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E-WAR
스포츠는 평등하다고 썰을 푸는 사람들이 있다. 구기종목의 대표급이라 칭해도 달리 이론이 없을 법한 축구(물론 행인 개인의 생각이다)를 보더라도 모든 선수들이 같은 유니폼에 같은 구장에서 같이 뛰고 있다. 그런 모습을 보면 스포츠가 평등하다고 하는 주장이 일견 일리 있는 듯 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스포츠에서의 평등은 오직 플레이를 하고 있는 그 순간 그 공간 안에서만 존재한다. 그라운드나 혹은 트랙 밖에서는 평등과는 거리가 먼 차별이 존재한다. 2006 월드컵 결승전에서 지단이 마테라치의 가슴에 마빡을 들이밀었던 사건이 벌어졌을 때 가장 가능성 있는 원인으로 추측된 것이 바로 인종차별이었다. 마테라치가 지단의 출생지(알제리)를 거론하며 인종차별적 발언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이었다.
인종차별과 관련된 유명한 사건은 1968년 올림픽 육상 200m 우승 시상식장이었다. 200m에서 우승한 토미 스미스, 그리고 같은 경기에서 3위를 한 존 카를로스는 시상대 위에 올라 메달을 목에 건 후 국가가 울리는 동안 올림픽 역사상 가장 정치적인 제스처를 연출한다. 두 선수는 국가연주시간 내내 고개를 숙인 채 검은 색 장갑을 끼고 주먹을 쥔 한쪽 손을 하늘을 향해 쭉 뻗고 있었다.
그들의 유니폼에 새겨져 있는 USA라는 글자와 그들의 머리 위로 웅웅거렸을 The Stars and Stripes Forever(성조기여 영원하라)는 참혹한 인종차별의 상징이었을 뿐이다.
물론 스포츠에서 인종차별은 어느 종목에서든 문제가 되고 있다.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은 완전한 다인종 다민족 연합체로 결성되어 있지만 안팎에서 제기되는 인종차별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다. 한국은? 한국 국가대표팀 중 인종이 다른 선수가 포함되어 있는 경우를 본 적이 있는가? 과문한 탓에 모든 스포츠를 다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축구에서만큼은 민족과 인종이 다른 선수가 국대로 뛴 역사가 없다고 알고 있다. 감독은 그렇지 않지만.
어디 인종차별 뿐이랴. 프로 스포츠의 세계에서 팀의 오너와 선수들의 관계는 거의 주종의 관계다. 젊을 때 반짝 벌고 끝나는 프로 스포츠의 세계에서 선수들은 자본의 시장질서에 종속되어 승리를 위해 뛰어야 한다. 관객의 재미와 자신의 성취는 일단 다음 문제다. 이기지 않으면 그 다음 경기는 보장되지 않는다. 변덕이 심한 구단주는 언제든지 자신의 목을 날려버릴 수 있고 다른 선수들을 동원해 왕따를 놓을 수도 있다.
프로스포츠 선수들은 말 그대로 스타다. 별이다. 그 많은 선수들 중 생활할 만큼 돈 받아가며 필드를 누빌 수 있는 선수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어찌 보면 선택된 자들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선택의 배경은 당연히 본인의 실력이지만 요샌 실력뿐만 아니라 상품성이라는 것도 한 몫 단단히 한다. 하지만 이들은 상당부분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지난번 여자프로농구팀에서 발생한 성추행사건, 폭행사건 등은 사실 빙산의 일각일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들은 돈을 받고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노동자로서의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 몇해 전 프로야구 선수협회가 노조를 만드려고 노력했던 것은 그런 차원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 것이었다.
마라도나를 기억하는지. 한 아나운서가 펠레에게 "마라도나를 제2의 펠레라고 하는데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라고 묻자 펠레는 "아니다. 마라도나는 경기장에서 너무 많이 넘어진다. 그러나 나는 그렇지 않았다"라고 했다던가... 문제는 펠레가 경기를 했던 때와 마라도나가 경기를 했던 때의 축구환경은 천지차이라는 것이다.
펠레는 말 그대로 즐기는 축구를 하면서 브라질 축구다운 축구를 했던 시대의 스타다. 반면 마라도나는 돈이 FIFA의 모든 것을 장악하면서 오직 이기기 위한 축구로 축구가 변질된 이후의 스타다. 마라도나는 그 열악한 환경에서 독창적인 플레이를 했고 세계를 경악케 했다. 그러나 그 위대한 축구의 전설 마라도나는 약물복용을 이유로 생매장 되어버렸다.
그러나 마라도나가 코카인을 비롯한 약물을 복용하게 된 이유는 그리 잘 알려지지 않았다. 마라도나는 허리와 다리의 통증으로 인해 약을 복용하지 않으면 잠조차 잘 수 없는 상황에서 공을 찼다. 그 이유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니까. 구단주와 스폰서와 관중들은 마라도나가 그렇게 해서라도 공을 차길 원했고, 마라도나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신의 선수생활이 끝장날 것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라도나가 약물복용혐의로 월드컵 본선 진행 중에 그라운드에서 쫓겨나게 된 결정적 원인은 약물보다는 만성화된 국제 축구계의 노예제도에 대한 항거 때문이었다. 마라도나는 이렇게 외쳤다. "왜 축구선수에게는 노동법이 적용되지 않는가?"
한국 어느 지방 실업팀의 선수가 이런 소리를 했다면 그건 뉴스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마라도나가 했다면 사정이 달라진다. 구단주, 아르헨티나 축구협회, 이탈리아 축구협회, 스페인축구협회는 물론 FIFA회장까지도 찔끔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진다. 마라도나는 공공연하게 프로축구계의 노예제도에 대해 비판을 해댔고 그것이 결국 마라도나에 대한 공공의 응징으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선수들이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욕구를 분출한 역사는 실로 다양하다. 좀 더 멀리는 68혁명에 가담한 프랑스 축구선수들이 있다. 가깝게는 한국의 야구선수들이 있다. 메이저리그의 선수들은 파업(!)도 불사한다. 불행히도 한국에서는 아직까지 프로선수의 파업은 그닥 성공율이 높지 않다.
물론 프로선수가 노조를 만들고 파업을 한다면 기겁할 사람 많이 있다. 비근한 예로 교수노조라는 말을 듣고 화들짝 놀라며 교수가 무슨 노조냐라고 언성을 높인 이명박같으면 당연히 운동선수가 무슨 노조냐고 난리를 칠 것이다. 뭐 이명박 뿐만이 아니다. 활동가가 무슨 노조냐라고 이야기했던 민주노동당의 일부 '진보적'인사들 역시도 같은 반응을 보이지 않을까 심히 걱정된다.
암튼 '평등'해보이는 스포츠의 세계에서조차 차별이 있고 계급이 있다. 그리고 그러한 차별과 계급을 타파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소수이고 가려져 있으며 탄압당한다. 관중석에 앉아 이들의 경기를 보는 대부분의 관중들은 선수들의 땀 이면에 흘러내리는 피에 대해서는 매우 무관심하거나 잘 모르고 있다. 그러다보니 성추행 사건이 일어나자 '그까짓거 가지고 그러느냐'라는 반응을 보이는 무개념에다가, 선수들이 감독을 비롯한 스탭진의 따까리 노릇한다는 뉴스에 '당연한 것인데 왜 그러지?'라는 가부장적 동질성을 확인하는가 하면, 선수들이 노조 만들고 경기를 보이콧하겠다는 뉴스에 '팬을 볼모로 잡지 마라'는 혁명적 구호까지 들이밀기도 한다.
심형래감독의 'D-WAR'가 개봉한 이 때, 이 땅에서는 'E-WAR'가 한창이다. 이랜드 비정규직에 대한 전방위적 탄압이 자행되고 있다. 자본은 물론 정부와 사법부까지 나서서 비정규직들의 등을 치고 있다. 하루 종일 바코드를 찍어대면서도 인간대접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다. 사람대접 해달라는 것, 차별하지 말라는 것이다. 신에 대한 사랑의 130억분의 1만큼만 인간을 사랑해 달라는 것이다.
68혁명의 대오로 들어갔던 프랑스 축구선수들, 축구선수들에게도 노동법을 적용하라고 외쳤던 마라도나, 불이익을 당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구단 내의 치부를 드러냈던 농구선수들. 이들과 이랜드 노동자들의 요구는 별반 차이가 없다. 월드컵 경기를 맞이하여 붉은 악마로 변신했던 이 땅의 사람들이 그들을 환호하게 했던 선수들에게 관심과 애정을 가지는 만큼, 저임금 장시간 노동으로 '싼 값'에 물질적 풍요를 누리게 해주었던 이랜드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해서도 관심과 애정을 가져주길 바란다면 그건 과욕일까?
"신에 대한 사랑의 130억분의 1만큼만 인간을 사랑해 달라는 것이다." 이 대목을 읽고, 불현듯 김흥겸의 <<혀 짤린 하나님>>이 생각났습니다. 예수는 물론이거니와 그 이후의 사도 바울이나 성 프란체스코도 모두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하였는데, 왜 오늘날의 많은 기독교인들은 그러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한국의 여러 기독교인들이 이랜드 노동자들과 약간의 연대 의식만 보여 주더라도 자본과 국가가 감히 그런 식으로 대응을 하지는 못할 것인데...... 씁쓸합니다.
우와, 시원한 글입니다
무한한 연습/ 기독교인들의 모습이라기보다는 우리 시대 모두의 자화상인 것 같아 더 씁쓸합니다. 최근 벌어지는 일련의 사태로 인해 기독교가 많은 비판을 받고 있지만, 그 비판받는 기독교의 행태 또한 이 사회 안에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재밌는 것은 기독교의 행태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행태에 대해서는 침묵하거나 모르고 있다는 거죠. 예수의 말대로 남의 눈의 티끌은 보면서 제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한다는 것인지... 아무튼 이런 씁쓸함이 언젠간 날아갈 때가 오겠죠? ^^
su/ 앗, 감사합니다. 좋은 글 잘 보고 왔습니다.
맞습니다. "우리 시대 모두의 자화상." 하지만 행인님의 말처럼, "아무튼 이런 씁쓸함이 언젠간 날아갈 때가 올" 것이라 생각합니다(^.^).
행인의 글이 올라오지 않으니 넘 재미 없습니다...
날리지 마시고, 자주 올려 주셈..
포스팅 반갑!
무한한 연습/ 그 때가 올거라는 확신으로 일하겠습니다. ^^
산오리/ 넹~ ^^ 자주 올리겠습니다.
말걸기/ 나두 반갑!
오-
좋은 포스팅이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