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지구방위대와 외계인

홍실이님의 [칼 세이건을 추억하며...] 를 보다가 문득 생각나서 쓰는 전혀 상관 없는 글 ㅋㅋ.

==============================================================================

농담삼아 하는 이야기 중의 하나. K-리그를 발전시키려면 지역감정을 고조시켜야 한다... 정치적 입장에서는 전혀 동의하지 않는 주장이긴 하나 현재 빅-3로 일컬어지고 있는 프리미어리그, 라리그, 세리에아 리그를 들여다보면 그럴싸한 말이기도 하다. 이 동네들, 지역감정 장난이 아니다. 시시때때로 분리독립 이야기가 나오고 정치적으로 첨예한 대립이 이어지고 있다. 총질을 하지 않는 것이 다행일 정도인데, 이 전쟁같은 분위기를 대리전 양상으로 풀어가는 것이 바로 축구다.

 

간혹 스포츠는 스포츠일 뿐 정치와 관련이 없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데, 이런 주장은 매우 순박한 사고방식에서 나오는 것이거나 거꾸로 아주 지능적으로 스포츠를 이용하기 위해 사용하는 언사일 수 있다. 축구는 축구일 뿐이라는 말, 이거 사실은 공갈빵이다. 스포츠로 표현되는 정치적 맥락이라는 것을 이해할 때 오히려 스포츠의 진가를 만끽할 수 있다. 스포츠가 스포츠일 뿐이라면 2002년 월드컵을 한일 공동으로 주최할 이유가 뭐겠나? 건 그렇고...

 

일요일 새벽, 프리메라리그에서는 빅매치가 있었다. 레알마드리드와 FC바르셀로나의 맞대결. 프리미어에서도 멘유와 토트넘의 경기가 있었으나 당연 관심사는 레알과 바르사의 경기. 새벽 5시에 벌어진 경기가 일요일 새벽임을 다행으로 여기면서 시청. 그런데 왜 홍실님의 글을 보다가 이 경기가 생각났을까?

 

흔히 레알마드리드를 "지구방위대"라고 한다. 도대체 축구와 지구방위가 무슨 연관성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마 외계인들과 축구시합을 하게되면 레알팀의 멤버들 중 거의 대부분이 지구대표로 출진할 가능성이 있을 것만은 틀림없다. 이름만으로도 상대를 기죽게 하기에 충분한 선수구성. 호나우두, 호비뉴, 지단, 까를로스, 베컴, 라울, 모리엔테스... 선수들 한명 한명만으로도 책 한 권을 쓸 수 있을 정도의 에피소드들이 있는데다가 결정적으로 이들의 몸값이라는 것은 상상을 불허한다. 레알의 세계투어에서 아직 한국은 그 대상이 되지 못했는데, 결정적인 이유가 이들에게 줄 게런티가 너무 비싸기 때문일 정도다. 얘네들 몸값만으로도 한국에 구단 십여개는 너끈히 세울 수 있다.

 

반면, FC 바르셀로나. 이 구단에는 "외계인"이 있다. 바로 호나우딩요다. 얼마전 같은 팀에서 한 솥밥을 먹고 있는 아르헨티나의 신성, 메시가 "우리는 호나우딩요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한 인터뷰는 축구에 있어서만큼은 거짓이 아니다. 현재 딩요의 수준은 전성기 호나우두의 경기능력보다도 앞서있다는 평가가 있을 정도니까. 바르사에서 딩요의 존재감은 그 자체만으로도 바르사를 빛나게 하는 정도인데, 여기에 데코나 에투같은 선수들 역시 외계인과 호흡을 맞출만한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결국 레알과 바르사의 대결은 '지구방위대'와 '외계인'의 맞대결이 되고 마는 거다. 칼 세이건이 외계생명체의 존재가능성을 매우 높게 보았던 것은 딩요를 볼 때 신빙성이 있다. 하긴 코스모스를 보면서 천체물리학자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행인은 그 소망에는 쥐뿔도 접근하지 못했지만, 딩요를 보면서 대리만족을 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지구방위대'의 승리보다는 '외계인군단'의 승리를 원하는 행인의 반지구적인 작태는 용서가 될까 안 될까?

 

사실 레알과 바르사의 대결은 '지구방위대'와 '외계인군단'의 맞짱이라는 측면보다도 양 구단의 역사와 그 역사를 둘러싼 스페인의 역사때문에 더 격렬한 양상을 띠고 있기도 하다. 바르셀로나는 까딸로니아라는 지역으로 많이 소개된다. 식민지통치를 통해 스페인의 기세가 하늘을 찌르던 시기에 이 지역은 해상교통의 중심지로 호황을 누렸다. 400년간의 스페인 지배 와중에 까딸로니아 노동자들은 지난한 독립투쟁을 벌였고, 그 결과 1931년에 자치권을 인정받게 된다. 그러나 불과 10년도 되지 못한 기간이 지나고 까딸로니아는 프랑코에 의해 자치권을 박탈당한다. 그럼에도 까딸로니아의 후예들은 아직까지 까딸랑이라는 고유한 언어를 쓰고 있으며, 결국 바르셀로나 올림픽을 즈음하여 스페인의 공식언어로 인정되기까지 한다. 까딸로니아 사람들의 반 스페인 경향은 몇 해 전 레알과 바르사 경기의 관중석에 "우리는 스페인이 아니다!"라는 카드섹션이 올라올 정도였다.

 

한국의 영남 호남간 지역감정과 스페인의 지역감정을 비교하면 한국은 그래도 양반에 속한다. 바스크 지역같은 경우 이들의 분리독립의 열망 역시 하늘을 찌를 듯한데, 그 경향은 축구에서도 똑같이 나타난다. 이 지역의 클럽으로 아틀레티코 빌바오가 있는데, 이 팀은 바스크지역 출신이 아니면 선수로 쓰지 않을 정도다. 빅리그에 속해있는 팀임에도 불구하고 이 팀에는 용병이 없다. 이런 지역감정을 이용한 정치적 축구개입은 어찌보면 당연한 수순인지도 모른다. 까딸로니아의 또다른 구단은 에스파뇰이다. 이 에스파뇰과 바르사가 붙는 날이면 경기장은 친 스페인계와 반 스페인계의 격전장이 된다. "우리는 스페인이 아니다!"라는 카드섹션이 벌어지는 지역에서, 자신들이 스페인인임을 공공연히 구단 이름부터 선언하고 있는 에스파뇰이 붙는다는 것도 아이러니일 거다.

 

그런데 왜 스페인 최고의 도시 바르셀로나는 이렇게 중앙정부에 대한 불신과 레알마드리드에 대한 격정적 전투열에 불타게 되었는가? 그건 이 동네의 과거사를 들여다보면 대충 이해가 간다.

 

100만명의 사망자를 낸 내전 끝에 정권을 장악한 프랑코. 36년간의 철혈독재 과정에서 수도 없는 정치범을 양산하고 공포정치로 민중을 억압했던 프랑코. 2차대전 당시 절대적 동맹자로 스페인을 믿었던 독일의 뒤통수를 갈기며 히틀러를 어이없게 만들었던 그가 임종을 하면서 했던 유명한 이야기.

 

"적을 용서하겠는가?"

"나는 적이 없다. 내 적은 이미 모두 사살되었다..."

무서운 넘... 암튼.

 

프랑코 독재시기, 이 프랑코가 진행했던 반민주적인 작업 중의 하나가 바로 지역에 대한 차별적 우대조치였다. 자치 내지는 분리독립을 주장하는 지역에 대해서는 단호하고 참혹한 진압을 하는 반면, 정부에 우호적이고 특별히 관리되어야 하는 지역에 대해서는 정부의 예산과 자본을 동원하여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프랑코독재시기 이전부터 프랑코 독재이후까지도 이러한 차별적 정책의 진행은 음으로 양으로 계속되어왔고, 그 여파가 아직도 남아있다. 이 과정에서 '지역감정'이라는 것이 높아질 수밖에 없었고, 그 지역감정의 여파가 아직도 남아있는 곳 중 대표적인 곳이 바로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인 거다.

 

1936년 2월 스페인은 장차 전 국토를 내전의 참상으로 몰아넣게 될 역사적 총선거를 치루게 된다. 우익민족전선과 사회당, 공산당, 좌파공화주의자 등이 결합한 인민전선의 양대세력간 경쟁구도가 되어버린 이 총선에서 인민전선은 압도적인 표차로 승리하게 되었다. 우익세력의 불안감은 극도에 달하게 되었고, 이 불안감을 바탕으로 프랑코와 민족전선은 '빨갱이'에게 장악당한 공화국을 구원한다는 명목으로 쿠데타를 감행한다. 그러나 이 쿠데타야말로 20세기 역사의 한 장을 장식하는 '스페인 혁명'의 촉발제가 되었다.

 

'공화국 방어'를 기치로 내건 프롤레타리아트들은 무장을 시작했고, 곳곳에서 프랑코의 군대를 격파한다. 그리고 그곳에 꼬뮌을 건설하고 혁명위원회를 가동했다. 여기에 각국의 공산당이 의용군을 모집해 스페인으로 보내게 되었다. 어네스트 헤밍웨이, 조지 오웰 등 우리에게도 너무나 잘 알려진 사람들이 이 의용군의 일원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그러나 노동자들이 세운 노동자들의 꼬뮌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내부의 분열, 그리고 소비에트의 배신이 있었고 프랑코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프랑코 군대는 결국 1938년 1월 바르셀로나를 함락한다. 그리고 1년 후 마드리드 역시 프랑코군에게 함락당한다. 원래 바르셀로나는 해상교통의 중심지로서 식민지시대 스페인의 중요 교역장소였으며, 이주민들의 왕래가 성했던 관계로 일찌감치 성장을 할 수 있었던 동네였다. 그러나 까딸로니아인들은 스페인이라는 국가체계 안으로 자신들의 자치권이 포섭되는 것에 대해서는 불만이 있었다. 400년간의 스페인 지배가 계속되는 동안 이들의 불만은 높아만 갔고, 결국 노동자들의 끊임없는 투쟁 덕분에 1931년 자치권을 인정받기에 이른다. 그러나 불과 10년이 되지 않아 프랑코에 의해 강점된 까딸로니아는 결국 자치권을 박탈당한다.

 

프랑코는 까딸로니아의 저항의식을 잠재우기 위해 정치적 핍박을 자행했다. 고유어인 까딸랑을 사용하는 사람들을 구속하고 고문하거나 처벌하기까지 했는데, 일제시대 한글사용을 금지했던 일본의 정책을 생각해보면 얼추 비슷할 것이다. 바르셀로나의 주민들이 스페인 정부 특히 과거 프랑코 정부에 대한 분노가 얼마나 거셌을지는 어림짐작으로도 남음이 있다.

 

바르셀로나와는 달리 마드리드는 전략적으로 우월적 지위를 존중받는다. 스페인의 수도이자 프랑코의 출신지역. 스페인의 왕실이나 프랑코는 다른 지역보다 월등히 많은 세금을 바르셀로나에 부과하였고, 이렇게 거둬들인 세금으로 마드리드를 키우는데 노력했다. 그래서 지금도 "돈은 바르셀로나가 벌고 쓰는 것은 마드리드에서 쓴다"는 이야기가 남아있을 정도란다.

 

왕실은 마드리드에 연고를 두고 있는 축구클럽에 '레알(Real : Royal)'이라는 칭호를 붙여준다. 물론 명목상으로는 스페인 국왕 알폰소 13세의 이름이 걸렸던 킹스컵 대회 4연패의 위업을 달성했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이러한 로얄티를 등에 업고 프랑코시대에는 물론 왕정복고가 이루어진 후에도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엄청난 지원을 받아가며 레알 마드리드는 전 세계 최고의 선수들을 몽땅 데려가버리는 놀라운 수완을 자랑하게 된다.

 

이에 반해 FC 바르셀로나는 까딸로니아 주민과 노동자들의 구단이다. 이들은 자신의 자랑스러운 구단이 권력과 자본에 의해 독점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FC바르셀로나는 바르셀로나 시민들의 것이며 노동자들의 것이라는 이 자부심은 FC바르셀로나 유니폼에 어떠한 광고문구도 붙이지 않는 것으로 나타난다. 한 때는 이 자부심덕분에 FC바르셀로나의 스폰서인 나이키의 상표마저도 떼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을 정도다. 경영난으로 인해 지난해 겨울에는 FC바르셀로나 유니폼에 기업의 광고를 넣을 수 있다는 발표가 나오기도 했으나 아직은 구체적으로 진행이 된 것 같지는 않다. 현재의 상태에서 FC바르셀로나 유니폼의 정면에 광고를 넣을 수 있는 행운을 가질 기업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일요일 새벽의 빅매치는 기대와는 달리 좀 싱겁게 끝나고 말았다. 주심의 다소 편파적인(?) 판정으로 인해 전반 중반도 되기 전에 레알마드리드의 레프트 윙백 까를로스가 퇴장을 당했고, 경기 내내 '외계인군단'의 공세가 파죽지세로 이어진 반면 '지구방위대'는 이렇다할 공격도 해보지 못한 채 호나우두 하나를 제외한 나머지 모든 선수들이 '방위'에만 치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호나우딩요의 페널티킥 성공과 호나우두의 재치넘치는 슛의 성공으로 결과는 1:1.

 

축구는 축구일 뿐 정치와 관련이 없다는 이야기는 레알과 바르사의 경기만으로도 전혀 근거 없는 이야기라는 것이 밝혀진다. 게다가 '지구방위대'와 '외계인군단'의 전투라면 이건 정치를 넘어서는 이야기가 된다. 까딸로니아의 긍지, 바르사를 응원하는 행인의 입장은 완전히 정치적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6/04/03 11:42 2006/04/03 11:42
Trackback Address :: http://blog.jinbo.net/hi/trackback/485
  1. 트랙백 따라와서 완전 화들짝 ㅎㅎㅎ 이제 국제주의자(internationalist)를 넘어서 범우주사해동포주의자 (interplanetarist ???)의 길로 접어든 저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정서로군요. 우리 모두는 우주로부터 기원한 존재들..... ~~~~~

  2. 바르셀로나를 좀 좋아해야겠군요..ㅎㅎ

  3. 애매한 문제인 것 같습니다. 다른 방법을 모색해도 좋을 것 같기도 하지만... 어렵네요.

  4. 안녕하세요 블로그매거진 '블로진' 편집팀입니다.
    '블로진'은 블로그의 글들로 채워져서 무가지로 월 1회 배포

    되는 매거진입니다.현재 6호(매월 셋째주 배포)의 원고를 수

    집중이며, 행인님의 글(지구방위대와 외계인)을 게재하고자

    연락을 드렸습니다. 글의 게재를 허락해주시면 소정의 원고

    료를 지급해드리고 있으며(200자 원고지 1매당 1.000원), 여

    러 블로거님들께서 의견을 주시고, 동참해주셔서 각각의 블

    로거님들 이름으로 희귀질환 아이들을 돕는 '여울돌

    (http://www.yeouldol.com)'이라는 자선단체에 기부되어 지

    고 있습니다.(동의하에 결정되며,여울돌과 블로진사이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원고 마감이 얼마

    남지 않은 관계로 빠른 연락 부탁드리겠습니다.
    덧..게재되는 글은 닉네임과 블로그 주소로 나가게 되며 글

    의 저작권도 원작자에게 있습니다.

    O.P : 6734-2233
    H.P : 010 7724 5559
    E-mail : sangkyul@gmail.com

  5. 홍실이/ 맞아요. 우린 모두 우주의 일부이자 우리 안에 우주를 가지고 있는 존재. 바르사를 응원한다는 것이 계급적 각성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니지만 기왕에 어떤 경향성이라는 것을 발견한다면 그 경향성과 자신의 정치적 지향을 맞추어보는 것도 해볼만한 일인 듯 합니다.

    산오리/ 오호~~~ 바르사 펜 한 명 확보오오~~~ *^^*

    김오타/ 헉... 갑자기 너무 무거운 이야기를 하시는듯... 어떤 것이 애매한지 갈켜주시면 좋을 듯 한데요... --?

    블로진/ 엇... 이런 막갈긴 글을 그렇게 해주신다니... 음... 수정해서 올려야 하는지... 그냥 둘 건지 잠깐 고민이 되네요. 하지만 뭐 그냥 두고 그대로 쓰시면 되겠습니다. 좋은 곳에 기금사용해주시는 것도 오히려 감사하구요. 메일도 따로 드리겠습니다. ^^

  6. 올블 어제의 추천글에 오르셨군요,ㅋㅋㅋ

  7. 와~ 제목 보고 레알과 바르샤의 이야기라는 것은 알았지만...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역시나... 바르샤가 더 좋아지고, 레알이 더 싫어지는데요 >_< 오늘도 잘 배우고 갑니다 >_< 외계인 화륑>_

  8. 달군/ 허거... 그런 일이...

    에밀리오/ 어차피 축구, 그것도 프로축구는 돈놓고 돈먹기죠 머... 저도 레알에는 정이 들지 않는데, 그 구단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 하나하나는 또 다른 감정이 있죠. 특히 까를로스, 그 잊을 수 없는 UFO슛... 암튼 외계인은 화륑임돠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