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5년...

그날, 그 저녁에 자취방에서 뒹굴다가 하드나 하나 빨아야겠다고 동네 구멍가게로 간 거다. 거기서 후배 한 녀석이 가겟집 TV를 보고 있었더랬다. 가게로 들어서는 날 보더니 이녀석, 쪼르륵 달려와서는 "형, 전쟁나는 거 아녜요?"라고 한다.

 

쫘슥이 갑자기 돌았나... 하고는 뭔 일 났냐? 그랬더니 미국에 난리가 났단다. 무슨 일인가 싶어 TV를 보는데 세계무역센터 건물 하나에서 검은 연기가 솟구치고 있었다. 저게 어떻게 된 거냐? 묻고 있는데, 순간 검은 색 비행기 하나가 날아와 다른 건물을 들이박고 폭발했다.

 

무슨 영화도 아니고, 경악을 금치 못하며 눈이 휘둥그레져 있는데, 이건 난리가 나도 보통 정도가 아니었다. 하드는 고사하고 후다닥 자취방으로 돌아와 TV를 켰다. 아비규환이다. 모든 채널이 이 상황을 보도하고 있었다. 쌍둥이 빌딩에서는 검은 연기와 유리파편이 쏟아지고 있었고, 깨진 창문으로 사람이 뛰어내리는 장면까지 보였다.

 

화면은 계속해서 비행기가 빌딩에 충돌하는 장면을 반복해서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길 얼마쯤 지났을까,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광경이 벌어졌다. 그 거대한 빌딩이, 자본주의의 심장이었던 그 쌍둥이 빌딩이 마치 폭파공법으로 철거를 하듯 스르르 무너져 내리는 것이었다. 잊혀지지 않는 911은 그렇게 참혹한 모습으로 뇌리에 각인되었다.

 

그리고 사태는 예상했던 대로 벌어졌다. 알카에다,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노무현은 파병을 결정했고, 파병반대집회에서 전경들에게 다구리를 당했다. 방패에 찍히고 진압봉으로 얻어 터졌다. 그렇게 싸웠지만 침략전쟁에 군인들은 동원되었다. 다른 나라들이 일제히 철군을 하는 마당에 자이툰은 뻘쭘하게 파병연장의 기로에 섰다.

 

그 참혹했던 기억이 벌써 5년 전이다. 그러나 911이 보여줬던 참상은 여전히 다른 형태로 현재진행형이다. 2006년 5월, 대추분교는 폭격을 당했다. 군인, 전경, 용역깡패들이 연합한 16000 대군에 포위되어 수많은 사람들이 다쳤다. 그리고 평화운동의 상징이었던 대추분교는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오늘, 이 순간에도 강제집행을 위한 작업들은 착착 진행되고 있다. 현행법을 완전히 무시한 고사전술이 대추리와 도두리를 밀봉된 공간으로 만들고 있다. 법은 이렇게 무용지물이 된다. 법을 무용지물로 만든 사람들은 그 입으로 법치주의를 논한다.

 

얼마나 더 끔찍한 일이 벌어져야 이 사태가 해결될 수 있을까? 중국의 무수한 장거리 미사일이 평택 일대를 향하게 되어야 제정신을 차릴 것인가? 신속기동군이 양안의 분쟁에 끼어드는 순간 우리는 평택과 서울을 향해 날아오는 중국의 미사일을 보며 울부짖어야 하나?

 

911 5주년을 즈음하여, 빌딩 안에서 죽어간 사람들과, 폭탄세례로 죽어간 이라크 민중들을 묵념한다. 그리고 하필 이 즈음에 초유의 공권력을 동원하여 다른 나라에서 벌어진 끔찍한 사태를 똑같이 벌일려고 하는 정부에 분노한다. 애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그 자리, 그 시간이 바로 911이다. 얼마나 더 죽어야 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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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9/11 23:37 2006/09/11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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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racked from
    • At 2006/09/12 18:50

    행인님의 [벌써 5년...] 에 관련된 글. 루스체인지는 상당히 잘 짜여진 구조로 나레이션을 전개하면서 911이 미국의 자작극이 아니냐는 음모론을 펼친다. 1시간이 넘는 이 다큐멘터리는 음모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