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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 한국 위원회를 제안하며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 한국 위원회를 제안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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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1년이 지났습니다. 과거 다른 제국주의 전쟁과 마찬가지로 이 전쟁도 세계 노동계급의 국제주의적 연대와 행동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1차 세계대전 당시 노동계급의 혁명적 의식을 잠식시키며 노동자들을 제국주의 대학살에 참전시킨 거대한 쇼비니즘의 물결에 맞서 국제주의자들은 ‘혁명적 패전주의’를 방어하며 국제적으로 연대해서 싸웠습니다. “제국주의 전쟁을 내전으로 전환하자!”라는 구호는 1917년 러시아의 노동계급이 차르 체제를 전복하고 유럽 전역에 혁명적 물결을 열어젖히면서 현실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1918년 11월 마침내 독일과 오스트리아-헝가리에서 제국주의 학살을 종식한 노동자 대중 봉기로 이어졌습니다.

 

제국주의의 대학살 동안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의 깃발을 굳건하게 지킨 것도, 러시아 프롤레타리아혁명을 수호하기 위해 다시 모인 것도, 전쟁 발발 시 수많은 나라에서 발생했던 파업과 봉기를 주도한 것도 모두 이러한 국제주의자 흐름이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사건들은 오늘날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에서 제국주의 전쟁 참화가 벌어지고 있는 지금, 세계의 국제주의자들은 의견 차이가 있더라도 모두가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 원칙을 굳게 고수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국제주의자 흐름은 ‘노동자에게 조국은 없다!’라는 것을 전제로 성명을 발표하고 회의를 개최하고 공동 대응을 시작했습니다. 

 

세계 지배계급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희생을 프롤레타리아트에 강요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강요하는 희생을 받아들이지 말아야 할 뿐만 아니라, 이 전쟁에서 어느 쪽도 지지해서는 안 됩니다. 양쪽 모두는 노동자 착취를 통제하기 위해 싸우는 지배계급이기 때문입니다. 침략자든 방어자든 지배계급을 위한 싸움을 멈추어야 합니다. 우리의 생존과 생활 수준에 대한 일상적인 공격에 대한 전쟁, 즉 노동계급 자신을 위한 계급전쟁을 강화해야 합니다. 이것만이 싸울 가치가 있는 유일한 전쟁입니다.

 

우리는 싸울 가치가 있는 유일한 전쟁이 제국주의 전쟁 참화를 종식하기 위한 ‘계급전쟁’뿐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국제주의자들과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라는 기치 아래 국제 행동을 시작하려 합니다. 이 행동은 오늘날 흩어져 있는 국제주의자를 하나로 모아 더 넓은 노동계급에 반격의 필요성을 전달하고, 국제주의 원칙으로 함께 행동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 국제 행동에 동의하거나 관심 있는 동지들의 참여를 호소합니다.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 행동 호소문

 

1.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단발적인 행동이 아닙니다. 이것은 1945년 이후 볼 수 없었던 방식으로, 더욱 일반화된 전쟁 위기에 직면한 제국주의 경쟁의 새로운 시대 시작입니다.

 

2. 오늘날 자본주의 체제 밖에 있는 나라는 없습니다. 제국주의 경쟁 심화는 수십 년 된 자본주의의 미해결된 경제 위기 산물입니다. 그동안 자본주의는 이윤율 하락으로 인한 경제 위기를 관리하기 위해 많은 수단에 의존해야 했습니다. 이것이 세계 노동계급에 가져온 것은 더욱 강도 높은 착취, 더욱 큰 고용 불안정, 그리고 그들이 생산하는 부에서 노동자 몫의 지속적인 감소입니다. 이 체제는 전쟁을 부를 뿐만 아니라, 끝없는 이윤 추구는 지구 파괴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3. 그러나 세계화, 금융화, 그리고 이른바 신자유주의라고 불리는 이윤율 하락에 대한 모든 반응은 2008년 세계 투기 거품의 극적인 붕괴로 끝났습니다. 그들은 위기를 모면했을 뿐,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체제 모순은 증가하고 있고 어떤 국가도 그것을 피할 수 없습니다.

 

4. 가장 두드러진 모순 중 하나는 1980년대에 서유럽이 저임금 경제로 투자를 이전한 것입니다. 가장 큰 수혜자는 중국이었습니다. 중국은 서유럽 노동자들의 소득 감소에 대한 압력 완화를 위해 저임금 노동력의 대규모 착취를 통해 값싼 상품 공급하면서 경제를 구축했습니다. 2008년 투기 거품 붕괴 이후 경제적 편의를 위한 결합이 파경에 이르고 더욱 명백해지면서 이미 존재하는 체제 모순은 깊어졌습니다.

 

5. 양적 완화는 전반적인 위기를 해결하지 못했고, 착취를 비인간적인 수준까지 강화하지 않았습니다. 자본주의가 요구하는 것은 기존 자산을 탕감하는 것을 넘어 자본의 대규모 평가절하이며, 이는 일반화된 전쟁이 필요합니다. 세계 지도자들에게 열려 있는 선택지가 점점 줄어들면서 '국익'이 무엇인지에 대한 타협의 여지가 점점 적어지고 있습니다. 그들이 더 절박해질수록 인류 미래를 위협하는 대량 파괴 무기를 사용할 가능성이 커집니다. 사실 세계전쟁 위협은 점점 더 위기에 처한 체제에 의한 자연 자원 고갈과 환경 파괴의 가속화로 인해 이미 발생하고 있는 환경 재앙과 관련이 있습니다.

 

6. 이 재앙과 전쟁 전반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세력은 세계 노동계급입니다. 노동계급의 집단적 힘은 먼저 전쟁을 마비시킨 다음 자본주의 질서를 전복할 수 있습니다. 전 세계 임금노동자는 착취자 손에 들어가는 세계 부의 창조자라는 공통의 물질적 위치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노동자에게는 지켜야 할 국가도, 국익도 없습니다. 노동계급만이 국가가 없고 생산이 협력적이며, 소수를 위한 이윤이 아닌 모두의 필요를 충족하도록 설계된 새로운 계급 없는 사회를 만들 수 있는 위치에 있습니다. 따라서 사람들이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받는 자유롭게 연합한 생산자의 세계 공동체를 위한 조건이 존재합니다.

 

7. 이를 달성하기 위해 노동계급은 조직화하거나, 재조직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임금 삭감 등에 반대하는 일상적인 투쟁에서 노동자들은 투쟁을 통합하기 위해 모든 노동자가 선출하고 소환할 수 있는 파업위원회를 결성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자본가들의 공격을 막을 수 없습니다. 모든 파업위원회는 기존 국가를 정복하는 과정을 시작할 수 있는 더 넓은 계급 운동으로 단결해야 합니다.

 

8. 이 과정에서 일부 노동자가 자본주의 존재의 막다른 골목을 다른 이들보다 먼저 인식하는 것은 불가피합니다.

 

9. 인도주의적 재난의 현 상황에서 역사가 새로운 절박한 국면을 맞이하더라도 우리는 계급 운동이 당장 일어날 수 있다는 환상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착취와 전쟁에 맞선 운동을 함께 만들어야 합니다. 현재 우크라이나 위기가 어떤 미봉의 협상으로 끝나더라도 이것은 다음번 제국주의 충돌의 씨앗을 뿌릴 뿐입니다. 우크라이나 침공은 이미 러시아를 중국 품으로 끌어들이고, 나토와 EU를 미국과 그 목표 주위로 결집시켰습니다.

 

10. 자본주의는 전쟁을 의미하며 멈춰야 할 것은 자본주의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어디에 있든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 위원회를 설립할 것을 제안합니다. 모든 민족주의에 반대하며 싸울 가치가 있는 유일한 전쟁은 자본주의와 피비린내 나는 제국주의 충돌을 끝장내기 위한 계급전쟁이라는 것을 인식한 개인과 그룹에 참여를 요청합니다. 이것은 오늘날 흩어져 있는 혁명적 소수가 힘을 모으고 더 넓은 노동계급에 우리의 메시지를 받아들일 수 있게 할 것입니다.

 

11.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는 국제적인 계획이지만, 인터내셔널(세계혁명당)은 아닙니다. 그것은 계급전쟁이 세계 자본주의 질서를 전복할 수 있는 운동으로 발전할 때만 가능합니다. 그러나 이 운동은 제국주의 전쟁에서 어느 한쪽을 지지해야 할 '덜 나쁜 악'이라고 규정해 하나의 제국주의 또는 다른 제국주의를 노골적으로 편들거나, 제국주의 전쟁을 계급전쟁으로 전환할 필요성을 거부하는 평화주의를 지지해 노동계급이 스스로 투쟁하는 것을 교란하고 무장 해제시키는 모든 기회주의를 거부하는 다양한 배경을 가진 국제주의자들에게 정치적 나침반을 제공할 것입니다.

 

 12. 마지막으로, 우리는 이것이 평화주의에 대한 요구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고자 합니다. 평화주의는 기본적으로 '정상'으로 돌아가기 위한 탄원일 뿐입니다. 문제는 ‘정상’에 관한 것입니다. 전쟁으로 이끄는 세력을 만들어내는 것은 자본주의 체제 자체입니다.

 

위 내용에 동의하는 동지들에게 의견을 제시하고 행동할 것을 호소합니다.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를 지지하는 한국의 국제주의자 일동


 


 

<참여 문의>

▶메일 : communistleft@gmail.com
▶페북 메시지 : https://www.facebook.com/communistlef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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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위기 전가에 맞서 젠더 대결이 아닌 계급단결을 통한 '계급전쟁'으로!

115주년 세계여성의 날

자본주의 위기 전가에 맞서 젠더 대결이 아닌 계급단결을 통한 '계급전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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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위기전쟁팬데믹환경위기기후위기/방사능 위협기아난민빈곤 등 각종 위기는 인류를 비롯한 종 전체와 생태계 전멸이라는 막다른 골목으로 치닫고 있다이 모든 재앙이 일상화된 세상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상당 부분은 지치고 소외된 노동으로 하루를 소비하고 있고프롤레타리아 여성의 상태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그들은 일터에서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생명보다 이윤을 추구하는 체제에서 착취와 억압 속에 살고 있다이 체제는 여성소수자장애인이주노동자 차별을 비롯한 각종 차별과 불평등을 구조화하며 폭력으로 체제를 유지한다.

 

우리가 수없이 밝혔듯이 위기의 본질은 자본주의 사회체제이다자본주의는 착취를 위한 질서유지를 위해 이데올로기 장치폭력/억압적 국가기구와 법 등을 무제한으로 사용한다거기에 지배계급의 공정과 정의 이데올로기에 의한 차별을 당연하고 정당한 것으로 포장한다성차별과 성억압 역시 이러한 자본주의 체제 유지를 위한 억압과 이데올로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가족사유재산국가의 기원에서 성차별나아가 성억압은 사회경제적 문제와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고 했다. 1917년 세계여성의날은 이런 점을 분명히 보여주었다여성노동자들은 제국주의 전쟁으로 남편과 아들이 전선에 나가 있는 동안 홀로 가족의 생존을 감당해야 했다하루 13시간 이상 노동하며 빵을 구하기 위해 영하의 날씨에 몇 시간씩 줄을 서서 기다리곤 했다. 1917년 3월 8일 페트로그라드의 여성 섬유 노동자들은 파업에 돌입했고, “아이에게 먹일 빵을 달라”, “참호에 있는 남편을 집으로 돌려보내라라고 요구하며 거리를 점거했다이것은 실제로 2월 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다이것이 세계여성의날이 여성과 노동자에게 역사적 의미가 있는 기념일인 이유이며성해방이 사회 경제체제와 분리될 수 없는 이유이다.

 

성차별과 성억압은 자본주의 체제에서 비롯되었지만지배계급은 끊임없이 그것을 왜곡하고 피지배계급을 갈라치는 데 이용하고 있다지난 20대 대선에서는 젠더 갈등이 부르주아 정치에 이용되었는데남성 역차별이 부각 되었다특히 더 이상 구조적인 성차별은 없고 차별은 개인적 문제라며 무지와 혐오를 자랑한 윤석열은 여성가족부 폐지 및 개편, (성폭력무고죄 신설 공약까지 내놓는 지경에 이르렀다이러한 부르주아 정치가 젠더 갈등을 다루며 서로 다른 해법을 내놓고 있지만그들이 젠더 갈등을 언급하는 목적은 여야를 막론하고 공통적이다자본주의 위기라는 현실을 감추고 젠더 문제로 시선을 돌리기 위해서이다자본주의 체제 모순으로 인한 노동 착취 강도 증가생계비 위기실업주택난기후 위기환경파괴 등의 위기 앞에서 지배계급의 모든 분파는 노동계급을 다양한 집단으로 나누어 대립시키고 갈라치면서 분열을 획책한다.

 

자본은 노동계급에 온갖 위기를 떠넘기며 고통을 가중시킨다그 중에서도 특히 여성노동자는 정리해고저임금폭력 등 가혹한 자본주의 공격의 첫 번째 대상이다여성노동자의 고통은 배가 될 수밖에 없다. 쇠퇴하는 자본주의가 위기에 처할수록 여성노동자는 다중으로 착취당하고 차별받고 억압받는다하지만 부르주아 페미니즘은 자본에 착취당하는 여성노동자의 고통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한다부르주아 페미니즘 역시 부르주아 일반의 계급적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그것은 1차 세계대전 당시 페미니즘 이름으로 제국주의 전쟁을 지지했고전쟁 수행과 노동 착취를 자행하는 지도자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지지하는 등 역사적 사례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영국의 "철의 여인마거릿 대처는 수십 개의 광산을 폐쇄하고 수천 명의 노동자를 해고하여 실업자홈리스로 만든 대명사가 되었다.

 

세계여성의날의 역사적 뿌리는 프롤레타리아 여성과 남성에게 노동해방과 여성해방이 별개일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다성평등은 남녀 간의 문제가 결코 아니며 계급철폐와 인간해방의 주제이자 과정이다자본주의 생산관계를 파괴하지 않고는 여성의 진정한 해방이 불가능하다자본상품생산임금 노동의 지배가 존재하는 한 여성의 실질적이고 완전한 권리와 평등은 보장받을 수 없다진정한 성해방은 노동계급 내부의 모순과 자본주의 체제를 타파한 무계급 사회인 코뮤니즘 사회에서만 가능하다따라서 여성해방 운동은 차별과 폭력의 피해자에 공감하고억압받는 이들의 권리를 방어하며가해 시스템에 맞서 근본적으로 투쟁하는 것자본주의 체제와의 투쟁으로 나아가야 한다모든 차별과 혐오를 근본적으로 타파하고 성평등-성해방-인간해방으로 나아가는 코뮤니스트 운동과 만나야 한다.

 

자본주의는 경제 위기기후 위기팬데믹에 이어 전쟁이 강타하면서 해결되지 못한 위기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자본주의는 다시 한번 노동계급을 전쟁으로 몰아넣어 체제를 유지하려 한다지배계급과 자본가정권은 노동계급에 위기를 전가하며 노동계급이 투쟁을 통해 힘겹게 얻어낸 기본적 권리에 대한 공격을 강화하고 있다.

 

노동계급은 모든 젠더 대결과 계급 분열을 거부하고계급투쟁의 전선에서 단결하여지배계급의 공격을 막아내고 반격을 시작해야 한다.

자본주의 위기 전가에 맞서 프롤레타리아트 희생이 아닌 진정한 노동해방-여성해방을 위한 계급전쟁으로 맞서야 한다.

 

여성해방을 막는 것은 자본주의다!

자본주의 위기 전가에 맞서 젠더 대결이 아닌 계급단결을 통한 '계급전쟁'으로!

혁명을 통해 성평등-여성해방 세상으로!

 

2023년 3월 8

국제주의코뮤니스트전망(IC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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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전쟁 1년, 노동자 희생을 거부하고 계급전쟁으로!

우크라이나 전쟁 1노동자 희생을 거부하고 계급전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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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1년이 되었다전쟁은 대규모 파괴와 학살의 확대라는 야만으로 고착되며 장기화하고 있다지난 1년 동안 양국의 사상자 수는 수십만 명에 이르고민간인 사상자도 2만 명에 육박했다이번 전쟁은 특히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최대의 난민을 발생시켰다우크라이나 인구의 1/3인 1,300만 명이 피난길에 올랐고그중 800만 명이 해외로 떠났다전쟁은 막대한 인명피해만이 아니라 영토의 황폐화와 생태계 파괴 등 환경 피해도 일으켰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심각한 유럽 분쟁이며전쟁의 본질은 미국과 러시아 사이 전략적 입지를 위한 제국주의 전쟁이라는 점이다그것은 전 세계에서 수십 년 동안 계속된 대리전쟁 끝에 나왔다이 전쟁을 더욱 심각하게 만드는 것은 핵무기 사용을 위협한 핵 강대국 러시아가 직접 참전하고 유럽의 중심부에 있다는 것이다따라서 우크라이나 전쟁은 두 나라 국민의 재앙을 넘어 제국주의 긴장이 크게 고조되는 것을 의미하며그 결과 전 세계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푸틴은 미국의 경쟁자인 중국과 긴밀한 동맹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고한편으로 미국과 외교 군사적으로 오랜 적()인 이란과도 가까워졌다미국과 다른 나토 국가들은 젤렌스키 정부에 무기와 훈련을 공급하며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고 있다핀란드와 스웨덴은 나토 가입을 결정했고러시아와 국경을 맞댄 발트 3국에는 서방의 군대가 전진 배치됐다미국은 독일과 같은 일부 동맹국을 자국의 외교 정책에 더 부합하게 만드는 데 성공했다독일은 시대 전환을 공표하며 전후 70여 년 동안 자제했던 군사력 강화라는 길로 접어들며 미국중국에 이어 가장 많은 국방비를 쏟아 붓는 나라로 바뀌고 있다일본도 "중국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군비 지출을 늘리고 있고특히 중국의 군사 공격을 배제할 수 없는 대만에서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지난 세기 두 차례의 세계대전은 대규모 파괴기존 자본의 평가절하수천만 명의 사망자를 낳았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전쟁과 분쟁은 거의 끊임없이 일어났고세계의 많은 지역에서 가난한 프롤레타리아트가 자본주의 이윤을 위한 제국주의 전쟁으로 황폐해지고전쟁 중인 군사 기구에 의해 위협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있다이 전쟁들은 몇몇 광적인 지도자들이 만든 결과도 아니라 자본주의의 정상적인 작동 결과였다이 체제는 이윤율 저하와 치열한 경쟁으로 이어지는 내부 모순으로 전쟁의 길로 내몰리고 있다.

 

오늘날에는 경제 위기기후 위기팬데믹에 이어 전쟁이라는 거대한 재앙이 유럽을 강타하면서 이미 전 세계를 휩쓴 위기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군사비 지출 증가로 인한 경제 위기는 새로운 무역 전쟁으로 이어졌고세계 생산과 무역의 분열은 인플레이션을 부추기며 새로운 공급 부족을 일으켰다전 세계의 프롤레타리아트는 생활 수준이 급격하게 하락하거나 심각한 생계비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이 위기는 수십 년 동안 전체 자본주의 체제를 괴롭혀 왔고전쟁 파괴를 통한 자본 가치의 대규모 평가 절하 외에는 해결책이 없는 낮은 이윤율의 더 깊고 해결할 수 없는 위기이다물론지배계급은 그들의 자본을 평가절하하기 위해 전쟁에 나서지 않는다그들은 적의 자본을 파괴하고원자재에 접근하고이윤율을 높일 수 있는 전략적 위치와 시장을 확보하기 위해 전쟁에 나선다그러나 그 결과는 승전국에서도 자본의 일반적인 평가절하를 초래한다그래서 오늘날 노동계급의 진정한 선택은 "자본주의 생산체제의 전복이냐죽음과 폐허의 전쟁이냐"이다.

 

세계 지배계급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희생을 노동계급에 강요하고 있다그들이 부과하는 희생을 받아들이지 말아야 할 뿐만 아니라이 전쟁에서 어느 쪽도 지지해서는 안 된다양쪽 모두는 노동자 착취를 통제하기 위해 경쟁하고 싸우는 지배계급이기 때문이다푸틴의 ()파시스트 십자군이나 젤렌스키의 민주주의 수호는 노동자가 피 흘리며 싸울 가치가 전혀 없는 지배계급을 위한 전쟁이다노동계급이 싸울 가치가 있는 유일한 전쟁은 착취자들에 대한 전쟁우리의 생존과 생활 수준에 대한 일상적인 공격에 대한 전쟁인 계급전쟁뿐이다노동계급이 생활과 노동 조건을 방어하려는 시도는 사유재산임금노동화폐와 국가의 존재로 특징지어지는 현재의 자본주의 체제가 문제의 근원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더 넓은 운동의 씨앗을 뿌릴 수 있다우리는 소수를 위한 이윤이 아닌 모두의 필요에 따라 생산이 이루어지는 사회를 만들 가능성을 제기해야 한다국가와 국경은 사라지고생산이 협력적이며노동계급이 만든 독립적인 기관이 인류가 직면한 문제를 집단으로 다룰 수 있는 세계 공동체를 건설해야 한다.

 

노동계급이 이 전쟁을 끝낼 방법은 전선과 국경을 넘어 계급적이고 우호적으로 연대하여 전쟁 기계를 전복시키는 것이다전쟁과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임금과 생활수준 하락에 저항하고전선 양쪽에서 야만적 학살에 연루된 모든 자본가 정부에 대항하는 노동자들의 행동을 지지하고 방어하면서 국제적으로 계급투쟁을 확산해야 한다오늘날 노동계급은 전쟁의 원인인 자본주의를 전복하고 전쟁을 멈출 수 있는 유일한 세력이다하지만오랜 기간 국가와 지배 이데올로기에 묶여 분열되고 세력이 약해져 있다제국주의 전쟁에서 한쪽을 지지하거나전쟁을 계급전쟁으로 전환할 것을 거부하는 세력 또한노동계급을 자본주의 체제에 더욱 단단히 묶어두는 역할을 해왔다.

 

반면코뮤니스트좌파 진영은 서로 간에 의견 차이가 있더라도 모두가 일관되게 이 전쟁이 제국주의적이며자본의 이익에만 봉사하는 전쟁이라며 반대했다코뮤니스트좌파와 지지자들은 모두 노동자에게 조국은 없다.”라는 것을 전제로 성명을 발표하고 국제 행동을 벌여왔다이렇게 제국주의 분쟁에서 어느 편도 들지 않는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는 코뮤니스트좌파가 20세기 초부터 방어해 온 입장의 초석이자 오늘날 그 혁명적 전통을 계승한 모든 단체의 기본이기도 하다.

 

지금은 비록 세계 노동계급의 투쟁이 방어적이고 국제적 계급투쟁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있지만투쟁의 물결이 세계적 규모로 확장되고 있고생계비 투쟁 등 계급영역 기본투쟁으로 진전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영국에서 계속되는 파업 물결프랑스의 대규모 시위미국과 유럽의 여러 부문에서 일어난 파업이란의 노동자 투쟁 등 모든 움직임은 노동계급이 자신감을 되찾고 장기적으로 잃어버린 계급 정체성을 회복할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그동안 코뮤니스트좌파 진영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단기적인 대응이 아니라 장기적인 전망으로 노동계급 투쟁의 독립성을 촉진하고 옹호하며세계 노동계급의 근본적인 문제를 위해 대응해 왔다지배계급의 자본주의 위기 전가와 노동계급에 대한 공격에 직면하여 계급의 당면한 요구를 자본주의 체제의 문제와 연결하고일회적인 반격이 아니라 체제에 맞서 싸우기 위한 계급전쟁을 호소하고 있다우리는 다음과 같은 원칙으로 투쟁한다.

 

● 우리는 우크라이나의 제국주의 전쟁에서 어느 편도 지지하지 않는다자본주의제국주의 국가의 어떠한 "덜 나쁜 악"도 지지하지 않는다.

 지배계급 간의 평화협정을 통해서가 아니라 자본주의 체제 전복을 향한 국제적인 계급투쟁만이 제국주의 전쟁을 끝장낼 수 있다.

 현재의 전쟁과 앞으로의 전쟁이 노동계급에 가할 경제적정치적 공격에 맞서기 위해 계급전쟁을 전면화해야 한다.

 계급전쟁은 노동계급의 자기 조직화한 투쟁즉 독립적인 파업위원회대중 집회노동자 평의회 건설을 통해 확장하고 발전할 수 있다.

 우리는 모든 착취와 억압차별이 근본적으로 철폐된 사회생산수단이 더는 자본가나 국가의 손에 있지 않고 사회화된 사회생산과 분배가 인류와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자유로운 생산자들의 연합 세상을 위해 투쟁한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1년을 맞이하여 우리는 자본주의와 제국주의 전쟁에 반대하는 모든 노동자에게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 위원회를 결성하여 제국주의 전쟁을 멈추게 할 국제적인 계급투쟁에 나설 것을 다시 한 번 호소한다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는 오늘날 제국주의 전쟁과 모든 전쟁에 대한 노동계급의 대답이며우리의 목표는 쇠퇴하는 자본주의 체제를 혁명적으로 전복하고 유혈 낭자한 제국주의 전쟁을 영원히 끝장내기 위한 세계 노동계급의 정치적 저항을 구축하는 것이다.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

노동자 희생을 거부하고 계급전쟁으로!

 

2023년 2월 24

국제주의코뮤니스트전망(IC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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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6호] 미국 대법원의 노동계급 여성에 대한 공격

미국 대법원의 노동계급 여성에 대한 공격 :

오직 노동계급의 투쟁만이 여성의 출산 자유를 보장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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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대 웨이드( Roe v. Wade) 판결의 번복은 노동하는 여성의 출산 자유에 대한 자본주의 계급전쟁의 가장 최근의 공격이다그것은 자본주의의 위기와 미국 자본가계급이 점점 더 여성 노동자를 착취할 새로운 노동자를 만들고필요하다면 제국주의 경쟁자들에게 던져줄 새로운 총알받이로 보는 세계적인 전쟁으로 나아가기 때문이다그것은 자본주의가 노동계급 여성을 억압받는 임금 노예의 상태로 더욱 종속시키기 위해 이른바 '전통적인가치를 다시 도입하려고 시도하는 것이다.

 

지배계급 자유주의자들은 이 판결을 모든 여성에 대한 공격으로 묘사하려 하지만이는 부르주아 여성이 아니라 노동계급 여성에게 주로 영향을 미친다매우 반동적인 임신 중지 반대법이 있는 국가에서도 부르주아 여성은 여전히 비행기를 타고 다른 나라에 가서 임신 중지를 할 수 있을 것이다그것은 적은 임금으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휘발유와 식료품 같은 기본적인 상품의 가격 상승으로 억압받는 프롤레타리아 여성이 선택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다.

 

그것은 익명의 유출자 덕분에 대법원이 로(Roe) 판결을 언제 번복하느냐의 문제가 아니었다그러한 일이 발생한 후 거의 두 달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은 평소와 같이 무의미하고 공허한 가짜 연대의 트위터를 보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했다민주당은 로(Roe) 판결이 번복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왜냐하면이는 현재 11월의 선거에서 노동자의 투표를 위해 활용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이슈가 되기 때문이다그리고 일단 민주당에 투표하면그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평범한 게임으로 돌아갈 수 있다민주당은 출산의 자유를 위한 여성 노동자의 투쟁에 실제로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그들은 단지 노동자 여성들을 목 졸라 죽이는 자본주의 체제를 관리하고이러한 문제들을 이용하여 권력을 장악하는 데에만 관심이 있다.

 

우리는 여성 노동자와 모든 노동자의 분노가 민주당과 협동하는 기계로 다시 유입되도록 내버려 둘 수 없다우리는 그들이 2020년에 경찰의 인종차별적인 조지 플로이드 살해 사건을 저질렀던 일을 지금 그들이 하도록 내버려 둘 수 없다우리의 투쟁은 공화당이나 정부의 어느 한 부처에 대항하는 것이 아니다우리의 투쟁은 지배계급의 모든 정당전 세계 프롤레타리아 여성들의 착취당하는 노동과 억압된 삶 덕분에 사는 이 성차별적 자본주의 체제를 지지하는 모든 정당에 대항하는 것이다우리의 세계적인 계급인 남성여성그리고 모든 성별과 성적 정체성을 가진 프롤레타리아는 프롤레타리아 여성의 삶과 노동에 기생하는 자들에 대항하여 조직적이고 원칙적인 투쟁을 해야 한다!

 

투표함이 아닌 직장과 거리에서 투쟁하자성차별적 자본주의 체제가 그들에게 가장 큰 타격을 주는 곳그들의 이윤을 타격하자착취당하고 무급으로 일하는 여성들이 없다면이 체제는 중단될 것이다!

 

단순히 체제를 중단시키는 것 이상으로우리는 그것을 전복해야 하며모든 노동자가 여성 노동자 억압의 악몽을 끝내기 위해 권력을 장악해야 한다오직 자본주의를 전복한 세계에서만 여성 노동자가 모든 것의 가장 기본적인 자유즉 자기 몸의 자유를 박탈당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없이 살 수 있다모든 성별의 노동계급은 지배계급에 맞서 함께 투쟁해야 하며스스로 권력을 장악하고 자본주의 국가를 전 세계적으로 전복할 목적으로 투쟁에 나서야 한다전체 계급을 혁명적으로 이끌고 안내하기 위한 국제 혁명조직을 건설하는 것은 계급의식을 가진 노동자들에 달려 있다.

 

국제주의노동자그룹(Internationalist Workers' Group)은 노동계급의 미래 정당을 건설하고 세계 노동자평의회 체제를 위한 자본주의 전복에 헌신하는 혁명적 노동계급 정치조직인 국제주의코뮤니스트경향(ICT)의 미국 지부이다.

 

2022년 6월 25

국제주의노동자그룹(IWG)

 

이 글은 대법원의 로 대 웨이드( Roe v. Wade) 판결에 대한 대응으로 국제주의노동자그룹(IWG)과 지지자들이 시위 중에 배포한 전단이다.

 

 

<출처>

https://www.leftcom.org/en/articles/2022-06-25/scotus-attacks-working-class-women-only-a-struggle-by-our-class-can-sec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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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방비 폭탄 - 자본 축적의 위기를 노동계급에 떠넘기다

난방비 폭탄 자본 축적의 위기를 노동계급에 떠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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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에너지 파동은 자본 축적 위기의 또 다른 모습

 

북극권의 초강력 한파에 이은 난방비 폭탄이 북반구의 겨울을 덮쳤다환경위기기후위기의 도미노는 물가상승과 맞물려 에너지 가격 폭등을 더욱더 부추기고 있다에너지 가격 폭등 원인으로 지목된 우크라이나 전쟁은 인플레이션의 주요 원인이기보다는 자본 위기의 산물이었다그런데도 세계 지배계급은 제국주의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산업 적자라는 명분으로 가격 폭등을 밀어붙이고 있다윤석열 정권 역시 이번 기회를 통해 공공요금 인상을 예외 없이 진행하고 있다.

 

난방비 폭등에 책임 있는 정부와 부르주아 정치권은 근본적인 대책이 아닌 책임회피를 위한 네 탓 공방으로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이는 지배계급이 에너지 자원과 환경/기후위기에 대한 원인진단과 대책을 내놓을 능력과 의지가 없기 때문이다지배계급은 오로지 생존과 축적에만 관심을 둔다. 2000년대 이후 지속된 세계 경제 대공황을 대자본은 오히려 집적과 집중의 기회로 이용했고노동계급에는 노동강도 강화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실질임금 감소생계비 위기의 고통을 떠넘겼다따라서 자본 축적 위기를 노동계급에 대한 공격과 착취로 해결하려는 지배계급에 에너지 자원에 대한 근본 대책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전 세계적인 환경/기후 위기는 자본 축적 위기의 또 다른 모습으로 인플레이션실질임금 하락과 분리될 수 없다이것의 단적인 사례가 난방비 폭등이다난방비 폭등으로 드러난 국내 LNG 직도입 자본(GS에너지, SK E&S, 포스코에너지한화에너지발전사 등)은 천문학적인 영업 이익과 당기 순이익을 올렸지만노동계급은 삼중의 고통 속에서 추운 겨울을 버틸 수밖에 없었다.

 

위기를 노동계급에 전가

 

앞서 말했듯이 난방비 폭등은 노동계급에는 재앙이지만자본에는 이윤 창출 기회이기도 하다에너지 자원의 폭등 현상은 환경/기후위기가 일반화된 자본주의 쇠퇴기에 언제든 나타난다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의 지배계급은 이러한 자본 축적의 지속적 위기를 노동계급에 전가하고이에 저항하는 노동자들을 향해 계급전쟁을 선포하며 선제공격을 하고 있다.

 

에너지 위기에 맞닥뜨린 지배계급은 얄팍한 땜질 처방으로 위기를 모면하려 하면서도 본질에서는 자본 축적의 기회를 창출하고 보장하는 데에만 관심이 있다윤석열 정권의 에너지 빈곤 가구에 에너지 바우처 지원 확대와 민주당의 횡재세 논의 모두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 생색내기 처방이다특히 윤석열 정권은 에너지 위기가 핵발전에 대한 저투자에서 기인한다며핵발전 확대안을 제시했다이것은 기후위기와 에너지 자원에 대한 자본의 시각을 그대로 반영한 결과이다.

 

이처럼 지배계급은 자본주의 이윤 추구 체제에서 비롯된 환경/기후위기 상황에서 어떠한 해결책도 제시하지 못하면서도 위기를 이윤 창출 기회로 활용하는 데에만 몰두한다이것은 역설적으로 자본축적과정이 위기라는 점을 보여준다자본주의 생산양식에서 작용하는 자본구성의 고도화와 평균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는 자본 축적 과정의 위기를 더욱 심화시킬 것이다그 결과 에너지 대란에서 나타나듯 이윤을 위한 자본주의 생산과 사회의 기본적 필요를 만족시키는 생산의 근본적 필요성 사이의 모순은 더욱 격렬해진다.

 

앞으로도 빈번하게 발생할 에너지 대란에서 이윤이 목적인 생산체제에서 국가와 자본에 대책을 요구한다고 해결책이 나올 리는 없다그것은 오직 자본 운동을 정지시키고 파괴해야 가능하다에너지 가격통제와 에너지산업 국유화공공주도의 재생에너지 전환 요구 또한 근본적 대안이 될 수 없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공공주도는 자본 주도의 또 다른 표현에 불과하고자본주의 체제를 넘어서려는 목표가 아닌 체제 내에서의 국유화와 가격통제는 철저하게 자본주의 방식으로 작동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착취 체제를 전복하지 않고서는 환경/기후위기에너지 대란과 노동자 희생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생산과 분배가 인류와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코뮤니즘만이 인류와 지구를 구할 수 있다.

 

노동자 희생을 거부하고 계급전쟁으로

 

대공황팬데믹제국주의 전쟁기후위기 속에서 자본 축적의 위기를 노동계급에 전가하면서 노동자들은 난방비 폭등과 물가 폭등으로 실질임금 감소와 생계비 위기의 고통을 겪고 있다윤석열 정권은 대자본에 대한 세금은 인하해주면서 복지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예산은 삭감했다자본가 정권은 노동자들이 생존을 위해 자본 위기에 대한 비용을 치르기를 거부할 때마다 노동자에 대한 공격을 주저하지 않았다그것은 노동계급의 잉여노동을 착취하지 않으면 존재할 수 없는 자본이 더 많은 잉여노동을 착취하기 위한 경쟁으로 전쟁환경 파괴와 기후위기를 일으키면서도 모든 위기를 노동계급에 떠넘기려 공격에 나서는 것이다지배계급이 계급전쟁을 선포한 것이다.

 

이제 노동계급은 자신을 희생하면서 자본주의 위기를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위기 원인인 자본주의 자체를 넘어서기 위해 계급을 조직하고 싸워야 한다현재의 모든 위기는 자본이 초래한 위기이기 때문에 노동계급에 일방적으로 희생을 강요하는 것을 단호하게 거부해야 한다국가를 넘어 노동계급의 국제연대로이윤을 위한 생산이 아닌 사회적 필요에 의한 생산을 건설해야 한다.

 

난방비 폭탄물가 폭등실질 임금감소생계비 위기복지 축소노동강도 강화노동자 운동 공격... 이 모든 것을 계급전쟁이라고 부르자이제 노동계급이 이 전쟁에서 반격할 때이다노동계급은 부르주아 정치와 선거에 의지하지 말고 독립적 조직인 파업위원회대중집회노동자평의회를 구성해 반격해야 한다.

 

난방비 폭탄자본주의가 원인이다!

자본주의 위기 전가에 맞서 생존권 투쟁 전면화!

노동자 희생이 아닌 자본가계급과의 계급전쟁으로!

 

2023년 2월 14

국제주의코뮤니스트전망(IC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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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시리아 지진] 재앙의 이름은 자본주의다 - 오직 프롤레타리아계급의 연대만이 우리를 구할 수 있다!

재앙의 이름은 자본주의다 오직 프롤레타리아계급의 연대만이 우리를 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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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우리는 튀르키예와 시리아를 강타한 지진에 대한 튀르키예의  「국제주의 코뮤니스트 그룹」 동지들의 성명서를 소개한다끔찍한 재앙 앞에서 신속하게 대응하고이 "자연적재앙의 본질과 세계 프롤레타리아트의 연대와 투쟁을 호소한 동지들에 경의를 표한다.

 

 

지난 2월 6일 카흐라만 마라슈(Maraş)에서 발생해 이웃 지방과 시리아를 강타한 지진의 파괴적인 영향이 어느 정도인지는 아직 정확히 알 수 없다이미 언론은 만 명 이상의 사람이 잔해 아래에서 사망했고수만 명이 부상했고만 채 이상의 건물이 파괴되었다고 발표했다지난 이틀 사이에 일부 도시와의 통신이 끊겼다도로다리공항이 파괴되었고이스켄데룬(Iskenderun) 항구에서 화재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많은 지역에서 전기수도천연가스 연결이 끊겼다지진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현재 혹독한 겨울 환경에서 굶주림과 추위에 시달리고 있다튀르키예의 군사 점령하에 있는 시리아의 지진 지역에서도 매우 심각한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연달아 발생한 두 차례의 대지진은 확실히 이례적이다그러나 지배계급과 그 정당들의 주장과는 달리 지진으로 인한 파괴가 정상적인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야당과 집권 자본가정당 모두의 "국민 통합"에 대한 역겨운 요구는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을 숨길 수 없다자본주의와 국가가 이 파괴의 주범이다.

 

1. 우리는 프롤레타리아트가 계급으로서 지진 지역에서 집을 잃고부상당하고친척을 잃은 사람들과 행동으로 모든 종류의 연대를 보여줄 것을 알고 있다수백 명의 광산 노동자들이 이미 지진 지역에서 수색 및 구조 활동에 자원하여 참여했다이미 전 세계에서 생존자들을 돕기 위해 노동자들과 수색 구조대가 연대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프롤레타리아트의 가장 큰 무기 중 하나인 이 연대는 필수적이다프롤레타리아트는 서로를 제외하고는 믿을 사람이 없다우리는 지배계급과 국가로부터가 아니라 우리 자신의 계급적 단결을 통해서만 해방을 기대할 수 있다.

 

2. 튀르키예의 과거 지진 경험은 자본의 사회적 재생산을 목표로 발전한 도시화의 파괴적이고 치명적인 영향의 증거이다지진 부적합 건설사람들이 지진 지역의 다층 건물과 인구 밀집 도시에 밀려드는 유일한 이유는 수도의 풍부하고 값싼 노동력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서이다. 20년 전(마르마라 지역)에 발생한 괴뢰크(Gölcük) 지진과 뒤체(Düzce) 지진 이후이번 지진은 국가가 취한 모든 '조치'의 미흡과 지배계급이 흘린 악어의 눈물을 다시 한번 보여주었다이 지진과 그 영향은 이미 국가의 존재 이유가 빈곤층과 프롤레타리아 인구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 자본의 이익을 보호하는 것임을 고통스럽게 증명하고 있다.

 

3. 그렇다면 자본주의는 왜 재난이 정기적이고 체계적으로 자체 생산 인프라를 파괴하는 데도 영구적이고 견고한 인프라를 구축하지 않는 것일까자본주의하에서 건물도로항만요컨대 인프라 투자는 일반적으로 영속성이나 인간의 필요를 염두에 두고 건설되지 않기 때문이다자본주의에서 모든 인프라 투자는 국가가 하든 민간 기업이 하든 수익성과 임금노동 체제의 지속을 목표로 구축된다밀집된 인구는 살기 힘든 도시로 몰려든다지진이 없더라도 기껏해야 100년을 버틸 수 있는 건강에 해로운 콘크리트 건물들이 도시와 농촌을 가득 채운다지난 40년 동안의 끔찍한 자본주의 도시화는 튀르키예 전역의 도시와 마을까지도 그러한 콘크리트 무덤으로 만들었다잉여가치 생산에 기초한 자본주의 체제는 가능한 한 많은 살아있는 노동력즉 프롤레타리아트를 고용하고 고정 자본 투자즉 인프라를 최소한으로 유지해야만 유지될 수 있다자본주의에서 건설은 지속적인 활동이며건물의 영속성환경과의 조화인간의 필요에 대한 반응은 완전히 무시된다이는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약한 자본주의뿐만 아니라 선진 서구 자본주의의 규칙이다자본과 국가의 유일한 사회적 목표는 계속 증가하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착취를 영구화하는 것이다.

 

4. 자본주의 질서는 자신의 착취 질서를 재생산할 수 있는 해결책조차 내놓을 처지가 못 된다. "자연재해 앞에서 자본은 무모할 뿐만 아니라 무기력하기까지 하다우리는 국가의 통제하에 있는 구호 조직들의 조정 부족과 긴급 구호 분배에 대한 국가의 무능력에서도 이러한 무력감을 볼 수 있다우리는 쇠퇴하는 자본주의의 영향이 더 깊은 튀르키예와 같은 나라뿐만 아니라 2년 전 홍수 앞에서 무력했던 독일이나 인프라 투자를 소홀히 하여 홍수로 도로와 다리가 무너진 미국과 같은 자본주의 중심 국가에서도 이를 볼 수 있다.

 

5. 부르주아 야당의 일부 분파가 국가가 지진 피해자를 "돕기"에는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는 사실은 국가의 본질에 대한 기만적인 관점을 제시한다국가는 구호 기관이 아니다국가는 소수 착취 계급의 집단적 폭력 기구이다국가는 자본의 이익을 보호한다확실히재난 지역에서의 혼란의 통치는 지배계급의 약점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자본 자체의 재생산을 방해하기 때문에국가는 최소한의 "지원"을 조직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그러나 국가는 이러한 최소한의 지원조차 제공하지 못하는 것 같다재난에 대한 국가의 개입이 무엇이든그 주요 기능은 프롤레타리아트를 통제하고 국가 자본의 이익을 위해 다른 자본주의 국가들과 경쟁하는 것이다국가는 자본 축적을 돕는 이념적물리적인 기계이며노동자들을 치명적인 콘크리트 관()집으로 밀어 넣고재난 앞에서 무방비 상태로 방치하는 상황의 수호자이다.

 

6. 우리가 최근 몇 년 동안 경험하고 전 세계적으로 영향을 받은 감염병기근전쟁은 "자연스러운현상이 아니다지진이 발생하기 전에 그 순간을 예측할 수는 없지만지진 단층선과 가능한 규모는 확실하게 예측할 수 있다이 모든 재앙에 책임이 있는 주체는 자본주의와 민족국가즉 잉여가치와 임금노동의 착취를 중심으로 사회를 조직하고 군국주의-민족주의 경쟁을 심화시키며 인류의 존재와 미래를 위협하는 기존의 지배계급 전체이다자본주의가 계속 지배하고인류가 민족국가와 계급으로 계속 분열되어 있기 때문에이러한 재앙은 계속 일어날 것이며점점 더 치명적이고 파괴적이며 빈번해질 것이다이것은 자본주의의 고갈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는 징후이다전 세계적으로 지배계급은 인류를 전쟁끔찍하고 살기 힘든 도시기아와 기근거대한 세계 기후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마라슈와 그 주변에서 발생한 지진은 지배계급이 인류에게 제공할 긍정적인 미래가 없다는 마지막 구체적이고 고통스러운 증거이다그러나 이것이 비관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이번 지진에서 우리 계급이 보여주고 앞으로 보여줄 연대는 우리에게 희망을 주어야 한다재앙이 참혹한 것은 해결책이 없어서가 아니라우리 계급인 프롤레타리아트가 아직 세상을 바꾸고 자본의 재앙으로부터 인류를 구할 자신감이 없기 때문이다인류와 지구의 자원은 우리를 재난으로부터 보호할 영구적이고 안전한 주거지와 정착지를 건설하기에 충분하다이를 향한 길은 해방을 위해 세계의 자원을 동원할 수 있는 유일한 세력인 프롤레타리아트가 스스로 자신감을 키워 부패한 자본가계급으로부터 권력을 장악하기 위한 세계적인 투쟁에 참여할 때 열릴 것이다.

 

2023년 2월 8

튀르키예의 국제주의 코뮤니스트 그룹

 

<출처
https://en.internationalism.org/content/17310/name-disaster-capitalism-only-proletarian-class-solidarity-can-save-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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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민해방운동가 윤웅태 동지 7주기 추모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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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민해방운동가 윤웅태 동지 7주기 추모제

 
● 박일수 열사 19주기 추모제와 합동으로 진행
● 일시|2023년 2월 11일(토) 오전 11시
● 장소|솥발산열사묘역(하북면 삼덕로 288)
● 이동편|운영위원들이 차량을 운행할 예정이므로 동승 가능합니다.
● 문의|010-5135-7957
● 참가신청| bit.ly/윤웅태7주기
 
직접 참가 못하셔도 위 링크에서 윤웅태 동지를 기억하는 메시지를 남겨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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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6호] 국가 통합을 위해 봉사하는 자본주의의 선전

국가 통합을 위해 봉사하는 자본주의의 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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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죽음은 반동적인 데일리 메일(Daily Mail)이나 자유주의적인 가디언(Guardian)의 기사에서든가장 우파적인 토리당 정치인이나 가장 좌파적인 노동조합 지도자 입에서 나오든국가 통합의 '서비스'에서 '의무희생회복력'의 중요성을 거듭 반복하면서 부르주아지 전체가 선전의 광란으로 자신을 채찍질하는 신호였다캔터베리 대주교부터 지역 교구장에 이르기까지 영국 교회는 같은 곡조로 노래하고 있다대중의 눈에 보이는 거의 모든 사람지배계급과 특권적인 관계를 맺고 있거나 그러기를 원하는 모든 사람즉 학자소설가역사가예술가배우스포츠맨신문 칼럼니스트들은 이 열흘간 긴 슬픔의 카니발에 그들 자신의 작은 공헌을 추가하고 있으며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이 겉치레만큼 독립심이 강한 마음이 아니라 왕실의 제복을 입은 보병만큼이나 멍청하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선전의 눈사태는 계급의식이 있는 노동자에게 유익한 교훈을 준다많은 부차적인 분열과 갈등에도 노동계급의 이해관계가 없는 국가 방위에 직면하여 지배계급과 국가기구의 모든 부분좌파와 우파자유주의자와 포퓰리스트왕당파와 노동조합주의자들이 하나로 뭉친다.

 

이 캠페인을 노동계급 타파를 위한 클럽으로 활용하는 것은 여왕 사망이 발표된 직후 현재 영국의 파업 물결에 관여하고 있는 3개의 노동조합인 RMT(철도), CWU(우편)과 TSSA(교통)가 국가 애도 기간 계획된 파업 활동을 중단할 것이라고 발표한 직후에 강조되었다. RMT의 "급진적지도자인 믹 린치(Mick Lynch)는 “RMT는 엘리자베스 여왕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전국에서 동참한다. 9월 15일과 17일에 계획된 철도 파업은 중단한다우리는 그녀의 가족친구그리고 나라에 깊은 애도를 표한다.”라고 말했다.

 

노동조합의 총지도부인 TUC(노동조합 총연맹)는 파업을 조정하는 척하려던 회의를 10월이나 11월로 연기했다.

 

1914년 제국주의 전쟁터에서 노동자들을 모집하기 시작한 이래로 위기 시에 국가 통합에 대한 존중이 노동조합의 특징이었기 때문에이러한 계급투쟁의 '중단'도 결코 예외는 아니다.

 

마찬가지로노동당은 항상 우파에서 좌파로 입헌군주에 충성을 맹세해왔다트로츠키주의자들과 다른 좌파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던 야당인 노동당 전 좌파 지도자 제러미 코빈은 2017년 "군주제 폐지는 자신의 의제가 아니다"라고 선언했고며칠 전 여왕에 대한 공식적인 조공을 하는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다시 나타났다.

 

부르주아지는 위기에서 이익을 얻을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으며 찬송가와 설교행렬경례감동적인 조공 등으로 투쟁적 노동계급이 국익즉 이윤과 제국주의 전쟁을 위해 중요한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것을 주입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지배계급은 이 사회가 기반을 두고 있는 계급 분열을 감추기 위해 이 캠페인을 사용하려고 하는 반면그것은 또한 영국 자체의 존립을 위협하는 포퓰리즘 부상과 브렉시트 재앙으로 증폭된 제국주의적 입장의 깊은 균열 중 일부를 덮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스코틀랜드의 독립에 대한 위협과 영국과 북아일랜드의 관계가 붕괴될 위기에 직면하여애도 주간의 침울한 의식은 여왕의 관이 에든버러(Edinburgh) 거리를 행진하는 것으로 시작되었고새로운 왕의 첫 번째 임무는 북아일랜드의 힐스버러(Hillsborough)성을 방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세계 부르주아지즉 영국과 치명적인 경쟁을 벌이고 있는 나라의 지배계급인 그들은 왜 이 애도의 가면을 쓰고 조기를 게양하는 가장무도회에 참가하는 것일까심지어 블라디미르 푸틴조차 애도를 표했다.

 

여왕은 영국의 지배계급뿐만 아니라 계급의 적인 프롤레타리아와 맞서는 모든 부르주아지의 세계 자본주의 전반을 위해 국가의 연속성안정성지속성을 대표했다는 것이 그 답이다그녀와 영국 왕실은 모든 곳에서 부르주아지 질서의 인간적이고 친근한 겉모습이었으며식민지 잔학 행위제국주의 대학살파괴적인 경제 위기노동 대중의 착취와 빈곤화를 "국가 공동체"에 대한 단결과 봉사의 이름으로 모호하지만 조용히 정당화했다.

 

세계 자본주의가 무너지고 있는 시대에 엘리자베스 여왕 통치는 근본적인 부르주아지 질서와 연속성의 존재로 상징되었는데이는 현재의 생산 방식이 어떻든 간에 계속 생존할 수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그러나 그녀의 죽음은 세계 자본주의 불안정성이 깊어지고모든 수준에서 재앙의 눈사태가 벌어지고 있는 현실을 상징한다.

 

자본주의에 봉사하는 봉건적 잔재

 

영국 혁명 당시 영국 부르주아지가 집권했을 때 절대왕정의 대표이자 옹호자였던 찰스 1세 국왕은 1649년 혁명적 의회 의원들에 의해 참수되었다그러나 상승기의 영국 부르주아지는 완전히 새로운 국가기구를 통해 그 통치가 유지되고 안정화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군주제는 귀족들의 오랜 외교적정치적군사적 경험과 함께 다시 가져와야 했지만이번에는 헌법에 따르는 부르주아지 의회에 복종하는 것으로 제한되었다.

 

만일 부르주아 국가가 자본주의 지배계급 이익을 위해 통치한다면 그것은 전체 국민의 대표자로 등장해야 하며현실에서처럼 비교적 최근에 폭력적인 혁명을 통해 권력을 잡은 것이 아니라항상 태초부터 그곳에 있었던 것처럼 가장해야 한다그러므로 국가는 사회가 분열되는 것을 막기 위해 경쟁 계급의 이익보다 높은 것으로 보여야 한다착취당하고 학살당한 사람들에게 착취자와 전쟁 숭배자는 그렇게 보여서는 안 되며궁극적으로는 당신과 나처럼 살과 피가 있고 인간의 감정을 가진 가족으로 보여야 한다[1]. 이러한 군주제와 같은 봉건 제도의 보존이 중요한 이유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무정한 현금 지급"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임금 노예제는 착취당하는 사람들조차도 국가 가족의 일부라는 환상에 의해 완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국의 입헌군주제는 3세기가 넘는 동안 이러한 가부장적 통합의 외관을 완성해 왔다그러나 세계 자본주의 모순은 겉모습조차 새로울 게 없는 수준에 도달하고 있다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죽음에 대해 아첨하는 논객들은 그녀의 후계자들이 그녀의 통치에 대한 환상을 재현할 수 없을 것이라고 인식하고 있다웨일즈의 왕자로서 항상 정치에 개입하는 경향이 있었던 새 왕은 부르주아지 특정 부분에서 인기가 있었던 적이 없기에 정치적 분열을 넘어 통합의 상징으로 내세우는 것이 훨씬 더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현재 국가 통합의 축제는 제국주의 영국이 열렬한 선수인우크라이나의 자본주의 간 대학살이 모든 국방과 애국심에 대한 위선과 시대착오를 드러냈을 때 열리게 된다미래는 국익이 없는 계급국제적 계급즉 세계 프롤레타리아트에 달려 있다.

 

2022. 09. 15

코모(Como)

국제코뮤니스트흐름(IC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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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러나 우리는 국가 통합의 자본주의 종교가 사상과 감정 조작에만 기반을 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경찰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빨랐다런던과 에든버러에서 열린 기념식에서 "군주제를 폐지하라" "나의 왕이 아니다." 등의 구호가 적힌 현수막을 들고 있던 시위대 2명이 체포되었다거리 시위 가능성을 심각하게 제한하는 2022년 경찰·범죄·양형 및 법원법이 체포를 정당화하기 위해 발동되었다.

 

<출처>

https://en.internationalism.org/content/17249/capitalist-propaganda-service-national-unity-workers-have-no-cou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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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권리투쟁, 자본주의 모순을 드러내다

장애인 권리투쟁자본주의 모순을 드러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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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비마이너

 

장애인 권리투쟁의 배경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는 새해에도 지하철 탑승 시위에 이어 지하철 선전전을 계속 진행하고 있다전장연은 단순히 장애인 이동권 보장뿐만 아니라 장애인 권리 확보를 위해 4대 법률(장애인 권리보장법장애인 탈시설지원법장애인 평생교육법장애인 특수교육법개정과 이와 관련된 장애인 권리예산 증액을 요구하고 있다장애인 권리 요구는 최근의 지하철 탑승 시위로 사회적인 관심사가 되면서 알려졌지만사실은 오래전부터 주장해온 내용이다.

 

전장연은 장애인 권리 관련 예산 증액을 요구했다하지만 윤석열 정권은 전장연이 요구한 증액 예산 중 106억 8,400만 원(고용노동부 장애인 고용관리 지원 사업)만을 반영했다이는 전장연 요구안의 0.8%에 불과하다물론 이전 정권에서도 장애인 권리 관련 예산에 대한 무관심과 방관자적 자세는 다르지 않았다더 정확히는 방치와 무시억압으로 일관하였고결국 장애인이 인간답게 살아갈 권리를 보장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예산이 반영되었다게다가 서울교통공사는 전장연을 상대로 지난 6일 서울중앙지법에 6억여 원의 손해배상 소송까지 제기했다.

 

지난해 대우조선 하청노동자 파업과 화물노동자 파업을 제압한 이후 윤석열 정권의 강경 대응 기조는 자신감을 얻었고 서울시의 대응도 그 연장선이다서울중앙지법은 민사에 대해 전장연이 시위를 중단하는 대신 서울시가 19개 역사에 내년까지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라는 조정안을 내놓았다시위가 5분 넘게 지하철 운행을 지연시키면 전장연이 공사에 회당 500만 원씩 지급하는 조건도 달았다하지만 서울시와 서울교통공사는 법원의 강제조정안을 거부했다윤석열 정권과 서울시는 장애인들의 절박하고 정당한 투쟁을 불법’, ‘민폐로 매도하고 혐오를 조장하면서장애인들을 대화 상대가 아닌 제거 대상지배 질서에 대한 무질서의 원천으로 지목하며 강경 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인간이 당연히 누려야 할 기본권을 위한 전장연의 시위가 비장애인의 불편과 비용 낭비를 초래한다라는 논리는 노동자의 당연한 권리인 파업이 파업에 참여하지 않은 노동자의 권리와 생산 손실을 초래한다라는 자본가계급의 논리와 다르지 않다.

 

장애인의 권리는 이동할 권리시설에서 나와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권리일할 권리교육받을 권리 등 인간답게 살아갈 권리이다이런 점에서 장애인의 권리는 허울뿐인 정의와 공정으로 치장한 자본주의 체제에서 장애인에만 국한되지 않고 차별받고 배제당하는 모든 프롤레타리아트에도 해당한다이는 장애인 권리투쟁에 노동계급의 연대가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계급 간 협상은 계급적 역량과 투쟁이 바탕이 되어야 가능한데사회적 약자/소수자의 요구가 협상테이블에 오르기 위해서는 더욱 강력한 계급적 연대가 필요하다전장연의 지하철 탑승 시위는 노동자의 파업과 같이 장애인 권리예산 증액을 위한 실질적인 협상을 끌어내기 위한 수단이다지난 2001년 오이도역 참사를 계기로 시작된 장애인 이동권 보장 투쟁은 장애인 권리 요구와 함께 20년 넘게 지속해왔지만이번처럼 장애인들이 대중교통 탑승 등 노동과 일상 공간으로 나와 자신을 집단으로 드러냈을 때 그나마 사회적 관심과 논의를 끌어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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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비마이너

 

투쟁을 통한 권리 쟁취의 역사

 

한국보다 장애인 권리가 훨씬 더 보장되는 이른바 장애인 복지 선진국의 장애인 권리도 끈질기고 처절한 투쟁을 통해서 쟁취한 결과이지자본주의 사회와 정부의 선의로 주어진 게 아니었다.

 

<영국>에서는 1970년대에 장애인 운동단체가 건설되면서 장애인 권리투쟁이 조직적으로 진행되었다.

· 1995년에는 장애인들이 버스와 기차를 점거했다약 10만 명이 시위에 참여했고장애인들은 이 싸움은 "모두를 위한 대중교통"을 만드는 거라고 주장하며 교통수단에 자기 몸을 수갑으로 연결하는 등 격렬한 투쟁을 이어갔다이는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으로 이어졌다.

· 2015년 6월에는 중증 장애인들이 지역사회에서 생활하고 일할 수 있도록 고안된 정부 보조금인 자립생활기금(ILF)을 폐기하려는 정부 계획에 항의하기 위해 장애인 활동가들이 영국 의회 하원 건물 로비를 점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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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리브콤

 

· 2017년 영국의 철도노동자는 자본의 장애인과 노인을 위한 공공 안전 조치와 평등한 권리를 후퇴시키는 정책에 맞서 파업을 진행했다장애인에 대한 공공안전 조치의 후퇴는 철도 이용객들에 대한 안전 조치 후퇴철도노동자에 대한 구조조정과 노동강도 강화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1977년 샌프란시스코 연방 건물을 점거해 26일 동안 농성을 벌인 역사적인 투쟁과 1978년부터 콜로라도주 덴버에서 장애인들이 버스 운행을 막은 것을 시작으로 십수 년간의 장기 투쟁 끝에 '미국장애인법'(ADA)을 관철했다.

· 2006년에는 청각 장애 학생들이 워싱턴 DC의 갤러뎃 대학교(세계 유일의 청각 장애인 대학)에서 점거 투쟁을 벌였다학생들은 청각 장애인 문화 발전에 전념하지 않겠다는 차기 총장의 임명에 반대하여 시위를 시작했다학생들은 모든 입구를 막고 대학 건물을 점거하여 학교를 폐쇄했다이에 경찰이 점거 건물을 습격해 130명 이상의 청각 장애 학생들을 체포했다경찰은 1960년대 이후 워싱턴 DC에서 가장 큰 대규모 체포라고 밝혔다하지만점거는 계속되었고다른 청각 장애인들은 갤러뎃 대학과 같은 청각 장애인 '텐트 도시'를 만들어 지지를 보여주었으며미국과 캐나다 전역에 50개가 넘게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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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출처> 리브콤

 

<폴란드>에서는 2014년 장애인 부모들이 폴란드 의회를 점거했다장애인들을 돌보는 사람들을 위해 정부가 지급하는 적은 돈으로 살아갈 수 없는 부모들이 행동에 나선 것이다의회를 점거한 이들은 국제적인 차원에서 관심과 지지를 끌어내기 위해 다음과 같이 호소했다.

 

우리는 전 세계의 언론인들이 우리의 행동을 지지해 줄 것을 호소합니다우리는 지금 우리의 행동이 합법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자녀들의 운명을 개선하기 위해 수년 간의 투쟁 끝에 이러한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우리는 여전히 실제 처음 활동을 시작한 때와 같은 상황에 있습니다만약 우리가 지금 승리하지 못한다면분명히 패배 후에 다시는 우리 자신을 회복하지 못할 것입니다우리는 또한 이 나라에서그것을 위해 싸우지 않고자녀들의 삶과 존재에 대한 두려움 없이정상적으로 살 권리가 있습니다우리는 자녀들을 매우 사랑하지만우리의 사랑으로 음식 문제를 해결하거나 치료를 할 수 없습니다의회에서의 이러한 시위는 정부가 듣지 못하거나 적어도 모른 척하는 우리의 결단력과 절망의 외침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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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출처> 리브콤

 

이처럼 장애인 권리는 세상 어느 곳에서도 그냥 얻어지지 않았다수많은 투쟁과 연대가 권리를 보장해 주었다노동자들은 역사적으로 대공황 시기에 견고한 단결과 파업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점거 투쟁을 시작했고자본가들은 그들의 소유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간주해 법률에 호소하며 경찰을 동원했다하지만자본가에 맞서 파업이 필요한 노동자들은 이러한 논리에 맞서 투쟁을 지속했고 투쟁 형태를 발전시켜왔다장애인들의 대중교통과 입법기관 점거 투쟁은 생산의 주인인 노동자가 자신의 권리를 위해 생산을 멈추듯이 사회의 주인인 장애인이 자신의 권리를 위해 이동 수단을 멈추고 법 제도에 압력을 행사하는 정당한 수단이다.

 

자본주의의 장애’ 개념과 노동계급의 연대 필요성

 

자본주의에서는 자본과 임노동의 관계에서 잉여가치를 창출한 잉여노동이 이윤의 원천이 된다이윤추구 압박은 노동강도에 대한 압박으로 나타난다자본주의가 고도화될수록 노동강도는 높아지며이러한 노동강도와 노동생산성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은 사회적 고립의 대상이 된다이것이 장애 개념에 대한 기원이었다.

 

신체적으로 손상을 입은 사람을 장애인으로 만드는 것은 사회다장애는 우리가 가진 손상 위에 부과되는 어떤 것으로 그것은 우리가 아무런 필연적인 이유 없이 사회에 대한 완전한 참여로부터 고립되고 배제됨으로써 초래된 것이다이렇게 장애인은 사회 안에서 억압받는 집단이 된다.” (영국 분리에 저항하는 신체장애인 연합(Union of the Physically Impaired Against Segregation), 1976)

 

이러한 개념은 한국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모자보건법 14조에서는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는’ 예비 부모의 낙태를 허용유도하고 있다지난 문재인 정권에서는 형법상 낙태죄를 남겨 두고 낙태 허용 범위만 일부 확대한 형법 270조 낙태금지 조항이 있다겉으로는 상충되어 보이지만낙태금지법과 모자보건법은 한편으로 우생학적으로 우수한 인간의 결혼 및 출산을 장려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열등한 인간의 출산을 금지하는 국가통치 장치이며자본의 이해관계가 반영된 결과이다따라서 자본주의 체제에서 장애의 문제는 차별과 배제에 대한 문제 제기뿐만 아니라 가치 창출 기여도에 따른 구분에 대한 문제 제기도 필요하다.

 

장애인 권리투쟁은 물리적 문턱과 감각의 문턱주체성의 문턱과 관계의 문턱을 파괴해야 하는 싸움이다장애인의 자립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지배 이데올로기와 자본주의 생산양식에 대한 문제 제기는 결코 따로 일 수 없다장애인의 자립 생활을 위한 권리투쟁은 장애인만의 특수한 문제가 아니라 사회구성원 모두의 문제이고 노동계급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경제위기가 심화하면서 국가는 장애인을 위한 복지를 삭감한다경제위기가 아니더라도 장애인 권리투쟁이 약해질 때도 마찬가지이다자본주의 위기 전가에 맞선 투쟁에서 노동계급이 밀리면그 고통은 가장 취약한 곳으로 향한다장애인과 노동자들이 견고하게 연대하지 않으면자본가계급은 노동계급 내부의 분리장애인과 비장애인의 분리를 통해 공격을 강화할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장애는 사람들이 할 수 있어야 할좋은 일을 할 수 있는 특정한 것을 할 수 없는 것으로 정의한다자본주의는 특히장애인과 노동계급이 각자의 능력에 따라 모두가 사회에 기여하는 것을 막기 위한 잉여와 생산의 논리를 만들어냈다코뮤니즘은 사람들이 각자 가장 잘 할 수 있는 방식으로 기여하는 원칙에 따라 생산의 자체 관리를 통해 자본주의의 배타적 관행을 극복하고 자본주의 생산의 기반이 되는 소외의 논리를 극복한다손상과 같은 요소를 떠나 모든 사람이 사회의 재생산에 완전하고 평등하게 통합되는 것이 코뮤니즘의 목표이며각각의 자유로운 발전이 모두의 자유로운 발전의 조건이 되는 사회의 기초가 될 것이다이것은 장애해방과 노동해방이 모두 자본주의 체제를 폐지해야 가능한 이유이기도 하다장애인 권리투쟁이 장애해방을 위한 운동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자본주의 체제와의 투쟁이 필요하고이는 노동계급의 이해관계와 일치한다.

 

장애인과 노동계급이 연대하여 장애인 권리 쟁취하자!

자본주의 위기 전가에 맞서 생존권 투쟁을 전면화하자!

장애인과 노동자의 희생이 아닌 자본가계급과의 계급전쟁으로!

 

2023년 1월 19

국제주의코뮤니스트전망(IC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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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레타리아 혁명가 로자 룩셈부르크를 추모하며

프롤레타리아 혁명가 로자 룩셈부르크를 추모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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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를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파괴하는 것 외에 더욱 긴급한 일은 없습니다프롤레타리아트가 더는 자본주의가 제공하는 조건 아래서 살 수 없기 때문만이 아니라프롤레타리아트가 사회주의를 실현하지 못하면 소멸한다는 위협을 받아왔기 때문에사회주의는 필수적인 것이 되었습니다.”

 

로자 룩셈부르크와 칼 리프크네히트를 죽여라

 

1919년 1월 15두 명의 프롤레타리아 혁명가로자 룩셈부르크와 칼 리프크네히트가 사회민주주의자들과 구스타프 노스케에 의해 무참하게 살해당했다그 이전 로자 룩셈부르크는 1916년 재투옥되었으며1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감옥에 있었다룩셈부르크는 독일혁명이 시작했을 때 여전히 감옥에 있었다전후 1918년 11월 8룩셈부르크는 석방되자마자 독일혁명의 심장부베를린으로 달려갔다. 1918년 11독일 부르주아지는 노동자평의회를 해체하고 노동자와 병사의 투쟁을 피로 물든 군화발로 짓밟았다. 1918년 12스파르타쿠스 동맹의 구성원들이 독일코뮤니스트당(KPD)을 창설했다집요한 추적자들은 프롤레타리아트의 지도자들을 사냥하고 있었다노동자 탄압 시기유럽 심장부에서 수백 명의 노동자를 살해했다룩셈부르크는 적기 신문사 사무실에 있었는데떠나고 싶지 않았지만결국 동지들에 의해 몸을 숨길 수밖에 없었다뒤이어 범죄자들이 군중들을 설득하여 룩셈부르크와 리프크네히트를 가두고 베를린 벽보에 그들을 죽이라고 요구했다벽보의 주제는 섬뜩했다.

 

평화일자리빵을 원한다면 로자 룩셈부르크와 칼 리프크네히트를 죽여라.”

 

결국그들의 은신처는 발각되었다. 1919년 1월 15일 밤베를린의 부촌 빌머스도르프 거리의 무장한 부르주아 자경단 위원회 구성원 5명은 룩셈부르크와 리프크네히트를 납치했다범죄자들은 인질을 경찰에 넘기지 않고기병 수비대 소총 사단이 최근 새 본부로 삼은 호화스러운 에덴 호텔로 데려갔다범죄자들은 혁명가들을 극도로 두려워했다재판이 열리지 못하도록프롤레타리아트 혁명가들은 참혹한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범죄자들은 리프크네히트가 도망치려는 와중에 총에 맞았다고 했으나구타당한 뒤 총살되었다룩셈부르크 또한 총으로 구타하고 머리에 총을 쏜 다음 수로에 시체를 버렸다.

 

1919년 1월 15추운 겨울밤의 학살

 

따뜻하고 포근한 안개에 둘러싸인 로자 룩셈부르크의 의식세계와는 달리 1919년 1월 15일의 밤은 살을 에는 추위 때문에 길이 얼음으로 꽁꽁 덮여 있었다숨을 헐떡거리고 있는 룩셈부르크는 군용트럭의 화물칸에 거칠게 내팽개쳐졌다거친 폭음을 내며 어둠을 향해 트럭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병사 하나가 트럭 위에 올라탔다다시 한번 그의 머리를 개머리판으로 내리쳤다그것을 통증으로 느낄 수 없을 만큼 룩셈부르크의 기력은 쇠잔해져 있었다살아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죽은 것도 아닌 상태로 트럭에서 세찬 삭풍에 몸을 내맡기고 있었다중위는 무관심한 표정으로 잔인한 눈길을 룩셈부르크에게 돌려 표정을 살피고 있었다마치 그에게 아직도 생명이 붙어 있다는 것을 확인하며 허술하게 만들어진 우리에서 피에 굶주린 짐승이 피를 찾아 으르렁거리며 달려들듯이 중위는 피스톨의 방아쇠를 끌어당겼다.

 

촛불은 꺼졌다로자 룩셈부르크는 산산이 부서졌다.

 

칠흑 같은 어둠이었다운하와 동물원 사이의 좁은 길을 따라 엔진 소리가 여운을 남기며 사라지고 있었다바로 옆의 운하에 멈춰서 있는 두세 명의 병사의 그림자가 물 위에 떠 있었다그곳으로 다가가서 급히 생각이 난 듯 차는 급정거 하였다병사들의 그림자가 한쪽 발에는 신발도 신지 않은 중년 여성의 그림자를 귀찮은 듯 다리 위에서 운하로 집어 던졌다튀어 오르는 물방울이 어둠 속으로 하얗게 흩어졌다삽시간에 어둠과 정적만이 감돌았다임무를 다했다는 듯 트럭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하여 어둠 속으로 사라져가고 있었다.

 

다음날 로자 룩셈부르크의 죽음이 동지 칼 리프크네히트의 죽음과 함께 전해졌다그가 선동한 군중의 광폭한 노여움에 의해 자신의 죽음을 초래했다는 소문이 떠돌았다그리고 시체는 무질서한 혼란의 와중에도 분실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당시 부르주아 언론은 리프크네히트가 도주하던 중 총에 맞아 숨졌으며룩셈부르크는 폭도 중 한 명에 의해 살해되었다고 썼다.

 

노스케는 프롤레타리아 혁명가 암살에 연루된 공무원들의 무죄방면에 사적으로 사인했다기병대 사단의 우두머리로 살해를 명령한 발데마르 파브스트는 후에 나치 정권독일연방공화국에 봉사했다몇 년 후그는 자신이 저지른 독일혁명을 진압한 일의 중요성을 이야기했으며결과적으로 자본주의를 구원했다고 이야기했다그리고 오히려 독일 국민을 비난했다.

 

이 독일 멍청이들은 무릎을 꿇고 노스케와 나에게 고마워해야 한다거리와 광장은 모두 우리 이름으로 불러야 한다!”

 

1919년 1월 15일의 살인은 시작일 뿐이었다이후 몇 달 동안 노스케 치하의 수천 건의 살인의 시작이자 히틀러 시대의 수십 년 동안 수백만 건의 살인의 시작이었다그것은 다른 모든 것에 대한 신호였다.

 

이러한 잔학행위의 90주년을 맞아 독일자유당은 베를린에 노스케 기념비를 세우는 것을 제안했다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친애하는 기민당 사무총장 포팔라는 노스케의 행동을 공화국의 용기 있는 방어라고 극찬했다. (2009년 1월 11일 베를린 신문 Tagesspiegel에서 인용)

 

로자 룩셈부르크의 생애

 

로자 룩셈부르크는 1871년 3월 자모치(폴란드)에서 유대인 가정의 다섯째이자 막내로 태어났다. 1871년은 파리코뮨의 해였고인터내셔널 내에서 바쿠닌의 음모에 대항한 투쟁이 있었던 때였다. 17살 룩셈부르크는 폴란드에서의 억압 때문에 스위스로 이주할 수밖에 없었고취리히대학에서 몇몇 과목들(식물학수학경제학역사 및 법학 등등)을 수학했다. 1897년 그는 '폴란드의 산업발전'에 관한 박사 논문을 제출했다. 1890년대에 이미 그는 폴란드 출신의 다른 동지들과 함께 제인터내셔널의 오래된 원칙들에 의문을 제기했다룩셈부르크는 자본주의에서 새로운 발달을 감지할 지적 능력을 갖추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인터내셔널의 저항에 맞서폴란드의 민족자결권이 더는 의제가 아니라고 결론지을 용기를 갖고 있었다.

 

1898년 로자 룩셈부르크는 독일로 이주하여 독일사회민주당(SPD)에 참여했다독일사회민주당 내부에 하나의 경향이 출현했는데 그 주요 대표자가 베른슈타인이었다그 경향은 자본주의가 다소 위기에서 벗어난다는 그리고 사회주의로의 이행이 평화로운 수단을 통해 가능하다는 생각을 옹호했다사실상 베른슈타인은 운동의 목표를 포기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룩셈부르크는 그의 답변혁명이냐 개량이냐(1899)를 썼다그 시기 동안에 이미 그는 기회주의에 대항한 투쟁에 앞장섰다.

 

1903년 맑스주의의 침체와 진전이라는 글에서 그는 맑스와 엥겔스의 죽음 이후 맑스주의 운동에서의 침체를 비탄하며 새로운 이론적 노력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맑스주의 자체가 더 정교해질 필요가 있음을 강조했다.

 

이러한 이유로 로자 룩셈부르크는 1916년 옥중에서 쓴 ()비판의 끝머리에서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맑스주의는 언제나 새로운 인식을 얻으려고 애쓰는 혁명적인 세계관이다이는 한번 유용했던 표식에 형식적으로 되는 것을 철저히 혐오하며자기비판이라는 정신적인 격렬한 울림에서그리고 정신적인 천둥·번개에서 생명력을 가장 잘 유지한다.”

 

1904년 일본과 러시아 사이의 전쟁에 뒤이어 러시아에서 최초로 대대적 파업의 큰 물결이 일어났다로자 룩셈부르크는 20세기 계급투쟁의 새로운 원동력을 최초로 발견한 이들 중의 하나였는데이제는 노동자들의 주도성이 특징적인 요소가 되고 계급투쟁은 노동조합이나 당 기구에 의해 계획” 될 수가 없다비록 룩셈부르크가 노동자평의회의 역할을 아직 이해하지는 않았지만대대적 파업당 그리고 노동조합이라는 책에서 그는 이러한 대중 활동을 강조했다계급투쟁의 이러한 새로운 원동력을 노동조합과 증가하는 독일사회민주당 내부 인자들은 격렬한 투쟁으로 꺾어버리려 했다노동조합 기구와 밀접하게 협력하면서 독일사회민주당 지도부는 당 내부에서 대대적 파업에 대한 논쟁을 금지했다. 1906년 룩셈부르크는 대대적 파업에 관한 책 출판 후 계급 증오를 조장했다는 선고를 받고 2개월 동안 수감 되어야 했다독일사회민주당의 이전의 지도자로 맑스주의의 정통적인 교황으로서 알려진칼 카우츠키는 룩셈부르크의 과격한 노선에 점점 더 반대하는 입장을 취했다이 시기 동안 룩셈부르크를 평화롭고”, “조화를 사랑하는” 독일사회민주당 안에 곤란을 유발하는 유대인”, “외국인”, 그리고 노처녀라고 비방하는 캠페인과 중상모략이 강화되었다.

 

1907년 점증하는 전쟁위협에 대응하여 조직된 제인터내셔널 슈투트가르트 대회에서 로자 룩셈부르크레닌 그리고 마르코프는 전쟁이 발발할 경우 자본주의 계급지배의 철폐를 촉진한다는 공통된 지향을 위해 투쟁했다. 1912년 자본의 축적에서 룩셈부르크는 맑스의 저작 속에 존재하는 한계와 모순을 용감하게 지목했었다그의 책은 아직 자본주의에 포섭되지 않고 그 외부에 존재하는 시장의 역할과 군국주의의 특수한 기능을 파악하는데 기본을 제공한다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2년 전에 쓴 그 책은 자본주의의 기본모순에 대한 필요불가결한 통찰을 제공한다.

 

1914년 8월 독일사회민주당 지도부의 배반이 있자마자 로자 룩셈부르크는 전쟁 반대 투쟁에서 지도적 인물이 되었다유니우스 팸플릿은 그래서 1890년대 이래 새로운 조건을 이해하려는 그의 투쟁1차 세계대전으로 치닫게 된 정치적사회적 경제적 조건을 설명하고프롤레타리아트가 직면한 도전을 설명하려는 그의 투쟁과 직접적인 연장선 속에 놓여있다. 1917년 여전히 감옥 속에 있으면서 러시아에서 그때 막 시작된 혁명의 중요성에 대해 최초의 분석을 제공했다.

 

로자 룩셈부르크가 1918년 11월 감옥에서 풀려났을 때지배계급은 그를 어느 때보다도 더 두려워했다특히 독일사회민주당은 노동계급에 반대한 그 당의 투쟁의 표적을 룩셈부르크로 삼았다. 1918년 12월 베를린 노동자평의회에 그와 독일 노동계급의 가장 유명한 혁명가 중 하나였던 칼 리프크네히트의 참여가 허용되지 않았는데핑계는 그들이 노동자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1918년 12월 독일코뮤니스트당 창립대회에서 강령에 관해 행한 연설에서 로자 룩셈부르크는 프롤레타리아혁명의 역사적 차원을 강조하면서 혁명이 테러로 복귀할 수 없으며 노동계급 전체의 모든 에너지와 의식을 동원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그는 매우 교활한 적()에 대항한 재빠르고 쉬운 승리라는 당면(當面)주의적 환상에 대항해 목소리를 높인 극소수 중의 하나였다결국그를 겨냥한 중상 비방 캠페인은 1919년 1월 그 극에 달했다. 1919년 1월 중엽 소위 스파르타쿠스 봉기가 진압되고 수천 명의 노동자들이 학살된 뒤 로자 룩셈부르크도 암살되었다지배계급은 당시 가장 용감하고 통찰력 있는 혁명가 중 하나를 일소해버리는 데 마침내 성공하고 만 것이다.

 

"그리고 이제동지들우리는 우리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할 수 있는 지점에 도달했습니다우리는 맑스로 되돌아왔으며그의 깃발 아래로 다시 돌아왔습니다오늘날우리는 우리의 강령에서 선언합니다프롤레타리아에게 사회주의를 진실로사실로 만들며자본주의를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파괴하는 것 외에 더욱 긴급한 일은 없습니다프롤레타리아트가 더는 자본주의가 제공하는 조건 아래서 살 수 없기 때문만이 아니라프롤레타리아트가 그 계급적 의무를 수행하지 않거나사회주의를 실현하지 못하면 소멸한다는 위협을 받아왔기 때문에사회주의는 필수적인 것이 되었습니다." (로자 룩셈부르크우리의 강령과 정치적 상황독일코뮤니스트당(KPD) 창립대회, 1918)

 

전쟁 동안 로자 룩셈부르크의 혁명 정신

 

인류에 있어 이러한 역사적 재앙에 직면하여예전의 노동자당에 의한 이러한 배반에 직면하여 로자 룩셈부르크는 혁명 정신의 본보기지칠 줄 모르는 결연함과 장기적 관점에서 이론적-정치적 분석을 이뤄내는 역량의 한 본보기였다.

 

전대미문의 수준으로 전개된 야만성과 당의 배반은 혁명가들에게 진정한 충격이었고그들 중의 일부는 침울함에 빠졌다독일의 많은 혁명가들이 수감되거나 추방되었다로자 룩셈부르크도 전쟁 기간 대부분을 감옥에 있었다. 4년 4개월간의 전쟁 기간 총 3년 4개월을 감옥에서 보내야 했다그러나 그의 결연함을 굴복시키고 침묵하게 하려는 것이 수감의 의도였다면수감 된 후 그의 반응은 이론이라는 무기로 반격하는 것이었다룩셈부르크는 자신의 책자본의 축적에 대한 비판들에 대한 대답으로 반비판을 썼다전쟁발발 전 독일사회민주당 학교의 교사로 활동하는 동안 그는 정치경제학에 관한 강의를 했었다수감 중에 그는 당 학교 교사로서 사용했던 초기의 그 강의 자료로 정치경제학입문을 썼다그리고 그는 문학과 문화 문제도 다루었는데러시아 작가 코롤렌코의 동시대인의 이야기를 독일어로 번역하고 그 서문을 작성했기도 했다그가 러시아혁명에 대한 분석러시아혁명에 대하여를 작성하고 러시아혁명에서 행해진 실수들에 대한 비판을 위한 최초의 몇몇 중요한 점을 발전시킨 것도 수감 중인 상태에서였다.

 

물론 로자 룩셈부르크는 감옥에 갇힌 상태로 고통받았지만이것은 결코 그의 의지를 꺾거나 사기를 저하시킬 수 없었다그가 수감 중에 쓴 기록들이나 서신들을 읽는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그가 감옥 속에서 다룬 화제의 다양성과 예술과 문학에 대한 일련의 편지는 길들여질 수 없는 창조적 정신을 증언한다.

 

나는 종종 아침 6시부터 저녁 9시까지 책 읽기와 글쓰기로만 하루를 보냅니다.”

 

자본주의의 도덕적 파산과 사회주의냐 야만이냐라는 전망에 직면하여 로자 룩셈부르크는 스스로 가장 결연한 투쟁에 투신했을 뿐만 아니라그에게 매우 소중한 사람들을 잃는 깊은 슬픔을 겪으면서도 용감한 정신을 유지했다그가 강인함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이론적인 노력과 다른 열정들(보기를 들어 그림 그리기나 식물학)을 추구하는 능력을 통해서 그리고 외부로부터의 거대한 지원망을 통해서였다위장이 약해서 특별 식이요법이 필요했던 그는 감옥 밖으로부터 음식을 제공받을 수 있었다그의 저작들은 반복적으로 감옥 밖으로 밀반출했고이는 때때로 간수들의 묵인하에 이뤄졌다수감 중에 룩셈부르크는 많은 동지들과 서신 교류를 했고그들에게 충고를 주고 감옥에 갇혀서도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그들을 지원했다감옥을 둘러싼 어떤 벽도 그를 침묵시키고 그가 개인에게동지들에게 그리고 노동계급 전체에 그의 지원을 제공하는 것을 막을 만큼 두껍지 않았다그래서 그의 목소리는 정치적으로 그리고 인간적으로 감옥 밖에서도 '들릴 수있었다룩셈부르크가 감옥에서 풀려나는 날 약 천 명의 노동자들(대부분이 여성노동자)이 감옥 정문 앞에서 그를 기다렸다가 집까지 동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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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자 룩셈부르크의 최후

 

독일혁명의 폭풍 속에서 혁명의 패배가 분명해진 순간에도 로자 룩셈부르크는 자신의 원칙과 방법을 포기하지 않고 굳건히 지키고 있었다베를린은 유지되고 있다라는 논설에서 혁명의 와중에()혁명 승리의 환상 속에 있더라도 아직 혁명적 노동자는 사건에 대한 검토를 거듭하고경과와 결과를 역사의 척도로써 측정할 것을 요구했다.

 

1월 이후로자 룩셈부르크의 심신의 피로는 한계에 도달하고 있었고혁명에 대한 의욕과 의지가 간신히 그것을 지탱하고 있었다최종적인 승리를 눈앞에 두고 과로와 병세로 쓰러질 수도아니면 반혁명 군의 총검에 쓰러질지도 모른다는 것을 각오하고 있었다그 순간까지도 룩셈부르크는 대중을 신뢰하고대중에게 미래를 걸었다그리고 이렇게 썼다이것이 마지막이었다.

 

"이번 투쟁은해결해야 할 문제는 대단히 날카로운 데 반해 혁명이 발전할 수 있는 초기 단계에 필요한 전제 조건은 모자랐습니다그런 모순을 안고 따로따로 맞붙은 싸움이 시작되어 결국은 패배로 끝났습니다그러나 혁명이 가진 특수한 생명 법칙이 있다면 그것은 거듭되는 패배를 통해서만 최후의 승리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질서가 베를린을 지배한다)

 

"지도자는 대중에 의해 거부되었습니다하지만 새로운 지도자는 대중 속에서 만들어질 수 있고또한 만들어지지 않으면 안 됩니다최후의 결정자는 대중입니다대중은 혁명의 최후 승리가 쟁취되는 전장입니다그들은 이 패전으로 인해 국제 사회주의 사회의 과시이며 힘인 역사적 패배의 연속 일환이 되었습니다바로 그래서 이 패배로부터 미래의 승리가 꽃필 것입니다." (로테 파네, 1919.1.14.)

 

1월 16일의 폴베르쯔는 칼 리프크네히트가 도망치려고 하여 사살되었고로자 룩셈부르크 또한 분노하여 광폭한 대중에 의해 살해되어 스스로 죽음을 초래했다는 뉴스를 보도했다이 학살에 대해 슬픔과 격노에 찬 요기헤스는 사실 자료를 모아 공개하고 그들의 범죄를 폭로하였다그것 때문에 그도 역시 3월 10일 체포되어 경시청의 감방 안에서 형사에 의해 학살되었다기력이 다한 늙은 메링도 역시 그들의 뒤를 따라 세상을 떠났다그렇게 독일혁명은 비극의 막을 내렸다.

 

그리고 비극의 역사는 반복되었다한때 세계 최고와 최대의 사회주의 세력으로 성장하고 국제 노동운동의 지도적 지위를 확고히 했었던 독일사회민주당(SPD)이었지만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한 배신과 학살로 독일혁명의 실패를 초래하더니결국 그들이 그곳에서 나치즘을 탄생시키고 육성한 것이다나치즘의 탄생과 양육의 부모였던 독일사회민주당은 과거 자신이 로자 룩셈부르크와 동지들을 학살할 때 사용했던 방법으로 그들이 기른 자식에게 조직 자체가 압살 되는 운명을 겪었다.

 

1933년 나치는 자본의 지지와 원조 하에 권력을 장악하고 국회의사당을 방화하고 그 죄를 독일사회민주당(SPD)과 독일코뮤니스트당(KPD), 노동조합에 전가했고독일사회민주당은 이 상황에서도 나치의 눈치 보기에 급급했고독일코뮤니스트당의 총파업 요구는 거부되었고결국 세 곳 모두 결사 금지의 탄압을 받게 된다이런 나치의 만행은 죽은 자의 묘를 파헤치고 일련의 사회주의 문헌과 함께 로자 룩셈부르크의 모든 저작을 불태우고 만다결국전 인류의 불행과 파멸을 초래했던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나서야 룩셈부르크의 묘지는 해방되었고아직도 그의 저작과 사상혁명을 향한 실천은 복원 중이며 현재 진행형이다.

 

진정한 프롤레타리아 혁명가 나는 그래왔고지금도 그러하며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로자 룩셈부르크를 살해하고 나서 불과 몇 달 후부르주아지와 노동자 운동의 기회주의자들은 그를 신성시하고그의 혁명적인 내용을 제거하고비하하고그리고 이 날카로운 혁명가를 무디게 하려고 그를 천진스러운 우상으로 만들기 시작했다무엇보다도 그들을 위해서 로자 룩셈부르크는 원래 모습이었던 전투적이고 모범적인 혁명가로 남아있어서는 안 되었다로자 룩셈부르크는 일종의 평화주의자 그리고 페미니스트 민주주의자로 잘못 전해져두 번 살해되어야만 했다.

 

이 가증스러운 민주주의 선전은 스파르타쿠스 기관지 설립자인 르네 르페브레와 같은 인물들을 거치면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발작을 한다나중에 그는 로자 룩셈부르크 저작집에서 완전히 이데올로기적인 머리말을 썼는데그것의 1946년 제목(로자 룩셈부르크는 절대 그 제목을 쓰지 않았다)인 독재에 반대하는 맑시즘은 혁명을 위한 투사를 볼셰비즘에 근본적으로 적대적이라고 묘사했는데역겨운 거짓말에 불과하다저작집」 서문에서 르페브르는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모든 위대한 맑스주의의 저명한 이론가들칼 카우츠키에밀 반데벨드루돌프 힐퍼딩칼 레너조지 플레하노프는 로자 룩셈부르크처럼 레닌의 전체주의적 교조가 맑스주의의 원칙에 완전히 반대된다고 비판했다.”

 

스탈린은 레닌을 박제화했으며 그의 사상을 끔찍한 교리로 왜곡했다. "피의로자 룩셈부르크는 일종의 민주주의의 성인(聖人)이 되었다스탈린주의 반()혁명은 빠르게 두 개의 새로운 타락하고 상호 보완적인 이데올로기를 형성시켰다한쪽은 매력적인 룩셈부르크주의(민주주의)” 그리고 다른 쪽은 혐오스러운 "맑스-레닌주의(스탈린주의)". 정말 동전의 양면 또는 오히려 같은 결과를 가져올 함정으로 향하는 두 입구다. "피에 굶주린볼셰비키를 거부하고 "평화주의자로자로 묘사되는 인물을 존경하는 것은 철창 안의 사자를 존경하는 것과 같다.

 

동유럽의 붕괴와 소련이 사라진 후이 광대한 이데올로기적 캠페인은 다시 발굴되었고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함께 부르주아지가 열광적으로 선언한 이른바 코뮤니즘의 죽음을 부양하기 위해 확대되었다여기에서 공식 이데올로기는 역사의 가장 큰 거짓말로코뮤니즘과 스탈린주의를 같은 것으로 여기는 사기를 목표로 했다그리고 로자 룩셈부르크를 평화주의자,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한 독재", "스탈린의 정신적 아버지"인 레닌의 적()으로 묘사하는 것은 이 비열한 선전에서 가장 악질적인 부분 중 하나이다그들이 그것을 의식하든 안 하든이 가짜 싸움에 참여하는 사람은 노동계급에 반대하여 싸우는 것이다.

 

이후 유럽 전역과 세계 도처에 걸쳐 서점 및 가판대와 블로그포럼에서는 전투적인 로자 룩셈부르크의 이미지를 다시 왜곡시키기 위해 새로운 가증스러운 선전이 유행했다. TV 프로그램에서부터 로자 룩셈부르크는 다시 "여성"과 "평화"의 특성만을 가진 사람으로 등장한다. “로자 룩셈부르크맑스주의자-평화주의자” “맑스주의자와 평화주의자라는 단어의 결합은 경악을 금치 못하게 한다지배계급에 대항한 진정한 맑스주의자가 봉기와 자본주의의 전복을 포기하고 계급 전쟁으로부터 이탈한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아동문학을 비롯하여 수많은 책이 로자 룩셈부르크를 볼셰비키와 독재자” 레닌의 완고한 적()으로 묘사하면서 출판되었다. "천진스러운 우상"으로 그를 변환시키기 위한 로자 룩셈부르크의 재조명은 거대한 이데올로기 중독 사업이다그것은 프롤레타리아트는 세계적인 코뮤니스트 사회가 아니라 더욱더 "민주적인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싸워야 한다는 생각을 주입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오늘날 부르주아지를 위한 이해관계는 민주적인 부르주아지를 방어하는 것 외에 다른 미래가 없다는 논리로 가장 비판적이고 반항적인 구성원을 설득하는 것이다그러나 이 왜곡의 배후에는 코뮤니즘에 대한 불신과 혁명조직을 악마화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목적이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위대한 혁명가들은 살아생전에는 억압계급의 끊임없는 탄압을 받았고그들의 이론은 허위와 중상모략에 가득 찬 가장 야만적인 적의와 가장 표독스러운 증오 그리고 가장 파렴치한 구호로 대접을 받았다그뿐만 아니라 그들이 죽은 이후에는 천진스러운 우상으로 변질되어 신성시되거나 결국에는 대부분 그들의 명성이 피억압계급을 회유하는 데 쓰이는 "위안"으로또는 후세에 기만하는 수단으로 숭배되는 등음모의 대상이 된다그와 동시에 그들의 혁명적 이론은 그 혁명적 본질을 빼앗기고혁명적 이론이 지니는 무기로서의 예리함은 무디어지고 통속화되고 만다오늘날 부르주아지와 노동운동 내의 기회주의자들은 위와 같은 맑스주의의 변조에 함께 참여하고 있다.” (레닌국가와 혁명, 1917)

 

지배계급의 중상모략에도 불구하고 로자 룩셈부르크는 진정한 프롤레타리아 혁명가였다비록 문명화된 야만인들스스로 민주주의자라 칭하는 이들이 유럽의 심장에서 룩셈부르크를 살해했다고 할지라도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한 열망의 원천그리고 특히 자본주의의 발전제국주의 개념국가에 대한 질문 등에 대한 가르침은 여전히 생동하고 있다프롤레타리아 혁명가들을 죽인 살인자들이 바라는 것과는 반대로 룩셈부르크는 여전히 계급전쟁에서 살아 있다혁명가들이 살해된 지 104년이 지난 지금,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 공세가 더욱더 강화되고 있지만로자 룩셈부르크의 정신은 여전히 우리에게 살아나고 있다.

 

탄압받는 상황에서 자본의 질서에 관하여 쓴 마지막 글에서 룩셈부르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베를린은 질서를 되찾았다!” 비겁한 아첨꾼들아너희들의 질서는 모래성 위에 세워져 있을 뿐이다내일혁명은 다시 일어나무기를 들고 싸울 것이고불타오르는 트럼펫 소리가 너희를 공포에 떨게 하며 증명할 것이다.

 

나는 그래왔고지금도 그러하며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2023년 1

국제주의코뮤니스트전망(IC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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