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글 목록
-
- 망한 선택의 책들
- hongsili
- 02/23
-
- 그림이 많은 책들(1)
- hongsili
- 02/16
-
- 계급 남아있기 혹은 건너뛰기
- hongsili
- 02/14
-
- SF 중단편들 숙제
- hongsili
- 02/13
-
- 바스크 나들이_마지막
- hongsili
- 2024
불현듯!
나카지마 아츠시의 산월기(山月記)가 떠올랐음.
주옥같은 문장들이라 예전에 문서 파일로 만들어 놓은 적도 있는데, 컴을 이리저리 옮기면서 그건 없어진 거 같고... 친절한 네티즌들이 올려놓은 문장들을 발췌...
다시 읽어보아도 역시......
그런데... 왜 생각이 났던 것일까....
.....
아까는 왜 이러한 운명이 되었는지 모르겠노라고 말했지만, 생각해 보면 짐작이 가는 데가 전혀 없는 것도 아닐세. 인간이었을 때 나는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꺼렸다네. 사람들은 나를 오만하고 자존심이 강하다고 말했지. 실은 그것이 어쩌면 수치심에 가까운 것임을 사람들은 몰랐던 거야. 물론 온 고을에서 귀재라 불리던 내게 자존심이 전혀 없었다고는 말하지 않겠네. 그러나 그것은 겁 많은 자존심이라고 해도 좋을 만한 것이었네.
.....
나는 시(詩)로 명성을 얻으려 하면서도 스스로 스승을 찾아가려고도, 친구들과 어울려 절차탁마에 힘쓰려고도 하지 않았다네. 그렇다고 속인들과 어울려 잘 지냈는가 하면 그렇지도 못했다네. 이 또한 나의 겁 많은 자존심과 존대한 수치심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걸세. 내가 구슬이 아님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애써 노력해 닦으려고도 하지 않았고, 또 내가 구슬임을 어느 정도 믿었기 때문에 평범한 인간들과 어울리지도 못했던 것이라네.
.....
나는 세상과 사람들에게서 차례로 등을 돌려서 수치와 분노로 점점 내 안의 겁 많은 자존심을 먹고 살찌우는 결과를 빚고 말았다네. 인간은 누구나 다 맹수를 부리는 자이며, 그 맹수라고 할 수있는 것이 바로 인간의 성정(性情)이라고 하지. 내 경우에는 이 존대한 수치심이 바로 맹수였던 것일세. 호랑이였던 게야. 이것이 나를 망가뜨리고, 아내를 괴롭히고, 친구들에게 상처를 입히고, 결국 내 겉모습을 이렇게 속마음과 어울리는 것으로 바꿔 버리고 만 것이라네.
.....
지금 생각하면 나는 내가 갖고 있던 약간의 재능을 허비해 버린 셈이지. 인생은 아무것도 이루지 않기에는 너무도 길지만 무언가를 이루기에는 너무도 짧은 것 이라고 입으로는 경구를 읊조리면서, 사실 자신의 부족한 재능이 드러날지도 모른다는 비겁한 두려움과 고심(苦心)을 싫어하는 게으름이 나의 모든 것이었던게지. 나보다도 훨씬 모자라는 재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그것을 갈고 닦는 데 전념한 결과 당당히 시인이 된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는데 말이야. 호랑이가 되어 버린 지금도 가슴이 타는 듯한 희한을 느낀다네...
.....
처음 호랑이로 변하고 난 뒤 나는 가끔 생각했다네.
나는 왜 짐승이 되어버린 걸까.
그러나 호랑이의 몸과 정신에 익숙해진 지금 나는 문득문득, 예전에 나는 왜 인간이 었을까 생각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흠칫 놀라곤 한다네.
댓글 목록
관리 메뉴
본문
이곳으로 돌아오기가 내심 싫은 것은 아닌지요? 샘을 그리워하는 사람, 필요로 하는 사람, 술 사주고 싶은 사람... 많을텐데요.부가 정보
관리 메뉴
본문
저는 제가 구슬이 아님을 엄청나게 두려워하여 이렇게 발버둥 치고 있는데..ㅎㅎ부가 정보
관리 메뉴
본문
kja / 흠. 웬지 한국 가면 빚쟁이들이 몰려들 거 같은 불길한 생각이...azrael / 구슬에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음을 잊지 마셈 (^^)
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