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힘내라 상식이~!
결과가 있으면 반드시 그 원인에 대해 논의가 있게 마련이다. 원인으로 추정되는 현상이 실제 진실한 원인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게 그럴싸하게 포장되서 다수로부터 추인되는 순간 추정은 확정이 되고, 결과에 대한 책임은 원인을 제공한 대상을 향해 총구를 돌린다.
연전에 전방에서 벌어졌던 참혹한 총기난사사건. 그리고 얼마전 발생했던 무장탈영사건. 연속되는 이 사건 사고들의 원인이 무엇인가를 찾던 사람들 중 상당수가 게임을 지목했다. "스페셜 포스"라는, 또는 넷 상에서는 '스포'라고 줄여서 말해지는 게임이 그 원인이라는 어떤 '전문가'의 의견은 상당한 사람들의 동의를 얻었다. 그와 동시에 '폭력적 게임'은 사회를 경악케 했던 어떤 사건의 발단이 되며 세간에 비판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그 이후 '폭력적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이 줄어들었는가? 통계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되 가끔 찾는 게임방에서 그 숫자는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게임에 문제가 있다고 거품을 물었던 사람들은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들은 문제가 많은 게임에 대해 어떤 대응책을 내놓고 있나?
사실 그 와중에 남한 사회에서 군대가 가지는 밀실적 폐쇄성과 전체주의적인 집단성 등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는 사람들은 분명히 있었다. 새파란 젊은이들을 '신성한 의무'라는 명목으로 끌고 가 폐쇄된 병영에 가두어 놓고 각자의 개성은 완전히 소실시킨 채 평균인으로 만들어버리는 이 살벌한 체제 안에서 사고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과욕이다.
그러나 병영이라는 곳이 가지는, 또한 한국사회가 가지고 있는 병영'문화'에 대한(이걸 문화라고 할 수 있는 것인지 모르겠으나) 지적은 권위있는 자들의 함구와 함께 소멸한다. 대신 그 모든 죄는 젊은 사람들의 머리속을 갉아 먹는 게임이 뒤집어 썼다. 웃기는 것은 여전히 게임은 성행하고, 돌이키기 싫은 사건의 주범으로 게임을 지목했던 사람들은 여전히 전문가 행세를 하며 다른 사건과 관련된 언론보도에 모습을 드러낸다. 그날 이후 그들은 게임에 대해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있다.
어찌되었든 결과에는 원인이 있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 원인이 사회적 공적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있을 때, 다른 원인들은 면죄부를 얻는다.
아시안컵 지역예선 이란과의 경기에서 경기종료 1분을 남기고 김상식은 통한의 실수를 한다. 그리고 어이 없는 동점골을 허용하면서 다 잡은 경기를 놓치고 말았다. TV화면에 보인 김상식의 실수, 그것은 엄연한 사실이었고, 별로 인정하고싶지 않은 결과의 원인이었다. 그리하여 김상식은 축구팬들에게 공적으로 낙인찍혔고 무수하게 얻어 터졌다.
다른 경기에서도 그렇지만 축구에서의 팀웍이라는 것은 경기운영의 전반을 결정짓는 요소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 하나 걸출한 스타플레이어가 있다고 해서 팀이 강해지는 것도 아니고 특출난 선수가 없다고 해서 팀이 약해지는 것도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경기의 결과에 대해 어떤 선수 하나의 문제로 그 책임을 전가시키기는 어렵다. 예컨대, 1:1로 비긴 대 이란전의 경우 전방 공격수들이 결정적 순간에 골을 성공시켰다면 김상식이 실수를 했더라도 경기는 이길 수 있었던 거니까.
성남에서 뛰고 있는 김상식은 강조하건데, "참 잘하는" 선수다. 수비형 미드필더로서 적극성을 가지고 있고, 자기 역할을 충분히 해내는 선수이기도 하며 무엇보다도 성실하다. 김상식은 누구나 인정하듯이 꽃미남은 아니지만 축구를 즐길 줄 아는 선수다. 그것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장점이다.
그런데, 김상식은 이상하리만치 국대 경기에서 결정적인 실수를 범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그가 실수하면 골이 나온다. 아드복의 월드컵 팀에서 원래 포지션이 아닌 최종 수비수, 그것도 포백 라인의 오른쪽 풀백을 맡으면서 이런 현상이 벌어졌다. 불필요한 경고와 퇴장을 받으면서 "카드 캡쳐"라는 오명을 쓰기도 했고, 이번 이란전과 같은 실수를 범할 때마다 "삼식이" 소리를 들어야 했다.(실명 삼식이 여러분께는 정말 미안한 일이지만...)
물론 김상식은 축구를 관전한 사람들에게 비판을 들을만한 실수를 범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마치 그가 그 자리에 원래부터 있어서는 안 될 사람이었던 것처럼 비난받는 것은 부당하다. 그럼에도 그는 다 이긴 게임을 놓쳤다는 결과에 대해 책임을 져야하는 유일한 원인제공자처럼 욕을 먹었다.
어제 대만과의 경기에서는 무려 8:0이라는 스코어가 나왔다. 나중에 대만 선수들이 불쌍해 보이더라... 30몇년만에 대만과의 국가대항전에서 8:0이라는 점수차가 났다고 한다.
경기를 본 느낌은 사실 썩 훌륭한 경기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 경기는 대만하고 경기를 할 때나 통할 수 있는 경기였다. 오히려 이란전에서 보여졌던 압박감과 박진감은 더 떨어진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필드에서 선수들간의 정교한 플레이를 통해 찬스를 만들기 보다는 일단 후방에서 전방으로 멀리 공을 띄워주고 제공권을 장악하는 형태의 경기운영이 대부분이었다.
물론 대만전에서 수행한 전술과 다른 팀을 상대로한 전술은 당연히 달라질 것이다. 그런 뻥축구는 대만전을 위한 전술운용이었을 수도 있다. 뭐 어쨌든 경기는 이겼고, 대승을 거둔 선수들에게는 박수가 쏟아졌다. 해트트릭을 기록한 정조국, 각각 두 골씩을 넣은 설기현과 조재진, 통렬한 중거리슛을 성공시킨 김두현 모두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7~8명씩 수비라인에 틀어박혀 있던 대만의 수비는 곳곳에서 무너지는 약점을 보였다. 그런데 간혹가다가 전방으로 치고 들어오는 대만 공격수들의 능력은 그다지 무딘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한국 수비라인은 매우 견고했고, 아주 효과적으로 대만의 역습을 무력화시켰다. 그 수비라인의 한 축에 역시 김상식이 있었다. 그러나 이란전의 실수 때문에 욕을 바가지로 먹어야 했던 김상식은 대만전 대승 이후에 별다른 조명을 받지 못했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이긴 경기든 진 경기든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모든 선수들이 나누어 져야 한다. 그게 상식이다. 실제 한솥밥을 먹는 선수들 사이에서는 그처럼 책임을 나누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오히려 외부에서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전체적인 관점에서의 평가를 하기 보다는 한 번 잘못 찍힌 사람 하나를 골라서 주어패는 모습을 보인다. 이건 별로 좋지 않다.
김상식이 풀백의 역할에 아직 적응을 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평가되어야할 부분은 평가되는 것이 맞다. 과거 국대 선수들 중에는 그가 왜 그 자리에 있었는지 의심스러운 선수들도 몇 있다. 그러나 김상식은 그렇게 볼 선수가 아니라고 본다. 그 자리에서 김상식을 대신할 사람이 솔직히 아직은 보이지 않으니까.
회사에서 그정도의 실수(실책?)은 당장 징계감인데..ㅎㅎ
항상 참 거시기하게 생각하는 것이 사람들이 발전하는 모습을 보면서 프로스포츠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 가상의 영웅 - 혹은, 완벽한 슈퍼맨의 활약을 기대하는 것 같아요.
한경기나 한번의 플레이로 역적이 되거나 충신이 되는 꼴을 보면 ... ... ...
산오리/ ㅎㅎㅎ 회사에서 있었던 스트레스 풀기 위해 스포츠를 보는데 스포츠마저 그렇게 한다면 정말 답답할 거에요 ㅎㅎ
손윤/ 역시 손윤님이 정확한 답을 주시네요. 선수들이 커나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 바로 스포츠를 보는 매력인데요. 이번에 장학영이 윙백으로 나와 소속팀에서 하는 만큼의 실력을 보여주더군요. 처음 A매치 나왔을 때의 모습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죠.
야구도 그렇겠지만 축구에서도 선수의 성장을 보는 맛은 쏠쏠하죠. 토트넘의 아론레넌이나 마이클 도슨같은 선수들을 보면 경기가 달라질 때마다 그들의 실력이라는 것이 눈에 띄게 달라지는 모습을 보면서 매번 기대를 갖게 되죠.
사람 아끼는 거는 정치나 스포츠나 다 마찬가지여야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