뚝방의 추억(3)
산오리님의 [칼산의 추억...] 에 관련된 글.
뚝방을 있게 만든 안양천은 거의 '똥물'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뚝방 아래로 일대가 논밭이었는데, 거기서 사용된 농업용수가 안양천으로 흘러들었고, 천 건너 양남동과 그 일대 도림동, 문래동, 영등포의 각종 공장들이 쏟아내는 폐수 역시 안양천으로 흘러들었다. 그러나, 애들이 뭘 아나?
뚝방을 따라 오목교쪽으로 오다보면 수로를 여는 커다란 밸브와 그 밸브 아래로 속칭 "노깡(노관의 일본식 발음)"을 고정시킨 콘크리트 구조물이 있었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애들 키보다 훨씬 높았고, 그 아래는 평상시에도 일정하게 수심이 유지되고 있었다. 안양천 흘러가는 물이 똥물인지 여부는 아랑곳하지 않고, 뚝방동네 아이들은 날만 좀 더웠다 하면 그리로 몰려가 빤쭈조차 걸치지 않은 채 다이빙을 하곤 했다.
물이 많거나 유속이 빠르면 곤란하지만 안양천 자체가 그렇게 물이 많거나 유속이 빠른 하천이 아닌데다가 배수로가 있던 자리는 특히나 유속이 그리 심하지 않은 곳이어서 애들이 놀기에는 적절한 곳이었다. 물이 나빠서 그렇지...
간혹 논의 물을 빼는 것인지 엄청난 물이 쏟아져 나올 때가 있었는데, 그럴 때면 아이들의 놀이는 중단된다. 비가 와서 물이 불어나거나 날씨가 차가워지지 않으면 아이들은 자신들의 몇 안 되는 놀이터 중 하나였던 그곳에 몰려나와 똥물에 빠져 물놀이를 즐겼다.
물론 이 물놀이에 대해 어른들은 강력한 제재를 하곤 했다. 물 자체가 너무 더럽기 때문에 걱정도 되었을 것이고, 혹여 갑자기 물이 불거나 해서 사고라도 날까봐 두려웠기 때문이리라.
외할머니는 동네 어른들 중에서도 가장 자주 현장을 방문하시는 분이었다. 애들이 잠시라도 보이지 않는다 싶으면 바로 쫓아나와 이곳 저곳 다니시다가 그곳까지 오시는 거다. 주변머리 없이 놀기 바빴던 행인은 번번히 외할머니의 감시망에 포착되어 집으로 끌려갔고, 끌려가서 강제로 목욕을 당했다. 더러운 물에서 놀았기 때문에 잘 씻겨야 했던 거다.
이건 행인 개인에게도 곤욕이었지만 어른들의 입장에서는 매우 화딱지나는 일이다. 먹을 물도 부족한데, 철딱서니 없는 어린 녀석이 허구한 날 똥물에 빠졌다가 오니 이걸 씻기지 않을 수도 없고 씻기자니 물이 부족하고...
어른들의 난리에도 불구하고 계속되었던 아이들의 안양천 물놀이는 어느 순간부터 중단되어버렸는데, 첫번째로는 애들이 보더라도 물이 너무 더러워졌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부터 양남동 쪽과 상류쪽에서 시커먼 물이 계속 쏟아져 들어왔고, 그 검은 물이 흐르고 흘러 결국 다이빙놀이를 하던 수로밸브 아래까지 침범해버렸던 것이다.
두번째로는 그 수로밸브가 있던 콘크리트 구조물 위에서 놀던 또래의 한 아이가(행인보다 두 살인가가 많았던 한 동네 아이였다) 구조물에 설치되어 있던 맨홀 안으로 떨어져 죽었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의 다이빙대였던 그곳은 아이들에게 두려운 곳이 되어버린 것이다.
똥물에서 건진 손주를 매번 없는 물 퍼가며 씻겨주셨던 외할머니 덕분인지, 아토피 한 번 걸리지 않은 채 잘 먹고 잘 살고 있다. 갑자기 외할머니가 보고싶어진다..
서울 산동네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저로서는 "물놀이"란 참으로 머나먼 이야기 ㅎㅎㅎ 서울시내 물난리 뉴스 나오면 울 엄마는 "우리는 걱정 안 해도 된다. 서울 시내 다 잠겨도 우리 동네는 맨 마지막이다" ...
안양천에서 목욕한다는 야그만 들었는데, 행인도 열심히 다이빙을 하셨군요..ㅎㅎ
홍실이/ 아아... 산동네... 나중에 또 산동네의 추억을 또 써볼까요? ㅎㅎ 산동네 판자촌엔 친구들이 많았죠. '낙골'이라고 불렸던 난곡동... 한남동 살던 친구도 있었는데, 판자촌은 아니었고요. 어느 산동네셨을까... 갑자기 궁금해지네요 ^^
산오리/ 열심히 다이빙(?)하다가 바닥에 머리 깨진 적도 많아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