framework of exploitation- that is, the anarchy of private capitalism with its cyclical crises which calls for an ordered plan of production and a severe regimentation of manpower, the unemployed included. In this way, the interests of the labor leaders coincide with that of big capital which every day demands more economic regulation, more concentration. In other words, that which they perceive and want to change are the difficulties which the System encounters on the road to one huge monopoly, not at all the difficulties which the system as a whole poses for the forward march of humanity towards communism. With the concentration of all the means of production in a huge state monopoly, labor-upon which depends consumption, liberty, culture, the whole life of human beings-appears as an element which is as subordinate to the exigencies of the plan as iron ore, leather or any other raw material. The elimination of the bourgeoisie does not in any way mean the elimination of capital or the proletariat. Capital is an economic function, not a proprietary function; in becoming an anonymous function it completes its oppression of man and bars his march to communism with new counter-revolutionary force. The use of the purely anthropomorphic representation of the contradiction between capital and wage labor (bourgeoisie and proletariat) gives the union and party leaders the opportunity to present the elimination of private capital as the elimination of capital in general and their economic and political management as the solution of social contradictions. They know from the experiences of the Stalinist counter-revolution and from Yankee and British trade unions that the more complete the concentration of capital, the bigger the share of profits for them to pocket.

The most menacing aspect of this tendency of the labor leaders is that it coincides with the law of capitalist concentration and with the development of material and ideological coercion which is its consequence. But they are really dangerous only because of the passivity of the proletariat, whom the revolutionaries, attached to the old ideas and tactics, do not know how to stir into action. Chained to the old formulae, they are cursed with sterility. But a careful look around suffices to realize that the human necessity of a total transformation challenges capitalism itself and the labor leaders, a challenge which will open an unlimited field to revolutionary action.

Humanity does not need technocratic plans in order to produce plans which are used for exploitation and war. The crisis which our civilization is living through will not find its solution until all of production is oriented towards consumption without regard to selling. All individuals by their very existence must be able to utilize the material and spiritual resources of the society. The marketing of one or the other leads to the dissatisfaction of the immense majority, the impossibility of individual fulfiflmnt and the venality of culture. Only the elimination of individual proprietors and the giant trusts will lead to the elimination of the proletariat: the class which does not consume but lives only on its salary. Thus it is wage labor which must be eliminated. In this way capital will necessarily be abolished as an economic function along with the exploiters, be they bourgeois or bureaucrats. Any plan for production must be established with regard to the non-mercantile needs of human consumption, with all that these words imply of political and cultural liberty. The true anthropomorphic aspect of the problem is the abolition of wage labor which will give to man the possibility of determining his own destiny. By substituting for this the idea of simply eliminating the bourgeoisie (and by putting themselves in its place) union leaders offer us a series of fetishes-the economic plan in place of God, father and judge of man with the big union and party bureaucrats playing the role of the priesthood.

Revolutionaries must expel from the factories and professional organizations all the union representatives; and all the Thorez', the Nennis and the Reuthers of all countries, with the Vatican crouching behind the Christian unions, will be paralyzed. The working class will have regained its freedom of thought and action and will be able to transform society from top to bottom. It will have gained the strength to wrest humanity from the mire of degradation.

  • 1. Here Munis is referring to organs which are part and parcel of the union apparatus and not autonomous factory committees.
  • 2. A worker reading l'Unita, the Stalinist newspaper, inside the factory is dismissed with out a hearing, with the agreement of the Stalinist leaders who have co-signed this clause.
  • 3. between instruments of labor and wage labor
  • 4. A pejorative term applied by the people to the present rulers
  • 5. During the honeymoon of Russo-American relations, towards the end of World War II, the heads of the Yankee monopolies (including among others, Johnston, then President of the Chamber of Commerce) having been invited by Moscow to visit its industrial enterprises, lavishly praised the methods of "Soviet" exploitation that the American workers, or so they complained, prevented them from applying.
  • 6. Trud, the official Russian trade union paper, Feb.19, 1947, cited by Solomon M. Schwarz, Labor in the Soviet Union, London 1952, p.280.
  • 7. Ibid. The 1917 revolution called for the disappearance of wage labor and capital. That is why a reformist critic, Zagorsky,, defined the economy of the revolutionary epoch as "an enormous charity program. Beginning with the N.E.P. (New Economic Policy), there clearly began a movement in the opposite direction, which acquired the character of state capitalism with the Stalinist counter-revolution. Up to that point contracts were individual even if they were not written down. The systemization of collective contracts runs parallel to the establishment of a state capitalism which seeks stability and permanence.
  • 8. "Le droit I' la paresse," Paul Lafargue, 1898.
  • 9. possible exceptions to this trend do not fundamentally weaken the above argument. It should be noted that the "exceptions" are not to be found in underdeveloped countries but more likely in the older countries of Europe. In underdeveloped countries, where unions are or seem to be new developments, they voluntarily accept being in the service of the bourgeoisie or the state. Often different unions in the same trade engage in cut-throat competition to offer their manpower to the bosses at the cheapest rate.
  • 10. One of the most significant strikes in France during the 50's.
  • 11. Lenin, Left-wing Communism 1920.
  • 12. The Italian political tendency of Bordiga whose arguments we combat here (IL Programma Communista, May 26, 1960) defends the conservative union tactic from the most revolutionary point of view. But many Trotskyist and anarchist groups (if not all) fall into the same error with an opportunist flavor. Even those who claim to be against the unions, like "Socialisme ou Barbarie," in fact fall into the same old routine practices.
  • 13. Two Pages From Roman History. 1. PIeb Leaders and Labor Leaders, II. the Warning of the Gracchi (New York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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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y Don’t Get It

They Don’t Get It (Revised)

The following is a revised version of our leaflet posted on October 6, 2011. In addition to US events, it will be distributed in Canada and Belgium this weekend.

 

THEY DON’T GET IT….

 

When the media talk about Occupy Wall Street, they often do so with disdain: a movement that has no leaders, no set of demands, can’t be taken seriously. In a typical article, the New York Times quoted an ‘expert’ saying, “if the movement is to have lasting impact, it will have to develop leaders and clear demands”, and another one which stated that the passions have to be “channeled into institutions”. (NYT, 10/4) Their message to you is clear: ‘Go back to ‘politics as usual’, follow leaders, work within institutions, become foot-soldiers for the Democratic party and the unions in elections and other campaigns that change nothing at all, that don’t question the power structures that prop up this insane money-system.

 

They don’t get it that the absence of leaders in this movement is not a weakness but a strength, testifying to our collective determination, to our refusal to remain followers. They don’t get it that the absence of a narrow set of demands that can be recuperated by this or that institution, results from our understanding that the problem lies much deeper. That there are no quick fixes for a system that produces growing inequality, mass unemployment and misery, wars and ecological disasters.

 

If these problems could be solved by electing wiser politicians, adopting better laws etc, ‘politics as usual’ might be the way to go. But they can’t be solved that way. Politicians everywhere are bound by higher laws, the laws of capital. That’s why governments everywhere, regardless of their political color, are imposing austerity, forcing the working population to sacrifice so that more can be paid to the owners of capital. In fact the harshest cuts in wages, pensions and jobs are implemented by a ‘socialist’ government (in Greece). Politicians on the left may clamor for massive public spending , but that would only mean that we would be made poorer in a different way, through inflation.

 

There are no quick fixes because the system itself is obsolete. Pain and suffering are sometimes unavoidable but capitalism creates ever more pain that is easily avoidable, that only exists because in this society, profit trumps human needs. Almost two billion people on this planet are unemployed because capitalism has no need for them. Hundreds of millions live in slums, because building decent houses for them is not profitable. Many die of hunger each day because it’s not profitable to feed them. Everyone knows our planet is in danger and yet capitalism is continuing to destroy it in its desperate hunt for profit. Productivity never was higher, yet poverty increases. The know-how and resources are there for every inhabitant of this planet to live a decent life but that would not be profitable. Abundance has become possible but capitalism can’t handle abundance. It needs scarcity. Abundance in capitalism means overproduction, crisis, misery. This is insane. It must stop.

 

 

WE HAVE TO THINK OUTSIDE THE BOX

 

Capitalism is not “the end of history” but just a transient phase. It has changed the world but now no longer fits into it. We have to accept the fact that capitalism offers no perspective, no future. We have to prepare for a post-capitalist world, in which human relations are no longer commercial transactions, in which goods no longer represent a quantity of money but a concrete means to satisfy real human needs. A world in which competing corporations and warring nations are replaced by a human community that uses the resources of all for the benefit of all. We call that communism but it has nothing in common with the state-capitalist regimes that exist or existed in Russia, China and Cuba. Nothing is changed fundamentally if capitalists are replaced with bureaucrats with supposedly better intentions. Those regimes were not only thoroughly undemocratic, they also perpetuate wage-labor, exploitation and oppression of the vast majority of the population. The change must go deeper and must emancipate the oppressed, make them part of a real democracy instead of the sham that exists today.

 

In 2011, ten years after the attacks on New York that launched a decade of fear and demoralization, a breach has been opened. From Tunis to Cairo to Athens to Madrid to Santiago to New York, a fever is spreading. After taking it on the chin for so long, the working class, employed or unemployed, is beginning to rise up. We’re not gonna take it anymore! Something has changed. True, the Occupy Wall Street movement will not last forever. At some point, it will end, without any clear victory. But it’s just the beginning. This dynamic will continue and will gather strength. Be a part of it!

 

 

THERE’S MORE…

 

It’s clear that the”Occupy Wall Street”-movement has touched a nerve. Its message resonates throughout the country, even throughout the world. Everywhere people are raising their voice in protest against a system that produces increasing misery for the many and absurd wealth for the few. No wonder that the unions, progressive Democrats, even the President, and governors like Cuomo who is imposing draconian austerity on workers in NY, are attaching their wagons to this train, in order to get control over the locomotive. Don’t be fooled: These political tendencies are themselves the representatives of the 1%, of the banks and the capitalist system, not of the 99%. Let’s not allow our movement to be co-opted by the very powers in opposition to which it has arisen. The left of capital cynically claims that they want ‘economic justice’, too; that they seek a more just distribution of the wealth, through taxation of the rich, etc. (that’s their rhetoric, their practice is something else, see Cuomo’s recent move to kill the ‘billionnaires tax’ because it would chase the rich away).

 

The truth is that the unfairness, the unjust distribution of wealth, is built into the system and can’t be taken out of it. It will only increase more as capitalism sinks deeper into its crisis, for which it knows no way out (to throw more money in the economy or to save: they’re damned if they do and damned if they don’t). ‘Redistribution of wealth’ is an incomplete demand that can get nowhere if it’s not pushed further. As a slogan of May ’68 claimed: ‘Be realistic, demand the impossible”. The impossible within capitalism, that is. Although there are quite a few capitalists who profit from the crisis, overall, capitalism suffers from it too, so that there is less wealth to redistribute (and the competition between nations for capital assures that the 1% suffers least and the 99% most). No utopian plan for redistribution can address this shrinkage of wealth.

 

But what is wealth? In this society, goods and services equal money, abstract value that can be endlessly amassed, possessed ad infinitum, or, when no buyer is found, they equal pure waste. So money, abstract value, decides what is produced and what not. That is the box we’ve got to get out of. We have to abandon the idea that wealth is money, that work is wage-labor and start to see production of goods and services as things we can create for each other. We must realize that when we come together we can use the creative powers that humankind has to make technology, housing, food, transportation, art and so much more for everybody because the need is there, instead of for profit. Let’s get rid not just of Wall Street, but the whole exploitation-for-money-system. This perspective may seem utopian to many today, but it will become increasingly realistic as the crisis of capitalism deepens.

 

INTERNATIONALIST PERSPECTIVE

 

They Don’t Get It

The following leaflet was handed out at the Occupy Wall Street demo today in Manhattan:

 

THEY DON’T GET IT….

 

When the media talk about Occupy Wall Street, they often do so with disdain: a movement that has no leaders, no set of demands, can’t be taken seriously. In a typical article, the New York Times quoted an ‘expert’ saying, “if the movement is to have lasting impact, it will have to develop leaders and clear demands”, and another one which stated that the passions have to be “channeled into institutions”. (NYT, 10/4) Their message to you is clear: ‘Go back to ‘politics as usual’, follow leaders, work within institutions, become foot-soldiers for the Democratic party and the unions in elections and other campaigns that change nothing at all, that don’t question the power structures that prop up this insane money-system.

 

They don’t get it that the absence of leaders in this movement is not a weakness but a strength, testifying to our collective determination, to our refusal to remain followers. They don’t get it that the absence of a narrow set of demands that can be recuperated by this or that institution, results from our understanding that the problem lies much deeper. That there are no quick fixes for a system that produces growing inequality, mass unemployment and misery, wars and ecological disasters.

 

If these problems could be solved by electing wiser politicians, adopting better laws etc, ‘politics as usual’ might be the way to go. But they can’t be solved that way. Politicians everywhere are bound by higher laws, the laws of capital. That’s why governments everywhere, regardless of their political color, are imposing austerity, forcing the working population to sacrifice so that more can be paid to the owners of capital. In fact the harshest cuts in wages, pensions and jobs are implemented by a ‘socialist’ government (in Greece). Politicians on the left may clamor for massive public spending , but that would only mean that we would be made poorer in a different way, through inflation.

 

There are no quick fixes because the system itself is obsolete. Pain and suffering are sometimes unavoidable but capitalism creates ever more pain that is easily avoidable, that only exists because in this society, profit trumps human needs. Almost two billion people on this planet are unemployed because capitalism has no need for them. Hundreds of millions live in slums, because building decent houses for them is not profitable. Many die of hunger each day because it’s not profitable to feed them. Everyone knows our planet is in danger and yet capitalism is continuing to destroy it in its desperate hunt for profit. Productivity never was higher, yet poverty increases. The know-how and resources are there for every inhabitant of this planet to live a decent life but that would not be profitable. Abundance has become possible but capitalism can’t handle abundance. It needs scarcity. Abundance in capitalism means overproduction, crisis, misery. This is insane. It must stop.

 

 

WE HAVE TO THINK OUTSIDE THE BOX

 

Capitalism is not “the end of history” but just a transient phase. It has changed the world but now no longer fits into it. We have to accept the fact that capitalism offers no perspective, no future. We have to prepare for a post-capitalist world, in which human relations are no longer commercial transactions, in which goods no longer represent a quantity of money but a concrete means to satisfy real human needs. A world in which competing corporations and warring nations are replaced by a human community that uses the resources of all for the benefit of all. We call that communism but it has nothing in common with the state-capitalist regimes that exist or existed in Russia, China and Cuba. Nothing is changed fundamentally if capitalists are replaced with bureaucrats with supposedly better intentions. Those regimes were not only thoroughly undemocratic, they also perpetuate wage-labor, exploitation and oppression of the vast majority of the population. The change must go deeper and must emancipate the oppressed, make them part of a real democracy instead of the sham that exists today.

 

In 2011, ten years after the attacks on New York that launched a decade of fear and demoralization, a breach has been opened. From Tunis to Cairo to Athens to Madrid to Santiago to New York, a fever is spreading. After taking it on the chin for so long, the working class, employed or unemployed, is beginning to rise up. We’re not gonna take it anymore! Something has changed. True, the Occupy Wall Street movement will not last forever. At some point, it will end, without any clear victory. But it’s just the beginning. This dynamic will continue and will gather strength. Be a part of it!

 

INTERNATIONALIST PERSPECT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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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혁명> 경제불황, 전쟁, 사회해체- 계급투쟁만이 해결책이다

경제불황, 전쟁, 사회해체- 계급투쟁만이 해결책이다

 

 

 Not dead yet

올 여름 경제위기의 극적인 첨예화는 자본주의 체제가 그 한계에 다달았음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부채위기'는 문자그대로 은행의 파산일뿐만 아니라 전체 국가들의 파산을 백일하에 드러냈고, 게다가 그리스나 포르투갈과 같이 경제가 허약한 나라들 뿐만 아니라 유로지역의 주요국가들, 특히 세계경제최강대국 미국도 포함된다.

 

그리고 이 위기는 전세계적일 뿐만 아니라 역사적이기도 하다. 지난 몇년간 뚜렷하게 모습을 드러낸 빚더미는 1960년대말 1970년대초에 이미 나타난 경제위기를 자본주의가 늦추거나 은폐하려한 시도들의 결과일 뿐이다. 또한 오늘의 '침체'가 진정한 불황으로서의 본 모습을 드러내면서, 우리는 이것이 실상, 1930년대에 생산을 마비시켰고 그당시 세계를 제국주의전쟁으로, 즉 제 2차세계대전으로 몰아갔던 위기과 같은 심각한 위기임을 인식해야 한다. 이 위기는 자본주의 체제가 역사적으로 쇠퇴했음을 보여준다.

 

오늘의 불황과 1930년대의 불황사이의 차이는 오늘의 자본주의는 어떤 수단도 갖고 있지 않다는데 있다. 1930년대에 지배계급은 그 위기에 대항한 그들 자체의 야만적인 해법, 즉 제국주의 전쟁에 전 사회를 동원하고 세계를 새롭게 분활하는 것을 관철시킬 수 있었다. 재조직화는 2차 세계대전 후, 1950년대와 1960년대에 있었던 재건의 기적의 토대를 만들어냈다. 그 당시 이러한 가능성이 존재했던 것은 부분적으로, 세계대전이 자동적으로 자본주의의 자기파괴를 의미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또 전후에 새로운 제국주의 종주국의 출현 여지가 여전히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나의 옵션이었는데, 이는 그 이전에 노동자계급이 1차 세계대전에 뒤이어 혁명을 시도했었고 그러면서 스탈린주의, 파시즘 그리고 민주주의로 인해 그 역사상 가장 심각한 배패를 경험했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세계대전은 추상적이고 이론적인 의미에서만 하나의 옵션이다. 사실상 전세계적인 제국주의전쟁으로의 길은 자본주의가 옛 양대 블록 구도의 붕괴 후 그 어떤 안정적인 제국주의적 연합도 이뤄낼 수 없다는 점 때문에 막혀있다. 그 길은 또한 자본주의 주요국가들에서 착취당하는 사람들 대다수를 이 체제는 그 수호를 위해 투쟁하고 죽을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설득하고 단합시킬 수 있는 이데올로기가 존재하기 않는다는 점에 의해서도 마찬가지로 가로막혀 있다. 이 두가지 요소들은 더 심층적인 어떤 것과 연결되어있는데, 노동자계급은 오늘날 패배당하지 않았고 여전히 자본주의에 대항해 그들 자신의 이해를 위해 투쟁에 나설 수 있다는 사실이 바로 그것이다.

 

 

노동자계급이 직면한 위험

 

이는 혁명으로의 그 어떤 자동적 현상이 존재함을 의미하는가? 아니다, 전혀 그렇지 않다. 노동자계급의 혁명은 도대체가 결코 '자동적 현상'이 될 수 없는데, 이 혁명은 과거의 그어떤 혁명보다도 더 높은 의식수준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인간이 처음으로 연대원칙이 중심에 서 있는 그러한 한 사회에서 그들 자신의 생산과 분배에 대한 통제를 넘겨받는 바로 그 순간에 다름 아니다. 그래서 이 혁명은 점점 더 대대적으로 되어가는 일련의 투쟁들에 의해서만 준비될 수 있고, 그러한 투쟁은 다시 더 깊고 더 넓은 계급의식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1960년대 말 위기의 최근 시기가 시작된 이래, 노동자계급의 많은 주요한 투쟁들이 있었다. 68년 5월 프랑스에서의 사건들이 유발했던 국제적인 투쟁물결에서부터 1980년 폴란드에서의 대중파업들과 1980년대 영국 광산노동자파업에 이르기까지. 비록1990년대에 계급투쟁의 오랜 역류가 있었지만, 지난 몇년동안에, 그들에게 그 어떤 미래도 제공할 능력이 없는 현 사회질서에 대해 적극적으로 '분노하는' (스페인어 개념대로 말하자면) 새로운 세대가 등장했다. 튀니지, 이집트, 그리스, 스페인, 이스라엘 등등에서의 투쟁들에서 '혁명' 의 생각은 진지한 토론주제가 되었다. 1968년 파리, 1969년 밀라노의 거리들에서 그당시 그랬던 것처럼.

 

그러나 당장 이 생각은 아직 매우 혼란스럽고 막연하다. '혁명'은, 가장 분명하게는 튀니지와 이집트의 경우에서, 또 지금 리비아가 그런 것처럼 지배계급의 일부분으로부터 그 다른 한 부분으로의 권력의 단순한 이동정도로 이해되기 쉽다. 그리고 최근의 운동들에서, 지배체제에 대항한 투쟁은 계급투쟁임을, 즉 지배계급 전체에 대항한 노동자계급의 투쟁임을 분명히 해야 함을 파악한 것은 소수에 불과했다. 40여년간의 위기 이후 특히 자본주의의 주요국가 노동자계급은 1960년대말과 같은 모습을 더이상 띠지 않는다. 거대한 산업기지들과 강력한 계급투쟁의 집중지들은 사방으로 분산되었다. 전 세대가 지속적인 불안정과 실업의 원자화의 영향을 받았다. 노동자계급의 가장 절망적인 층들은 범죄와 허무주의 또는 종교적 근본주의에 빠져들 위험에 처해있다.

 

요컨대, 자본주의 사회의 길고 점점 더 첨예해지는 쇠퇴과정으로 인해, 노동자계급은 계급정체성을 재획득하고 사회의 지도력을 넘겨받아 그 사회를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는 자신감을 형성하는 능력에 있어서 가장 심각하고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 그리고 자본주의 착취에 대항해 투쟁하는 노동자계급의 모범이 없이는, 체제의 불평등하고 억압적이며 부패한 본질에 대항한 무수한 분노의 반응들이 있을 지언정, 그 자체만으로는 그 어떤 출구도 만들어낼 수 없다. 몇몇 반응들은 올여름 영국의 예에서처럼, 폭동, 봉기 및 수많은 약탈의 형태를 띨 지도 모른다... 세계의 다른 지역에서는 정당한 분노의 분출들이 지배계급에 의해 인도되어, 리비아에서 보여지듯이 제국주의의 한 진영에 대항해 다른 한 진영을 지지하는 용도로 투입될 수도 있다.

 

가장 비관적인 시나리오는, 피착취자들의 투쟁이 무의미하고 자기파괴적인 행동들로 분산되어버리고, 이때 노동자계급 전체가 너무 원자화되고 너무나 분열되어버려서 하나의 진정한 사회적 힘으로 출현할 수 없게되어 버리는 것이다. 이 시나리오가 실현된다면, 아무것도 자본주의가 우리 모두를 심연에 빠뜨리는 것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자본주의는 세계전쟁의 전개가 없이도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그 지점에 도달하지 않았다. 그와는 반대로, 새세대 노동자들은 경제적 붕괴, 제국주의적 충돌, 환경파괴라는 자본주의의 미래에 수동적으로 그리고 아무 저항없이 이용당할 용의가 전혀 없다는 많은 암시들이 존재하고, 이 새세대가 노동자계급의 더 나이든 세대들과, 자본주의로부터 생존의 위협을 받는 모든 이들을 자신들 주변으로 끌어모을 수 있다는 증후들이 존재한다.

 

<세계혁명>, 2011년 9월 1일

 

 

 

 

 

Economic depression, war, social decay: Only the class struggle offers a way out

 

 

 

 

The dramatic worsening of the world economic crisis over the summer gives us a clear indication that the capitalist system really is on its last legs. The ‘debt crisis’ has demonstrated the literal bankruptcy not only of the banks, but of entire states; and not only the states of weak economies like Greece or Portugal but key countries of the Eurozone and on top of it all, the most powerful economy in the world: the USA.

 

And if the crisis is global, it is also historic. The mountain of debt that has become so visible over the last few years is only the consequence of capitalism trying to postpone or hide the economic crisis which surfaced as far back as the late 1960s and early 70s. And as today’s ‘recession’ reveals its real face as a genuine depression, we should recognise that this is really the same underlying crisis as the one which paralysed production in the 1930s and tipped the world towards imperialist war. A crisis expressing the historical obsolescence of the capitalist system.

 

The difference between today’s depression and that of the 1930s is that capitalism today has run out of choices. In the 1930s, the ruling class was able to offer its own barbaric solution to the crisis: mobilising society for imperialist war and re-dividing the world market. This re-organisation created the conditions for launching the ‘boom’ of the 50s and 60s. This was an option at that time, partly because world war did not yet automatically imply the destruction of capitalism itself, and there was still room for new imperialist masters to emerge in the aftermath of the war. But it was an option above all because the working class in those days had tried and failed to make its revolution (after the First World War) and had been plunged into the worst defeat in its history, at the hands of Stalinism, fascism, and democracy.

 

Today world war is only an option in the most abstract theoretical sense. In reality, the road to a global imperialist war is obstructed by the fact that, in the wake of the collapse of the old two-bloc arrangement, capitalism today is unable to forge any stable imperialist alliances. It’s also obstructed by the absence of any unifying ideology capable of persuading the majority of the exploited in the central capitalist countries that this system is worth fighting and dying for. Both these elements are linked to something deeper: the fact that the working class today has not been defeated and is still capable of fighting for its own interests against the interests of capital.

 

Dangers facing the working class

Does this mean that we heading by some automatic process towards revolution? Not at all. The revolution of the working class can never be ‘automatic’ because it requires a higher level of consciousness than any past revolution in history. It is nothing less than the moment where human beings first assume control of their own production and distribution, in a society with relations of solidarity at its heart. It can therefore only be prepared by increasingly massive struggles which generate a wider and deeper class consciousness.

 

Since the latest phase of the crisis first raised its head in the late 60s, there have been many important struggles of the working class, from the international wave sparked off by the events of May 1968 in France to the mass strikes in Poland in 1980 and the miners’ strike in Britain in the mid-80s. And even though there was a long retreat in the class struggle during the 1990s, the last few years have shown that there is now a new generation which is becoming actively ‘indignant’ (to use the Spanish term) about the failure of the present social order to offer it any future. In the struggles in Tunisia, Egypt, Greece, Spain, Israel and elsewhere, the idea of ‘revolution’ has become a serious topic for discussion, just as it did in the streets of Paris in 1968 or Milan in 1969.

 

But for the moment this idea remains very confused: ‘revolution’ can easily be mistaken for the mere transfer of power from one part of the ruling class to another, as we saw most clearly in Tunisia and Egypt, and as we are now seeing in Libya. And within the recent movements, it is only a minority which sees that the struggle against the current system has to declare itself openly as a class struggle, a struggle of the proletariat against the entire ruling class.


After four decades of crisis, the working class, especially in the central countries of capitalism, no longer even has the same shape that it had in the late 60s. Many of the most important concentrations of industry and of class militancy have been dispersed to the four winds. Whole generations have been affected by permanent insecurity and the atomisation of unemployment. The most desperate layers of the working class are in danger of falling into criminality, nihilism, or religious fundamentalism.

 

In short, the long, cumulative decay of capitalist society can have the most profoundly negative effects on the ability of the proletariat to regain its class identity and to develop the confidence that it is capable of taking society in a new direction. And without the example of a working class struggle against capitalist exploitation, there can be many angry reactions against the unjust, oppressive, corrupt nature of the system, but they will not be able to offer a way forward. Some may take the form of rioting and looting with no direction, as we have seen in Britain over the summer. In some parts of the world legitimate rage against the rulers can even be dragged into serving the needs of one bourgeois faction or one imperialist power against another, as we are seeing in Libya.

 

In the most pessimistic scenario, the struggle of the exploited will be dissipated in futile and self-defeating actions and the working class as a whole will be too atomised, too divided to constitute itself into a real social force. If this happens, there will be nothing to stop capitalism from dragging us all towards the abyss, which it is perfectly capable of doing without organising a world war. But we have not yet reached that point. On the contrary, there is plenty of evidence that a new generation of proletarians is not going to let itself be pulled passively into a capitalist future of economic collapse, imperialist conflict and ecological breakdown, and that it is capable of rallying to its banners the previous generations of the working class and all those whose lives are being blighted by capital.  

 

WR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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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당과 자발성에 대한 문제의식 1

 

혁명당과 자발성에 대한 문제의식

-레닌을 넘어 다시 맑스의 이해로 돌아와야 한다.

 

 

이란 노동자계급 스스로는 공산주의 의식과 조직을 창출할 수 없기 때문에, 노동자계급의 외부에서 도입해야 하는 그 어떤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은 계급의 표현이자, 공산주의와 자신을 동일시하고 공산주의를 위해 행동하려 하는 사람들의 공산주의 의식의 생산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즉, 공산주의자당은 계급투쟁의 역사 속에서 노동자계급으로부터 자발적으로 창출되는 공산주의 의식의 표현이다.  공산주의 의식으로 무장한 공산주의자들은 항상 프롤레타리아 전체의 이해관계와 프롤레타리아 운동 전체의 이익을 대변하기 때문에, 실천적으로 가장 단호하고 늘 앞서있는 부분이며, 이론적으로도 운동을 총체적으로 바라보며 대중보다 앞서 통찰한다.  따라서 당 건설 초기에는 어떠한 강요나 엄격한 규율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공산주의자로서의 신념과 실천을 담지한 혁명가들에 의해 당 조직이 창출된다,

 

이러한 명제는 혁명당을 건설하는 실제적인 전제 조건으로 프롤레타리아트 대중의 자발적 투쟁과, 당 강령의 생산과 명확화에 대한 필요를 제기한다.  프롤레타리아 투쟁의 부활 없이, 강령으로 표현되는 공산주의 의식의 명확화 없이 당 건설은 불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자발성과 의식성의 문제를 늘 적대시하면서 충돌시키는 레닌주의적 전위당 노선은 자본주의 쇠퇴의 시기(자본의 총체적 지배시기-이데올로기를 포함한) 대중행동의 자발성을 억누르거나 조직노동자 위주(자본주의 체제와 타협하면서 살아남은)의 퇴보하는 당 조직의 위험성이 있다. 반대로 계급정당, 대중정당 노선은 계급의 혁명적 의식을 방어하지 못해 계급의식이 혁명적으로 진전되는 것을 철저히 차단하거나 계급의식을 갉아먹는다.

 

혁명당을 건설하려는 동지들!  100년 전 러시아 볼셰비끼의 영광을 동일하게 재현하려는 무모한 시도도, 진보정당/노동자당을 흔들거나 눈치 보면서 떡고물이라도 얻어먹으려는 기생적 시도도 당장 집어치워야 한다. 여전히 변하지 않는 것은 혁명의 주체는 노동자계급 자신이라는 사실이다.

 

다시 노동자계급의 주체성(자립성)과 계급의식의 문제에 집중하라!!

 

 

*이에 대한 문제의식은 (카마트, 1961, 「당 형식의 기원과 역할」)을 참고할 것

  원문은  http://cafe.daum.net/leftcommunist/QerV/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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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탈리야 트로츠키- 제4인터내셔널과의 결별 선언 (트로츠키주의 우파에게2)

 

나탈리야 트로츠키(Natalya Trotsky)- 제4인터내셔널과의 결별 선언

 

나탈리아 셰도바 트로츠키

 

멕시코, DF. 1951년 5월9일

 

 

 

동지들,

여러분들은 내가 여러분들과 과거 5, 6년 동안, 전쟁이 끝나기 이전부터 그 이후로 계속, 정치적으로 동의하지 않았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근래의 중요한 사건들에 대해 취한 입장은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이 일찍이 저지른 오류를 수정하는 대신 그것들을 끝까지 관철시키고 심화시켜왔음을 제게 보여주었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의 선택에 대해, 더 이상 침묵하거나 개인적 항의자로 남아있을 수 없는 지점에 이르렀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제 제 의견을 공식적으로 표현해야만 합니다.

 

제가 앞으로 나아갈 발걸음은 무덤과 같았고, 제게는 중대하고 어려운 것이었으며, 저는 오직 진심으로 후회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제 다른 길은 없습니다. 제게 깊은 고통을 줬던 문제에 대한 크나큰 심사수고와 망설임 끝에, 저는 여러분에게, 제가 여러분의 수준에 더 이상 머무를 수 없을 정도로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는 것 외에 다른 길은 없다고 봅니다.

 

제가 이렇게 마지막 행동을 하는 이유는 여러분이 알고 있습니다. 여기서 저는 이것에 익숙하지 않은 동지들에게만 간단히 되풀이하고자 합니다. 기본적으로 중요한 차이만 언급하고 그들과 관련 있거나 그로부터 도출되는 일상 정책 문제에 대한 차이는 다루지 않겠습니다.

 

낡고 오래된 도식화 탓에, 여러분들은 스탈린주의 국가를 계속 노동자 국가로 취급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에 대해 여러분들에게 동의하지도 않고, 동의할 수도 없습니다.

 

실제적으로 폭력적 스탈린주의 관료주의에 대한 싸움이 시작된 후, 매년, L.D 트로츠키는 정권이 우경화되고 있으며, 그것은 지체된 세계혁명의 상황, 그리고 러시아의 모든 정치적 입장이 관료주의에 포획된 상황 하에서 그러하다고 반복해서 말했습니다. 다시, 그는 러시아에서의 스탈린주의의 강화가 노동자계급의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지위를 악화시키게 했고, 전제적 특권적 귀족사회의 승리로 이끌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 조류가 계속된다면, 혁명이 자본주의의 종말과 부흥에 이르러서야 성취될 것이라고 그는 말했습니다.

 

불운하게도 그것은 새롭고, 기대하지 않은 형태로 정말 그렇게 되었습니다. 세계에는 그렇게 사회주의의 신뢰할만한 이념과 그 담지자가, 야만적으로 사냥당한 곳은 거의 없습니다. 혁명이 스탈린주의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었다는 것은 모든 이에게 명백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형언할 수조차 없는 이러한 체제 하에서 러시아는 아직도 노동자 국가라고 이야기 합니다. 나는 이를 사회주의에 대한 타격이라고 봅니다. 스탈린주의와 스탈린주의 국가는 노동자 국가나 사회주의와는 어떤 공통점도 없습니다. 그들은 노동자계급과 사회주의의 최악의, 최고로 위험한 적입니다.

 

여러분은 이제 전쟁 동안, 그리고 그 이후 스탈린주의가 지배를 확립한 동유럽 국가들도 마찬가지로 노동자 국가라고 주장합니다. 이것은 스탈린주의가 혁명적 사회주의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다고 이야기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에 대해서 나는 여러분에게 동의하지도 않고, 동의할 수도 없습니다.

 

전쟁 이후, 심지어 전쟁이 끝나기 전에도, 동유럽 국가들에서는 혁명적 대중운동이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권력을 차지한 것은 대중이 아니었고,  그들의 투쟁으로 건설된 국가는 노동자 국가가 아니었습니다. 권력을 획득한 것은 스탈린주의 반혁명 세력이었으며, 그것은 노동대중과 그들의 혁명적 투쟁, 그리고 혁명적 열망들을 질식시킴으로써 크레믈린의 가신들에게 이들 국가를 넘겨 버렸습니다.

 

스탈린주의 관료주의가 이런 국가들에서 노동자 국가를 세웠다고 생각하면서, 그들에게 여러분은 진보적이고 심지어 혁명적인 역할을 부여합니다. 이 끔찍한 잘못을 노동자 전위에 선전함으로써, 여러분은 사회주의 혁명의 세계 당으로서의 기본적인 존재 이유를 제4인터내셔널에서 부정합니다. 과거에는, 우리는 언제나 그 용어가 어떤 의미에서이건 스탈린주의를 반혁명적 세력으로 취급했습니다. 여러분은 더 이상 그러지 않습니다. 그러나 저는 계속 그러합니다.

 

1932년 그리고 1933년, 스탈린주의자들은 염치없는 히틀러주의와의 협정을 정당화하기 위해, 파시즘의 지배 이후, 그리고 그들 통해 사회주의가 오기 때문에 파시스트가 권력을 잡는 것은 거의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선언했습니다. 사회주의 사상과 사회주의 정신없는 오직 인간성을 잃은 짐승들은 이런 방식으로 논쟁할 수 있습니다. 이제 비록 혁명적 목적이 여러분들에게 생기를 준다고 할지라도, 여러분들은 유럽에서 승리한 전제적 스탈린주의의 반동이 마침내 사회주의로 가는 길 중 하나라고 계속해서 주장합니다. 이 관점은 결국 우리 운동에 의해 견지되고, 제가 끊임없이 공유하고자 하는 가장 심오한 신념과 타협할 수 없음을 보여줍니다.

 

유고슬라비아의 티토 정권 문제에 있어서 저는 여러분들의 의견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혁명가들의, 심지어는 민주주의자들의 동조와 지원은, 유고슬라비아 주민들을 속박시켜 그들 나라를 가신으로 만들려는 모스크바의 전략에 대해, 확고한 저항을 하는 바로 그 유고슬라비아 주민들에게 가야 합니다. 모든 이익들은 유고슬라비아 정권이 인민들에게 제공해야 하는 승인으로 얻어져야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의 모든 압박은 우리 운동의 전통과 원칙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티토주의 관료주의의 변명할 수 없는 이상화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이 관료주의는 그저 새로운 형태의 스탈린주의 관료주의의 모조일 뿐입니다. 이것은 GPU(소련의 국가정치보안부. 나중에 KGB로 바뀌었다)의 사상과 정치와 윤리에 길들여졌습니다. 그 정권은 스탈린 정권과 근본적인 면에서 전혀 차이가 없습니다. 유고슬라브 인민의 혁명적 리더십이 이 관료주의로부터 발전된다거나, 그에 저항하는 투쟁의 과정이라고 믿거나 혹은 가르치려는 것은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여러분들을 지지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여러분들이 스스로 저질렀던 전쟁에 대한 입장입니다. 인류를 위협하는 3차 세계대전은 가장 어려운 문제, 가장 복잡한 상황, 막중한 결정을 해야 할 혁명운동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오직 가장 진지하고 가장 자유로운 토론을 거쳐서 입장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 몇 년의 모든 사건을 접하면서, 여러분들은 스탈린주의 국가를 방어하기 위하여 모든 운동을 주창하고 서약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여러분들은 고통 받는 한국 인민들이 견뎌내는 전쟁에서 스탈린주의 군대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여러분들에게 동의하지도 않고, 동의할 수도 없습니다.

 

1927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트로츠키는 정치국에서 스탈린이 던진 불명예스러운 질문에 대한 답으로 그의 견해를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습니다.

 

“사회주의 조국을 위하여, 그렇습니다! 그러나 스탈린주의 정권을 위해서는 결코 아닙니다!”

 

그것이 1927년이었습니다. 23년이나 지난 오늘날, 스탈린은 사회주의 조국엔 그 무엇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스탈린주의 독재로 인민들을 노예화시키고 타락시키는 것으로 그것은 대체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여러분들이 이미 한반도에서 방어하고 있는 전쟁을 방어하기 위하여 제안하는 국가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얼마나 자주 스탈린주의를 비판하고 그와의 싸움을 반복했는지 잘 압니다. 그러나 사실은, 여러분들의 비판과 싸움은 그 가치를 잃었으며, 스탈린주의 국가의 방어라는 여러분들의 입장에 의해 결정되어 있고, 그에 종속되어 있기 때문에, 그러한 것은 어떤 결과도 낼 수 있습니다.  누구든 이 야만적인 억압의 정권을 방어하려는 자들은, 그 동기에 관계없이 사회주의와 국제주의의 원칙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SWP의 최근 대회로부터 제게 온 메시지에서, 여러분들은 트로츠키의 생각이 여러분들의 안내자라고 쓰고 있습니다. 전 이글을 읽으며 매우 비통한 심정이었음을 밝힙니다. 위에서 썼던 것에서 여러분들이 보셨듯이, 저는 여러분들의 정치에서 그의 사상을 보지 않습니다. 저는 이러한 사상에 확신이 있습니다. 저는 현대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사회혁명, 즉 세계 프롤레타리아트의 자기 해방 뿐이라고 여전히 그렇게 생각합니다.

 

 

 

 

세도바 트로츠키의 편지에 대하여  -공산주의 노동자 조직(CWO)

 

 

트로츠키의 미망인인 나탈리야가 트로츠키주의의 운동과 결별할 때 발표한 상명을 우리는 재발간한다. 그녀는 그들이 스탈린주의에 대해 면책권을 주는 것이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확실한 포기라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보았다. 그녀가 언급한 두 가지 결정적 요소는 동유럽 모스크바 지배의 국가들을 변형된 노동자 국가의 범주에 넣은 트로츠키주의자들의 결정과 러시아, 중국, 그리고 북한의 스탈린주의자들을 한국 전쟁 기간 동안 지원한 것이다.

 

셰도바 트로츠키의 편지는 공산주의 노동자 조직(CWO)과 혁명당 국제서기국(IBRP *CWO는 IBRP의 한축으로 영국의 섹션이다)이 충실한 국제주의 흐름의 전통과 매우 다른 전제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비록 그녀가 명확하게 스탈린주의 국가가 노동자 국가가 아님은 지적했지만, 트로츠키주의의 환상의 근원을 밝혀내는 데는 실패하고 있다. 매우 간단하게도 그 뿌리는 트로츠키 자신에게로 되돌아가기 때문이다. 1927년 트로츠키가 사회주의자 조국을 지원하기로 선언한 것은 그가 러시아 공산당과 ,코민테른의 지도자들 사이에 있었던 분파투쟁 동안 스탈린주의에게 일찍이 줬던 면죄부를 표현해준다. 셰도바의 반파시즘에 대한 은연중의 지지와, 트로츠키주의자들의 1930년대의 통일전선주의의 지지는, 명확하게, 셰도바가 트로츠키주의의 반혁명적 입장의 근원을 폭로하기 위한 충분히 심도 있는 비판을 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트로츠키주의자들이 자신들의 기록에 접촉하러 오는 이들에게 숨기길 바라는 역사적 기록에 보태기 위해 그 편지가 재출간될 가치가 있다고 본다. 그 문서는 트로츠키주의 운동이 혁명적 이론과 실천으로부터 동떨어져 진행해 온 그 거리를 결론적으로 보여준다. 그 성명이 쓰인 이후 반세기동안, 트로츠키주의자들은 더욱 더 반혁명의 궤도를 따라 계속 나아갔다.  이 편지에서 언급한 SWP는 그 시기 제4인터내셔널의 미국 섹션인 당으로 스스로를 제4인터내셔널에 동조하는 섹션으로 기술하면서 미국 법에 동조했다. 1980년대 동안 그들은 쿠바 카스트로 정권의 치어리더가 되기 위해 트로츠키주의자 사이에서 더 많은 분열을 초래했다. 셰도바 트로츠키의 초기 성명 직전 몇 년간 영국의 트로츠키 운동내의 수많은 분열중의 하나였던 같은 이름의 영국 기반조직인 SWP와 혼동해서는 안 된다.

 

 

 

 

트로츠키주의의 반파시즘에 대하여  -CWO

 

국제주의자들에게, 파시즘은 제국주의의 산물이다. 그것은 혁명적 투쟁의 패배에 따른 심각한 위기의 결과로 프롤레타리아트가 지불한 대가의 일부다. 그러나 결코 20세기 부르주아 민주주의(대도시 지역 국가들에서의 제국주의 지배가 선호한 형태)가 제국주의 형성보다 덜한 작은 것이라고 믿는 것은 절대 아니다. 파시즘과 제국주의의 민주주의적 형태 둘 다에 대한 역사적 해결책은 노동자계급의 혁명이다. 트로츠키주의자를 위한 것이 아닌!

 

몇 번이고 되풀이하여, 트로츠키주의자들은 예를 들면 훨씬 더 많은 흑인들이 민주주의 영국 국가의 손에 죽어가며 고통에 신음하고 있다는 사실을 무시하며 별것 아닌 파시스트 조직의 역할을 강조하려 할 것이다. 트로츠키주의자들은 스탈린주의자, 그리고 다른 좌파 동맹과 함께 혼란의 병기고 속에서 중요한 요소로 반파시즘을 유지하기 위해 오랫동안 힘들게 싸워왔다.

 

반파시즘은 단지 노동자계급 속에 널리 퍼진, 많은 다른 부르주아지 사이에서 있는 혼란속의 하나가 아니다. 그것은 노동자계급을 2차 제국주의 전쟁으로 몰아넣은 가장 강력한 유일한 이데올로기 도구였다. 스페인 내전동안에 기반이 준비되어 있었기에, 트로츠키주의자들과 스탈린주의자들은 체계적으로 그들의 추종자들로 하여금 독일 주도의 축에 맞서 민주주의 진영에서 싸우도록 준비시켰다. 공시적인 공산당 리더십은 (1939년 9월~1941년 5월의 히틀러-스탈린 조약 동안) 그들의 외부 그리고 스탈린의 위대한 애국전쟁 동안 앵글로-러시안-아메리칸 제국주의 동맹을 외부에서 지원하는 노선으로부터의 이탈을 메우는 것이었다.

 

반파시즘은 부르주아지의 이데올로기 병기고에서 여전히 중요한 무기로 남아있다. 독재자에 저항하는 투쟁은 이라크에 반대하는 전쟁 지원을 유발시키는데 이용되었다. 클린턴과 블레어의 밀로세비치의 세르비아 정부를 비난하는 긴 연설은 제국주의의 민주적 반파시즘 용어의 많은 특징들을 이용했음을 알 수 있다. 우린 이미 어떻게 현대의 트로츠키주의자들이 전쟁 기간 중에도 하나 또는 다른 부르주아 분파를 지원하기 위해 선거를 하는지 보았다. 반파시즘 논리의 이용은, 그들의 더 큰 부르주아 형제분파들이 노동자들을 제국주의 학살로 내몰도록 입지를 넓혀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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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판 헤셀의 두 책 「분노하라!」,「참여하라!」에 대하여

스테판 헤셀의 두 책  「분노하라!」,「참여하라!」에 대하여

 

 

 

  분노하기, 그래  자본주의 착취에 대해서!

 

   작가이자 서정시인 그리고 프랑스외교관인 스테판 헤셀의 글들, 「분노하라!」,「참여하라!」는 진정한 베스트셀러들이다.  지금 벌써 이 글들은 세계의 불의에 대해 고민하는 모든 사람들의 참조점이 되었다. 최근에 스페인전역으로 멀리 퍼져나간 (그리고 그정도는 아니라도 다른 유럽나라들에서 볼 수 있었던) 사회적 분노의 운동은 심지어 스스로를 분노한 사람들이라고 부르며 헤셀의 첫번째 책과 분명하게 관련지었다[1]

 

「분노하라!」는 대략 30쪽분량의 글이다. 여러 언어들로 번역되었고 되도록이면 많은 보급을 위한 터무니없이 싼 값으로 전세계적으로 수백만부가 팔려나갔다. 그 책의 출판은 처음부터 매우 성공적이었다. 아주 당연한 이유로, 왜냐하면 책제목 자체가 이미 이 세계의 야만성에 대항한 절규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억압당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점점 더 확산되는, 그리고 점점 더 참을 수 없고 적대적으로 보여지는 세계 전역에서의 가난과 전쟁이 초래하는 공포가 촉발한 그러한 감정에 딱 들어맞는다. 튀니지와 이집트에서의 아랍의 봄과 분노한 사람들운동이 이를 증명한다.

 

 

  스테판 헤셀은 어떤 사회를 꿈꾸는가?

 

   현재 93살인 스페판 헤셀은 이 부정의한 세상에 대한 자신의 분노를 표현할 만한 정력을 여전히 갖고 있다.  이렇게 볼때는 오직 경의와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의  시각으로 볼 때 우리는 어떤 사회를 위해 투쟁해야 할것인가라는 문제가 논의될 필요가 있다.

 

   그의 책 초입부터 이미 스테판 헤셀은 2차 세계대전 종결시 국민저항의회(CNR)[2]의 경제강령작성의 계기가 된 그 원칙과 가치들을 옹호한다. 이 방침들이 아직도 여전히 현실성을 갖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헤셀은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당연히 지난 65년동안 사정이 달라졌다. 오늘날 우리는 레지스탕스 시대의 도전들과 똑같은 도전들 앞에 서있지 않다. 그당시 우리들이 제안한 강령은 오늘날 그 형태로는 더이상 유효하지 않으며,  이점을 눈 감아버려서도 안된다. 그러나 우리가 그당시 따랐던 가치들은 동일하고 우리는 그것들을 계속 존중해야한다. 그것은 바로 공화국과 민주주의의 가치이다. 각각의 정부들은 이러한 가치를 놓고 평가될 수 있다. 국민저항의회의 강령에서 특정한 비젼이 제시되었고 이 비젼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이윤의 독재와 돈의 독재에 맞서는 것, 한편에는 극도의 가난과 다른 한편에는 오만한 부가 나란히 존재하는 것에 분노하는 것, 경제적으로 봉건적 상태를 탈피하는 것,  진정으로 독립적인 언론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 모든 형태의 사회적 안전을 보장하는 것  우리가 그당시 지향했던 일련의 가치들와 성취들, 이 모두가 오늘날 위협당하고 있다. 최근에 결정된 많은 대책들이 레지스탕스시대의 내 동지들을 경악시키는데, 그것들은 우리의 기본적인 가치들을 겨냥하기 때문이다.  내생각에,  사람들은 특히 젊은이들이 분노해야 한다. 그리고 저항해야 한다!"[3].     그러나 누가 이러한 상황에 책임이 있는가? "이는 오직, 레지스탕스가 맞서 싸웠던 금권력이 지금 그 어느때보다 막대하고 불손하며 이기적이고 국가 최고위층까지 스며들어 자체의 이익옹호자들을 갖고 있기에 가능해 보인다. 그 사이 사유화된 은행들은 그들의 배당금과 매니저들의 넘쳐나는 수입만 생각하지 공익에는 관심이 없다. 빈부의 차이는 갈수록 커져가고 돈과 영향력을 향한 노력은 점점 더 많은 의미를 획득하고 있다."[4] 헤셀에 따르면, 민주주의가 지도자들의 행동을 이끌어야 한다는데,  금융계나 은행가들의 이기주의와는 반대로 민주주의는 모든 사람들의 이익을 더 염려하기 때문이란다: "우리는 그들에게 말한다: '그것을 포착하고 분노하라!'라고. 정치, 경제의 책임자들, 지식인들 그리고 사회 전체는 양보해서는 안되며, 평호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현재 금융시장의 국제적 독재의 영향을 받아서는 안된다."[5]  그러니까 이것이 공중의 극도로 성스러운 이해라는 것이다. 정치가, 경제지도자와 노동자, 실업자, 학생, 퇴직자, 비정규직을 결합하는 것이... 바꿔 말하자면, 스테판 헤셀의 민주주의는 하나의 신화이다. 그것은 착취자와 피착취자가 마치 기적처럼 같은 눈높이로 만나는 상태를 그럴듯하게 그려낸다, 그들이 소위 동일한 권리와 의무를 가지며 금융시장의 독재에 대항해 국민들로서 동일한 민주주의적 이해를 옹호하는 그런 상태를.  그러면 그 모든 것은 어디로 이끄는가?

 

   "오늘날 고민하고, 글을 쓰고 민주적으로 정부들의 선거에 참가함으로써 우리는 사정을 현명하게 ...간단히 말해서 장기적인 시야를 가지고 이끌어가길 바랄 수 있다."[6] 그러면 그의 견해에 따르면 우리는 어느 쪽을 지지해야 하는가?  "나는 나자신을 여전히 사회주의자로, 즉 내가 이 개념을 파악하는 바대로, 사회적 불평등을 의식하고 있는 사회주의자로  본다. 하지만 사회주의자들은 자극들을 받아야 한다. 용감한, 필요하다면 '건방진' 좌파가 나타나서 비중을 가지면서 국민의 자유라는 비젼을 주장하기를 나는 바란다. 녹색당이 의회에 진출해서 환경보호 사상이 진전을 이루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7] 결국 헤셀의 견해로 볼때 우리의 분노는 우리 모두가 이미 잘 알고 있는 구호, 즉 우리는 투표하러 가야 한다를 받아들이는 것을 초래한다. 우리는 국민저항의회(CNR)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그리고, 극좌파, 반국제화주의자, 노동조합주의자들 등등, 즉 자본의 전반적인 이해를 충심으로 옹호하는 당과 조직등 각양각색의 모든 사람들을 포괄하는 새로운 대안적인 강령(또 다른 저작으로서 곧 간행될)에 찬성해야 한단다. 다행히도, 헤셀이 특히 대상으로 했던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수많은 젊은이들은 이 모든 좌파성향의 언설에 귀기울이지 않았고 투표에 참여하지 않았다. 결국 그들은 자신들의 나라에서 사회주의적 정부들이 하는 짓을 볼 수 있는 충분한 기회를 가졌었다. 그들은 사회주의 정당들이 어떤 혹심한 긴축정책들을 펼수 있는지를, 게다가 이 정책들이 완전히 민주주의적 방식으로 결정되는 것을 자신들의 눈으로 직접 경험할 수 있었다(이는 그리스에도 해당된다). 그리고 그들은 민주주의적 사회주의 사파테로정부의 민주적 경찰의 곤봉도 경험해보았다.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헤셀은 계속해서 이 정당들을 지지할 것을 주장하고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 그로부터 젊은 세대들에게 있어서 어떤 임무들이 생겨나는가? 우리는 그들이 지배자들을 신임하거나 불신함에 있어서 기반하고 있는 그 가치들을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  그것은 민주주의의 가치들이다. 이러한 가치들의 도움으로 결정권자들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있다."[8]  어떤 영향력을 이 젊은 세대가 그들에게 그렇게 많은 비참을 강요하는 민주적 국가들에 행사할 수있는가?  아마 눈밖에 난 장관 한명쯤을 대체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다음은? 그것을 통해 진정으로 무엇이 바뀌겠는가? 아무것도 아니다! 모든 나라에서 상황은 마찬가지이다.  집권하고 있는 것이 우파정부든 좌파정부든 (아니면 남아메리카에서처럼 극좌파정부든) 상관없이, 생존조건의 전반적 인 악화에 직면한 국민 대다수와 경제의 파산을 모면하기 위해 엄격한 긴축정책을 펴는 부르주아 민주주의적 국가기구사이의 골은 점점 더 깊어만 가고 있다. 어떤 다른 길도 없다. 국가의 민주주의적 가면뒤에 자본의 독재가 항상 도사리고 있다.

   

자본주의를 손대지는 말것!

 

   "나의 세대는 세계혁명이라는 생각에 대해 단단한 알레르기를 갖고 있다. 약간은, 우리가 그것과 함께 태어났기 때문이다. 나는 러시아혁명의 해, 1917년에 태어났고, 그 해는 내 인격의 한 특징이다. 나는 우리가 폭력적 혁명적 행동들을 통해서는 기성제도권을 무너뜨릴 수 없다는, 그렇게는 역사를 추진할 수 없다는 느낌을, 부당할지도 모르지만,  갖게 되었다."[9]  약간 나중에 헤셀은 계속해서, „ 모든 사회들 속에는 고삐풀린 채 나타날 수 있는 잠재된 폭력이 존재한다. 식민지해방투쟁때가 그러한 경우이다. 폭동들, 예를 들어 노동자폭동들은 아직도 가능함을 의식해야 한다. 그러나 이는 경제적 국제화의 진전을 놓고 볼 때 가능성이 적다. 제르미날이라는 장르는 약간 낡은 것이 되어버렸다.“[10]

 

   그러니까 헤셀이 젊은 세대에게 하는 호소는 다음과 같다. 세계혁명이니 계급투쟁이니 하는생각을 머리에서 지워버려라! 이 모든 것은 과거사에 속한다. 오히려 체제의 기능방식을 개선하도록 노력하라. 어떻게? 여기서 헤셀은 천재적이고 혁신적인 제안, 모든 좌파정당들이 백년도 더 되는 동안 해온 그 제안을 내놓는다. 즉, 세계의 강대국들이 함께 모인 경제회의 및 사회회의, 일종의 전세계조정위원회의 창립을 제안한다. 세계에서 이 전세계적 조정위원회가, 위기 방지를 위해 그리고 이윤욕과 권력욕에 사로잡힌 모든 거대 금융기관들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기 위해서 경제규제를 목표로 추구할 것이라 한다. UN의 전신인 국가연맹이 1차대전후 공식적으로 거의 동일한 설립이유로 창립되었음을 상기해 보자.  그 설립이유는 상이한 국가들의 이해를 서로 화해시키는 국제기구의 도움으로 전쟁재발을 방지하자는 것이었다. 그 결과는? 2차 세계대전과  1950년이래 전 세계에서 단 14일간의 평화. 사실상 세계는 서로 경쟁하는 국가들로 조각나있고 그들은 서로간에 무자비한 통상전쟁을 끊임없이 그리고 필요시에는 무기를 들고 치르고 있다.  이 모든 조정하는 세계기구들”(세계통상기구, 국제통화기금, UN, NATO등)은  그 안에서 국가들이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강탈적인 기구들일 뿐이다.  그러나 이점을 스테판 헤셀은 결코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하나의 새로운 체제의 필요성, 국제적인 혁명의 필요성을 시인해야만 할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젊은이들이 이러한 착취체제 자체를 과격하게 문제시하게 되도록 이끌 출구를 제시하기 보다는 오히려 그들을 막다른 골목으로 보낸다.  대신에 그는 각국이 새로운 사회- 및 경제안전보장회의 내에서 새로운 정책을 펼치도록 각각의 국가에 압력을 행사하도록 젊은이들을 고무한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국가의 결정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는 시민사회의 대대적인 개입, 국민의 광범위한 동원이면 충분하단다. 이러한 참여는 젊은이들이 NGO들와 이런류의 다른 단체들에 대거 참여하는 것으로 나타나야 한다는데,  이는 많은 도전들 그리고 그와 더불어 치뤄야할 많은 투쟁들, 즉 환경, 사회, 반인종차별, 평화 및 연대적인 경제를 위한 투쟁등이 존재하기 때문이라 한다.  실제로 헤셀은 우리에게 낡은 똑같은 개량주의적 뒤범벅을 제공한다. 직접 잘 고른 재료들(국민의 시민참여, 지적인 선거참여 등등)을 가지고 자본주의는 자신이기를 즉 착취체제이기를 멈출 수 있고 더 인간적이고 사회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개량이냐 혁명이냐?

 

   "역사는 이러한 도전의 댓가인 일련의 연이은 격렬한 요동들로 이루어져 있다. 사회사는 전진하고 결국에, 인간이 완전한 자유를 획득한 후, 우리는 완성된 민주국가에 도달한다라고 헤셀은 그의 글, „분노하라!"에서 우리에게 말한다. 인류가 큰 도전 앞에 서있다는 것은, 그래서 이 모든 문제들의 해답을 찾아야하고 그렇지 않으면 사라질 것이라는 말은 맞다. 이 문제의 중심에는 사회변혁의 필요성이 놓여있다. 하지만 어떤 변혁? 자본주의는 개량될 수 있는가? 아니면 새로운 사회 건설을 위해 파괴되어야 하는가?

 

   자본주의를 개량하려 하는 것은 헛된 일이다. 이를 행하려는 것은 자본주의의 규칙과 법칙들에, 인류를 비참함과 전쟁과 무질서와 야만에 빠져들게 하는 자본주의의 모순들에 굴복하는 것을 의미한다. 자본주의체제는 착취체제인데, 착취가 인간적으로 구성될 수 있는가? 수백만의 노동자들을 댓가로 이윤을 만들어냄으로써 한 계급에게 가능한한 많은 부의 축적을 가능케하는 것이 유일한 목적인 그러한 체제가 인간적으로 될 수 있는가? 그리고 자본가들 사이에 경쟁이 첨예화되면 노동자계급이 대대적인 실업,  비정규적고용상황의 확대, 노동현장에서의 무제한적인 착취, 임금인하와 같이 댓가를 치르게 되는 그러한 체제가. 동시에, 인간들이 기본요구를 충족시키고 계급없는, 즉 불평등이 없는, 전쟁의 야만이 없는 사회를 민족국가들과 국경을 폐지함으로써 건설할 수 있을 모든 물질적 수단은 존재한다. 오직 노동자계급만이 그러한 사회의 전망을 실현할 수있다. 이 맹아는 물론 분노한 사람들운동 속에 이미 존재한다. 즉, 서로 돕고, 서로 나누며 연대감과 헌신을 나타내고, 함께함으로써 즐거운 것등등. 스페인에서 관찰될 수 있는 이 인상적인 운동은 짚단의 불같은 일시적 흥분이 아니다. 그것은 전세계 도처에서 앞으로 일어날 투쟁들을 알린다. 노동자계급이 점점 더 대대적으로 나서서 다른 피압박 계층들을 함께 합류시킬 투쟁들을. 이 투쟁들은 비인간적인 자본주의 체제에 대항해 점점 더 분명하게 나설 것이다. 그러한 투쟁들로부터,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이 필요하다는 더 커다란 의식이 생겨날 것이다.

 

Antoine. 2011년 7월 2일  (ICC)

 

    

 

 


 

[1]스테판 헤셀은 스페인에서 상당히 유명하다. 적어도 프랑스에서만큼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스페인에 살고 있고 스페인의 작가이자 특히 지금 진정한 민주주의를의 창시자이기도 한 경제학자 호세 루이 삼페드로와 친구로 지낸다. 호세 루이 삼페드로는 헤셀의 캠페인에서 영감을 얻은 팜플렛을 간행했고 또 「분노하라!」의 스페인어판에 서문을 썼다.

[2]CNR은 스테판 헤셀에게 있어서 역사적인 준거점이고 뒤따라야할 모범이다. 우리는 나중에 이점에 대해 언급하고 싶다.

[3]Indignez-Vous!(분노하라!) , 15쪽

[4]같은 책, 11쪽

[5]같은 책, 12쪽

[6]Engagez-Vous(참여하라)!,  16쪽

[7]위과 같은 책 43쪽과 44쪽

[8]Engagez-Vous(참여하라)!, 22쪽

[9]같은 책, 20쪽

[10]같은 책,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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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주의와 한국 사회주의(전체)운동에 대한 회고

마르크스주의와 한국 사회주의(전체)운동에 대한 회고1)

                                                                                                                          -오세철

 

 

 

                                -1990년대 이후-

 

 

이 글은 필자가 20여 년간 몸담아 왔던 사회주의 정치운동의 경험에 기초하여 역사를 되돌아보는 글이다. 회고의 역사에 대한 평가에는 마르크스주의의 원칙이 요구된다. 마르크스주의는 유사한 공산주의적 사상과 구별되는 과학적 사회주의 또는 코뮤니즘이다. 마르크스주의의 또 하나의 원칙은 지배계급과 소부르주아지로부터 오는 이데올로기, 즉 종파주의, 개인주의, 기회주의, 모험주의와의 투쟁이다.

 

첫째, 1990년대 초반의 사회주의 정치운동을 NL, PD, ND 사이의 논쟁으로 살펴보면 그 당시 우리 사회 이론진영과 실천진영이 국제주의적 마르크스주의와 너무 떨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러시아 혁명에 배타적으로 의존한 역사해석으로 폭넓은 역사인식이 부족한 점, 이른바 “사회주의 국가”에 대한 본질 분석과 함께 세계 자본주의에 대한 분석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점이다.

 

둘째, 1990년대 중반의 국제 사회주의운동을 평가하면, 실천운동으로서의 사회주의운동이 국제주의 경향과 만났다는 점이다. 이 세력은 스탈린주의, 마오주의, 김일성주의를 같은 것으로 보았으며 혁명당이 아닌 진보정당 건설을 격렬하게 비판했다.

 

셋째, 2004년 이후 혁명적 사회주의운동을 살펴보면, 이 세력은 1997년 IMF 관리 체제 아래에서 세계 자본주의의 위기의 경험과 그 위기의 한국 자본주의에의 관철을 통해 보다 근본적인 세계 자본주의 쇠퇴의 과정을 살펴보게 되고 역사유물론과 방법론으로서의 변증유물론의 원칙을 부여잡게 된다.

 

넷째, 혁명적 마르크스주의 운동의 미래는 쇠퇴하는 자본주의의 객관적 인식과 더불어 밑으로부터 올라오는 노동계급의 투쟁이라는 주체적 조건에 달려 있다. 이를 위해 세계의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단결과 연대를 통한 세계 혁명당의 건설과 소비에트 건설을 향한 노동계급의 자발적 투쟁이 요구된다.

 

 

 

1. 들어가며

 

소련 붕괴 이후 한국의 사회주의(정치)운동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이를 마르크스주의의 역사관으로 다시 정립하는 작업은 마르크스주의 역사 연구자뿐만 아니라 혁명적 사회주의자의 몫이다. 이 글은 그러한 책임 있는 연구 성과물이 아니다. 단지 이 글은 지금까지 내가 몸담아 왔던 사회주의 정치운동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면서 역사를 거꾸로 뒤돌아보는 회고의 글임을 밝힌다.

 

역사에 대해서 지금 내가 지니고 있는 정치적 입장과 원칙 위에서 나름대로 해석하고 평가한 것이기 때문에 이 글에 대한 책임은 내가 진다. 1990년, 2004년, 그리고 2006년 내가 쓴 글을 차례로 인용하면서 시작하려 한다.

 

“마르크스가 오래전에 관념론과 교조주의 그리고 모험주의, 기회주의와 끝까지 싸우며 비판했던 것처럼 변증법적 유물론과 역사유물론의 올바른 정립을 이루어야 한다. …… 이른바 ‘개혁사회주의’에 대한 환상을 버리고 회의의 늪에서 빠져나와 교조주의의 고집과 우경화의 변질을 준엄하게 꾸짖으면서 관념론, 수정주의, 모험주의, 소시민적 혁명주의와 싸워야 한다. …… 마르크스주의의 주요 원칙인 이론과 실천의 통일, 혁명적 사유와 행동의 통일을 굳건히 견지하면서 과학적 사회주의의 빛나는 전통성을 훼손시키지 말아야 할 것이다”(오세철, 1990: 16-19).

 

“20여 년간 사회주의 정치운동에 몸담아 오면서 내가 끊임없이 문제제기 하고 비판했던 것은 사상의 동요와 변질이었다. 이런 사상적 동요가 현장과 대중조직뿐만 아니라 정치조직과 사회운동조직에서도 확산됐고 전체 운동을 합법 개량주의의 늪으로 빠지게 한 요인이 됐다. 전 세계적인 신자유주의(체제, 이념, 정책을 모두 포함한)의 위력은 동북아를 포함한 한반도에도 어김없이 전면적으로 관철되고 있으며, 한국의 대중운동과 정치운동 또한 신자유주의에 포섭되고 있는 실정이다. 사회적 합의주의의 틀 속에서 현장에 기반을 둔 대중투쟁을 포기하고 교섭주의로 나아가는 민주노총과 억압받는 현장에 기반을 둔 혁명적 사회주의정치를 포기하고 사회개량적 선거정치로 급속하게 전화된 민주노동당이 혁명적 사회운동 영역을 시민운동으로 재편하면서 신자유주의의 이중대로 나아갈 개연성이 크다. 이는 오랫동안 혁명적 운동의 전통이 뿌리내린 유럽의 경우에도 벌어지고 있는 보편적 경향이며 제3세계의 경우에는 오히려 신자유주의로의 포섭 속도가 더욱 빠르게 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오세철, 2004).

 

“우리는 지금까지 세계 여러 곳에서 정기적으로 마르크스주의자 대회(모임)가 열리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 대부분은 강단의 추상적 논의나 자본주의의 좌파에 속하는 정치적 세력들의 연대를 위한 행사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자본주의 데카당스 시대의 객관적이고 주체적 조건이 야만과 전쟁을 넘어서서 진정한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도 우리는 더욱더 깊이 인식하고 있다. 한국의 노동계급은 현장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고 혁명적 정치세력은 전망을 분명하게 열어젖히지 못하고 있지만 과거 혁명운동이 국제주의의 원칙을 저버리면서 참담한 패배를 경험했던 역사를 뿌리로부터 반성하면서 우리는 하나의 현장, 하나의 국가, 하나의 민족을 넘어서는 세계 프롤레타리아트의 단결을 이루어내야만 한다. 이번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 국제대회는 한국의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들과 세계의 좌익공산주의자들과의 소중한 만남과 토론의 마당이며 혁명적 마르크스주의 진영 내의 입장과 노선 차이를 드러내고 소통하는 첫 번째 경험이 될 것이다. 대회의 주제를 이론, 실천, 전망으로 구분하고 이를 꿰뚫는 인식의 지평을 넓혀 나가는 것이 이번 대회의 주요 목표이다. 우리는 이번 국제대회를 시작으로 세계의 혁명적 마르크스주의 세력이 연대하고 단결하여 세계혁명을 향한 힘을 축적하고 세계의 프롤레타리아트와 함께 그 역사적 과업을 완수하기를 바란다”(오세철, 2006).

 

그 당시 전술당으로서의 ‘민중당’ 건설에 인텔리가 집단적으로 참여했지만 당내 민주주의에 대한 문제제기와 소련 붕괴로 인한 사상 동요에 항의하여, 인텔리 그룹과 젊은 활동가 그룹이 탈당하게 되고 그 이후 나는 마르크스주의의 원칙을 견지하면서 사회주의 정치운동을 계속해 오고 있다. 위의 인용문은 그러한 일관성을 표현하는 보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사회주의 운동세력이 지녀왔던 한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고백을 하지 않을 수 없다.

 

 

2. 역사적 평가에 필요한 마르크스주의의 원칙

 

1980년대의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이해를 지금의 시점에서 뒤돌아보면 얼마나 단편적이고 피상적이었는지 깨닫게 된다. 마르크스엥겔스의 전집이 일부 번역된 것도 1990년대에 들어서였고 1987년 이후 레닌전집의 일부가 번역되어 나왔다. 이른바 ‘마르크스-레닌주의’로 통칭되는 스탈린주의를 마르크스주의와 동일시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그 당시의 일반적인 경향이었다. 광주민중항쟁을 겪으면서 민족주의적 볼셰비즘에 대한 친화적 경향이 더욱 커졌으며 군사 파시즘의 한국과 짜르 체제의 러시아 상황을 비교하면서 혁명적 정세를 해석하려는 경향도 정서적으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었다. 일본 번역서를 통한 독해, 주체사상의 도입들이 이러한 척박한 이론풍토에 가세하면서 마르크스주의는 스탈린주의의 교리로 채색된 채로 교조화됐다.

 

‘과학적 사회주의’로 부르는 마르크스주의는 유사한 공산주의적 사상과 구별하기 위해 쓰였다. 초기 기독교, 스팔타쿠스 노예반란, 영국 농민봉기와 같은 초기 공산주의 사상은 돌아갈 수 없는 잃어버린 공동체를 찾으려는 복고적이고 신비주의적 요소를 지닌 사상이었고 16세기 독일 뮌처(Mu¨nzer)가 이끄는 재세례파(Anabaptist) 운동으로부터 영국 내전의 윈스탄리(Winstanley)와 디거스 (Diggers)로 그리고 프랑스 혁명의 바뵈프와 ‘평등인의 음모’(Conspiracy of the Equals) 같이 종교적이고 계시적 관점에서 착취적 사회질서로부터의 인간해방의 능력을 강조하는 운동, 그리고 산업자본주의의 공포를 비판한 오웬, 생시몽, 푸리에의 사상은 자본주의에 의한 역사적 진보와 과학적 세계관 그리고 프롤레타리아트의 부상에 근거한 마르크스의 ‘과학적 사회주의’와 구별된다.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마르크스는 공산주의 의식이 프롤레타리아트로부터 나오고 공산주의 전위는 이 과정의 산물이라고 주장했는데, 이는 50년 후 카우츠키가 “외부로부터” 노동계급에게 주입되는 공산주의 의식을 가진 사회 인텔리켄챠라는 테제에 대한 반박이었음을 웅변적으로 말하고 있다. 또한 『1844년 경제철학수고』는 자유로운 사회에서의 인간 활동의 본질에 대한 통찰을 담고 있는데 이 글이 헤겔의 철학체계의 주요 개념인 소외를 다루었기 때문에 “마르크스 이전”의 글로 여겨졌지만 마르크스의 초기 저작과 『자본론』같은 후기 저작 사이에는 근본적인 연속성이 있으며 그 후『요강』에서도 이어진다. 여기서 우리는 마르크스가 말한 공산주의를 요약할 필요가 있다.1)

 

첫째 밑으로의 “평등화”라는 의미와는 반대로 “역사의 수수께끼가 풀리는” 인류의 거대한 진보이다. 둘째, 특히 화폐와 자본의 지배하에 있는 생산이 인류를 끊임없이 경쟁하는 원자로 갈라놓는다면 공산주의는 인간의 사회적 본성을 회복하게 해서 노동의 만족이 타인의 욕구를 위해 이루어지게 한다. 셋째, 분업이 개인 수준에서 극복되는 것은 생산자가 더 이상 단일한 활동형식(육체노동이건 정신노동이건)에 매이게 하지 않고 정신적·육체적·예술적·지적 활동이 결합되는 전인적 인간이 된다. 넷째, 빈곤과 강제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은 세계에 대한 새로운 경험, “모든 감각의 해방”의 길을 열어 놓는다. 인간은 더 이상 자연에 반대하는 원자화된 자아가 아니라 자연과 통일된 새로운 의식을 경험한다.

 

마르크스주의 원칙은 1차 인터내셔널에서의 논쟁과 고타강령비판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1차 인터내셔널에서의 논쟁은 첫째, 부르주아 개혁주의자에 대항하는 노동계급의 자기해방의 원칙과 부르주아 민족주의자에 대항하는 계급 자율성의 원칙이고 둘째, 반정치적 입장과 무정부주의자의 연방적 편견에 대항하는 프롤레타리아 정치와 집권조직의 방어이다. 이 두 가지 원칙은 사회주의 정치운동을 평가하는 기본이 된다. 1875년 ‘독일사회주의노동당’은 라쌀레의 국가숭배주의와 베벨과 리프크네히트 같은 마르크스주의 분파의 타협의 산물인데, 마르크스는 『고타강령비판』에서 혁명과 공산주의 문제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첫째, 당면한 개혁과 장기적 공산주의 목표를 혼합시킨 강령을 비판하고, 둘째, 사회민주주의를 민주적 개혁의 계급당으로 만든 경향을 반대하여 당의 계급적 성격을 분명히 했으며, 셋째, 교육받은 엘리트로서의 당의 대체주의적 사고를 반대함으로써 부르주아 편견의 척결을 주장했고, 넷째, 개혁을 통해 사회주의로 이끄는 “인민국가” 개념에 대한 환상에 반대했으며, 다섯째, “공평한 분배”를 요구하는 강령에 반대하면서 교환과 가치법칙의 폐지를 요구했다.

 

마르크스주의의 또 하나의 원칙은 지배계급과 소부르주아지로부터 오는 이데올로기와의 투쟁이다. 그러한 이데올로기는 종파주의, 개인주의, 기회주의 그리고 모험주의 등이다. 종파주의는 조직에 대한 소부르주아 개념의 전형적인 표현으로서 자신을 “세계의 유일한 하나”로 보고 프롤레타리아 조직의 다른 조직을 경쟁자나 적으로 보고 논쟁을 회피하는 경향이다. 개인주의는 역사주체를 개인으로 인식하고 투쟁을 모든 사람에 대한 개인투쟁으로 본다. 소부르주아지거나 프롤레타리아 조직에 새롭게 프롤레타리아화된 요소인 농민, 장인, 인텔리, 학생의 경향이다. 또한 기회주의는 역사적 미래가 없다는 인내심 부족으로부터 나타나며 프롤레타리아트와 부르주아지 두 계급 사이의 입장과 이해를 조화시키려는 경향이다. 끝으로 모험주의는 비타협과 급진화라는 이름 아래에서 어느 때나 부르주아지에 대한 공격이 가능하다고 보고 투쟁조건이 존재하지 않더라도 “결정적”인 투쟁에 돌입한다고 하는 경향이다. 따라서 실패할 투쟁으로부터 노동계급을 방어하려는 프롤레타리아트와 마르크스주의의 흐름을 기회주의로, 심지어 반동적이라고 낙인찍는 것을 서슴지 않는다. 실제로 이러한 경향은 기회주의와 같은 소부르주아 조급성 때문에 기회주의로 수렴된다. 

 

이러한 이데올로기와의 투쟁의 보기는 다음과 같다. ① ‘국제노동자협회’ 내에서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벌인 바쿠닌에 대한 투쟁, ② 1860년대와 1870년대의 라쌀레의 ‘국가사회주의’에 대한 투쟁, ③ 19세기 말 베른슈타인류의 수정주의와 개량주의에 대한 투쟁, ④ 멘셰비즘에 대한 투쟁, ⑤ 제1차 세계대전 후의 카우츠키와 중도주의에 대한 투쟁, ⑥ 코민테른의 퇴행과 1920년대와 1930년대 공산당(스탈린주의)에 대한 투쟁, 그리고 ⑦ 1930년대 트로츠키주의의 퇴행에 대한 투쟁이 여기에 속한다.

 

 

3. 1990년대 초반의 사회주의(정치)운동에 대한 평가

 

1989년부터 1991년 중반까지 사회구성체를 둘러싼 논쟁은 주로 ≪현실과 과학≫과 ≪우리사상≫ 사이에서 이루어졌다. ≪현실과 과학≫은 PD를 대변한 반면 ≪우리사상≫은 ND를 대변했다. ≪현실과 과학≫은 연구자 중심의 집단이었지만 ‘노동계급’ 그룹과 관련이 있었고, 이들 그룹은 ‘인민노련’ 및 ‘삼민’과 통합하고 그 주력인 인민노련은 민중당의 다수파로서 그 이후 합법개량주의의 주도 세력이 된다. ≪우리사상≫은 ‘사노맹’의 기관지 역할을 했다(사노맹도 민중당에 개입했다). ≪현실과 과학≫은 소련공산당 제26차 당대회(1981년)와 제27차 당대회(1986년)의 논쟁을 검토하면서 27차 당대회에서의 종속국독자론의 기각을 평가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역사발전의 보편성으로서의 세계사 또는 그 합법칙적 발전으로서의 현대에 대한 설명에 불과하다. 이제 역사발전의 특수성 또는 그 합법칙적 발전의 차별화, 즉 유형론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우리가 신식국독자론이라 부르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의미의 보편성과 특수성의 변증법적 통일을 가리킨다”(윤소영, 1999: 172).

 

그리고 제4집에서는 “그 동안 우리는 한국판 쁘띠부르주아 민족주의인 주체 사상과의 사상·이론을 투쟁을 통해 노동계급의 관점에 입각한 변혁의 과학적 전망을 모색해왔다. 그 결과물로서 우리는 (적어도 2집 이후로는) 신식국독자/반제반독점PDR론의 ‘세계’를 나름대로 제시하기에 이르렀다”(≪현실과 과학≫ 제4호, 1989: 8). 여기서 이 그룹이 비판한 식민지반봉건사회/반제반봉건NLPDR론 은 마르크스주의와 아무런 관련이 없기 때문에 더 이상 언급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그 뒤의 논쟁의 초점이 NDR론 쪽으로 나아갔기 때문이다. ≪현실과 과학≫이 ND 그룹을 비판하는 강도는 점점 커진다.

 

“이정로 씨는 불행히도 자신이 하고 있는 말이 제2인터내셔널의 기회주의자들(카우츠키, 플레하노프, 심지어는 트로츠키)의 그것과 동일하다는 것 그리고 그러한 말과 실천은 마르크스주의 과학으로부터의 일탈이라는 것을 이해할 능력이 없다”(이창휘, 1989: 11).

 

“우리는 다시 한 번 ‘이론적 청산주의’나 경험주의와 일선을 분명히 그어두지 않으면 안 된다. 소위 ‘계급투쟁적 관점’에 의한 비판이 그 하나이다. 이러한 좌익 비판가들은 우리의 이론적 탐구에 대해 ‘계급투쟁적 관점’이 결여되어 있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은 실제로는 진지한 이론적 탐구에 의해서만 해결될 수 있는 문제들을 혁명적 공문구로 덮어두는 것에 다름 아니다”(≪현실과 과학≫ 제6호, 1990: 7).

 

“페레스트로이카를 계기로 준동하고 있는 비당파적 조류의 본질이 민중의 민주주의적 열망을 수단화하고 그 결과로서 민중의 투쟁을 자유주의 세력의 부수물로 전락시키는 데 있음을 최근의 양상에서 확인됐던 터이다”(≪현실과 과학≫ 제9호, 1991: 6).

 

이에 대해 ND 그룹의 본격적 대응은 ≪우리사상≫ 창간호(1991년 5월)에 잘 드러나 있다. 창간사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노동해방’ 사상은 본래 물질적 힘과 실질적 투쟁을 지향하는 혁명적 사상으로 태어났다. …… 미약한 사상적 조직적 수준에서 엄청난 희생을 치르며 시작한 남한의 혁명운동은 80년대를 거치며 실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반제투쟁, 반파쇼투쟁, 통일투쟁의 각 영역에서 획기적인 변화를 이루었으며 무엇보다도 혁명운동의 주체로서 노동자 계급과 근로민중이 자유민주주의 부르주아세력과 구별되는 독자적 정치세력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 그 간의 과정에서 이론 수준은 극적인 발전을 이룩했다. 사회구성체론, 혁명론, 국가론, 계급론 등 남한 혁명의 전략과 전술 등 혁명운동의 전반에 이르는 이론적 기초가 폭넓게 형성되고 있다”(≪우리사상≫ 창간호, 1991: 창간사).

 

이들 그룹은 남한을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로 규정하면서 자신들의 이론적 기초를 ‘마르크스-레닌주의’로 부르고 있다. PDR론을 비판하면서 PD의 독점강화 종속심화 테제의 한계를 비판하고 북한과의 연대를 통한 민족민주혁명을 주장한다.

 

“PD파의 ‘좌’편향적, 경제주의적 변혁이론을 비판하기 위하여 …… 이 속에서 우리는 다시 한 번 남한 당면 변혁은 ‘노동해방변혁 단계’와 질적으로 구분되는 ‘민주주의 변혁단계’라고 규정한다”(≪우리사상≫ 창간호, 1991: 104).

 

이들 그룹의 당시 소련과 북한에 대한 인식은 눈여겨볼 만하다.

 

“신연방안의 국민투표에서의 통과를 통해 고르바초프로 대변되고 있는 ‘정통 마르크스주의와의 중립적 세력연합’이 부르주아적 개혁세력으로부터의 승리를 거두면서 가시화됐다”(≪우리사상≫ 창간호, 1991: 104).

 

“중국, 쿠바, 북한은 굳건한 반제 사회주의혁명의 기지이자 프롤레타리아적 개혁의 전형으로서 전 세계 노동자 계급에게 희망을 주고 있다”(≪우리사상≫ 창간호, 1991: 36).

 

“북한이 최근 거두고 있는 ‘통일운동의 진전과 새로운 동북아 질서의 구축’의 측면에서의 중대한 성과를 통해 입증되고 있다. …… 이러한 성과는 북한이 부르주아적 개혁·개방 압력으로부터 사회주의적 혁명운동을 굳건히 수호하고 공산주의로의 이행을 앞당길 것임을 입증하는 것이다”(≪우리사상≫ 창간호, 1991: 39-40).

 

이 시기의 논쟁을 돌이켜보면 그 당시 우리 사회 이론진영과 실천진영이 국제주의적 마르크스주의와 너무 떨어져 있었음을 실감할 수 있다. 몇 가지로 정리해 보자.

 

첫째, 세계혁명에 대한 폭넓은 역사인식이 부족하여 러시아 혁명의 영향력이 우리나라 사회주의운동에 깊이 침윤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이는 1930년대부터 코민테른 영향 아래 종속되어 있던 과거로부터 한국 전쟁으로 인한 분단, 자생적 사회주의운동의 고사로부터 기인한 것이기도 하지만 역사적으로 축적되지 않은 사회주의운동의 사상과 이론 그리고 올바른 실천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지는 PD와 ND의 입론이 여전히 그 당시 소련 공산당의 논쟁이나 아니면 레닌과 스탈린 저술에 의존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대한 역사적 접근이나 마르크스주의의 전통과 원칙을 지키려했던 유럽 공산주의운동의 역사와 사상가에 대한 인용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혁명이 성공한 러시아를 본보기로 보면서 실패한 유럽 혁명을 뒤돌아보지 않는 배타적 정서도 한몫을 했다고 본다.

 

둘째로 이른바 “사회주의 국가”에 대한 본질 분석과 함께 세계 자본주의에 대한 분석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여전히 분석수준이 일국적 수준에 머물고 있었고 이는 민족주의적 색조와 함께 스탈린주의의 일국사회주의론에 함몰되어 있었다. 자본주의 쇠퇴가 세계적으로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에 전개되면서 전쟁과 파시즘으로 이어지는 세계 역사에 대한 역사 유물론적 해석과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 주체를 올바르게 인식하는 변증 유물론적 해석을 총체적으로 불가능하게 함으로써 혁명과 반혁명의 소용돌이를 구분할 수 없게 한 것이다.

 

이론적 기반을 ‘마르크스-레닌주의’로 부르는 것은 기본적으로 반혁명의 스탈린주의를 교조로 삼은 결과 마르크스주의의 기본원칙과 동떨어져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양진영 테제도 소련을 사회주의의 중심으로 보고 세계 부르주아지와 투쟁하는 세력으로 규정하여 동맹·연대 세력으로 수용한다. 프롤레타리아트의 잉여노동을 점유하고 국가자본의 축적이라는 특수한 기능을 수행하는 계급으로서의 “사회주의 국가”는 낡은 부르주아지에 불과하다. 국가와 그 관료조직에 의한 자본주의적 생산의 집중화와 계획화는 소유의 폐지를 향한 진전이 아니라 착취강화를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식할 수 없었다.

 

ND의 소련과 다른 ‘사회주의 국가’에 대한 인식은 이를 극명하게 드러내 주고 있으며 북한에 대한 인식은 이러한 규정의 극치에 달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현실과 과학≫ 역시 소련 등의 국가에 대한 입장을 드러내지 않지만 여전히 사회주의 국가로서의 신뢰를 보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ND와 차이가 있다면 2단계혁명론을 부정하면서 민중민주혁명론을 주장하고 있을 뿐이다. 어쨌든 이들 세력은 탄압으로 소멸됐거나 스스로 합법개량주의로 전환됐다. 서로 종파주의, 기회주의 또는 모험주의로 비판하여도 이는 원래의 의미와 다른 의도로 사용됐다. 요약하면 이 당시 논쟁은 소련의 몰락이라는 중대한 역사적 경험을 경과하면서도 소련 등 “사회주의” 국가의 본질, 세계 자본주의의 데카당스의 특성에 대한 깊은 이해에 기반을 두지 않은 남한 사회에서의 혁명론, 조직론에 매달리면서 마르크스주의의 국제주의와 분리됐다. 한국사회성격 분석이나 일국혁명론은 여전히 소련과 북한이라는 스탈린주의의 틀 속에 갇힐 수밖에 없었고 마르크스주의와의 올바른 만남을 단절시켰다.

 

 

4. 1990년대 중반 국제 사회주의운동에 대한 평가

 

스탈린주의를 ‘마르크스-레닌주의’로 미화시킨 스탈린의 영향력으로부터 해방되기는 쉽지 않았다. 소련 같은 국가자본주의의 몰락을 목격하고 그것이 사회주의 모델로 보았던 수많은 활동가들은 푯대를 잃고 방황하거나 좌절했으며 소부르주아의 본성으로 돌아가거나 부르주아지에 투항했다. 일부 연구자들은 마르크스의 원전을 찾아 읽고 마르크스주의의 원칙으로 돌아가려는 학습을 시작했고 일부는 재빠르게 포스트류의 담론으로 간판을 바꾸었다. 여전히 스탈린주의를 고수하려는 세력은 스스로를 ‘레닌주의자’로 부르고 레닌의 저작에 다시 빠져들었고 그렇지 않은 반스탈린주의의 경향은 급속하게 트로츠키를 읽고 트로츠키주의의 경향들에 다가가기 시작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실천운동으로서의 사회주의운동이 국제주의적 경향과 만났다는 사실이다. 국제사회주의자 그룹(IS)의 기관지 ≪사회주의 노동자≫는 제2호에서 자신들의 입장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1992년 “우리의 입장”에서 그들은 사상적 전통을 마르크스, 엥겔스, 레닌, 룩셈부르크, 트로츠키, 그람시로 규정하면서 “≪사회주의 노동자≫와 ≪국제사회주의≫를 만드는 편집부는 마르크스와 레닌과 룩셈부르크의 국제사회주의 사상을 ‘일국사회의론’으로 뒤집어버린 스탈린에 반대해 트로츠키와 그람시가 그것을 옹호했을 뿐 아니라 더욱 발전시켰다고 믿는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이다”(≪사회주의 노동자≫ 제2호, 1992: 103)라고 밝히고 있다. 또한 이들은 국제주의적 입장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우리는 다른 나라 노동자 계급과의 연대를 지지한다. 우리는 한 나라의 노동자와 다른 나라의 노동자를 분열시키는 민족주의에 반대한다. 우리는 제국주의-동서방 모두의-에 반대한다. 우리는 모든 피억압 민족의 민족자결권을 옹호한다. 우리는 피억압 민족의 반제 민족해방투쟁을 지지한다. …… 사회주의 혁명은 생존하려면 확산되어야 하며 사회주의는 한 나라에서는 건설될 수 없다. 북한,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가 아니라 국가자본주의 국가이다. 우리는 여성의 진정한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평등을 지지한다”(≪사회주의 노동자≫ 제2호, 1992: 110).

 

여기서 트로츠키주의의 역사를 거론할 필요가 없다. 중요한 것은 소련을 포함한 중국과 북한을 국가자본주의로 규정한 것이다. 물론 “퇴행한 노동자 국가”로 보는 제4인터내셔널 계열의 입장보다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음을 눈여겨 보아야 한다. IS의 국가자본주의론을 상세하게 검토할 필요는 없다.2) 특기할 것은 이들이 룩셈부르크를 레닌과 함께 거론한 것, 그람시를 전통의 반열에 올려놓았다는 사실이다.3)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족해방투쟁에 대한 적극 지지를 표시함으로써 국제주의의 원칙과의 모순을 드려내고 있다. 그런데 이들 그룹은 2~3년 후에 내부논쟁 끝에 분리된다. 혁명적 진영임을 자임하는 그룹은 나머지 경향을 기회주의적 진영으로 규정하고 남한의 멘셰비키로 부르고 있다. 이들 문건은 1994년 11월 29일 『현 단계 남한 운동에서 국제사회주의의 두 가지 전술과 두 가지 조직노선』(당 창건을 위해 투쟁하는 국제사회주의자들)로 나타난다. 이들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남한 국제사회주의는 이제 그 전사(前史)를 마감할 시점을 맞고 있다. …… 전사 시기는 국제사회주의가 남한 운동에서 스탈린주의에 대한 사상적 대안으로 떠오르고 정착된 시기였다. 이 시기에 국제사회주의는 스탈린주의에 반대하여 혁명적 마르크스주의를 옹호하기 위해 거머쥐어야 할 유일한 이념적 대안이었다. 이른바 ‘현존 사회주의’가 국가자본주의에 지나지 않음을 밝히면서 ‘노동자 계급의 자기해방으로서의 사회주의’ 사상을 정력적으로 옹호해 낸 것은 무엇보다도 이 시기 국제사회주의자들의 훌륭한 업적이었다. 현 단계 남한 운동에서 노동계급 전위당 건설을 사회주의자의 최우선적 임무로 인식하며, 그것을 위한 당면 실천의 중심 고리로의 전국적 정치선동의 조직화를 핵심적 투쟁방향으로 제기하는 하나의 경향과, 전체 노동계급 운동의 이익과 분리된 별개의 이익을 내세우고 이를 정당화하기 위한 모든 이론들을 고안해내면서 오직 종파의 양적 성장을 ‘사회주의자의 임무’로 내세워 추수주의로 기꺼이 나아가고 있는 다른 한 경향, 국제사회주의 내의 이 두 경향이 이제 완전한 형태를 취하면서 각자 자신의 진정한 이름으로 싸울 수 있게 됐다. 그것은 국제사회주 의 내의 투쟁하는 두 진영, 혁명적 진영과 기회주의적 진영이다”.

 

이 두 세력이 분화되기 전 표면적인 공통점은 그 당시 좌익 세력을 스탈린주의 세력으로 규정했다. 스탈린주의, 마오주의 그리고 김일성주의를 같이 보았으며 혁명당이 아닌 진보정당 건설을 격렬하게 비판했다. 즉 그 당시 좌익들이 노동자 계급의 자기해방을 부정하고 일국사회주의의 신봉자들이었다는 것이다. 이들은 1990년대 초 벌어진 PD와 ND에 대한 논쟁을 벌인 사노맹과 인민노련을 겨냥하고 있었다.

 

그런데 혁명주의 노선을 자임하는 그룹은 1995년 ≪노동해방의 불꽃≫ 창간호에서 자신들의 입장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주요 단락을 인용하기로 한다.

 

“현 남한 사회에 미완의 부르주아 민주주의혁명과 과제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마르크스주의 전통에서 부르주아 민주주의혁명의 과제라고 지목되어 온 것들, 즉 농업문제의 해결-전 자본주의적 착취양식의 제거, 토지 소유의 해체의 의미에서-와 민족해방, 그리고 민주공화정 따위는 더 이상 남한에서 혁명의 과제가 아니다”(≪노동해방의 불꽃≫ 창간호, 1995: 26).

 

“≪사회주의 노동자≫와 ≪사회주의 평론≫을 내고 있는 국제사회주의자들 (IS)은 전형적인 남한의 멘셰비키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강령적 문건 90년대 중반 남한에서 사회주의자들의 행동지침.을 통해 러시아의 멘셰비키가 그랬던 것처럼 ‘과정으로서의 조직(당 건설)’과 ‘과정으로서의 전술’ 이론을 체계화하고 최근에는 자본주의적 통일을 호소하면서 멘셰비키와 똑같은 기회주의적 실천으로 나아갔다”(≪노동해방의 불꽃≫ 창간호, 1995: 27).

 

“국제사회의자들(IS)은 자신들의 기관지 ≪노동자 연대≫와 ≪사회주의 평론≫에서 ≪노동해방의 불꽃≫을 발행하는 ‘당 창건을 위해 투쟁하는 국제사회주의자들’과 ‘노동자 계급의 해방을 위해 투쟁하는 사회주의자들’(노해투사)을 ‘순수주의’, ‘초좌익주의’로 비난했다. 이유는 두 그룹이 민족통일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 문제는 IS가 자신들의 추수주의적 전술관에 바탕을 둔 ‘전술변화’를 통해 혁명적 마르크스주의를 저버리고 민족주의로 경도되어 노동계급의 이익을 저버리고 있다는 것이다”(≪노동해방의 불꽃≫ 창간호, 1995: 83).

 

“남한에서 사회주의자들이 건설할 당은 선전주의 ‘당’과는 다른 전투조직으로서, 공장세포를 통해 ‘노동자 대중의 일상적 요구 투쟁에서 선두에 섬으로써 대중을 노동자 권력을 위한 투쟁으로 안내하는’ 전략노선을 지향한다. …… 공장위원회, 직장위원회 같은 소비에트형 조직에 기반을 두어 대중의 부분적인 요구 투쟁을 주도함으로써 프롤레타리아독재를 위한 투쟁으로 나아가게 한다는 코민테른 초기의 전략노선은 남한 사회주의자들에 의해서도 마땅히 추구되어야 한다”(≪노동해방의 불꽃≫ 창간호, 1995: 73).

 

IS 내부 투쟁이 전술과 조직노선에 맞추어지면서 전개됐지만 핵심적 쟁점은 다시 스탈린주의에 대한 원천적 문제제기가 되어 코민테른 초기의 소비에트 전략노선에 입각한 코민테른 7차의 민중통일전선전략에 대한 비판으로 한 단계 상승했다는 점이다. 이는 결국 북한에 대한 태도와 연결되고 당 건설 투쟁의 현안으로 귀결된다. 위의 논쟁에서 어느 그룹이 마르크스주의의 원칙에 충실했는가를 평가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트로츠키주의가 지닌 문제, 보기를 들어 사민주의와 연대한 통일전선전략 그리고 반파시즘 전선, 사민당 내의 입당전술 등이 결국 핵심적 쟁점이 될 수밖에 없다. ‘불꽃’ 그룹이 IS와 분리한 원칙이 올바른 방향임에는 틀림없으나 국제 공산주의운동의 역사를 트로츠키주의로 협소화하고 그에 대한 원칙적인 비판적 평가로 나아가지 않았다는 점은 논쟁의 지점을 역시 일국적 관점으로 끌어내렸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이어서 논쟁은 조직노선으로 이어져 ‘신질서’ 그룹과 ‘불꽃’ 그룹 사이에, 그리고 ‘노동해방의 길’과 ‘선진노동자의 길’(‘노동해방의 불꽃’의 연속성) 사이에서 계속된다. ‘신질서’와의 논쟁은 전위당 노선과 평의회공산주의 노선 사이의 대립으로, ‘노동해방의 길’과의 논쟁은 소비에트 노선과 “집단적 지식인의 결합체로서의 사회주의 조직” 노선으로 대립한다.

 

‘신질서’는 전위당 노선을 비판하면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과거 전위당 건투운동, 혹은 전위당 노선이 갖고 있는 오류는 분명하게 비판되어야 한다. 특히 물질성 이론에 기초한 ‘밖으로부터의 주입’ 사상은, 엘리트주의를 구조화시켰으며 계급대중과의 결합을 일방적인 관계로 협소화시켰고 정치선동을 정치폭로 정도로 격하시켰다. …… 우리는 과거의 전략노선을 국가주의적 관점에 입각한 단일 당봉기 전략, 그 구체태인 통일전선전략이라고 규정했으며(NDR, NLPDR, AMCPDR 등이 여기에 속한다) 대안으로 소비에트 이행전략을 주장한 바 있다. 소비에트 이행전략은 통일전선보다 계급조직인 공장 세포와 소비에트형 노동자 투쟁조직에 조직적 무게중심을 설정하고 전선운동은 이것을 지지, 엄호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토대로 해서만 존립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신질서≫ 2호, 1995: 161).

 

‘신질서’의 반당적 경향을 비판하는 ‘맥박’(노동해방의 불꽃)은 ‘신질서’의 “소비에트형 전략”을 혁명 전략이 아닌 무당파적 지식인들이 벌이는 변혁론 논쟁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고 비판하면서 다음과 같이 응수하고 있다.

 

“‘신질서’는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의 구현체 그 자체인 레닌주의/볼셰비즘을 괴이하게도 그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와 대립시키고 있다. 그 때문에 ‘신질서’의 ‘소비에트 전략’은 레닌주의 당에 반대하는 절대 자유주의 종파들의 평의회공산주의 노선과 비슷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전위당 건설에 반대하여 일상적 상황에서 평의회를 건설하려는 평의회공산주의는 초좌익적 대리주의 실천을 조장해왔다. …… 실제로 ‘신질서’는 볼셰비즘을 ‘단일당 봉기전략, 단절적 이행전략’으로 오해함으로써 볼셰비즘에 대한 시민운동론자들의 상투적 왜곡에 가세하고 있다”(≪노동해방의 불꽃≫, 1996: 62-63).

 

그런데 ≪노동해방의 길≫은 원칙상의 초좌익과 실천상의 대중추수주의의 기묘한 결합이 트로츠키 진영의 기본특징이라고 비판하면서 ≪불꽃≫ 그룹을 평가하고 있다.

 

“≪불꽃≫ 그룹이 민주노조운동을 소비에트운동, 또는 소비에트의 맹아로 평가하자마자 그것의 필연적 귀결은 그들도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 아마 로자 룩셈부르크의 ..대중파업론..일 것이다 ― 소비에트는 혁명적 시기에만 등장할 수 있다는 자명한 진리 때문에 남한의 현 시기를 혁명적 시기로 규정하는 것이 될 수밖에 없었다”(≪노동해방의 길≫, 1996: 27).

 

“레닌의 볼셰비키의 유형의 정당의 진정한 위대함은 혁명적 사회주의 정치를 노동자 계급의 규율 잡힌 조직운동과 결합시킬 수 있었다는 데 있다. …… 로자 룩셈부르크, 트로츠키, 그람시 같은 혁명적 사회주의운동의 위대한 지도자들은 선진 노동자들과 결합된 규율 잡힌 조직운동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는 점에서 러시아의 레닌과 구별된다”(≪노동해방의 길≫, 1996: 153).

 

“현재 남한의 사회주의운동과 사회주의 조직은 인텔리겐치아 출신과 노동계급 출신의 사회주의자들의 단결된 노력과 상호침투 없이는 결코 발전할 수 없다. 남한 사회주의운동이 수백 명의 인텔리겐치아 출신의 집단적 지식인과 노동계급 출신의 집단적 지식인을 가지게 될 때 남한 사회주의자들은 이렇게 선언할 것이다. ‘이제 남한에서 사회주의 정당은 이미 형성되고 있다’”(≪노동해방의 길≫, 1996: 202).

 

이에 대해 ≪선진노동자의 길≫로 이름을 바꾼 ≪불꽃≫ 그룹은 IMF를 겪고 난 정세에서 계속해서 노동자평의회(소비에트) 노선을 주장한다. “그러나 어떻게 서로 다른 요구들과 서로 다른 형태의 투쟁들이 조화를 이룰 수 있는가? 민주노총 또는 산별노조를 통해? …… 전국연합 또는 IMF 범국민운동본부를 통해 …… 이 문제에 대해 역사는 대답을 내린 지 이미 오래다. 즉, 노동자평의회(소비에트)를 통해서 이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 …… 노동자 계급의 모든 정치적 조류들이 가장 폭넓은 민주주의 기초 위에서 노동자평의 회의 지도력을 놓고 투쟁할 수 있다. 따라서 노동자평의회의 슬로건은 과도기 요구체계의 최정점을 이룬다”(≪선진노동자의 길≫, 1998: 38-39).

 

이들 사이의 논쟁은 마르크스주의 혁명 전략에 대한 핵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에서 볼셰비키 대 멘셰비키, 혁명주의 대 기회주의의 대립구도를 넘어선다. 그것은 소비에트와 당의 관계이다. 혁명적 정세에 대한 인식 그리고 소비에트 혁명 전략을 ‘초좌익’으로 규정하는 것은 상대적 의미로 사용된다.

 

이 문제는 결론과 전망에서 다루어질 문제이지만 당을 부정하는 평의회노선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비판이 중요하다. 좌익공산주의와 평의회공산주의, 그리고 평의회주의 사이의 차이를 구별하지 못하고 모두 당을 부정한다고 보는 부정확한 규정이 이루어지면서 당과 평의회의 변증법적 통일을 향한 수준 높은 논쟁으로 진전시키지 못함을 볼 수 있다.

 

평의회주의는 평의회공산주의운동에서 1930년대 이론화되기 시작한 오류의 극한적 표현이며 퇴행이다. 평의회주의는 러시아 혁명, 프롤레타리아독재, 당, 집권화에 대해서 부르주아지가 수천 번 주장하고 무정부주의자가 반복해서 주장한 입장에 “마르크스주의적 형식”을 입히려는 공개적인 기회주의적 시도이다. 평의회주의의 본질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International Review, 2004: 19-24).

 

첫째, 평의회주의가 일국사회주의라는 스탈린주의적 입장에 반대 하지만 프롤레타리아트가 세계 혁명을 기다리지 않고 임노동과 상품을 폐절하기 시작했다는 주장을 함으로써 무정부주의의 낡은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둘째, 국제주의에 반대하여 1926~1927년에 스탈린주의는 ‘일국사회주의’를 주장하는데 트로츠키와 좌익공산주의의 모든 경향은 이러한 입장을 반역으로 보았으며 이탈리아 좌파잡지 ≪빌란(Bilan)≫은 코민테른의 죽음으로 보았다. 이점에서 무정부주의의 논리는 스탈린주의와 기본적으로 같다. 반집권화가 ‘일국사회주의’의 정식화를 싫어하는 것 같지만 ‘자율’과 ‘자주관리’의 기반 위에 ‘한 마을’과 ‘한 공장’에서의 사회주의를 말한다. 이러한 주장은 ‘민주적’ 외양과 ‘대중 주도권의 존중’을 하는 것 같지만 자본주의적 착취와 부르주아국가의 방어라는 스탈린주의와 동일한 방향으로 이끈다.

 

셋째, 평의회주의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추진은 공산주의적 경제조치의 채택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21세기 초 세계시장을 완성했기 때문에 프롤레타리아 기지의 권력 장악은 ‘해방구’를 만든 것이 아니라 그 지역은 자본주의의 가치법칙에 완전히 종속되어 나갈 것이기 때문에 여전히 적에게 속해 있다. 공산주의를 위한 투쟁의 목적은 새로운 착취의 형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모든 착취를 폐절하는 것이다.

 

넷째, 평의회주의의 러시아 혁명에 대한 대차대조표(≪빌란≫)는 이렇다. 즉 정치의 물신화와 ‘머나먼 혁명’의 희망 대신에 공장에서 노동자통제의 즉각적 조치 그리고 임노동과 상품교환의 폐지를 채택하여 ‘관료주의’를 만들지 않고 혁명이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는 것이다. 이는 평의회공산주의를 유혹하고 주물화시킨 주장이다. 그것은 마르크스주의 전통으로부터 벗어나면서 무정부주의와 경제주의에 연결된다. 이러한 평의회주의의 정식화는 프루동에 이어 아나코생디칼리즘과 혁명적 생디칼리즘으로 이어졌으며 1917~1923년 오스트로-마르크 스주의로, 그람시의 공장평의회 이름으로, 그리고 오토 륄레와 AAUD(Allgemeine Arbeiter Union Deutschlands, 독일노동자총연맹)의 이론가로 이어졌다. 러시아의 콜론타이, 1936년 스페인에서의 무정부주의도 여기에 속한다. 이들의 공통점은 노동계급을 단순한 경제적 사회적 범주로 보고 역사적 계급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5. 혁명적 맑스주의자(사회주의자) 모임, 사노련, 사노위 

  

2005년 7월「혁명적 맑스주의자 (사회주의자)모임」을 제안하면서 모임의 목적과 사업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였다.

 

첫째, 이 모임은 세계코뮤니스트 운동의 국제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한국의 혁명적 맑스주의자(사회주의자)의 모임이며 혁명당 건설에 동의하는 활동가들의 모임이다.

 

둘째, 이 모임은 맑스주의 틀 안에서 토론과 논쟁을 위한 모임이며 혁명적 맑스주의(사회주의)이론을 계승 발전시키고 코뮤니즘의 사상, 역사, 전략, 전술을 연구하는 모임이다.

 

셋째, 이 모임은 다음 몇 가지 공동사업을 수행한다.

 

1) 국제 코뮤니스트 세력과의 국제연대 및 교류

2) 혁명적 맑스주의자(사회주의자) 대회 개최 (실천운동으로서)

3) 기관지 발행 (5년 장기 기획을 통한 토론회와 단행본 출간)

4) 월례토론회

 

이 모임의 성과를 바탕으로 사회주의 혁명당 건설을 위한 연합체 건설이 제안되었고 2008년 2월23일 「사회주의노동자연합」이 결성되었다. 준비과정에서 미래의 혁명당 강령의 기초가 될 수 있는 「우리의 입장」이 작성되었고, 이행요구를 담아내는 「대중행동강령」이 제출되었다.「사회주의노동자연합(이사 사노련)」의 결성이 지니는 역사적 의미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몇 몇 혁명적 그룹들이 함께 하지 않았지만 30년 한국사회주의 운동의 역사에서 굳건하게 혁명적 맑스주의 원칙을 지키며 실천해온 서클들이 짧지 않은 토론과 준비를 거쳐 혁명당 건설을 위한 첫걸음 디뎠다는 점이다.

 

둘째, 혁명적 사회주의 운동에 대한 자본과 국가의 탄압이 상존함에도 불구하고 과감하게 공개적이고 대중적인 사회주의 운동을 펼쳐나가는 실천을 함으로써 당 건설 운동이 혁명적 사회주의자들만의 과제가 아니라 프롤레타리아트의 본연의 임무임을 인식시키게 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창립한지 6개월 만에 공안기관의 전면적 탄압을 당하고 재판 투쟁을 하면서 더욱 사회주의 운동과 혁명당 건설의 의미가 공개적이며 대중적으로 선전, 선동된 것도 중요한 성과라고 볼 수 있다.

 

셋째, 「사회주의노동자연합」의 창립 전에 네 개의 서클은 스스로 해소되었고, 단일 조직으로 구성된 것도 의미 있는 진전이었으며, 끊임없이 「사노련」에 참여하지 않은 혁명그룹에게 운동 강령 연구모임을 제안한 것도 실효를 거두지는 못하였으나, 「사노련」을 보통명사로서의 운동으로 펼쳐나가려고 하는 적극적 자세였다. 이른바「사노위」의 제안과 공동토론회의 개최는「사노련」의 결성의미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활동이었다.

 

2010년 5월9일 「사노위」의 결성이 지닌 의미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사노련 결성이후 “사회주의노동자 당”이라는 용어가 일반화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그동안 중도주의 세력으로 규정했던 「노동자의힘」과「해방연대」가 사회주의 노동자당 건설을 위한 독자적인 행보를 시작한 것은 그 그룹의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노련은 <사회주의노동자 당>이라는 공통의 당명을 배제할 수 없었고, 최소한도의 정치적 원칙으로라도 혁명당 건설을 위한 공동의 실천을 대중적으로 검증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또한 사노련의 한계를 뛰어넘는 것이기도 했다. 따라서 대중적 제안을 통한 「사노위」 건설은 원래 <사노련>의 단독 제안에 대한 대중적인 책임인 동시에 혁명당 건설을 한걸음 내딛는 필연적이고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

 

둘째, 이 과정에서 이른바 사노련의 다수파는 <현장분회>를 둘러싼 논쟁을 조직 사상으로 확대하면서 「사노위」로의  참여를 「사노련」이라는 형식을 고수하게 되고 「사노위」 건설에 참여한 세력은 이들을 「사노위 이탈파」로 규정하였다. 「사노련」 고수파는 「노건투」로 전환되고, 2011년 2월 「사노련」 1심 재판이후 「사노련」은 해산한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별도의 평가가 필요하지만 결국 「사노련」 고수파는 사노련 이전의 서클주의로 되돌아가는 경로를 택함으로써 혁명당 건설 경로에 대한 현장주의적 대기주의 관점을 드러냈다고 볼 수 있다.

 

셋째, 강령, 조직, 전술의 통일을 목표로 한 1년 공동실천의 한시적 조직인 사노위는 혁명당 건설을 위해 거쳐야 할 필연적 과정이었고, 그 공동실천에 대한 대중적, 공개적 평가는 사노위 성원들 모두 책임이었다. 사노위 1년 평가에 대해서는 이미 제출된 평가에서 다루고 있기 때문에 여기서는 생략한다. 다만 앞으로의 당 건설 경로와 관련하여 강령의 문제가 아니라 조직의 문제라는 논리는 언제나 조직 분리의 함정을 안고 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6. 마무리하며

 

 

세계자본주의 체제와 계급투쟁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총체적 위기가 쇠퇴기의 마지막 단계인 해체단계에 들어섰음은 인류의 파멸이라는 보다 넓은 관점에서 확인될 수 있다. 잉여가치의 생산과 실현에서 이윤율 하락과 시장포화로 임계점에 다다랐음은 이미 자본주의에 대한 맑스주의 분석으로 확인된 것이지만 지금은 야만으로서의 자본주의와 문명으로서의 사회주의(공산주의)의 선택에 기로에 서 있음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첫째, 자본주의 체제는 임금노예도 먹여 살릴 수 없는 체제로 나아가고 있다. 세계에서 매일 굶주림으로 10만 명이 죽어가고 있고 10세 미만 어린이는 매 5초마다 죽는다. 8억 4천 2백만 명이 만성적인 영양실조로 고통 받고 있으며 60억 인구 중 20억이 식품비 인상으로 매일매일 생존을 위한 투쟁을 하고 있다.

 

둘째, 현재의 자본주의 체제는 경제번영의 환상을 유지할 수 없는 체제이다. 인도와 중국의 경제기적은 환상임이 드러났으며 중국에서는 2008년 상반기에 2천만 명이 해고되었고 6만 7천개의 회사가 파산했다.

 

셋째, 생태적 재앙이 예상되고 있다. 지구의 온난화를 보면 지구의 평균온도는 1896년 이래 0.6% 증가했고, 20세기는 북반구에서 지난 천년동안 그 이전보다 가장 심각한 온난화를 보이고 있다. 눈 덮인 지역도 1960년 말 이래 10% 감소했으며, 북극빙하의 두께는 40% 감소했다. 평균해수면은 20세기 동안 10~20% 상승했는데 이러한 해수면 상승은 지난 3천년보다 10배 증가한 것이다. 또한 90년 동안 지구에 대한 약탈은 남벌, 토양침식, 오염(공기, 수질), 화학방사물질의 살포, 동식물의 파괴, 전염병의 폭발 등으로 나타나 생태적 재앙은 종합적이고 지구적 형태로 구성되어 예측할 수 없다.

 

이는 사회주의(공산주의)의 물질적 기초마저도 파괴하고 있는 것이어서 지구와 인간을 회복 불가능한 상태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게 한다는 근본적 한계를 안고 있다. 여기에 자본주의적 인간형의 재생산은 사회주의적 인간을 형성시키는데 지속적 장애물로 남아 있어서 객체와 주체를 모두 파괴당하고 있다.

 

자본주의의 억압과 착취에 맞선 계급투쟁의 역사는 항상적이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제1인터내셔널은 상승기 자본주의의 능력 때문에, 제2인터내셔널은 혁명주의의 포기와 민족주의 때문에 그리고 코민테른은 사회주의 혁명을 포기한 스탈린주의의 반혁명 때문에 실패했다. 특히 1930년대 이후의 반혁명세력은 (국가)자본주의의 본질을 호도하면서 ‘사회주의’를 참칭하였고 결국 세계자본주의체제를 유지시키는 역할을 했으며 양 진영의 대립을 위장하면서 세계의 노동자계급을 억압, 착취해왔다.

 

더구나 1989년 동쪽 블록과 스탈린 체제의 몰락은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명백한 승리”, “계급투쟁의 종말” 그리고 심지어 노동계급 자체의 종말이라고 떠드는 부르주아지의 캠페인은 프롤레타리아트를 그 의식과 전투성 수준에서 심각하게 후퇴하도록 만들었다.

 

 1990년대 동안 노동계급은 투쟁을 전적으로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 시기의 투쟁의 기관이었던 노동조합에 대적할 폭이나 의식 그리고 능력을 지니지 못했다. 2003년까지는 그렇지 못했지만 1989년 이래 프롤레타리아트가 다시 일어나기 시작한 것은 프랑스와 오스트리아에서의 연금에 대한 공격에 대한 반대투쟁이 전기가 되었다. 노동자의 투쟁은 대부분 중심국가에 영향을 주었는데 미국(2005년 보잉과 뉴욕교통), 독일(2004년 다임러와 오펠, 2006년 봄 의사, 2007년 봄 독일 텔레콤), 영국(2005년 8월 런던공항), 프랑스(2006년 CPE 반대투쟁)가 있고 주변부 국가들로는 두바이(2006년 봄 건설노동자), 방글라데시 (2006년 봄 방식노동자), 이집트(2007년 봄, 방직노동자), 이집트(2007년 봄, 방직운수 및 기타 노동자)의 투쟁이 있다.

 

 2006년 이후 2008년까지 벌어진 세계의 계급투쟁은 이집트, 두바이, 알제리아, 베네주엘라, 페루, 터키, 그리스, 핀랜드, 불가리아, 헝가리, 러시아, 이태리, 영국, 독일, 프랑스, 미국 등 전 세계로 확대되고 있으며 2009년부터 심화되는 대공황과 자본주의의 위기에 맞선 노동계급의 투쟁은 수세적으로 시작되지만 처절한 공세로 전환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계급투쟁의 새로운 조건은 다음과 같다.

 

첫째, 40년의 위기와 노동계급의 생활조건에 대한 공격, 특히 실업과 불안정 노동의 증가는 미래가 좋아질 것이라는 환상을 날려버렸다.

 

둘째, 점점 야만의 형식을 취하는 군사갈등의 영구화뿐만 아니라 환경파괴에 대한 가시적 위협은 사회적 근본변혁의 필요성을 불러일으킨다. ‘반자본 운동’과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는 슬로건은 근본변혁을 빗나가게 하려는 부르주아지가 숨긴 항체다.

 

셋째, 스탈린주의와 20년 전 그 몰락이후의 캠페인이 만든 외상은 시간이 지나면서 사라지고 있다. 지금 노동의 삶을 시작하는 새로운 세대는 “공산주의의 죽음”에 대한 거대한 캠페인이 벌어졌을 때 어린이였다.

그런데 40년 동안 세계자본주의는 엄청난 부채를 짊어짐으로써 재앙을 피해왔다. 자본주의에서 부채는 마약중독자에게 마약이나 다름없다. 그 마약을 소련 같은 (국가)자본주의가 사용했건 미국 같은 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사용했건 마찬가지였다. 이 모든 부채의 결과는 지불 가능한 시장을 찾지 못하고 결국 전 세계 노동자의 피와 땀으로 돌아올 것이다. 그것은 또한 전 세계 노동자의 가난, 제국주의 전쟁 그리고 생태적 재앙으로 되돌아올 것이다.

 

자본주의는 끝나가고 있는가? 그렇다. 그것은 갑작스런 파멸이 아니라 지금까지의 자본주의의 역사에서 서서히 끝나는 마지막 단계, 체계적 몰락의 단계이다. 우리는 150년 전의 ‘전쟁인가 혁명인가’의 화두를 진지하게 꺼내들고 다시 한 번 ‘야만인가 사회주의인가’를 말하는 역사적, 문명적 인식과 과학적 사회주의 이론과 혁명적 실천을 준비해야 한다. 이는 혁명적 맑스주의 원칙에 올바르게 전 사회주의자들의 통일과 단결을 의미한다. 화폐, 상품, 시장, 임노동, 교환가치를 기반으로 하는 자본주의를 넘어서서 자유로운 개인의 연합이 살아 숨 쉬는 노동해방 사회건설을!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세계적 차원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투쟁은 광범위하게 격렬하게 진행되고 있으며 부르주아 민주주의에 대한 환상을 넘어서서 자본주의 철폐와 사회주의 혁명 그리고 공산주의 사회 건설을 물질적 필요성으로 요구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구체적 특수성을 인정하더라도 세계자본주의의 총체적 위기와 노동계급의 필연적 투쟁은 불가피하다. 투쟁의 지연은 폭발 잠재력의 임계점 차이일 뿐이다. 경쟁과 효율성이라는 가치에 법칙에 예속되어 파편화되었던 예비 노동자 대학생들의 등록금 인하 투쟁은 바로 그 실현이 자본주의 모순에 대한 근본적 물음을 묻고 체제를 송두리째 엎지 않으면 해결될 수 없음을 깨닫게 한다.

 

1, 2년 사이 선거주의, 의회주의, 개량주의가 혁명적 투쟁을 가로막는 걸림돌로 작동하겠지만 혁명세력은 더더욱 스스로를 무장하여 준비 태세를 갖추어야 한다.

 

그것을 위한 공산주의자의 유일한 길은 공산주의자 조직인 혁명당을 건설하는 것이다.

 

2005년 이후 혁명당 건설을 위한 과정은 바로 그 과정의 일부이다. 혁명적 맑스주의자 모임, 사노련, 사노위, 그리고 혁명당 추진모임은 이를 위한 구체적 발현태이다. 우리 사회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객관적 정세가 혁명당 건설을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세계 맑스주의(공산주의)운동의 역사, 계급투쟁의 역사, 자본주의에 대한 과학적 분석 그리고 한국 사회주의 운동의 어제와 오늘에 기반하여 다음과 같이 제안한다.

 

하나, 사노위 해산선언-동의자모임을 중심으로 <공산주의노동자당>건설 추진을 위한 준비모임을 결성한다. 이 모임 밖의 공산주의자들과 소통 망을 구성하기 위한 기획과 공동사업을 제안한다.

 

  둘, 강령은 중요한 무기이다. 가장 근본적인 맑스주의 원칙인 역사유물론에 입각한 현대 자본주의 분석, 러시아 혁명 이후 존재했던 이른바 “사회주의 국가들”에 대한 과학적 분석과 평가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공산주의 사회에 대한 이해, 전 세계 계급투쟁의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한 분석과 이해는 혁명당을 만들어 갈 공산주의자들의 필수적인 조건이다. 이를 위한 연구, 토론, 매체, 교육에 대한 종합적 기획사업이 요구된다.

 

  셋, 노동자평의회로 나아가는 프롤레타리아의 조직화 양식에 대한 구체적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정규직뿐만 아니라 비정규직 형태로 존재하는 노동자 집단에 평의회적 조직 형식의 구축뿐만 아니라 그 속에서 사회주의자 연대조직 건설 등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넷, 새로운 인터내셔널을 건설하려는 공동의 노력은 세계 혁명주의 그룹과의 소통, 공동대회, 공동실천을 통해 모색하는 <국제연대위원회>를 특화시킨다.

 

다섯, 미래의 공산주의자를 양성할 목적으로 하는 정치학교 개설을 포함한 사업을 담당할 <청소년 위원회>를 특화시킨다.

 

주)

1) 한국 사회주의 운동의 역사에 대한 객관적 평가는 보다 체계적인 연구를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그리고 여전히 글 쓴 사람의 입장이 전제된 주관적 평가나 단상이 오히려 토론을 위한 자료가 될 수 있다. 나는 몇 년 전 이런 글을 써서 『다시, 혁명을 말한다』 (빛나는 전망,2009)에 “마르크스주의와 한국 사회주의(정치)운동에 대한 회고”로 실은 바 있다.  이 글 이상의 글을 짧은 시간에 준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여기서는 2005년 이후 「혁명적 맑스주의자 모임」이후 현재까지에 대한 평가를 정리하고 미래를 전망하는 정도로 보완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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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노동자≫, 12호. 1990년 12월. 민중당 노동자위원회

≪현실과 과학≫, 3호(1989. 4), 4호(1989. 9), 6호(1990. 7), 9호(1991. 3).

≪우리사상≫, 창간호(1991. 5).

≪사회주의 노동자≫, 2호(1992. 9).

≪노동해방의 불꽃≫, 창간호(1995).

≪신질서≫, 2(1995. 11).

≪맥박≫, (1996).

≪노동해방의 길≫, (1996. 5).

≪선진노동자의 길≫, (1998. 8).

International Review 1st Quarter 2004, 1st Quarter 2006, ICC

국제대회준비위원회 2006.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 국제대회 자료집』, (2006. 10).

사회주의정치연합. 2006.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 국제대회를 열며』

오세철. 1990.『개혁사회주의에 대한 환상과 회의와 좌절을 넘어서』≪노동자≫, 12호.

민중당 노동자위원회.

오세철. 2004.『사회주의와 노동자 정치』, 박종철 출판사.

윤소영. 1999.『한국 사회성격논쟁에서도 ‘페레스토로이카’가 임박 했는가?』≪현실과

과학≫, 제3호. 1999. 4.

이창휘. 1989. 『PDR론의 올바른 이해를 위하여』, ≪현실과 과학≫ 4호. 1989. 9.

 

* 각주

 

1) “공산주의는 근사한 사상이 아니라 물질적 필요성이다”(International Review, 2006:

10-19).

2) 여기서는 좌익공산주의 그룹의 국가자본주의론을 소개한다. “국가자본주의로의 경향은 전 세계의 모든 곳에서 나타나고 쇠퇴[자본주의]의 제반작용들이 가장 폭력적으로 나타나는 그러한 곳에서 가속되거나 가장 격렬하게 분출된다. …… 정치적 및 사회적 영역에 있어서 국가자본주의로의 경향은 파시즘이나 스탈린주의 같은 극도의 전체주의적 형식들 속에서이든 또는 민주주의 가면 아래 은폐된 형식들 속에서이든, 국가기구와 특히 그 집행력이 사회 생활의 모든 영역들에 현재하며 체계적이고 점점 더 막강해지는 통제력을 행사한다는 사실을 통해 표현된다”(ICC 강령,1976)

3) 그람시도 각국의 공산당들의 볼셰비즘화를 주창한 스탈린주의적 중도주의에 있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4) 여기서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 모임’을 제안하는데 ‘다함께’를 제외한 것은 입당전술에 대한 비판적 입장 때문이었고 ‘노동자의 힘’은 활동가 조직론에 머무르고 중도주의적 입장으로 보았기 때문이며, 혁명당 전략을 배제하는 다른 그룹들에게도 제안하지 않았다.

5) 여기서 편의상 A B C 그룹으로 표현되는 그룹은 당건투, 노동해방연대, 울산노동자배움터를 의미하지만 조직연대 모임이 아닌 개인들의 모임이기 때문에 조직이름을 사용하지 않았다.

6)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 국제대회 자료집. http://spri.jinbo.net 공개자료실 8번.

7)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 국제대회 자료집. “혁명 전략 : 혁명역량의 국제적인 재편이 프롤레타리아 혁명 승리의 전제조건이다.”

8)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 국제대회에 대한 사회주의정치연합의 토론 결과 요약

사회주의정치연합(이하 SPA)은 국제대회가 끝난 후 ICC의 대표단과 IP 대표단과의 토론을 통해 국제대회의 대차대조표를 제시하면서 극동에서 처음 열린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들(특히 좌익공산주의자들)의 만남과 소통 그리고 주요 원칙과 쟁점들에 대한 토론과 공감대 형성을 높이 평가하고 이러한 노력이 계속 이어지기를 희망했다.

자본주의 데카당스에 대하여

1. 우리는 공산주의 좌파 내부에서의 자본주의 데카당스에 관한 논쟁을 자세히 검토했다. 그 구체적 비교분석은 SPA가 발표한 텍스트 『자본주의 데카당스에 관한 논쟁에 대하여』에 잘 나타나 있다.

데카당스 자본주의에서의 프롤레타리아 투쟁 

1. ICC가 1980년에 쓴 텍스트에 대해 우리는 원칙적으로 동의한다. 특히 이 글은 상승기 자본주의와 데카당스 자본주의를 구분하고 민족국가, 자본주의의 새로운 편제 단위들의 발달, 전쟁, 위기, 계급투쟁, 혁명조직의 역할의 기본 특성을 비교하고 있는데 지나치게 도식화하는 시도 같지만 자본주의 보편의 특성을 상승기와 데카당스로 구분하여 근본 변화를 살피는 거시적 틀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지침이 될 수 있다.

세계혁명당 건설에 대하여

1. 미래의 혁명당 본질에 대해 ICC가 서울 ‘국제대회’에서 발표한 텍스트 “혁명 전략-혁명역량의 국제적인 재편이 프롤레타리아 혁명 승리의 전제조건이다”에서 밝힌 원칙에 우리는 동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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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노위 실패와 무기로서의 강령

사노위 실패와 무기로서의 강령

- 이형로

 

 

 

 

사노위는 사회주의노동자당 건설이라는 시대적, 정세적 과제를 부여안고, 당 건설의 첫 단계라 할 수 있는 사회주의노동자당 건설 추진위를 목표로, 1년간의 공동정치활동을 통해 ‘강령상의 통일’을 이룰 것을 목표로 하여 공동실천위원회라는 형식을 갖고 출발하였다.

 

이렇게 출발한 사노위는 “공공연한 사회주의 정치운동과 당 건설운동의 전면화”를 출범정신으로 하여, 당 건설 추진위로의 전환조건으로 1)강령, 전술, 조직의 통일과 2)선진노동자에 대한 실천적 권위확보를 내세운다. 그러나 “선진 노동자에 대한 실천적 권위확보” 문제는 객관적인 근거와 기준을 정하기가 어렵고, 계급의식이 아직 낮은 문제 등이 있어 실질적으로 추진위 전환 조건이 될 수 없다는 점에서, 현실적으로 사노위 안에서 중요한 과제는 강령통일과 조직 활동 문제였다.

 

그 동안 각자의 써클과 활동 공간(사노준, 사노련, 노투련과 개별 활동가)에서 서로 다른 운동 노선과 문화를 기반으로 활동했던 사회주의 활동가들이, 1년이라는 특별하고 한시적인 기간을 정해두고 이론과 실천, 운동과 투쟁의 경험 등 모든 면을 사노위라는 그릇에 녹여내면서, 가장 혁명적인 원칙과 실천의 무기를 창출해내기 위해 사노위 운동에 참여하게 된다. 이러한 시도는 여전히 의미 있는 일이었고, 혁명당 건설 운동의 흐름에서 주체역량의 상황과 객관적 정세를 고려했을 때 적절한 운동노선이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사노위는 가장 혁명적인 원칙을 가진 강령으로의 통일도, 자본가 권력에 실질적인 위협이 될 만한 강력한 실천력을 가진 당 조직도 창출을 못한 채, 공동실천 자체의 한계로 인해 당 추진위 단계로 상승하지 못하고 해산을 맞게 된다.

 

그렇다면 왜 사노위는 강령통일에 실패했고, 당 조직구조를 창출하지 못했는가? 공동실천 자체의 한계는 무엇이었나? 

 

이 글은 강령과 조직은 하나의 유기체라는 입장을 분명히 하며, 강령통일 이전에 조직문제로 파열구가 나기 시작한 공동실천 활동이 왜 강령투쟁 과정에서 더 악화되어 결국 해산에 이르렀나를 살펴보고, 무기로서의 강령은 곧 실천의 지침이라는 교훈을 다시 한 번 환기시키고자 한다.

 

 

 

1. 강령 건설의 원칙과 혁명당 건설

 

사노위에서 건설하려는 당과 강령은 어떤 것이었나? 

 

노동자계급의 당이라면 기본적으로 다수의 노동자를 기반으로 하는 당이어야 한다. 하지만 당의 정치적 성격은 당이 어느 계급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가가 아니라 당이 채택하고 있는 강령으로 판단해야 한다. 즉, 당의 성격은 당의 이름이 말해주는 것이 아니라, 당에서 내건 강령과 실천의 내용이 규정해 준다. 민주노동당이 노동자당을 이름으로 내걸지만 온전한 노동자계급의 정당이 아니듯이,1) 사회당이 사회주의자 당을 내걸지만 전형적인 사민주의 정당이듯이, 사노위에서 건설할 당은 이름만 사회주의노동자당이 아니라 강령과 조직 모두에서 실제 사회주의 혁명정당, 노동자계급 혁명정당이었다.

 

사노위가 혁명정당을 건설하려 한다면 사노위가 만들려는 강령은 당연히 사회주의 혁명 강령이다. 사회주의 혁명 강령은 역사와 생산과 권력의 주체인 노동자계급의 해방을 위해 자본주의 체제를 근본적으로 철폐하고 사회주의 혁명을 실현시키려는 강령이다. 프롤레타리아계급에 대한 착취체제인 자본주의체제의 본질과 현 쇠퇴기의 본질을 밝혀내고, 사회주의 혁명의 필요성과 정당성을 도출해내고, 프롤레타리아 독재-공산주의 사회로의 이행 등 혁명의 전 과정에 대한 혁명적 원칙을 정립하는 강령이다. 그리하여 혁명의 주체인 노동자계급에게 사회주의 혁명, 세계혁명의 전망을 제시하여 현실의 계급투쟁에서 자본가계급에 맞서 싸울 수 있는 무기로서의 역할을 하는 강령이다.

 

하지만 사노위 1년의 공동실천 과정에서 구성원의 다수는 사회주의 혁명정당이 아닌 이름 그대로 사회주의노동자 정당이라는 사회주의 좌파당 정도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이 점은 3인안 강령에 대부분 반영되었는데, 평화적 이행까지 포함한 수권전략(혁명의 주체인 노동자계급의 물리력을 바탕으로 자본주의를 타도하고 노동자계급의 독재를 수립하는 전략이 아닌)과 자본주의 쇠퇴 불인정, 가짜사회주의 국가에 대한 불분명한 입장, 부문운동의 병렬적 조합으로서 주체형성 전략 등을 내세움으로써 계급투쟁에서의 전략 부재를 드러냈다.

 

3인안은 결과적으로 강령이 사회주의 혁명에 있어 필수적인 무기가 되고, 직접적인 사회주의 정치활동으로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실제 현실에서는 반자본주의 운동, 반신자유주의 투쟁 정도로 후퇴하고, 조합주의 또는 전투적 조합주의에 안주한 가운데 공허하게 사회주의와 사회주의 현장 활동만을 외치는 것 이상이 아닌 것으로 판단되었다. 이것은 결국 사노위의 성원들이 강령을 실천의 지침으로 생각하지 않고 정치적으로 동의만하면 되는 것으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그렇다면 사노위의 강령은 누구를 향한 강령이어야 했고, 3인안 강령은 누구를 향했기에 실천의 무기가 되지 못했나?

 

누구를 향한 강령이었나?

 

사노위의 강령은 사회주의 혁명당의 강령이기에, 혁명의 주체인 노동자계급을 위한 강령이어야 하며, 노동자계급에게 공개적으로 제출해야 하는 강령이다. 혁명 강령은 노동자계급의 혁명적인 부위인 사회주의자들에 의해 건설될 강령이다. 또한 계급투쟁의 역사와 혁명적 사회주의 운동의 성과를 온전히 계승하고, 현실의 계급투쟁과 혁명적 실천을 통해 끊임없이 발전하면서 건설되어야 할 강령이다.

 

그런데, 사노위는 강령토론의 과정에서 노동자계급을 향한 공개적이고 외향적인 토론 보다는 내부토론과 내부통일에 우선을 두었기 때문에, 노동자계급과의 상호작용과 검증과정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결국 강령토론 과정에서 나타난 강령적 차이와 쟁점에 대한 첨예한 대립들은 찻잔속의 태풍에 그치고 말았다. 이 때문에 조직 활동과 당 건설 경로에서 강령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다른 조건들에 강령이 이용당하는 참담한 결과마저 초래했다. 1년간의 공동실천 과정에서 강령통일을 못 이루어 당연하게 조직을 해산해야 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조직봉합과 조직보존 논리가 다수를 점해 사노위를 계속 유지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러한 사태는 애초에 강령을 만들 때 노동자계급에게 제출하는 강령을 만든 것이 아니라, 당 건설의 초기 주체들인 사노위 성원들만을 염두 해 둔 것으로 인식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그것은 현실로 나타났고, 사노위 강령토론의 목적은 노동자계급이 아닌 사노위안에서 다수의 지지를 얻는 것으로 전락하였다.

 

그렇다면 과연 사노위의 다수는 노동자계급의 어느 부위를 표현해주고 대표하고 있었을까? 사회주의 전통의 어느 지점을 계승하고 있었을까?

 

결과적인 이야기이지만, 사노위의 다수는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부위를 표현해 주는 것이 아니라 조합주의와 전투적 조합주의를 대표하고 있었다. 그것은 현실운동의 직접적 반영이었다. 또한 정치사상적으로는 자본주의와 적대하는 사회주의 혁명전통을 계승하는 것이 아니라 사민주의 정도와 대당 하는 좌파 급진주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되었다.

 

그래서 이것이 예상되었다면 사노위는 강령 조직의 통일2)을 통한 당 추진위 건설이 아니라 처음부터 강령을 중심으로 사회주의 혁명당 노선과 사회주의 좌파당 노선으로 분화될 것을 상정하고, 내부의 통일이 아닌 노동자계급 지향적이고 외향적인 강령투쟁을 통해 두 개의 당, 또는 강령투쟁에 승리한 세력만이 당 건설을 추진하는 경로를 채택했어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노위 과정 자체는 객관적 정세와 주체들의 상황을 반영하여 선택한 역사적 산물이었다. 따라서 주체의 상태에 의해 모든 것이 결정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바로 그 주체의 상태를 진전시켜낼 수 있는 역동적 과정을 창출해 내고자 했던 것이다. 최소한 그럴 수 있는 조건은 존재한다고 봤기 때문이다. 문제는 시작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시작에서부터 제대로 했는가 하는 것이다.

 

먼저 처음부터 강령통일이라는 조건을 내걸 때, 단순히 사노위 성원 다수가 선호하는 강령을 채택하는 것이 아니라, 강령토론과 공동실천을 통해 혁명적 실천을 담보하는 강령만이 당 추진위의 강령이 될 수 있다는 원칙을 세웠어야 했다. 그랬다면 강령과 조직노선이 분리되지 않고 한 가지로 인식되어 강령투쟁과 함께 실천력을 높이려는 노력들이 동시에 이루어졌을 수도 있다.

 

혁명당과 혁명 강령

 

노동자계급의 해방은 노동자계급 스스로의 일이고, 자신들의 연대와 자신들의 의식으로서만 자본주의를 극복할 수 있다. 자본주의를 극복하고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하려는 생각은 노동자계급의 의식 중 혁명적 계급의식이다. 혁명적 계급의식은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라는 과거의 낡은 사상과 현실의 지배적인 관념들을 극복하는 것이다. 이러한 낡은 사상들을 실질적으로 극복한다는 것은 의식개조나 정신적 깨달음이 아니라 낡은 경제적 모순들을 물질적으로 극복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곧 자본주의 모순을 물질적으로 극복하는 일이며, 노동자계급의 혁명을 통해서만 극복이 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혁명적 계급의식은 자본주의를 물질적으로 극복하려는 의식이며, 혁명을 가능케 하는 계급의식이다.

 

그런데 이러한 계급의식은 혁명시기가 아닌 일상시기에는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지배로 인해 쉽게 깨질 수 있고 일시적이며 결국 소멸해버리기 때문에, 혁명적 계급의식은 노동자계급의 모든 역사적·이론적인 성과들을 온전히 담아내는 강령을 가진 조직인 혁명 정당과 같은 물질적 토대를 갖춰야 한다. 노동자계급의 혁명당은 계급의식의 정치적 표현이며,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노동자계급의 혁명투쟁에 필수불가결하다. 혁명당은 전체 프롤레타리아의 해방이라는 강령을 방어하면서 조직된, 노동자계급 가운데 정치적으로 가장 앞선 부분을 포함한다. 그래서 혁명당은 늘 프롤레타리아의 소수일 것이지만, 혁명당이 방어하는 공산주의 강령은 전체 노동자계급에 의해서만 수행될 수 있다.

 

따라서 강령은 당을 구성하는 소수의 것이 아니라 노동자계급 전체에게 제출되어야 한다. 이 원칙을 지키지 않는 강령은 결국 노동자계급 스스로의 힘으로 자본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무기로서의 강령이 아니라 노동자계급을 수동화 시키고, 노동자계급에게 명령하고, 노동자계급을 지배하는 강령일 수밖에 없다. 앞서 말했듯이 사노위의 일부 강령은 일차적으로는 사노위 성원들을 위한 강령이었다. 그래서 노동자계급에 의한 검증, 승인과는 무관하게 자신들의 조직통일을 위해 인위적으로 강령통일을 시도하는 지경에 이르고야 말았다. 이러한 강령이 노동자계급을 수동화 시킬 가능성은 불을 보듯 뻔하다.

 

강령이 전체 노동자계급에 의해서 수행되는 강령이 되고, 자본주의를 스스로 극복할 수 있는 무기가 되려면 어떤 강령이어야 하는가?

 

혁명 강령은 사회와 노동자계급 투쟁의 궁극적 목적을 이론적으로 진술한 것일 뿐만 아니라 그들에 선행하여 실제 발생한 것에 대한 세세하고 구체적인 분석이아. 그리고 그 분석은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상황을 낳게 한 그 당시의 물질적인 특성들과 반드시 결부시켜 해명되어야 한다. 그래서 혁명 강령에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해방이라는 목적과 사회주의 혁명의 이론을 반드시 담아내야 한다. 또한 자본주의에 대한 분석과 노동자계급의 정치, 경제, 사회적 상황을 그 물질적 토대로부터 분석하여 자본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전망과 투쟁의 무기들을 제시해야 한다.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해방은 궁극적으로는 공산주의 사회의 실현을 통해서만 가능하며 그 과정에는 반드시 이행기가 필요하다. 이행기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로 표현된다. 사회주의 혁명이론은 바로 이행기 사회인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창출하기 위한 혁명이론이다. 혁명이론은 자본주의의 타도와 노동자계급의 권력 장악으로부터 시작하여, 노동자계급의 직접권력인 노동자평의회가 전 사회를 지배하면서 자본주의 잔재를 일소하고 공산주의 사회로 이행하기까지 견지해야 할 원칙과 과정에 대해 수미일관하게 밝힐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일관된 강령의 목적과 이론이 없이 여러 이론들의 조합을 통해 자신들만의 특별한 혁명이론을 만들려는 시도는 결국 강령을 전체 노동자계급의 것이 아닌 소수 정치세력의 전유물로 만든다. 특히 한국과 같이 혁명운동의 단절과 정치사상적 토대가 빈약한 지역에서 건설 할 혁명이론과 강령은 더더욱 혁명운동의 세계적 흐름 속에서의 보편성과 일반성을 가져야만 한다.

 

그런데 3인안은 한국사회의 특수성에 대부분 기반을 두고 있다. 3인안은 강령건설의 원칙과 자신들이 계승하고 있는 혁명적 전통을 밝히지 않음으로 인해, 현재 세계 사회주의 혁명운동진영에서의 위치와, 자신들의 사회주의 운동의 역사적 위치를 알 수 없게 하였다. 이것은 그들의 정치사상이 여러 이론들을 인위적으로 조합하여 그들만의 검증되지 않은 독자적 혁명이론을 만들어냈다는 근거이기도 하다. 하지만 혁명이론은 전 세계 노동자계급에게 보편적이어야 하고 국제적이어야 하기 때문에 반드시 국제적 흐름에 조응해야 한다.

 

결국 이런 문제점들이 3인안의 강령 내용에서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명시’를 생략3)하고, ‘소련의 사회성격 규정을 유보’하고, 노동자평의회 권력이라는 계급투쟁의 위대한 성과물과 구체적 실체를 ‘대체권력이라는 추상으로 후퇴’시키고, 노동자계급의 국가권력 장악을 위한 집단적 계급행동 동력과 무장력 획득이라는 좀 과격하고 불편하지만 필수적인 강령적 요소를 ‘계급의 주체형성’, ‘경제-정치-사회-일상 삶의 전 영역에서 대체권력을 형성하기 위한 투쟁과 도전’이라는 듣기 좋은 공문구로 바꾸어 놓는 결과를 만들었다.

 

혁명가 조직과 사노위

 

혁명가들의 조직인 혁명당은 처음에는 노동자계급 안의 혁명적인 인자들만을 포함시키는데, 계급투쟁이 전면화 되고 계급의식이 혁명 강령에 가까워질수록 당은 소수의 혁명당이 아닌 프롤레타리아 혁명당으로 확장된다. 그런데 혁명적인 인자들의 소속척도는 사회학적인 것이 아니라 정치적인 것이라서, 당의 강령에 동의하고 그것을 옹호하고 실천할 태세를 갖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혁명당에는 사회학적으로 노동자계급에 속하지는 않지만 그들의 출신계급과의 단절을 통해서 노동자계급의 역사적 이해관계와 스스로를 동일시하는 지식인 등의 개인들도 속할 수 있는 것이다.

 

불행히도 사노위에서는 1년이라는 공동실천 기간 동안 강령통일을 이루어내지 못해 강령을 채택할 수 없었고, 그 때문에 회원들이 강령을 옹호하고 실천할 태세를 갖추었는지조차 확인할 수 없었다. 그런데 강령 초초안 제출이전에 이미 강령보다 낮은 단계인, 조직의 결정사항과 정치방침 조차도 실천하지 않거나 거부하는 회원들과 운동의 흐름들이 나타났다. 조직문제는 강령이전에 사회주의자로서의 태세 문제를 확인해 주었다. 그래서 이후의 강령토론과 강령투쟁은 조직노선 투쟁의 기반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조직노선 투쟁은 길었으나 강령투쟁은 짧았다. 강령과 실천은 분리되었고, 조직문제는 과잉되어 강령을 뒤로 물러서게 했다. 결국 1년이라는 시한의 문제로 강령은 조직분리의 결정적 근거가 되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남은 세력들은 서로 이질적인 강령을 통합하여 조직문제를 덮어버리고 공생의 길을 가고 있다.  

 

위와 같이 사노위의 조직노선 투쟁의 본질은 가입원서 정도의 멤버쉽 확인 문제가 아니라, 혁명당 구성원으로서의 자격 즉, 강령에 동의하는 사회주의자인지 아닌지, 강령을 옹호하고 실천할 태세를 갖춘 사회주의 활동가(혁명가)인지 아닌지를 명확히 하는 투쟁이었다. 이것은 정치적으로는 사노위를 혁명가조직과 당적 조직으로 만들고자 했던 혁명당 건설노선과, 사노위에만 한정된 공동실천을 통해 정치조직 간의 형식적 통합과 낮은 단계의 강령통일로 단일조직 건설을 목표로 했던 노선과의 피할 수 없는 충돌이었다.

 

 

2. 5인안 강령의 탄생과 쟁점

 

정치노선으로 구성된 강령기초위원회

 

사노위는 계급투쟁과 사회주의 운동의 한국적 상황과 사노위 구성원들의 객관적 조건들에 근거하여 공동실천단계-당 추진위 -당 건설이라는 경로를 상정했다. 그리고 사노위안에는 사회주의 혁명당과 거리가 먼, 사민주의, 스탈린주의, 민족주의자들은 배제한 상태에서, 한국 사회주의 운동내의 대부분 경향들이 다양한 정치노선과 써클 구도 속(일부 써클 불 참여)에서 함께 하였다. 즉, 사노위가 써클 구도에서는 다수를 포함하지 못했지만, 정치경향 속에서는 가장 풍부한 다수의 경향을 참여시키며, 당 건설 운동의 중심에 서게 된 것이다.

 

그래서 강령기초위원회를 처음 구성할 때는 사노위내 양대 정파였던 사노준과 사노련의 정치적 안배가 작용했으나, 강령실무위원까지 포함하는 강령기초위원회 구성을 마무리한 단계에서는 더 이상 사노준 대 사노련의 써클 구도가 아니라, 적어도 4개 이상의 정치적 입장을 명확히 갖고 있는 정치 사상적 결집체4)의 내용과 형식을 갖게 된다.

 

강령기초위원회 초기과정에서 강령 초초안 마련을 위해 강령의 체계와 구성, 작성방법 등을 결정했던 당시에는 독자적인 강령제출이 가능한 정치노선이라면 어느 입장이라도 각자의 강령 초초안을 제출하기로 결정했다. 이것은 사노위가 더 이상 써클 간의 연합이거나 정치적 노선이 없이 공동실천만을 하는 조직이 아니라, 명확한 정치적 입장을 갖는 조직을 추구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따라서 강령 건설 또한 정치사상적 노선을 중심으로 내, 외부 토론과 대중적 검증과정을 거쳐 공개적이고 공식적으로 건설되어야 한다는 것을 공유했다.

 

당시의 이런 상황을 감안할 때 강령 초초안이 적어도 4개 이상으로 제출될 것이 예상되었다. 그리고 여러 개의 초초안이 제출되더라도 토론과정에서 각각의 초초안 내용을 기초로 하여 공통의 지반과 차이점을 확인하고, 쟁점사항은 토론을 심화시켜 공개적인 검증과정을 통한다면 강령통일을 이룰 수 있을 거라 생각했었다. 공통의 지반과 차이점이 명확해질수록 강령통일은 사노위 구성원 전체의 일이 되고, 실천적 검증의 몫이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우리가 건설할 강령은 조직원 숫자의 다수의 경향이 아닌, 정치 사상적 원칙의 명료함과 실천에서의 무기가 되는 강령만이 당 추진위의 강령으로 채택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조직문제로 탄생한 5인안 강령

 

하지만 강령 초초안 작성을 막 시작하려던 시점에 사노위에서는 당 추진위 건설 과정에서 강령만큼이나 중요한 조직문제가 터지고 말았다. 소위 ‘가입원서 사건’이라는 웃지 못 할 사건이었는데, 당시에는 아직 사노위 전체의 문제나 중앙위의 문제로까지 확대되지는 않았지만, 이미 서울지역위원회에서는 가입원서 거부자(정확히 규정하자면 가입원서 작성과 반대에 대한 행동 자체를 거부하고 정치조직의 민주집중제 원리를 공식적으로 부정한 자)에 대한 징계 안이 상정되었다. 물론 가입원서를 둘러싼 여러 문제들 중 가입원서 작성이라는 형식문제와 집행과정에서의 소통부족은 문제를 더욱 부정적인 쪽으로 확산시키는 원인으로 작용 했다. 하지만 처음의 문제는 가입원서 작성 자체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가입원서 거부흐름을 반조직적으로 촉발시킨 중앙상근자의 태도와 그를 비호하는 세력에 있었다. 왜냐하면 그 문제는 정상적이고 일상적인 정치토론을 통해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는 정치조직으로서는 당연한 멤버쉽 확인 문제였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것을 확산시킨 것은 써클주의 운동에서 나오는 온정주의 흐름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 문제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표명하지 않거나 묵인하는 사노준 출신의 3인을 제외한 강령위원 8인은 긴급회합을 갖는다. 이 자리에서는 강령문제 이전에 정치조직의 기본이 되는 조직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그 어떠한 강령토론이나 강령채택 과정에서도 결국 다수파의 논리와 써클주의 정치가 작용하여, 조직보존을 위한 야합이나 실천적 의미가 없는 강령 채택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는 문제의식을 공유한다. 그 후 1인은 독자강령 제출을 위해 그 모임에서 빠지고 나머지 7인은 조직문제에 대한 공유, 강령 원칙의 큰 틀에서의 동의를 기반으로 공동의 강령 초초안을 제출하기로 결정한다. 이것이 5인안이 탄생한 일차적 배경이다. 그리고 이러한 써클주의에 대한 우려는 2차, 3차 총회와 서울 지역위 임시총회, 강령토론의 과정에서 그대로 드러났고, 사노위 실패와 분리의 결정적 원인을 제공 하게 된다.

 

5인안 강령의 원칙

 

5인안은 강령 초초안을 작성하면서, 노동자계급에게 제출할 혁명 강령에서 고수해야할 원칙이 무엇인가를 밝히는 것이 중요했고, 이것으로부터 강령 작성이 시작되었다.

 

그것은 첫째, 혁명 강령에서는 자본주의의 근본모순을 명확히 규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서로 연결된 역사적이고 일반화된 모순과 그것에서 파생한 특수한 모순들의 고리를 찾아내어 구분하고 총체적으로 판단하여, 계급투쟁의 동학, 사회주의 혁명의 주체를 올바르게 인식하게 해주어야 한다는 원칙이었다.

 

둘째, 스탈린주의를 포함한 역사적 그리고 현존하는 사회주의를 참칭하는 국가자본주의, 기형적 사회 등 모든 반 노동자계급적 억압·착취체제를 사회주의로 인정하지 않으며, 오히려 노동자계급의 힘으로 타도해야 할 체제로 인식하는 것이었다.

 

셋째, 공산주의 사회로의 이행에서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필연성을 인정하며, 사회주의 혁명은 혁명당과 노동자계급의 의식적이고 조직화된 집단행동에 기반 해야 하며, 부르주아 계급의 폭력과 반혁명 책동에 대해 노동자계급의 무장력(계급폭력)으로 맞서야 하며, 부르주아 권력의 타도에서 무장봉기전술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넷째, 단계론을 거부하고, 혁명의 첫 단계에서부터 부르주아 권력의 즉각적 타도와 모든 국가기구의 파괴와 노동자평의회 권력을 확립하는 것을 경로로 명시하는 것이었다.

 

다섯째, 세계혁명과 혁명적 인터내셔널의 건설을 노동자국제주의의 당면 실천목표로 설정하는 것이었다.

 

여섯째, 위의 원칙에 입각한 노동자계급 권력 장악을 위한 이행요구(강령) 실천을 원칙으로 하는 것이었다.

 

위와 같은 강령의 원칙들은 이미 강령 초초안의 내용을 대부분 규정해주고 있었다. 따라서 강령 초초안 작성과 강령토론에 있어 가장 중요한 문제는 강령의 원칙에 대한 동의였다. 강령문구와 전체 내용에 대한 동의는 1년이라는 짧은 기간에는 가능하지도 않고, 강제로 설득해서도 안 되는 문제였기 때문에, 토론과 실천을 통해 검증 받아야 할 앞으로의 과제로 상정했다. 그래서 원칙들에 대한 근거 제시와 세부적인 내용상의 불명료함 해소는 반드시 국제적인 흐름과 한국적 상황을 연계하여 풀어나간다는 원칙하에, 많은 부분을 앞으로의 과제로 남겨둔 채 강령 초초안을 제출하게 된다.

 

3인안 강령과의 사상적 차이

 

앞으로 사노위 잔류파의 통합강령이 어떻게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3차 총회와 강령초안 토론을 거치면서 최종적으로 확인된 3인안과 5인안 강령초안의 사상적 차이는 다음과 같다.

 

첫째, 소련 사회의 성격 규정문제에서 3인안이 소련, 중국, 북한 등을 가짜 사회주의가 아닌 모종의 사회주의 국가로 규정하는 것은 과거의 역사적 사회주의에 대한 인식의 차이 정도가 아니었다. 이것은 앞으로 건설할 사회주의 국가의 상에 관한 문제이고, 여전히 3인안이 스탈린주의적 잔재와 노동자국가에 대한 환상(당과 관료가 주도하는 국유화, 계획경제에 대한 잘못된 환상)을 버리지 못해 나타나는 사상적 혼란스러움이기 때문에 결코 타협할 수 없는 문제였다. 우리는 소련사회에 대해 국가자본주의라고 규정하면서, 가치법칙과 계급투쟁의 고려를 통해 소련사회를 분석하려 노력하고 있다. 여기에는 맑스주의 혁명적 전통에 따라 이행기 문제를 판단하겠다는 의지가 담겨있다. 물론 아직까지 명료하지 못한 측면들은 앞서 말했듯이 앞으로의 과제로 남아 있다. 하지만, 혁명 강령의 정체성을 나타내주는 이행기 문제를 퇴보한 노동자국가론이나 사회주의로의 이행에 실패한 모종의 노동자국가로 판단하는 사상들은 우리와는 현실 투쟁에서부터 적대적5) 일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 문제에 대해 적당한 타협이나 강령상의 이견 병기로 넘어가려는 행위는 정치적 야합일 뿐 역사와 노동자계급에게 정직하지 못한 태도이다.

 

소련과 북한, 중국, 그리고 쿠바와 베네수엘라 같은 국가자본주의 착취체제에 대해 명확한 입장이 없거나 그들을 동의해주는 세력들은 결코 노동자국제주의를 온전히 지켜낼 수 없으며, 혁명적 인터내셔널의 건설에서도 당연히 제외될 수밖에 없다. 그들이 강령에서 가짜 사회주의 국가에 대한 입장을 명확히 하지 않아도 현실의 실천운동에서 큰 문제가 없으니 함께 하자고 하는 것은 노동자계급에 대한 기만이자, 강령과 실천을 분리하는 작태이다. 카스트로, 차베스를 묵인하면서 쿠바나 베네수엘라에서 활동 중인 혁명적 공산주의 세력과 연대할 수 없으며, 중국의 국유화 된 산업 체제를 보호하자는 입장을 갖고 있는 한 중국노동자들의 정부와 노조의 극악한 탄압을 넘어선 자립적 투쟁에 대해 지지할 수 없다.     

 

둘째, 자본주의 쇠퇴 규정의 문제는 현재 자본주의 체제의 끝 모를 위기의 본질을 밝혀내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삶의 문제이고, 계급투쟁의 주체들이 처해있는 객관적 조건과 전망에 대한 문제이다. 이것은 결국 노동자계급 미래의 문제, 혁명의 문제이다. 3인안처럼 자본주의의 상승기/쇠퇴기 개념 없이 단순한 주기적 위기론, 공황론 정도로 자본주의 위기상황을 판단한다면, 쇠락해가는 자본주의의 야만성과 반동성, 기생성과 부후성의 근원을 밝혀낼 수 없다. 더욱이 이것을 혁명적으로 극복할 대안(이행 프로그램)을 그 물적 토대로부터 도출해낼 수 없다. 또한 쇠퇴하는 자본주의 하에서 자본의 위기전가 상황을 맞이하여 생존권의 위협과 급격한 생활수준의 하락에 직면한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생존조건이 계급의식과 조직의 상태를 어떻게 움직이는지 분석할 수 없다. 낡아서 소멸하는 운동과 새롭게 창출되는 계급운동의 실체를 파악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끊임없이 분출되고 꺼져버리는 계급투쟁 속에서 혁명적 전망을 찾을 수 없다. 그래서 자본주의 쇠퇴 개념을 무시한 채 이들이 제시한 전망이라는 것은 고작 과거운동의 혁신이나 계급의 재조직화(주체형성)라는 구태의연하고 앙상한 실천적 전망이었다.

 

게다가 이들은 자본주의 쇠퇴개념에 대한 반정립에 치중한 나머지, 자본주의 쇠퇴의 시작 (1914년, 1979년대, 1998년 이후 등)이 정확히 언제부터였는지에 대한 문제제기나, 쇠퇴의 여러 근거에 대한 연관성 부족에 대한 비판을 넘어, 자본주의 쇠퇴 개념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최근 경제학자들6)과 자본가들까지 자주 사용하고 있는‘자본주의 쇠퇴’라는 개념을 계속 부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이것은 모든 것을 ‘자본주의 위기’라는 말로 치환시키게 되어, 사회주의 혁명의 물적 토대를 스스로 부정한다는 오해를 사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공산주의 혁명은 세계적이어야 하고, 세계적이지 않으면 그 성공을 보장할 수 없다. 또한 세계혁명은 새로운 인터내셔널 즉 세계혁명당이 건설되어야 실현 가능하다. 세계혁명과 세계혁명당 건설의 관점에서 강령은 세계적으로 통일된 강령이 필요하며, 이것은 처음에는 맑스주의 전통을 계승한 혁명적 사회주의자들과 혁명적 계급투쟁을 벌이고 있는 전투적 노동자계급들을 포괄할 수 있는 기준강령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 이 기준강령에는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혁명적 원칙들이 담겨있어야 한다. 일국의 특수성을 반영한 국가별 지역별 당이 존재하는 한, 처음에는 각 당의 강령이 별개로 존재하겠지만 세계혁명당의 강령과 조직은 하나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일국 혁명당의 강령과 조직은 세계혁명당의 기준강령과 통일되어야 하며 세계혁명당의 건설에 복무해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원칙에서 벗어나 불분명한 자신들만의 사상과 경험으로 일국의 강령을 독자적으로 만들려는 시도들은 세계혁명의 관점을 가질 수 없으며, 노동자국제주의와도 거리가 멀다.  3인안은 강령토론의 과정에서 인터내셔널의 관점이 아닌 일국의 독자적 강령과 당 건설을 상정하고 있음을 드러냈고, 이것은 일국 당들의 연합형태를 인터내셔널로 규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맑스주의를 계승한다고 하면서도 자신들이 계승하는 정치노선을 밝히지 못한 채 정체불명의 혼합된 노선과 다른 노선에 대한 반정립으로 일관해 왔기 때문에 맞이한 당연한 귀결이었다. 이것은 사노위 내에서의 연방주의적 조직관을 인터내셔널 건설에까지 적용한 정체불명의 사상적 표현에 다름 아니었다.

 

강령토론의 원칙과 실천적 강령채택의 실패

 

우리는 강령을 토론하고 비판할 때 원칙과 사상적 근거를 중심으로 토론을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계급투쟁의 위대한 역사와 혁명적 사회주의 사상의 집약인 강령의 문구들은 그 만큼 함축적이고 최선의 원칙만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선 강령을 건설하는데 있어 고수한 원칙과 역사적 전통을 밝혀내고, 그것으로부터 작성된 강령의 내용과 현실운동에의 적용 등을 토론하는 것으로 강령토론이 진행되어야 했다.  

 

혁명적 사회주의 원칙과 전통에 동의 한다는 것은 바로 강령의 원칙에 동의한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강령토론은 강령의 사상적 근원을 밝히고 현실 적용에서의 원칙을 토론하는 방식이어야 한다. 그런데 사노위에서의 강령토론은 원칙의 토론이 아닌 강령의 문구나 주제별 토론이 되고 말았다. 실천의 적용에 대한 토론이 아니라 현재의 운동에 대한 유용성에 대한 토론이었다. 

 

다시 강조하지만 강령은 절대불변의 진리가 아니라서 그 원칙의 동의에서부터 시작하여 실천의 무기로 작용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래서 강령의 문구 하나하나는 계급투쟁의 발전과 함께 끊임없이 검증되고 창조되어야 할 과제이지 진리의 담지서가 아니다. 실천을 강제하는 것은 강령의 명료한 원칙과 그에 입각한 풍부한 전술과 지침이지, 강령의 친절함과 좋은 글귀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노위 강령토론 5개월은 강령의 사상적 원칙에 충실한 토론도, 각 쟁점의 해소를 위한 심화토론도, 현실 운동의 무기가 될 수 있는 실천적 토론도 되지 않은 채, 그저 일정을 채우기 급급하거나 사상적으로 전혀 다른 강령 안을 조직보존을 위한 여러 가지 압력으로 통일시키는 것에만 혈안이 되어 있었다.

 

게다가 당시의 사노위 조직 상태는 단일 강령이 만들어지고 강령이 채택된다하더라도, 회원들의 강령적 실천이 담보되지 않는다면, 강령도 당 건설도 앙상한 형식만이 남을 것이 분명했다. 따라서 강령의 채택은 강령의 내용에 대한 동의만이 아니라 강령을 실천적으로 결의하고 강령에 입각해 활동할 진정한 당원의 자격을 부여하는 채택이어야 했다. 강령과 규약을 승인하는 순간, 현재의 사노위보다 2~3배 이상의 정치의식 상승과 활동력이 필요할 것이며 강령적 실천과 규약 준수가 조직의 모든 규율을 담보해주는 것이어야 했다. 왜냐하면 사노위가 8개월을 넘어서면서는 출범초기에 보여준 회원들의 활동력과 결합도는 현저히 떨어져 있었고,  그나마 남아있던 이질적인 조직문화 사이의 건강함 긴장감도 서로에 대한 불신과 불만으로 바뀌어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조직을 살리는 길은 오직 강령의 실천적 채택 뿐 이었다.

 

하지만 다수파는 상당한 고통과 출혈이 따르겠지만 당 건설을 위해 감내해야만 하는 강령의 실천적 채택(복수의 안이 나올 경우 각자의 강령 안을 실천적으로 승인하는 것)이라는 정도를 걸은 것이 아니라, 강령의 인위적 통일을 통한 형식적 채택과 조직보존에 중심을 두면서 우리들 자신과 노동자계급에게 약속한 당 건설 경로를 아무렇지 않게 바꾸어 버렸다.

 

다수파는 처음부터 실천적 강령의 채택이나 조직의 질적 전환을 통한 당 추진위 건설은 염두 해 두지 않았거나 중도에 포기한 것이 확실하다. 그래서 강령 초초안 작성이전 가입 원서 건을 필두로 하여 연쇄적으로 조직문제가 발생했을 때 적극적으로 문제해결을 위해 나서거나 희생을 감수한 것이 아니라 정치적 책임을 방기한 채 무마하거나 통합하려고만 했던 것이다. 이런 태도는 사상적 불명료함과 부분적 실천의 나열과 조직과 투쟁에서의 연방주의적 사고들로 이루어진 3인안 강령에 그대로 반영되어 나타났다.

 

3. 결론

 

강력한 정치조직은 합력의 정치, 통합지도부의 건설이 아닌 강령적 통일, 강령적 행동일치에 있다. 강령의 수준을 낮추어 통일을 꾀하는 것은 혁명적 전통과 현실의 혁명적 사회주의운동을 져버리는 일이다. 그런데 사노위 다수파는 조직유지를 위해 강령의 원칙, 강령토론의 원칙, 강령채택의 원칙, 혁명당 건설의 원칙 모두를 헌신짝처럼 버리고 오로지 조직유지와 형식적 당 추진위 전환을 위해 혁명적 사회주의 진영을 배제7)시켰다.

 

결국 그들이 간과한 가장 큰 오류는 당과 강령은 하나이고 유기체와도 같다는 사실을 부정한 것이다. 이 점을 무시하고 강령의 인위적, 기술적 통합을 시도한 것은 강령과 실천을 분리하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존재했던 모든 혁명당 조직에서 강령은 실천의 지침이자, 당원들과 노동자계급에게 무기로 인식되어왔다.

 

강령에 사회주의혁명이 목표로 설정되어있다면 그 강령을 옹호하는 모든 당원들은 현실운동에서 실제 사회주의 혁명을 위한 운동을 해야 한다. 조합주의, 관료주의 운동을 넘어서는 운동을 강령에서 제시하고 있다면 반드시 조합주의와 관료주의를 타도하고 새로운 운동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강령에 입각한 활동인 것이다. 이런 태세와 이런 조직구조가 갖추어지지 않은 조직은 사회주의자 조직도, 혁명가조직도 아니며, 더욱이 노동자계급의 당이라는 이름을 절대 붙여서는 안 될 후진적 정치 써클일 뿐이다.

 

혁명당 건설은 바로 이러한 강령과 조직이 하나로 결합하는 조직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자, 강령이 노동자계급과 상호작용하며 계급투쟁의 무기가 되는 과정이다.

 

혁명당 건설은 결코 먼 곳에 있지 않다. 계급의 앞선 부위 ,혁명적 부분이라 자임하는 우리가 먼저 강령을 건설하고 강령에 입각한 활동을 통해 혁명당의 조직체계를 하나하나 튼튼하게 세워나간다면, 그것이 노동자계급에 깊이 뿌리 내린다면, 당은 노동자계급에게 바쳐져 노동자계급의 당이 될 것이다.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에 부르주아 계급에게 실질적 위협이 되는 프롤레타리아 혁명당이 되는 일은 우리의 명확한 정치적 입장과 전망이 정세의 고양과 결부된 대대적인 계급투쟁과 만날 때이다. 혁명을 향한 모든 행동은 프롤레타리아 혁명당의 강령과 그것을 행동에 옮길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혁명적 계급의식에 달려있다.

 

쇠락해가는 자본주의, 야만이냐 혁명이냐의 시대, 노동자계급의 시대적 필요에 부응하는 혁명당 건설에 즉각 착수하자!

 

노동자계급에겐 무기가 되고 자본가계급에겐 실질적 위협이 되는 공산주의 혁명 강령을 건설하자!

 

 

각주)

1) 민주노동당은 최근의 ‘사회주의 가치 삭제’라는 강령개정을 통해 사회주의적인 요소도 제거했지만, 원래부터 사회주의 혁명정당과는 거리가 먼 정치적으로는 좌파민족주의, 사민주의 정당이었다.

2) 사노위는 당 건설 추진위 조건으로 강령, 전술, 조직상의 통일을 내걸었다. 하지만 전술은 강령의 원칙에 복무하는 것이기 때문에 강령통일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공동전술에 불과하다.

3) 초초안 단계에서 생략되어 있던 프롤레타리아 독재 개념은, 초안단계에서는 내용이 관철된 것이 아니라 형식상의 외삽 형태로 포함되었다.

4) 강령기초위원회는 강령기초위원과 강령실무위원으로 구성되었는데 총 11명이었다. 강령위원회 구성은 사노준 출신 3명, 사노련 출신 3명,개별 활동가 5명으로 이루어 졌는데, 두 써클 소속이 아닌 5명은 레닌주의, 좌익공산주의, 트로츠키주의, IBT(트로츠키주의 일부) 등 다양한 정치 노선을 갖는 개인들로 구성되었다. 따라서 다함께(전지윤, 사노위 실패가 좌파에게 보여 주는 것, <마르크스21>, 10호, 2011년 여름)에서 규정한 사노련파 대 사노준파의 구도는 강령기초위원회에서는 이미 존재하지 않은 것이다.

 

5) 사노위 신문에서는 리비아 사태를 두고 이미 두 가지의 적대적 경향이 동등하게 게재되었다. 이것이 자국 상황이라면 둘의 입장은 피할 수 없는 적대적인 입장인데도 같은 조직을 유지한다는 것은 부르주아 정치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게다가 여기서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세계혁명과 인터내셔널의 건설이라는 관점에서 서로 적대적인 입장이 자기 일이 아니라서 자국중심으로 아무렇지 않게 동거를 하면서도 인터내셔널을 외친다는 것은 인터내셔널조차 희화화 시키는 일이다.

 

6) 맑스주의 경제학자인 김수행 교수조차도 자본주의 쇠퇴라는 용어를 직설적으로 사용한다. <경향신문> (2011년 5월24일) 김수행 칼럼 -쇠퇴하는 자본주의에서 “이제 자본주의는 빈부격차와 계급대립의 심화, 국제협력의 붕괴, 제국주의에 대한 제3세계 인민의 저항, 민주주의의 약화 등으로 쇠퇴하지 않을 수 없다.” 고 주장했다. "

7) 혁명적 사회주의 진영(사노위 내 의견그룹)은 사노위의 해산을 선언했으므로 사노위 출범정신을 지켰고, 잔류파들은 해산을 받아들이지 않고 사노위를 유지시켰으므로, 사노위의 공과 실에서 혁명적 사회주의 진영을 배제시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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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츠키주의 우파에게 1

사용자 삽입 이미지 1. 오늘날 트로츠키주의자들의 분파가 수십여개로 많은것은, 트로츠키주의의 중요 구성요소 자체에 모순이 많기 때문이다.  트로츠키주의의 불모지였던 한국같은 짧은 역사를 가진 곳에서 조차,  그들은 5개 이상의 경향으로 존재하고 있다.

 

사노위와 노동자혁명당 같은 당 지향적 조직간의 일부 트로츠키 경향 사이에서도 리비아 사태를 두고 서로간에 적대적인 경향(카다피의 무조건적 방어 주장과,  제국주의 물리력을 빌려서라도 카다피를  우선 타도해야 한다는 주장)을 드러내는 것은 트로츠키주의의 치명적 한계가 역사적으로 극복되어 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끊임없이 계승될 것임을 보여준다.

 

 

2. 그리고  이들의 우파가 분파와 그룹을 형성하는 것은 객관적으로 실제로는 부르주아 정치기구의 좌익을 의미한다. 이들이 말로는 사회주의,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외쳐대면서도, 타도해야 할 대상인 부르주아 정치기구(그것이 노동자 당이건, 사회민주주의 당이건)에 입당전술을 펼치면서 기생하고 있는 현실은 노동자계급의 자립성에 치명적 장애물이다. (물론 혁명적 트로츠키주의자들 안에서도 일부는 여전히 명백한 사상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다수파에 기생한 운동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노동자계급의 자립화를 위한  조직적 전망과 장기적 계급투쟁에의 결합이 아니라, 이들의 시시때때로 변하며 임기 응변적인 반정립운동은 노동자계급뿐 아니라 사회주의자들까지도 스스로 자신들을 조직하는 자기조직화의 기본을 잃어버리게 했다.  과거 스탈린주의가 없었더라면 트로츠키 이후의 트로츠키주의가 성립 가능했을지 여전히 의문인 것은, 한국의 현실운동에서도 그들이 벌이는 다른 운동에 대한 반정립운동의 형태로  수시로 목격되고 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그들은 프롤레타리아트의해방을 대표하지 않고 새로운 지배자가 될 국가자본주의자들이나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질서를 대표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사회민주주의나 스탈린주의당(그것의 변종들 -김일성주의등 포함하여)의 좌익으로 기능하며, 이 당들이 혁명적인 정치적 입장으로 부터 공격을 받지 않도록 보호하며, 무엇보다 중요하게 이 당들이 노동자계급의 눈에 진실성이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기 때문이다.  다함께가 개입한 민노당은 다함께에 의해 혁명적으로 진화했거나,  노동자당원들의 의식이 진전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명백하게 퇴보했거나,  정치적으로 적대적인 세력들과 한지붕아래 동거함으로 인해 김일성주의 같은 반혁명적 조류들을   혁명세력의 공격으로부터 방어하는 결과만을 초래하였다.

 

 

3.프롤레타리아트는 오직 지도력이 부족할 뿐이라는 트로츠키의 선언을 맹종함으로써, 그들은 혁명 정당의 부활을 위한 실제조건을 깨닫는 데 실패한다. 이 조건은 프롤레타리아트 대중의 투쟁과, 당 강령의 명확화에 대한 객관적 필요 속에 있다. 이러한 기초적인 조건들을 인지할 수 없었기에, 트로츠키주의자들은 프롤레타리아트가 이미 취한 혁명적 교훈의 길을 다시 거슬러 올라가 추적하지 않고서는 , 그들의 역사적 궁지에서 탈출할 수 없다.

 

그래서 어렵더라도, 고통스럽더라도, 다시 트로츠키를 외우고, 맹종할것이 아니라,  트로츠키 근본으로 돌아가서 잘못된 점을 시정하고, 폐기하고,  절반이상을 버리고 도려내서  그 노선의 10%만 남더라도 혁명적인 전통만 계승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맑스주의 정통으로 가는 길이자,  혁명적 공산주의자들과 함께,  혁명적 프롤레타리아 계급과 함께,  부르주아 이데롤로기에 조종당하지 않고 스탈린주의에 목졸림 당하지 않은 새롭게  소생하는 젊은 공산주의자들과 함께, 새로운 혁명적 인터내셔널을 건설하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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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좌익 공산주의 : 「노동자 그룹」의 선언(강령) 2

러시아 좌익 공산주의 : 러시아 공산당의 「노동자 그룹」의 선언(강령)(2)

국제 평론 2010년 11월 143호, 국제공산주의흐름(ICC)

 

 

 

 우리는 「선언(강령)」의 첫 번째 부분을 국제 평론 지난 호에 실었다. 되짚어보면 「러시아 공산당의 노동자 그룹」은 이 강령을 작성했고, 제3 인터내셔널의 당과 러시아에서의 소비에트 권력의 기회주의적 타락에 대한 반응으로 출현한 좌익 세력들로 구성된, 소위 좌익 공산주의의 일부를 형성했다.

 

 아래 게재된 이 문서의 앞으로의 두 장은 기회주의적인 통일 전선 정책과 노동자 정부 슬로건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하고 있다. 이러한 비판을 역사적 맥락 속에 위치지음으로써, 강령은 역사적인 시기의 변화를 이해하려는 시도로 읽어야 한다. 새로운 시대는 반동적일 뿐인 부르주아지의 여러 분파들과의 동맹 정책을 무효화하고 헛된 것으로 만들었다. 이와 유사하게, 반역자로 드러난 사회 민주주의와 같은 조직들과의 동맹들도 프롤레타리아트를 약화시키는 것일 뿐이었다. 나아가 「강령」은 새로운 시대에서 개혁을 위한 투쟁은 더 이상 화두가 아니라는 것을 명확히 한다. 그러나 이러한 엄청난 역사적 변화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일어났기 때문에 그 변화가 정확하게 무엇이었는지 그런 혁명가들조차도 충분히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관점을 갖추기 힘들었다. 이것은 「노동자 그룹」도 마찬가지여서, 개혁을 위한 투쟁과 자본의 영구적인 잠식에 직면한 프롤레타리아트의 방어적 경제 투쟁을 구분하지 못했다. 이들은 방어적 경제 투쟁을 거부하지 않았지만, 정치적‧경제적 투쟁이 전부를 형성한다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고, 연대 없이 권력을 쟁취하는 것만이 프롤레타리아트를 그 사슬로부터 해방시키는 일이라 믿었다.

 마지막으로, 프롤레타리아트에게 가해진 언론의 자유에 대한 제한에 직면하여, 내전이 끝난 후에도 「강령」은 지도자에게 “당신은 어떻게 사회 경제의 엄청난 조직화 문제를 프롤레타리아트 없이 해결할 수 있는가?”라고 물을 때, 굳건하고 명확하게 답하고 있다.

 

 

 

● 사회주의 통일 전선

 

 이 문제의 본질적인 내용을 보기 전에, 지노비예프 동지의 통일 전선에 대한 테제가 러시아에서 토론되고, 받아들여진 상황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1921년 12월 19-21일에, RCP(러시아 공산당)의 12차 당대회가 있었고, 이 때 통일 전선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었다. 그 때까지 이 문제에 대해 언론에 발표되거나 당 모임에서 토론이 된 적은 없었다. 그러나 당대회에서, 발표된 테제에 대해 조잡한 공격은 있었으나 곧 잠잠해졌고, 당대회는 즉시 거수로 이 테제를 승인하게 되었다는 점은 놀라운 일이다. 우리가 이러한 배경들을 떠올리는 이유는 누군가를 공격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 다음과 같은 사실들에 대해 주의를 기울이고자 하기 때문이다. 첫 째, 통일 전선 전술은 매우 서둘러, 거의 “군대처럼” 이뤄졌다는 점, 둘 째, 러시아에서 이것은 매우 독특한 방식으로 수행되어졌다는 점이다.

 

 볼셰비키는 코민테른1) 내에서 이 전술의 발기인이었다. 그들은 외국 동지들에게 우리 러시아 혁명이 성공했고, 그것은 통일 전선 때문임을 명확히 했다. 또한 통일 전선은 러시아 안에 모든 혁명 전 시기의 경험들과, 특히 볼셰비키의 멘셰비키에 맞선 투쟁의 경험을 바탕으로 구축되어 있었다고 설득했다.

 다른 나라에서 온 동지들은 단순히 러시아 프롤레타리아트가 승리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그들도 그들의 부르주아지에게 승리하길 원했다. 이제 그들은 러시아 프롤레타리아트가 통일 전선 전술 탓으로 승리했다고 납득했다. 그들은 러시아 혁명의 역사를 알지 못했기 때문에 그럴 수 밖에 없었다. 레닌 동지가 이 단순한 이야기를 믿어버린 이들을 심각하게 비난했지만, 그는 누구도 그가 이러한 특별한 단어에 붙들려 있기를 바라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러시아 혁명의 경험으로부터 이끌어낼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인가?

 

 한 때 볼셰비키는 독재에 반대하는 진보적인 운동을 지지했다.

 “a)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짜리즘에 대항하여 부르주아지가 혁명적이든, 단지 반대파일 뿐이든 그들을 지지해야 한다.

 

 b) 그러므로 사회민주주의자들은 러시아 부르주아지의 정치적 의식의 성장을 반길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 편, 그들은 프롤레타리아트 앞에 부르주아 해방 운동의 제한적이고 부적절한 성격이 스스로 드러날 때마다 그 정체를 밝혀야만 한다.” (「러시아 사회 민주주의 노동당」 2차 당대회 결의문, ‘자유주의자에 대한 태도’, 1903년 8월)

 

 1905년 4월 열린 3차 당대회 결의문은 동지들에게 두 가지 지점을 지적하며 권고했다.

 

 1) 노동자들에게, 많은 지주층과 제조업자들로 대표되는 온건 자유주의자들부터 “해방 연합(Emancipation Union)”과 다양한 자유주의 전문직 그룹들로 알려진 급진적 경향들에 이르기까지 부르주아 민주주의 경향이, 뉘앙스에도 불구하고, 반혁명적, 반 프롤레타리아 본질을 갖고 있음을 설명할 것.

 

 2) 노동자 운동을 되돌리려는 일부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시도에 저항해 싸우고, 프롤레타리아트와 그 다양한 그룹의 이름으로 이야기할 것. 1898년 이후 사회 민주주의는 부르주아지와의 “통일 전선”에 대해 호의적이었다. 그러나 이 통일 전선은 세 가지 단계가 있다.

 첫 째, 1901년, 사회 민주주의는 현재 정권에 반대하는 모든 “진보적인 운동들”을 지지했다.

 둘 째, 1903년, 그들은 “부르주아 운동의 한계”를 넘어설 필요를 인식했다.

 셋 째, 1905년 4월, 그들은 “동지들로 하여금 부르주아 민주주의적 경향의 반혁명적, 반 프롤레타리아적 본질과 그 영향력을 비판”하고 그들의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한 영향에 대해 정력적으로 싸웠다.

 

 부르주아지를 지원하는 것이 어떤 형태가 되었든, 1905년 이전 특정 시기 볼셰비키가 부르주아지와 통일 전선을 형성했었다는 것은 의심할 바 없다.

 

 러시아 경험에 비추어 봤을 때, 오늘날 부르주아지와 통일 전선하는 “혁명가”를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가?

 

 1905년 9월, “Boulyguine 두마”의 문제를 토론하기 위해 소집된 회의에서, 대회는 이 두마의 부르주아지에 대한 태도를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정의했다. “인민의 대표라는 이러한 환상으로, 독재는 노동 운동이 지쳐감에 따라 성장하고 질서를 열망한 부르주아지의 많은 요소들을 부추겼다. 그들의 이해와 지원을 약속하면서, 독재는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의 혁명적 운동을 박살내려 했다.”

 

 볼셰비키가 1906년 「러시아 사회민주노동자당」(RSDLP) 통일 대회에서 제안한 결의안은 볼셰비키 정책 변화의 비밀을 드러내 준다. 부르주아지를 지원하던 정책이 부르주아지에 대한 투쟁 정책으로 변화한 것이다. “거대한 자본가와 지주들의 계급들이 독재에 대해 반대하다가 혁명을 파괴하기 위해 얼마나 재빨리 독재와 연합하게 되었는지 볼 수 있다.” “민주주의 혁명 시기의 노동자 계급의 주요 임무는 그 혁명의 완수”였기 때문에 그것은 또한 이 혁명의 완수를 원하는 당과의 “통일 전선”을 형성해야만 했다. 이러한 이유로 볼셰비키는 카데츠의 우익과 했던 협정을 폐기하고, 그 좌익인 「사회주의 혁명가당」, 「인민 사회주의자들」과 「트루도빅스」(Trudoviks)와의 협정을 맺었다. 이에 따라 민주주의 혁명의 지속적인 진전을 위한 투쟁에서 “사회주의 통일 전선”이 형성되었다.

 

 이 시기 볼계비키의 전술은 옳았는가? 10월 혁명의 적극적인 투사들 사이에 이러한 전술의 시비에 대해 논쟁하는 이들이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러므로 1906년에서 1917년까지 볼셰비키가 「제헌 의회」를 소집하기 위한 「임시 혁명 정부」의 형성으로 완수된 민주주의 혁명의 지속적인 진행을 위한 투쟁에서 “사회주의 통일 전선”을 옹호했다고 본다.

 

 아무도 이 혁명이 프롤레타리아적이거나 사회주의적이라고 생각하지도, 생각할 수도 없었다. 그것은 부르주아 민주주의였음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볼셰비키는 사회주의 혁명가당, 멘셰비키, 인민주의자들과 트루도빅스들과 실질적으로 단결하면서 “사회주의 통일 전선” 전술을 제안하고, 그에 따랐다.

 

 우리는 민주주의 혁명을 위해 투쟁해야 하는가, 아니면 사회주의 혁명을 위해 투쟁해야 하는가라는 문제가 제기되었을 때, 볼셰비키의 전술은 무엇이었는가? 소비에트 권력을 위한 투쟁도 “사회주의 통일 전선”을 필요로 하는가?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사회주의 혁명가당」을 “모호한 사회주의 표현을 하는” “부르주아 민주주의 분파”로 여긴다. 그것은 혁명 동안, 지금까지 그들의 활동을 통해 확인되어 왔다. 부르주아 민주주의 분파로서, 이 당은 사회주의 혁명, 사회주의을 위한 투쟁에서 실질적인 임무를 떠맡을 수 없었다. 대신에 그들은 “모호한 사회주의적”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이 투쟁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되돌리려 했다. 만일 그러하다면 (그리고 그들은 그러했다) 봉기한 프롤레타리아를 승리로 이끌 전략은 사회주의 통일 전선일 리가 없다. 오히려 부르주아지 분파와 그들의 혼란스런 사회주의 용어들을 상관하지 않는 피튀기는 전투만이 승리로 이끌 전략일 것이다. 오직 이러한 전투만이 승리를 가져올 것이며, 승리는 반드시 그런 방식으로 이뤄져야만 할 것이다. 러시아 프롤레타리아트는 승리했다. 사회주의 혁명가당, 인민주의자들과 멘셰비키들과의 동맹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들에 맞서 싸움으로써 승리했다.

 

 10월이 다가왔을 때 볼셰비키는 사회주의 혁명가당2), 멘셰비키3)의 사회주의적 수사들로부터 노동자 대중을 해방시킴으로써 사회주의 혁명가당과 멘셰비키와의 분리에 성공했다. 그리고 부르주아지 분파와의 통일 전선으로 취급하기 힘든 이러한 분리로부터 그들은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러시아의 경험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은 무엇인가?

 1) 특정 역사적 순간, 부르주아지와의 통일 전선은 1905년 이전의 러시아에 존재했던 상황과 유사한 조건의 지역에서 형성될 수 있다.

 2) 1906년과 1917년 사이의 러시아와 다소 유사한 상황의 나라들에서는 부르주아지와의 통일 전선을 포기하고 “사회주의 통일 전선” 전술을 취하는 것이 필요하다.

 

 프롤레타리아 권력을 위한 직접적인 투쟁이 존재하는 곳에서는, “사회주의 통일 전선” 전술을 폐기하고, 프롤레타리아트에게 “모호한 사회주의적 용어를 쓰는 부르주아 분파”- 그 당시로서는 제2 인터내셔널의 모든 정당들이 해당될 것이다 -가 결정적인 순간 자본주의 체제를 방어하기 위해 무장할 것이라고 경고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세계 자본주의 착취를 전복하려는 목적을 가진 모든 혁명적 인자들의 단결을 위해서는, 그들이 「독일 공산주의 노동자당」(KAPD), 「네덜란드 공산주의 노동자당」과 「제4 인터내셔널」4)에 속한 다른 정당들과의 동맹이 필수적이다. 모든 진정한 프롤레타리아 혁명가들은 그들을 투옥했던 모든 세력들- 제2 인터내셔널의 정당들, 제2 1/2 인터내셔널5)과 그들의 “모호한 사회주의적 용어”- 로부터 스스로 분리할 필요가 있다.  세계 혁명의 승리는 부르주아의 사회주의 캐리커쳐로부터의 원칙적인 분리와 그들에 대항하는 멈추지 않는 투쟁 없이는 불가능하다. 기회주의자들과 사회주의-쇼비니스트들은 부르주아지의 하인들로서, 결과적으로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적들을 지휘했는데, 특히 오늘날, 자본가들과 연결되어, 그들의 나라에서, 해외에서 무장한 억압자가 되었다. (볼셰비키의 강령과 비교해 보라) 이것이 코민테른의 최고 위원회의 테제에 의해 지지된 사회주의 통일 전선 전술의 진실이다. 실제로는 기회주의적 전술이었던 것이다. 자국과 다른 나라들에서 행해진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한 무장 억압을 수행한 적들과의 합동 전술은 러시아 혁명의 경험에 명백히 대립되는 것이었다. 사회주의 혁명이라는 깃발 아래 남아있기 위해, 우리는 부르주아지와 그 사회주의자 하인들에 대항하는 “통일 전선”을 형성해야 한다.

 

 위에서 지적한 대로, “사회주의 통일 전선” 전술은 프롤레타리아 투쟁이 부르주아지에 의해 지원되는 독재에 대항하여 일어날 때, 부르주아 민주 혁명을 목표로 할 때 그 혁명적인 가치를 갖고 있다.

 

 그리고 프롤레타리아트가 부르주아지도 반대하는 독재에 대해 싸울 때, 부르주아지와의 “통일 전선” 전술을 따라야 한다.

 

 코민테른이 모든 국가들의 공산당에게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사회주의 통일 전선을 쓸 것을 요구한 것은 각 나라의 조건에 상응하도록 해결책을 내놓는 현실적 임무를 방해하고, 의심할 바 없이 프롤레타리아트의 모든 혁명적 운동들에 해를 끼쳤다.

 

 

●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의 집행위원회의 테제에 대하여

 

 이 테제는 프라우다(Pravda)에 게재되었는데, “이론가들”이 “사회주의 통일 전선”의 아이디어를 단 두 단어의 표현으로 이해했음을 명백하게 보여준다. “통일 전선”. 1917년 러시아에서는 모든 나라들에서, 특히 샤이데만, 노스케를 비롯한 사회적 배신자들이 얼마나 “인기 있었는지” 모든 이들이 안다. 볼셰비키의 당원들은 거의 경험이 없었기에, 모든 곳에서 외쳤다. “이 노동자 계급의 배신자들아! 우리는 너희들을 전신주에 목 매달 것이다. 너희들은 모든 나라들의 노동자들을 수장시켜 죽인 그 피의 욕조에 책임을 져야 한다. 너희들은 로자 룩셈부르크와 리프크네히트를 암살했다. 베를린의 거리에서, 너희들의 폭력적인 행동 덕에 착취와 자본주의 억압에 반대에 일어난 노동자들의 붉은 피가 흐른다. 너희들은 베르사유 평화의 저자들이지만 그것을 매번 배신함으로써, 너희들은 국제 프롤레타리아 운동에 셀 수 없는 상처를 입혔다.”

 

 우리는 공산주의 노동자들에게 “사회주의 통일 전선”을 제안하는 것이 정해진 것은 아니었다고 덧붙인다. 그것은 노스케, 샤이데만, 반데벨드, 브란팅 등과의 연합전선을 이야기한다. 그러한 통일 전선은 일방적으로든 다른 방식으로든 위장될 것이며, 이것이 앞으로 일어날 일 들이다. 테제는 단순히 “사회주의 통일 전선”으로 명명되는 것이 아니라 “프롤레타리아의 통일 전선에 대한, 그리고 제2 인터내셔널에 속한 노동자들, 「2와 1/2 인터내셔널」과 암스테르담, 유사하게 아나키스트와 생디칼리스트 조직에 속한 노동자들에 대한 태도에 대한 테제”라고 이름 붙여졌다. 왜 이렇게 장황한가? 여러분은 오래지 않은 시간 전에 우리를 제2 인터내셔널의 장례식에 초대한 지노비예프 동지가 이제는 우리를 제2 인터내셔널과의 결혼 축하연에 초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이 왜 그렇게 장황한 제목을 달아야 했는가 그 이유이다. 사실 이 테제는 노동자와의 협정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제2 인터내셔널과 2와 1/2 인터내셔널의 정당들과의 협정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노동자들은 해외에 나가 본 적이 없다고 할지라도 그들의 중앙 위원회에 앉아있는 반데벨데, 브란팅, 샤이데만, 노스케 등에 의해 대표되는 당들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협정이 이뤄지는 것은 그들과 함께이다. 누가 세 개의 인터내셔널의 대회를 위해 베를린에 가겠는가? 공산주의 인터네셔널은 진심에서 우러나는 신뢰를 누구에게 줘야 하는가? 벨스(Wels)파에게, 반데벨테(Vandervelde) 파에게 

 

 그러나 KAPD와 협정을 맺으려 시도한 적이 있던가? 지노비예프 동지가 대부분의 훌륭한 프롤레타리아적 인물들이 있다고 인정한 그곳과? 없다. 그리고 KAPD는 아직 프롤레타리아트에 의한 권력 쟁취를 위해 싸우고 있다.

 

 지노비예프 동지의 이 테제의 목적이 공산주의 인터내셔널과 제2 인터내셔널의 혼합이 아니라고 확인했던 것은 사실이다. 제2 인터내셔널에 대해, 그는 조직적 자율성의 필요를 일깨워준다. “제2 인터내셔널과 2 1/2 인터내셔널과 이러저러한 협정들을 맺은 각 공산당의 위치는 절대적 자율성과 총체적 독립성이 설명해준다.” 공산주의자들은 실천에 있어서 자기 규율을 스스로 강제하지만, 그들은 노동자 조직의 정치에 대한 예외없는 권리와 가능성을 - 실천의 전후에, 가능하다면 실천하는 가운데 - 유지해야 한다. “자본주의 전선에 대항하는 실천적인 행동에서의 모든 노동자 조직의 최고 수위의 단결”이라는 슬로건을 지지하면서, 공산주의자들은 그들의 입장을 방어하는 것을 포기할 수 없다.(1921년 러시아 공산당 대회에서 제출된 코민테른 중앙위원회의 테제를 보라)

 

 1906년 이전, 「러시아 사회민주노동자당」에서는 위의 코민테른의 테제에서 인용된, 가능한 최대한의 자율성을 갖고 있는 두 분파가 있었다.

 

 협상에서의 규율, 당 내 활동에서의 판단의 자율성은 공식적으로 RCP의 규정에 인정되어 있었다. 다수가 정한 것은 해야만 하며, 개인은 비판의 권리만을 행사할 수 있을 뿐이었다. 명령된 것은 해야만 하지만, 그것이 세계 혁명에 해를 끼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에 대해 분노했다면, 실천 이전에, 와중에, 그리고 이후에 자유롭게 그 분노를 표현할 수 있었다. 이것은 자율적 행동을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Vandervelde가 베르사유 조약에 사인하고, 스스로 타협했을 때와 같다)

 

 이러한 같은 테제들에서, 집행위원회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대신하는 것임이 분명한 노동자 정부의 슬로건을 제안했다. 노동자의 정부란 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당의 정수인 중앙 위원회로 구성된 정부이다. 이러한 테제의 이상적인 실현은 사회주의자인 에버트(Ebert)가 대통령인, 그의 승인과 함께 정부가 형성된 독일에서 일어났다. 이 공식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공산주의자들은 스웨덴의 브란팅과 독일의 에버트와 같은 사회주의자 수상, 대통령을 지지하는 투표를 해야만 한다.

 

 코민테른의 의장, 지노비예프 동지는 사회민주당의 중앙위원회, 에버트, 노스케, 샤이데만을 만나 주먹을 쥐고 외쳤다. “노동 계급의 배신자, 변절자!” 그들은 친절하게 미소 짓고 그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당신들은 독일 프롤레타리아트의 지도자인 로자 룩셈부르크와 칼 리프크네히트를 살해했다. 우린 당신을 교수대에 목매달 것이다.” 그들은 그를 향해 더욱 친절하게 미소 지으며 더욱 고개를 숙였다.

 

 지노비예프 동지는 그들에게 통일 전선을 제시하고, 공산주의자들과 함께 노동자 정부를 구성할 것을 제안한다. 그러므로 그는 교수대를 수상의 자리와 바꾸어 제안하고 있는 것이다. 노스케, 에버트, 샤이데만, 등등은 노동자 집회에 가서 코민테른이 자신들을 사면했으며, 교수대 대신 수상 자리를 제안했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 조건은 공산주의자들이 수상을 인정하는 것이다 [...]6) 그들은 모든 노동 계급에게 공산주의자들은 사회주의의 실현의 가능성이 오직 자신들과의 단결에 있지, 그들과의 대결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이야기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덧붙인다. 이 사람들을 보라! 그들은 우리를 예전에 교수형에 처해 무덤에 묻었다. 이제 그들은 우리에게 왔다. 우리는, 선의로 그들을 용서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우리를 용서했기 때문이다. 상호 사면인 셈이다.

 

 코민테른은 제2인터내셔널에 그 정치적 성실함의 증거를 보여주었고, 정치적 열등함의 증거를 받았다. 실제 이 변화의 기원은 무엇인가? 지노비예프 동지는 어떻게 에버트, 샤이데만, 노스케에게 교수대 대신 수상 자리를 권할 수 있는가? 얼마 전에 그들은 제2 인터내셔널의 장송곡을 불렀는데, 이제 그들은 삶에 키스를 한다. 왜 그는 그런 노래를 부르는가? 우리는 정말 그 부활을 보고 그 주장을 들어야 하는가?

 

 지노비예프의 테제는 이러한 질문에 효과적으로 대답한다. “세계 경제 위기는 더더욱 첨예해지고, 실업은 늘어만 간다. 자본은 공세로 나아가고, 교묘하게 작전행동을 하고 있다. 노동계급의 조건은 손상되었다.” 그러므로 계급 전쟁은 피할 수 없고, 노동 계급은 더욱 왼쪽으로 나아갈 것이다. 개량주의적 환상은 파괴되었다. 더 많은 노동자들이 공산주의 전위의 용기를 제대로 평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로부터 샤이데만과의 통일 전선은 구성되어야 한다. 극악무도한! 결론은 전제와 일관되지 않다!

 

 우리는 지노비예프가 그의 테제에서 통일 전선을 방어하기 위해 내세웠던 주장들에 대해 좀 더 근본적인 것들을 고려하지 않고서는 객관적이라고 이야기할 수 없을 것이다. 지노비예프 동지는 놀라운 발견을 했다. “우리는 단결을 위한 노동 계급의 투쟁을 안다. 샤이데만과의 통일 전선을 통하지 않고서 어떻게 단결할 수 있는가?” 자신의 계급의 이해와 세계 혁명에 대해 생소하지 않은, 모든 의식 있는 노동자들은 이렇게 물을 수 있을 것이다. 노동 계급은 “통일 전선”을 주장할 필요가 생겼을 때에만 단결을 위해 투쟁하는가? 노동 계급이 정치 투쟁에 발을 디뎠을 때부터 노동자와 함께 한 이라면 누구나 모든 노동자를 괴롭히는 의심을 알고 있다. 왜 멘셰비키, 사회주의 혁명가당, 볼셰비키, Trudoviks(인민주의자) 들은 서로 싸우는가? 모두가 민중을 위하고 있으면서도.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서로 싸우게 하는가? 모든 노동자들은 스스로 독립적인 계급으로서 조직화해야 하고, 그 외 모든 계급들에 대해 반대해야 한다. 우리의 쁘띠 부르주아적 편견들은 반드시 극복해야 한다! 그것은 진실이었으며 지금도 여전히 그러하다.

 

 사회주의 혁명에 대해 호의적인 상황에 있는 모든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우리는 노동 계급이 국제적 멘셰비키와 사회주의 혁명가당에 대항하는 무장 투쟁을 준비하도록 해야 한다. 이 경우, 확실히 러시아 혁명의 경험이 고려되어야 한다. 세계 노동 계급은 제2 인터내셔널과 2와 1/2 인터내셔널의 사회주의자들이 반혁명의 선두에 있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사회주의의 배신자들과의 통일 전선에 대한 선전들은 어떤 뉘앙스에 상관없이 그들도 역시 사회주의를 위해 부르주아지와 싸우지, 그 반대가 아니라는 믿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오직 공개적이고 용기있는, 내전을 옹호하고 노동계급에 의한 정치 권력의 획득을 옹호하는 선전들만이 혁명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관심을 끌 수 있다.

 

 노동 계급이 그 자신의 물질적 법적 권리를 파업과 의회를 통해 개량할 수 있는 시기는 이미 지났다. 이것은 밝혀져야 한다. 가장 시급한 투쟁은 권력 투쟁이다. 우리는 우리의 선전을 통해, 많은 경우 파업을 자극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노동자의 조건을 개선시킬 수 없었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아직 옛날 개량주의적 환상을 넘어서지 못하고 스스로를 약화시키는 투쟁을 하고 있다. 우리는 노동자와 파업 동안 연대하지만, 우리는 언제나 이러한 운동은 노동자들을 노예 상태, 착취와 갈증의 고통으로부터 해방시킬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승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노동자의 굳은 살 박힌 손으로 권력을 쟁취하는 것 뿐이다.

 

 그러나 이것이 다가 아니다. 지노비예프 동지의 연대 결정은 통일 전선 전술을 정당화 했다. 우리는 “사회 혁명의 시대”라는 관념을 이해하는 데 익숙하다. 그것은 현재, 사회 혁명이 시대의 화두임을 의미한다. 그러나 실제로, “사회 혁명의 시대는 장기적 관점에서 혁명 과정의 일부”라는 것을 보여줬다. 지노비예프는 우리가 현실에 발을 딛고 노동 대중을 끌어들이라고 충고했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멘셰비키와 사회주의 혁명가당과 1903년에서 1917년까지 다른 방식으로 단결함으로써 대중들을 설득했고, 우리가 이미 보았듯이, 우리의 승리로 끝맺었다. 이것이 왜 그가 에버트, 샤이데만, 씨에(Cie)를 극복하라고 하며 그들과 싸우지 말고 단결하라고 주장하는 이유다.

 

 우리는 사회 혁명의 기간이 장기든 단기든, 그 기간이 어느 정도든 여기서 논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논쟁은 천사의 성별에 대한 수도사들의 논쟁이나 대머리가 되려면 몇 개의 머리카락이 없어져야 하는지에 대한 논쟁과 닮아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회 혁명의 시대”라는 개념을 정의하고자 한다. 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먼저 물질적 생산력이 발전하여 소유권과 양립할 수 없게 된 상태이다. 사회 혁명이 필연적인 것이 되는 물질적 조건이 있는가? 그렇다. 무엇이 부족한가? 주체, 인적 조건이 부족하다. 선진 자본주의 국가의 노동 계급은 먼 미래가 아니라 지금 당장 이러한 혁명의 필요를 실현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서 이미 이를 이뤄낸 선진 노동자들, 다시 말해 전위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경종을 울려야 한다.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공장 폐쇄, 파업, 급박한 전쟁, 생활조건의 추락 등) 내전을 옹호하는 선전을 통해 전투를 요구하고, 이러한 즉각적 투쟁에 대해 노동 계급을 준비시키고 조직해야 한다.

 

 러시아 프롤레타리아트가 승리했다고, 그것이 멘셰비키와 사회주의 혁명가당과 단결했기 때문이라고 누가 이야기할 수 있는가? 그것은 넌센스다. 러시아 프롤레타리아트는 멘셰비키와 사회주의 혁명가당에 대항하는 치열한 싸움을 통해 부르주아지와 지주들에게 승리했다.

 

 통일 전선 전술의 필요에 대해서 트로츠키는 그의 연설에서 우리는 승리했지만 우리가 어떻게 승리했는지 분석해야만 한다고 이야기했다. 그는 우리는 멘셰비키와 사회주의 혁명가당과 통일 전선을 통해 진군했지만, 그것은 우리와 멘셰비키, 그리고 사회주의 혁명가당이 같은 위원회에 앉아 있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만약 통일 전선 전술이 같은 기관에 앉아있는 것이라면, 강제 노동의 우두머리들과 죄인들 또한 통일 전선에 포함된다. 그들은 모두 감옥에 있다.

 

 우리 공산당은 의회에 앉아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들이 모든 대표들과 함께 통일 전선을 형성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가? 트로츠키, 지노비예프 동지는 전 세계의 공산주의자에게, 다소 의심스런, 볼계비키, 멘셰비키, 그리고 사회주의 혁명가당의 소위 통일 전선에 대해 이야기하기보다, 볼셰비키가 1917년 8월 「사회 혁명적 케렌스키」가 소환한 “전-의회”나 사회주의자에 의해 주도된 임시 정부(유용한 교훈이었던)에 참가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밝혀야만 한다.

 

 우리는 볼셰비키가 부르주아지와 통일 전선을 꾸렸던 시기에 대해 언급했다. 그러나 이것은 언제인가? 1905년 전이다. 그렇다. 볼셰비키는 사회주의자들과의 통일 전선을 옹호했다. 이것은 언제인가? 1917년 전이다. 1917년, 노동계급의 권력을 위해 싸울 때, 볼셰비키는 사회주의 혁명가당 좌익에서부터 모든 종류의 아나키스트에 이르기까지 모든 혁명적 집단과 함께 무기를 들고 소위 “민주주의”라고 불리는 통일 전선을 형성한 멘셰비키와 사회주의 혁명가당,  그리고 부르주아지와 지주들과 싸웠다. 1917년, 러시아 프롤레타리아트가, 선진 자본주의 국가의 프롤레타리아트가 있는, “사회 혁명의 시대” 최전선에 나섰다. 1917년 러시아의 프롤레타리아트의 승리 전술은 뒤이은 나날들의 교훈을 설명해 준다. 부르주아지 분파들, 사회주의 혁명가당, 그리고 멘셰비키의의 격렬한 저항에 권력을 쟁취한 노동 계급은 직면하게 된 것이다. 선진 자본주의 국가의 노동계급을 단결시키는 것은 이 전술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들은 아직 “개량주의적 환상을 제거”하는 과정에 있기 때문이다. 이 전술은 제2인터내셔널이나 2와 1/2 인터내셔널과의 통일 전선이 아니라 그들과의 전쟁일 것이다. 이것이 세계 사회 혁명의 슬로건이다.

 

 

프롤레타리아트가 권력을 쥔(노동자 민주주의) 국가에서의 통일 전선에 대한 문제

 

 이미 사회주의의 공격으로 프롤레타리아트가 지배 계급이 된 모든 나라들에서는 각 시기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물론 각각의 다른 나라들에서 혁명 과정의 모든 단계에 유효한 전략을 개발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같은 단계에 대한 정책 또한 마찬가지다.

 

 우리의 (그렇게 오래지 않은) 투쟁의 역사를 기억해 본다면, 적과의 싸움에 있어서 우리는 매우 다른 과정들을 겪어왔음을 알 수 있다.

 

 1906년과 그 후 몇 년동안은, “세 개의 기둥”이 있었다. 8시간 노동, 토지의 소유, 그리고 민주 공화국이 그것이다. 이러한 세 기둥은 언론과 집회, 파업, 노동조합 결성의 자유를 포함하고 있었다.

 

 1917년 2월에는 어떠했는가? “독재 정치는 끝났다! 제헌 의회 만세!” 이것이 볼셰비키의 외침이었다.

 

 그러나 4-5월, 모든 것이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집회, 언론의 자유는 있었지만 토지의 소유는 그대로였고, 노동자들은 권력을 잡지 못했다. 그래서 볼셰비키는 다시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라는 슬로건을 걸었다.

 

 이 시기, 우리의 입을 다물게 하기 위한 부르주아지의 시도들은 격렬한 저항에 부딪혔다. “언론, 집회, 결사, 파업, 양심의 자유 만세! 토지를 몰수하라! 생산의 노동자 통제! 평화! 빵! 자유! 내전 만세!”

 

 그리고 10월의 승리. 노동 계급이 권력을 잡았다. 국가 억압의 오랜 작동원리는 완전히 파괴되었고, 해방의 새로운 작동원리가 노동자, 군인 대표 평의회 속에 구조화되었다.

 

 이 시기에 와서 프롤레타리아트의 언론, 결사의 자유는 주장되어야 했던 것일가? 군국주의자부터 멘셰비키, 사회주의 혁명가당이 내전을 지지하도록 허락해 줄 수 있지 않았을까? 무엇보다도, 지배계급으로서 내전을 옹호하는 동지들에게 언론의 자유를 줄 수 있지 않았을까? 아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아니다!

 

 프롤레타리아 권력에 반대하는 어떤 내전에 대한 조직된 선전도 착취자, 억압자를 불러들일 수 있는 반혁명적 행위였다. 선전이 더욱 “사회주의”적일수록, 더욱 해악적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같은 프롤레타리아 가족의 이러한 선전들에 대한 가장 엄격하고 무자비한 제거”가 진행되어야만 했다.

 

 그래서 착취자들의 저항을 억압할 수 있고, 스스로 조직하여 유일하게 권력을 쥐며, 모든 자본주의 정부들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국가를 건설한 프롤레타리아트가 나타났다. 이들에게 부여된 새로운 임무는 다음과 같았다. 국가 경제를 조직하고 가능한 한 많은 물질을 창조하는 것. 그리고 이 임무는 권력의 쟁취와 착취자들의 억압 만큼이나 엄청난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권려의 쟁취와 착취자에 대한 억압은 그것 자체로 목적이 아니었다. 그러나 사회주의로의 길은, 자본주의보다, 한 계급에 의한 다른 계급의 지배와 억압 하에서보다 더 나은 삶과 자유로의 길은 그것 자체로 목표였다.

 

 이전의 억압자들을 제거하기 위한 조직의 형태와 실천의 수단들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접근이 필요했다.

 우리가 자원이 부족하다는 관점에서, 제국주의 전쟁과 내전으로 인한 끔찍한 황폐를 경험하고 있다는 점에서 노동 계급과 동맹 그룹들에게 프롤레타리아트에 의해 만들어진 사회주의 사회의 매력적인 힘들을 보여주기 위해 물품을 창조하는 임무가 우리에게 부과되었다. 더 이상 부르주아지, 경찰과 다른 기생충이 없을 뿐만 아니라 프롤레타리아트가 주인이 되고 자유로우며, 모든 가치, 모든 상품, 모든 노동이 자본주의 아래에서의 가난한 자, 억압받는 자, 그리고 굴욕받던 자의 삶을 개선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는 이유로 이것을 보여주는 것은 좋은 일이다. 이것은 굶주림의 왕국이 아니며 오히려 전에 없던 풍요의 왕국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좋은 일이다. 이것이 러시아 프롤레타리아트에게 남겨진 임무이며, 선행된 것들을 능가해야할 임무이다.

 

 그렇다. 첫 번째 두 임무, 권력을 쟁취하고 억압자들의 저항을 제거했다는 점에서 프롤레타리아트는 앞선 이들을 뛰어넘었고(이것은 지주와 부르주아지에 대한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들의 강한 오를 설명한다) 그것은 위대한 일이지만 세 번째 목표보다는 중요하지 않다. 그리고 오늘날, 모든 노동자들은 질문해야 한다. 왜 이 모든 것을 해야 하는가? 이것이 그렇게 중요한가? 그토록 많은 피를 흘려야 했는가? 끝없는 고통을 겪어야 했는가? 이 문제를 어떻게 풀 수 있을까? 우리 운명을 누가 결정하는가? 어떤 조직이 그것을 할 것인가?

 

 최고의 구세주는 없다.

 

 신도, 카이사르도, 호민관도 아니다.

 

 생산자, 우리 스스로를 구원하라!

 

 공통의 구권을 선포하라!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전체 프롤레타리아트의 단결된 의지를 대표하는 조직이 필요하다. 우리는 부르주아지로부터 빼앗은 (국유화된), 그에 속한 거대한 계층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기업이 속한 산업 조직 뿐만 아니라 노동자 대표의 평의회도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평의회는 무엇인가? 그들은 노동자 대표의 평의회, 다시 말해 “농장과 공장에서의 국가 권력의 핵심”을 조금이라도 닮았는가? 그들은 단결된 의지를 표현하는 프롤레타리아트의 평의회를 닮기는 했는가? 지금의 평의회는 그 의미와 산업 기반을 잃었다.

 

 프롤레타리아트의 압제자에 대한 저항과 그들의 파괴를 향한 목표에의 관심을 동원했던 오랜 내전은 연기되고 모든 다른 업무들을 제거하고 - 프롤레타리아트가 눈치채기도 전에 - 그 조직, 평의회를 변화시켰다. 공장의 노동자 대표의 평의회는 죽었다. 노동자 대표 평의회 만세!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도 보편적으로 이와 같지 않은가? 우리는 프롤레타리아트를 위해 언론의 자유에 대해 격렬한 내전과 노예 감독자의 봉기 때와 유사한 태도가 필요한 것이 아닌가? 권력을 차지한 프롤레타리아트는 스스로를 끔찍한 적으로부터 방어할 수 있게 되어, 이제 그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 스스로 엄청난 생산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조직하고 생산과 전체 나라를 지도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고 있지 않은가?

 

 부르주아지는 확실히 침묵하고 있다. 그러나 그 누가 권력을 방어한 프롤레타리아트의 언론의 자유를, 자신의 피를 흘리지 않고 논할 것인가?

 

 우리에게 언론의 자유는 무엇인가? 신인가 미신인가?

 

 우리는 우리를 위한 우상을 만들지 않는다.

 

 땅에서도, 하늘에서도 아니다.

 

 우리는 누구 앞에서도 복종하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진정한 민주주의, 절대적인 자유, 물적 숭배나 우상, 진정한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 따위는 없다.

 

 민주주의는 전에도 그러했고 미래에도 모든 나라의 반혁명, 부르주아지, 지주, 성직자, 사회주의 혁명가당, 그리고 멘셰비키 등을 의미하는 미신이 될 수 없다. 그들에게는 그것이 그들의 계급적 목표를 달성하는 유일한 수단일 뿐이다.

 

 1917년 이전, 모든 시민의 언론의 자유는 우리의 진보적인 요구였다. 1917년에는, 우리는 이러한 자유를 쟁취하여 프롤레타리아트와 그를 따르는 지식인들과 농민들의 조직화와 선전에 썼다. 부르주아지를 이길 수 있는 조직을 만든 후, 우리 프롤레타리아트는 전쟁으로 나아가 권력을 쟁취했다. 부르주아지가 언론의 자유를 우리를 반대하는 내전을 일으키는데 쓰는 것을 막기 위해, 우리는 적 계급 뿐만 아니라 프롤레타리아트의 일부와 그를 따르는 이들에게도 러시아의 부르주아지의 저항이 완전히 무너질 때까지 언론의 자유를 주기를 거부한다.

 

 그러나 다수 노동자의 지원으로, 우리는 부르주아지의 저항을 분쇄했다. 이제 우리는 우리 프롤레타리아에게 말하도록 허락할 수 있지 않은가?

 

 1917년 이전과 1917년의 언론의 자유, 그리고 1918년에서 20년까지의 것과 1921년에서 1922년까지의 문제에 대한 우리 당의 태도는 필요하다.

 

 그러나 소비에트 권력의 적들이 이 자유를 소비에트를 전복시키기 위해 사용할 수 있지 않은가? 아마도 이 자유는 독일, 프랑스, 영국 등에서 이들이 혁명 과정의 같은 단계에 있다면 유용하고 필수적일 것이다. 왜냐하면 노동계급은 있지만 농민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전쟁과 경제적 재앙으로부터 살아남은 소수의 프롤레타리아가 춥고 배고픈 채로 피흘리며 지쳐 있다. 여기서는 그 자유가 소비에트 권력을 전복시키는 길의 첨단으로 몰고 가기는 힘들지 않을까? 프롤레타리아트에 더해 러시아에는 부유함과는 거리가 먼 대다수의 농민들이 간신히 삶을 연명하고 있다. 이 농민들에게 언론의 자유가 반혁명 군대를 형성하는데 쓰이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이 어디 있는가? 없다. 우리가 노동자들을 농민들에게 주어진 것으로 조금이라도 먹이기라도 하면 우리는 그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다른 길은 없다. 이것이 마음이 올바른 공산주의자들의 추론이다.

 

 우리들은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어떻게 프롤레타리아트 없이 사회 경제의 조직화라는 엄청난 임무를 해결할 것인가? 당신은 언제나 예, 아멘이라고 이야기하는 신의 어린양인 프롤레타리아트와 함께 이 문제를 해결하길 원하는가? 그럴 필요가 있는가?

 

 “당신들 노동자들과 농민들은 조용히 있어라. 저항하지도, 생각하지도 마라. 왜냐하면 우리가 노동자와 농민들 중에서 용기 있는 이들에게 권력을 주어 그들로 하여금 당신들이 믿을 수 없는 방식으로 쓰도록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다보면 당신은 어느날 갑자기 사회주의 천국에 있을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이야기하는 것은 개인, 영웅에 대한 믿음을 의미하지 계급에 대한 믿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회색 대중과 그들의 평범한 생각들(적어도 지도자들은 그렇게 생각한다)은 우리의 영웅들, 공산주의 공무원들이 공산주의 천국을 건설하는데 필요한 재료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영웅을 믿지 않으며 모든 프롤레타리아에게 그렇게 하지 말라고 호소한다. 노동자의 해방은 노동자 자신의 몫이다.

 

 그렇다. 우리 프롤레타리아트는 지치고, 배고프고, 춥고, 기진맥진해 있다. 그러나 우리 앞에 있는 문제는 어떤 계급도, 어떤 특수한 그룹도 우리를 대신해 풀어줄 수 없는 문제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이를 해결해야 한다. 당신이 우리들에게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임무를 지식인들, 공산주의 지식인들이 풀어줄 것이라고 보여줄 수 있다면, 우리는 우리 프롤레타리아트의 운명을 당신에게 맡기는 데 동의할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그것을 보여줄 수 없다. 이런 이유로 프롤레타리아트가 지쳤고, 따라서 그 무엇을 알 필요도, 결정할 필요도 없다는 주장은 절대 옳지 않다.

 

 만약 1918년에서 20년까지 러시아의 상황이 달랐다면, 우리의 이 문제에 대한 태도 또한 달랐을 것이다.

 

 올바른 마음의 공산주의자 동지인 당신이 부르주아지의 얼굴을 후려갈기고 싶다면, 좋다. 그러나 문제는 손을 드는 것은 당신이고, 그들의 갈비뼈를 부수고 한 바가지의 피를 쏟아내도록 하는 것은 우리 프롤레타리아라는 것이다.

 

 러시아에서, 공산주의자 노동자 계급은 존재하지 않는다. 볼셰비키, 아나키스트, 사회주의 혁명가당, 그리고 다른 이들(이러한 당에는 속하지 않지만 그들의 기원을 여기서 찾을 수 있는 이들) 속에 노동 계급이 있을 뿐이다. 어떻게 그들을 공산주의에 연결시키는가? 부르주아 “카데츠”(헌정 민주주의자들), 교수들, 변호사들, 의사들과의 협상은 없다. 그들에게는 한 가지 처방이 있을 뿐이다. 몽둥이. 그러나 노동 계급은 전혀 다르다. 우리는 그들을 협박할 것이 아니라 영향을 주고 지적으로 이끌어야 한다. 폭력으로서가 아니라, 우리의 법과 행진의 진로를 명확히 함으로써.

 

 그렇다. 법은 법이지만 모두를 위한 법은 아니다. 마지막 당대회의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와의 투쟁에 대한 논쟁에서 모스크바와 페트로그라드에는 180개의 부르주아지 출판사가 있었고, 지노비예프의 선언에 따라, 이들과 폭력적인 방법이 아니라 90% 열린 이데올로기적 설득력으로 싸울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어떻게 우리를 “설득”할 수 있는가? 지노비예프는 우리 중 일부를 설득하려하는지 안다. 부르주아지가 누리는 자유의 10분의 1만이라도 가질 수 있다면!

 

 노동자 동지들이여, 당신을 무엇을 생각하는가? 전혀 나쁘지 않다. 그렇지 않은가? 그러므로 1906년에서 1917년까지 첫 번째 전술, 1917년 10월까지 두 번째, 1917년 10월에서 1920년 후반까지 세 번째, 그리고 1921년 초부터 네 번째... [...]

 

 

각주

1) 편집자 주 ; 코민테른. 제3인터내셔널의 러시아 이름이다.

 

2) 편집자 주 ; 사회적 혁명가당 좌익. 이들은 소비에트에 우호적이었고, 사회주의 혁명가당으로부터 1917년 9월, 분리되어 나왔다.

 

3) 1917년 10월 25차 소비에트 대회에서, 110명의 멘셰비키 대표들은 소수였고(673명 중), 10월 혁명의 비준의 순간, “볼셰비키 쿠데타”라며 이를 비난하며 자리를 떠났다.

 

4) 편집자 주 ; KAI(공산주의 노동자 인터내셔널)는 1922년에서 24년동안, KAPD의 제안에 의해 설립되었다. 트로츠키주의자들의 제4 인터내셔널과 혼돈하지 않길 바란다.

 

5) 편집자 주 ; 사회주의 당 국제 연합(the International Union of Socialist parties)의 별명은 제2와 1/2 인터내셔널이었다. “왜냐하면 제2 인터내셔널과 제3 인터내셔널 사이에 자신을 위치 지었기 때문이다.” 레닌의 글, ‘베를린에서의 제3 인터내셔널의 대표들’이 수록된 알프레드 로즈머(Alfred Rosmer)의 책, 「레닌의 모스크바」(Lenin’s Moscow)에서 이러한 재편성에 대한 비판을 보라(Pluto Press, 1971).

 

6) 편집자 주 ; 여기, 그리고 이 글의 다른 곳에서 [...]은 우리가 번역하지 못한 짧은 문구들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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