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모교수와 개헌론

어느 교수가 있었다. 나름대로 잘나가고 있었고 촉망도 받고 있었다. 학생들에게 인기도 있었고 국제적인 행사도 기획해서 성공했다. 그런데 이 사람의 학력이 허위였다는 것이 드러났다. 학위를 받은 적도 없고 학위를 줬다는 학교에서 공부한 적도 없단다. 난리가 났다. 어떤 언론에서는 "미술계의 황우석"이라고 성토를 했다.

 

그가 속인 것은 맞다. 학력을 속이고 경력을 속였다. 그러나 그 허위가 밝혀지기 전까지 사람들은 그에게 환호했고 그를 신뢰했다. 모든 것이 거짓말이라고 드러나자 그동안 환호했던 사람들은 경악했고 분노했다. 그러나 그 경악과 분노마저도 허위다. 자기가 믿고자 했던 것을 믿었던 것에 대한 배신감을 사람들은 허위학력을 제시했던 어떤 교수의 악질적 만행의 탓으로 돌리고 있다.

 

사람들이 믿었던 것은 그 교수의 기획능력과 교습능력과 추진력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믿었던 것은 그 교수의 학위였다. 학벌이었다. 사람들은 그 교수에 대해 "훌륭한 기획"이라며 칭찬했지만 그 칭찬은 "좋은 학교 나와서 역시 다르군"이라는 의미일 뿐이었다. 이제 그 교수가 "좋은 학교"의 "박사"가 아니라는 사실이 알려졌다. 그런데 그 학력이 허위라고 해서 그 교수가 했던 기획과 사업마저 허위였나?

 

우리 헌법은 전문에서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며"라고 선언함으로써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국가의 책무를 명정하고 있다.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것을 기본권으로 보장하고 있으며, 각인이 자기의 기본권을 최대한 향유함으로써 행복을 추구할 수 있고 국가는 이를 보장해야할 의무가 있음을 헌법은 또한 밝히고 있다.

 

헌법을 들여다보면 좋은 이야기는 다 해놨는데, 막상 현실을 들여다보면 사람들은 그렇게 살고 있지 않다. 기회의 균등과 능력발현의 보장은 헌법의 선언으로만 존재할 뿐 현실에서는 학력과 학위가 먼저 대접받는다. 외국에서 학위를 받으면 교수임용에서 가산점을 받고, 국내 대학간 서열에 따라 또 점수의 차등을 받는다. 논문에 대한 분석과 면밀한 검토는 사실 뒷전이고 얼마나 학생들을 끌어올 수 있을지 또는 학교에 얼마나 돈을 들고 올 수 있을지가 교수선발의 요건이 된다.

 

어디 학력문제 뿐이겠는가? 직업엔 귀천이 없고 모든 국민에게 노동의 권리가 보장되어 있다고 하지만 뉴코아 백화점은 출입문이 밖에서 용접되어 있고, 사람대접 해달라는 것이 요구조건인 비정규노동자들은 졸지에 감금된 상태에서 자신들의 기본권을 박탈당하고 있다. 학력을 위조한 적도 없고 국제적 행사를 기획해본 적도 없이, 있는 그대로 자신의 생활을 위해 힘든 노동을 감내했던 이들에게 돌아간 것은 해고의 칼날이다.

 

한국사회에서 대접받기 위해선 외국 대학에서 학위를 받는 것이 장땡이다. 그렇게 못하면 위조라도 해야한다. 비록 나중에 밝혀져서 개쪽을 팔리게 되더라도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사람대접 받기 힘들다. 배운 것도 없고, 사기도 칠줄 모르는 건전하고 건강한 사람들은 어느날 하느님께 십일조를 바치는 사람의 손에 의해 자신의 목이 날아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성경에 좋은 말은 다 있다더라. 사실이 그런지에 대해선 전혀 동의하지 않지만 어쨌든 예수의 말은 착하게 살라는 것이 다였고 그게 야훼의 뜻이라는 게 다였다. 근데 그 성경을 달달 외우는 사람들 중 일부는 야훼가 섬기지 말라는 우상을 섬기면서 세상을 어지럽힌다. 그들이 모시는 우상은 돈이고 권력이다. 그 우상은 자신의 신도들에게 끊임없이 요구한다. 비정규직을 짤라라...

 

성경에 비해 헌법은 좋은 이야기 다 써놨다고 봐도 무방하다. 물론 입장에 따라서는 달리 해석할 여지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나 어쨌든 이 땅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보장되어야 할 모든 것을 다 밝혀놓고 있는 것이 헌법이다. 그런데 그 헌법 아래서 노동자들의 노동3권은 박탈당하고 있고 평등권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도대체 헌법이 문제인가 그 헌법 아래 살고 있는 사람들이 문제인가?

 

질문이 너무 간단했는지 모르겠지만 정답을 거꾸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대표적인 예가 노무현이다. 마지막 공휴일이 될 제헌절에 노무현은 전면적인 개헌의제가 필요하다며 일성을 토했다. 그런데 들여다보면 별로 볼 게 없다. 노무현이 이야기하고 있는 개헌, 이건 오로지 정치과정에 대한, 즉 권력구조에 대한 측면에 온갖 초점이 다 맞추어져 있다.

 

대통령 연임제 도입, 대통령과 국회의원 임기일치, 대통령 결선투표제 도입, 내각제 고려, 선거구제 재구성, 국회의원 면책특권 축소, 정치관계법 개정 및 헌법 반영, 대통령 선거중립의무 폐지, 정당활동 관계규정 개정...

 

여기 어디에도 기본권의 강화, 경제체제의 변환 등에 대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선진국으로 가려면 헌정제도를 고쳐야 한다"고 주장하는 노무현의 머리 속에는 오직 권력구조를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 이외에는 들어있지 않다. 이 대목에서 다시 한 번 질문. 도대체 헌법이 문제인가 그 헌법 아래 살고 있는 사람들이 문제인가?

 

정치구조에 대한 노무현의 천착은 이해가 전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 자리에 앉아 해보고 싶은 일이 얼마나 많았겠는가? 그런데 '그놈의 헌법'이 그만 단임제를 규정하고 있는 바람에 뭔가 해볼라고 깔짝 거리고 나니 임기가 끝나버린다. 허무하다. 한번 더 했으면 진짜 뭔가 이루어낼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다.

 

그 심정, 노무현만 가졌던 것은 아니다. 이승만이 그랬고 박정희가 그랬다. 그래서 이승만은 10년을 해먹었고 박정희는 18년을 해먹었다. 그 결과 전두환 같은 이가 대통령씩이나 해먹는 일이 발생했고,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87년 헌법이 만들어졌다. 이제 '민주화'가 어느 정도 이루어졌으니 87년 헌법의 체제를 변화시켜도 되지 않는가라는 것이 노무현의 생각이다.

 

문제는 노무현이 생각하는 '민주화'와 이 땅의 민중들이 바라는 '민주화'는 그 성격이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하루 아침에 길거리로 내몰린 이 땅 몇 백만의 비정규직들에게 노무현의 민주주의는 독재의 다른 말에 불과하다.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기본권조차 누리지 못하는 이 사람들에게 노무현은 어떤 말을 했던가? 헌법 개정을 해서라도 억울하게 비정규직으로 내몰리는 사람들이 없도록 해야겠다는 소리는 노무현이 한 적이 없다. 앞으로도 그런 말 할 일도 없다. 자기 손으로 노사관계 로드맵을 밀어부친 노무현이 그런 소리 할 자격도 없다.

 

개헌, 그거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할 수도 있다. 누가 그랬던가, 모든 사람은 자기 시대의 헌법을 가질 권리가 있다고. 21세기 이 땅에 필요한 헌법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될 날도 올 것이다. 그러나 개헌의 논의가 단지 정권의 안녕과 영속적 정권유지에 초점이 맞추어져서 이루어진다면 그건 '민주화'에 대한 배신일 뿐 '민주화'가 아니다.

 

헌법의 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해준 노무현의 '업적'은 인정하겠으나 이렇게 똥고집을 부리는 것은 완전 비호감이다. 제발 덕분에 있는 헌법, 그 안에 씌여 있는 기본권이라도 보장해라. 헌법의 기본권 보장이 당연한 생활권 보장으로 인식될 수 있도록 노력하라. 그래야 그 무슨 교수같이 학력위조해서 한 자리 해먹는 사람들 안 생기고 능력이 존중되는 사회가 되지 않겠는가? 밖으로 용접된 어느 건물 차디찬 바닥에서 50대 아주머니들이 농성을 하는 사회가 제정신인 사회라고 보이나?

 

헌법논의는 상식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노무현에게 상식을 바라는 것이 과욕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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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7/18 15:01 2007/07/18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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