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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다리 사이를 닦아주었다. 물티슈 왕창 쓰면서.
우리들의 홈이라면 함께 목욕이라도 할텐데.
도질까, 무섭다. 집을 갖고 싶은.
욕망, 그보다 더 진한 감수성.
창 넓은 베란다를 갖고 싶어. 아니 발코니를.
연한 초록의 잎들이 무성한 나무, 풀, 낮은 꽃나무. 듬성듬성 내보이는 흙더미들.
그녀는 가꾸지 않은 정원이라도 흙을 밟으며 걷고 싶어한다. 발이 아프게 되고부터.
- 강화마루, 아니 원목마루인가. 암튼 마룻장 때문이야. 넓고 딱딱한.
그녀는 발이 아프게 되기 직전, 통증을 느끼면서 이상하다 생각하면서 그래도 관심두지 못 하고 바쁘기만 했던 아이들의 세살, 다섯살 적을 보냈던 아파트에서의 넓은 마루가 생각난다고 한다. 그 마루 끝에서 울었던 일. 아이 돌보기에 힘이 부쳐 괴로웠던. 남편에게 화내다가 하소연하다가 속이 끓어 슬픔이 북받쳤던 일. 그 집을 슬픔으로 기억한다. 그 넓고 딱딱했던 마루. 청소하기에 힘에 부쳤던. 늘 어질러진 집기들을 집으러 다니느라 발이 아팠던, 제 몸을 돌아보는 것이 너무 늦었던, 그 집을 떠나고 또 다른 집에서 맞벌이하면서도 채 일년을 살아내지 못 하고 결국 집을 줄여 이사할 수 밖에 없었는데. 그제서야 그녀는 몸이 예전같지 않음을 알았다고. 더이상 무리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았음을, 그녀는 금방 되풀이되는 스트레스와 피로에 처지는 몸과 불안정한 정신을 수습하지 못 하면서 눈물 많아지는 자신을 발견하고. 아, 못 하겠다. 하였다.
그녀는 누구에게도 화를 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남편에게 끊임없이 화를 내는 자신을 발견했다. 자신을 제어하지 못 하는 자신을 비로소 돌아보면서 그녀는 말하기를 멈췄다. 그렇게...화내면서 살 무엇이 있는가고.
그리고 버릇처럼 되뇌었다. 괜찮아. 하고.
원하지 않으면 상처받을 일도 없지. 하면서.
내가 그에게 너무 큰 것을 원했다. 하고.
그를 사랑하지 않았으니 상처받지 않을 테지.
그리고 앞으로도 사랑하지 않는다면 새로 상처입을 가능성은 없을 테니.
" 우리, 연애하자. "
그녀의 벗은 어깨 위로 린넨셔츠를 걸쳐주면서 속삭였다. 팔을 끼워 옷을 다 입고, 누웠던 자리에서 일어나려 손을 내어민다. 붙잡아 일으켜 달라고. 항상 어리광을 부린다. 곁을 주는 모든 사람에게.
" 혜정아. "
그녀, 못 들은 듯 바지를 꿰어입고 바클을 채우고 매무새를 다듬는다. 시계를 흘낏 거리며.
" 너, 빨리 옷 입어. 나는 다 입었는데 뭐하고. 웃기쟎아, 너만 홀랑 벗고 있으니. "
그녀의 작은 입이 웃음을 떨구고 있다. 제가 주도하여 갖고 놀았으니 이만 가 볼란다. 하는 선비처럼. 그런 마음의 자세로 내려다보며, 어서 일어나라고 채근한다. 그녀가 무릎으로 어깨를 친다, 톡톡.
" 혜정아, 우리 연애하자. "
더 크게 또렷이 말했다. 그녀의 무릎을 감싸안으며. 매어달리는 주막집 과부처럼 비통하게, 애절하게, 아니 진솔하게.
그녀는 진지하지 않은 건 아니나 그리 심각해할 만한 얘기는 아니라는 듯.
" 어, 참, 빨리도 얘기하네? 키스하고 포옹하고 자고 난 담날 아침에야 대사 치는 게 요즘 청소년들의 연애순서야? "
그녀, 올려다보며 미안함 반, 간절함 반으로 눈길 꽂았으나 마주쳐 주지 않고 손길 내민다. 일어나라궁...시계 좀 보구...나, 얘들 데리러 가야 해. 너두 할 일 많쟎아. 그녀의 손을 잡고 일어나 옷 입고 방을 나왔다. 그리고...
" 혜정아, 우리 연애하자. "
" 아, 97번만 더 말하면 백번째야. 너 백 한 번째까지 프러포즈할꺼야? "
" 응. "
" 왜 그래? "
그녀, 비로소 눈 들여다보며 가만히 섰다. 그녀가 모르지는 않는다. 무슨 뜻인지. 우리. 라고 말했는데. 그녀에게 사과해야 할 것이다.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에 대해. 앞으로도 그럴 의사가 없는 것에 대해. 그러면서도 이리 강짜부리듯 규정을 하자 하는 것에 그녀는 따지고 들며 부당하다 할 지도. 허나, 누가 따지리. 사랑하면서 사랑해선 안된다는 당위론을 들먹이는 게.
" 연인이라고 인정해 줘. "
" 그게 무슨 소용인데? "
" 나한테 솔직하게...욕구를 보여 줘. "
" 니가 그러고 싶은 거겠지. "
" 너도 그러고 싶쟎아. 싶을 때 있쟎아. 오늘처럼. "
그녀, 잠깐 생각을 하려는 듯 말을 멈춘다. 눈 속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맘이 읽히지가 않는다.
" 그래. "
" 혜정아. "
" 하고 싶을 때 얘기할께. 내가 그러듯 너도 그러면 되지. 우린 연인이야. 됐지? "
" 혜정아, 내가 성욕만 얘기하는게..."
" 네가...대체 뭘 해 줄 수 있어? 내게. "
그녀, 똑바로 쳐다보고 있지만 분노 혹은 슬픔이 없다.
" 네게 미안하다고 말하진 않을 꺼야. 하지만 사랑해. "
그녀, 감흥없이 듣고 있다. 이런 고백을.
" 내가 더 사랑해. "
그리고 돌아선다. 시간 없어. 갈께.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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