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용이
웃찾사라는 개그프로그램의 마지막 꼭지는 "형님뉴스"다. 컨셉은 무척 간단하다. 조폭들이 뉴스를 진행하는 것인데, 큰형님은 앵커, 행동대장은 현장기자, 그리고 형님 옆에는 보디가드인지 보조진행자인지 모를 애들 두 명.
"뉴스가 뉴스다워야 뉴스지~"라는 구호를 제창하면서 이들은 개그프로그램에서는 보기 힘든 통렬한 사회 비판을 한다. 물론, 그 사회비판이라는 것은 지극히 상식적인 선에서 일반이 알고 있는 정도의 내용으로 이루어지지만, 메인앵커역의 큰형님 강성범의 숨도 쉬지 않고 몰아부치는 속사포같은 비판은 보는 이를 시원하게 한다.
그 멤버 중에 하나, 현장기자 길용이...
예가 길용이...
행인, 이넘 역할이 유독 눈에 띈다. 현장에 나가 있는 행동대장 길용이.
이 길용이라는 캐릭터는 소위 "남자 다움"에 대한 진한 희화화이다. 길용이의 외관상 특징은 떡대의 표상이자 조폭의 교과서이며 힘에 대한 지향을 가지고 있는 "남성스러움"의 상징이다. 저 남방 안에 오리털 파카를 껴입고 있단다...
게다가 길용이는 '형님'에 대한 지극한 존경심과 동경심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형님의 인정과 신뢰를 받고자 무진장 노력한다. 그 와중에 "남자다움"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기도 하고, 현장기자로서의 직분에 충실하고자 노력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러한 길용이의 장한 노력은 항상 엉뚱한 결과로 나타난다. 길용이는 형님에게 인정받고 싶어서 형님이 원하는 것이 있으면 무엇이던지 해결해 준다. 형님이 "나도 벽걸이 선풍기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자 헬리콥터를 가져다 벽에 걸어준다. 그 결과 항상 형님은 의도치 않게 생 고생을 하게 되고...
그러면서 형님의 애정을 독점하고픈 욕심을 숨기지 않는다. 매번 길용이는 취재와는 상관 없는 장소에 가서 전혀 취재거리와 상관없는 행동을 함으로써 형님으로부터 "나 이제 너 못믿겠다"라는 질책을 받는다. 길용이를 못믿겠다는 형님은 아직 한 번도 등장하지 않은 "덕근이"를 대신 보내겠다고 소리친다. 길용이는 덕근이가 딴짓 하고 있다, 내지는 자기보다 더 심한 짓을 하고 있다고 하면서 형님에게 궁시렁 거린다.
길용이는 말문이 막히거나 형님에게 질책을 받을 때마다 그 육중한 근육질(?)의 몸을 흔들면서 "남자가 남자다워야 남자지~"를 외친다. 그러나 그 모습에서 보여지는 "남자다움"은 자신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마초세계에 잠재된 욕구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게 뭔지는 모르지만 하여튼 "남자다운" 그 무엇을 가지고 있다는...
길용이라는 캐릭터는 그 자체로 전형적인 "남자다움"을 보여주기 위한 "남자"의 몸부림이다. 조직, 의리, 근성, 충성, 몸빵... 그러나 길용이가 보여주는 "남자다움"은 그 모든 "남자다움"의 요소들을 우스운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남자답고자 하는 길용이의 몸부림은 그래서 관객에게 웃음을 선사한다. 거울을 보며 싸움을 거는 연습을 하던 말죽거리 잔혹사의 한 장면과 길용이의 몸부림은 묘하게 오버랩된다. 그래서일까, 행인은 길용이가 좋다. 그런 길용이가 계속해서 마초들의 본성을 우스게거리로 만들어주었으면 하는 거다.
아마도 덕근이는... 길용이가 내세우지 못하는 역을 떠맡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듭니다. 길용이가 두려워하는(그 등장 자체를 거부하는) 덕근이는 '남자다움(여기서는 '말귀 못알아들음, 엉뚱함, 본의아니게 사람 괴롭힘, 단순함 등과 동의어)'이 거세된 '약삭빠름, 지극히 감정적임, 자신을 자책함, 피해의식도 가지고 있음' 등 길용이와 철저히 반대된 캐릭터가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이것은 그들이 주장하는 '남자가~'와는 사뭇 다른, 길용이로 인해 파생된 덕근이가 '여성성'을 가지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이 되는 것 같은데요, 아마도 (그럴 가능성은 적어보이지만) 덕근이가 등장한다고 해도 역시나 '남자가~ 남자다워야~ 남자지~'를 함께 외쳐도 그닥 어색하지 않을 것 같네요. 결국 덕근이는 겨우 (특징적으로 드러나는) 마초만 아닌 남자일 뿐이니까요. 기득권과, 협잡과, 강력한 자기보호와 처세술을 겸비한... '남자'의 또 다른 모습일 뿐이겠죠. (이 답글 쓴 남자 착잡하네요)
땅굴은 좀 그만파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끔 해요...^^;;
덕근이/ 음... 그럴 수도 있겠네요. 담당 PD가 그 정도로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상반된 이미지의 인물이 나오면 또 나름대로 재미가 있을 것 같군요.
엇~! 그나저나 덕근이에 대해 이렇게 잘 아신다는 것은 혹시 진짜 덕근이... ^^;;;
박노인/ ㅎㅎㅎㅎㅎ 땅굴을 파서라도 취재를 마치겠다는 길용이의 기자정신. 근데 삽이나 곡괭이는 한 번도 들고 가지 않더군요.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