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니지, 그리고 행자부
난리가 났다. 하루 지나고 나면 전날의 두 배에 가까운 사람들이 주민등록번호 도용당했다는 신고를 하고 있다. 한 온라인게임 업체의 전략시뮬레이션 게임인 리니지와 관련된 사건이다. 사실 이번에 발생한 주민등록번호 도용문제는 리니지라는 게임이 발생시킬 수밖에 없는 필연적 결과였다. 그리고 그 결과의 이면에는 지들 책임을 제대로 다 하지 않았던 이 나라의 정부가 도사리고 앉아 있다. 함 보자.
1. 아이템 현찰거래
리니지라는 게임을 해본 분은 더 잘 알고 있을 것이고 해보지 않은 분들이라고 하더라도 이 리니지 게임이 어떤 건지 대강은 들어본 바가 있을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이용자가 게임 상에 캐릭터를 생성한 후 사냥, PVP, 전쟁, 퀘스트 수행 등을 통해 레벨을 높이는 게임이다. 단지 레벨을 높이는 것만으로는 그닥 재미가 없다. 최고레벨(소위 만랩)을 달성한 이후에도 유저들은 게임에 몰입하게 된다. 레벨 올리는 것보다 더 재미있는 일이 만랩 이후에도 있기 때문이다. 유저끼리 모여 구성한 길드(혈맹이라고...)는 서버 안에 자신들의 영역을 구축하고 중세풍의 사회를 형성한다. 이게 희한한 것이 오프라인에서 벌어질 수 있는 모든 일이 여기서도 벌어진다는 것이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심지어 범죄까지도...
혈맹의 군주는 영역에 대한 지배권을 가진다. 그리고 그 지배권을 발동하여 레벨이 낮은 캐릭터(소위 쪼랩)들의 사냥터 출입에 제한을 둔다거나 이용료를 받기도 하고, 전쟁을 일으키기도 하고 하여튼 별 짓을 다한다. 집단적으로 몰려다니면서 적대세력에 대한 테러를 하기도 하고, 레벨이 높은 캐릭터는 레벨이 낮은 캐릭터를 '살해'하기도 한다(PK, 뒷치기...). 맨날 게임을 붙들고 사는 사람들보다도 가끔 재미로 게임을 하는 사람들(라이트 유저)들은 이런 뒷치기 때문에 레벨상승이 매우 어려워진다. 캐릭터의 능력치는 레벨에 따라 월등한 차이를 보이기 때문에 저레벨의 유저들은 어떻게 해서든 빨리 레벨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레벨을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 가장 유효한 것은 바로 고급 아이템의 사용이다. 사양이 좋은 아이템을 사용할 경우 사냥이나 PVP에 유리하기 때문에 낮은 사양의 아이템을 사용하는 것보다 훨씬 빨리 고레벨을 달성하는 방법이 된다.
고급아이템을 획득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사냥을 통해 몹이 떨어트린 아이템을 획득하는 방법, 퀘스트를 통해 획득하는 방법, PVP나 전쟁을 통해 획득하는 방법, 거래를 통해 획득하는 방법 등이 있다. 이 가운데 거래를 통해 획득하는 방법이 문제다. 기본적으로는 게임 상에서 게임머니를 이용해 상점이나 다른 유저에게 직접 사는 방법이 있다. 그런데 아이템 거래가 단지 게임상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프라인에서 현찰을 이용해 이루어지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사실, 리니지 이외에도 무수하게 많은 RPG게임이 있고 대표적으로 블리자드의 WOW 같은 게임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리니지가 각광을 받는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이 아이템 현찰거래이다.
리니지 게임상의 화폐인 '아덴'은 현찰로 교환된다. 게임화폐의 현찰교환이라는 것은 아이템 역시도 현찰거래가 이루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이템은 최고사양의 경우 몇 백만원에도 거래가 이루어지는 것을 보았고, 수 만원에서 수 십만원에 아이템이 거래되는 현상은 비일비재하다. 아이템 거래가 이루어지는 과정은 매우 간단하다. 이미 리니지 아이템을 거래할 수 있는 사이트가 수 십개 개설되어 있다. 이런 거래사이트를 이용해서 거래가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상당한 경우는 게임 유저들이 직접 거래를 한다. 즉, 게임방에서 리니지를 하다가 채팅창을 통해 합의가 이루어지는 경우 즉석에서 계좌번호를 교환하여 현금을 입금하고 입금확인과 동시에 캐릭터끼리 아이템을 주고 받는 것이다.
현찰거래되는 아이템 시장은 이미 1조원을 넘어섰다고 한다. 몇몇 의원들은 아예 아이템 현찰거래를 합법화하는 법률안을 제시하고 있기도 하다. 이런 법률이 필요한지 여부에 대한 논의는 일단 다음으로 미룬다. 어쨌든 아이템 현찰거래는 지금 이 시간에도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그리고 바로 이 아이템 현찰거래를 위해 돈벌이를 위해 리니지를 하는 유저들이 생겨나고 있고, 그 유저들은 돈을 더 벌기 위해 범죄행위까지 자행한다. 그 범죄행위 중의 하나가 바로 신원도용이다.
2. 신원도용 또는 신원절도
리니지를 비롯한 RPG게임들은 한 사람이 하나의 계정으로 여러 캐릭터를 만들 수 있도록 해놓고 있다. 유저의 입장에서는 하나의 서버에서 운영되는 게임에 여러 캐릭터를 만들어 놓고 각 캐릭터를 최대한 이용하여 많은 아이템을 획득할 수록 영업(?)에 성공할 수 있게 된다. 게임업체는 한 사람이 너무 많은 캐릭터를 생성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하나의 계정에서 생성할 수 있는 캐릭터의 숫자에 한계를 두게 되었다. 그러자 문제가 발생한다.
아이템 획득을 위해 어떤 짓도 할 수 있는 유저들은 이렇게 캐릭터 생성에 제한이 발생하자 이를 극복하기 위해 계정을 여러 개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그런데 한 사람은 하나의 계정만을 만들 수 있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자신의 신원정보를 가지고는 더 이상 계정을 생성할 수 없다. 유저들은 이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 다른 이들의 신원정보를 이용하여 계정을 생성하게 된다. 그런데 다른 이들의 신원정보를 도대체 어떻게 얻겠는가? 게임물 등급제에 따라 연령제한이 이루어지는 경우 해당연령에 도달하지 못한 청소년들(리니지2는 심의과정에서 제한연령을 17세 미만으로 할 것이냐 18세 미만으로 할 것이냐를 가지고 업체와 정부, 심지어 정부기관 간에도 설왕설래가 있었다), 계정당 생성캐릭터 수 제한으로 인해 더 많은 캐릭터를 만들지 못하는 유저들은 다른 사람의 신원정보를 어떻게 얻는 것일까?
상당수의 경우는 아는 사람의 주민등록번호와 실명을 도용한다. 가장 가깝게는 집안 식구들의 주민등록번호와 실명이 쉽게 도용될 수 있는 개인정보다. 친구의 것도 도용될 수 있고, 전혀 모르는 사람들의 신원정보도 얼마든지 도용될 수 있다. 수표 뒷면에 이서한 신원정보(자기앞수표에 주민등록번호를 이서하지 않도록 조치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은행 직원들조차 아직도 주민등록번호 이서를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나 지명수배자 전단지(작년부터 지명수배자 전단지에 주민등록번호는 완전히 삭제되었다)에 적혀있는 주민등록번호는 매우 유용한 자료가 된다. 그래도 이러한 정도는 애교다. 아예 전문적으로 신원정보를 도용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업체(?)로 불리는 유저그룹이 있다. 말이 좋아 유저그룹이지 이게 거의 공장노동자들과 같은 수준의 작업을 하는 말 그대로 업체다. 쉽게 예를 들면, 고용주는 게임을 할 수 있는 계정을 만들고 이 개정을 이용하여 캐릭터를 생성한 후 게임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을 고용해 교대근무시켜가며 게임을 하도록 한다. 고용된 유저들은 게임을 하면서 아이템을 획득하게 되고 이 아이템은 중간거래상을 통하거나 직접거래를 이용해 유저들에게 판매된다. 고용주는 아이템 거래로 발생한 이익금으로 유저들에게 임금을 지급하고 나머진 지들이 먹는다. 최근 중국에는 이러한 형태의 업체들이 급격하게 늘고 있다. 그리고 이들 업체들이 아이템 거래를 통해 연간 수십억에서 수백억의 원화를 중국으로 가져간다고 한다. 한국내에도 이런 업체가 상당히 존재하고 있다. 게중에는 가족단위로 리니지를 하는 경우도 있다. 거의 업체수준으로...
그런데 업체형태로 리니지를 하는 유저들이 대규모로 신원도용을 하게 된다. 이미 인터넷 망을 통해 수천에서 수만명의 실명과 주민등록번호가 파일형태로 돌아다니고 있으며, 매우 저렴한 가격에 CD거래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런 불법적인 자료를 구입한 후 주민등록번호와 실명을 이용하여 엉뚱한 계정을 만들고 아이템 획득과 현찰거래를 하는 일이 발생한다. 특히 문제는 실제 정보의 주인들이 자신들의 실명과 주민등록번호가 이렇게 이용되고 있다는 사실조차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리니지에 자신의 신원정보가 이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많은 사람들이 이번 사태를 접하면서 충격을 받고 있는 이유가 여기 있다. 리니지에 이렇게 이용되고 있다면 다른 형태로 자신의 신원정보가 이용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어떤 식으로 자신에게 그 피해가 돌아올지 예상조차 할 수 없다는 점에서 신원도용을 당한 사람들의 충격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3. 예상되었던, 그리고 경고되었던 사태
신원절도의 문제는 이번 리니지 사태로 인해 갑작스럽게 부상하게된 문제가 아니라는데 그 심각성이 있다. 특히 주민등록번호의 도용과 불법적 이용의 위험성은 십수년 전부터 꾸준하게 제기되어왔던 것이었다. 정보사회의 급격한 발전과 더불어 개인정보침해라는 부정적 현상 역시 급격히 증가하였고, 주민등록번호는 개인정보침해의 직접적인 원인이자 결과가 되었다. KISA의 보고에 따르면 작년 한 해동안 신고된 개인정보 침해사례는 1만8천206건인데 이 중 주민등록번호와 관련된 사건은 9천810건으로 전체의 54%를 차지한다. 올해 2006년은 아무래도 작년통계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주민등록번호 도용건수가 확인될 듯한데, 리니지의 경우 이미 며칠사이에 피해확인된 사람만 4000명을 넘어서고 있기 때문이다.
주민등록번호가 이렇게 도용되는 현상은 주민등록번호가 온라인 상의 만능키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즉, 성인인증이나 계정설정을 위한 "신원확인"과정에서 주민등록번호는 다른 어떠한 대체수단도 없이 그 자체로 완벽한 신원확인도구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주민등록번호가 신원인증을 위한 열쇠역할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온라인 상에서 그토록 정확한 신원인증이 과연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별다른 사회적 고민이 없었다. 앞뒤가 바뀐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가지게 하기에 충분한 일이지만 오히려 아직까지도 일반의 인식조차 주민등록번호는 꼭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주민등록번호가 이렇게 위험하게 사용되고 있음을 체험하면서도 말이다.
예를 들어 성인인증의 문제를 보자. 성인인증제도를 통해 청소년들이 음란물이나 폭력물에 접근이 제한되었다는 실증적인 보고는 어디에도 없다. 오히려 청소년들이 음란물이나 폭력물에 접근하기 위해 성인들의 신원정보를 도용하고 있다는 보고는 줄을 잇고 있다. 다시 말해 성인인증을 통해 청소년들을 천사들과 같은 존재로 만들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정반대로 청소년들을 범법자로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현실이 이러한데도 일부 성인들은 연령확인을 강화하기 위해 주민등록증발급대상연령을 9세나 13세까지 낮추자고 하는 얼척없는 소리를 하고 있다. 도대체가 뭐가 앞이고 뭐가 뒨지를 모르는 소리다.
성인인증제도를 통해 소기의 목적은 달성하지 못하면서도 성인인증제도가 더욱 확대되는 것은 무엇때문일까? 이 제도를 통해 알짜로 돈버는 집단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 소위 신용평가기관들을 중심으로 하는 개인정보사업체들이 그들이다. 신용불량자들이 양산되면서 금융정보를 비롯한 개인정보를 확인하여 기업이익을 보전하려고 하는 요구 덕분에 활황을 맞고 있는 신용평가기관들은 신용정보만을 가지고 장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기본적 개인정보를 업체에 제공하면서 돈을 긁어 모으고 있다. 이들이 이렇게 장사를 해서 돈을 쓸어담고 있지만 정작 정보주체들은 자신의 개인정보 덕분에 십원짜리 한 푼 받아본 적이 없다. 돈이 문제가 아니다. 신원정보가 평가기관 등을 통해 확인되는 순간 그 신원정보는 확실한 정보가 된다. 그런데 그 확실한 정보를 확인한 자가 정보주체 본인인지 아니면 정보주체와는 전혀 상관 없는 다른 사람인지 실명인증시스템은 확인하지 못한다.
이렇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시스템이 운영되는 가운데 개인정보는 술술 새고 있다. 주민등록번호를 이용하여 온갖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번에는 단순히 신원절도를 이용한 게임 계정 개설의 문제로 끝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계정을 개설하는데 이용된 신원정보가 아이템 거래를 하는 과정에서도 이용되었고, 아이템 거래를 위한 구좌개설이나 모바일통신수단에 이용되었다면 사태는 더욱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진행될 수 있다. 또는 개인정보를 입수한 자가 게임에만 그 정보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더 큰 범죄행위를 하는데 해당 개인정보를 이용하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니, 그가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개인정보를 입수하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다.
정보인권운동을 하는 사람들이나 또는 관련 전문가들은 매우 오래전부터 이러한 현상들에 대해 경고해왔다. 주민등록번호 만능주의라고 불리어도 손색이 없을 것같은 이러한 풍토가 종국에는 개인정보의 대규모 유출과 불법적 이용이라는 결과를 가져올 것임을 허구한 날 경고했던 거다. 이번 리니지 사건은 이 경고가 현실화되는 시발점에 불과하다.
4. 행정자치부의 무능력 또는 책임회피
정보인권운동을 하는 활동가들과 전문가들이 지난 십수년간 주민등록번호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는 동안 정작 주민등록번호제도를 담당하고 있는 행정자치부는 뭘 하고 있었던가?
지난 2월 10일 공청회에서 행정자치부 관계자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주민등록번호제도에 대해서도 제대로 책임지고 있지 않은 행자부가 전자주민증으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 얼마나 책임을 질 수 있을지 궁금하다고. 그랬더니 이 관계자는 온라인상에서 주민등록번호의 문제는 정보통신부가 해결해야할 문제란다. 그리고 행정자치부도 꾸준하게 주민등록번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단다. 더불어 당장 주민등록번호체계에 대한 변화를 주기에는 시간이 너무 없고 앞으로 장기적으로 검토해보겠다고 했다.
전형적인 공무원식 회피기법이다. 일단 남의 책임으로 돌린다. 다음으로는 시간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런 답변은 한마디로 자신들이 무능력하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일 뿐이다. 더 나가서는 지들 편리를 위해서는 애를 써도 지들이 조금이라도 불편할 수 있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겠다는 행정편의주의일 뿐이다. 이 관계자의 답변이 아무런 영양가도 없다는 것은 그동안 진행되어왔던 주민등록번호에 대한 문제제기과정과 행자부의 대응태도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주민등록번호의 문제가 본격적으로 제기된 것은 아무리 짧게 잡아도 10년이 되었다. 즉, 1996년 전자주민등록증 도입사업추진 당시 시민사회가 격렬하게 반발하면서 본격적인 개인정보보호담론이 시작되었을 때, 개인정보보호를 위해 가장 중요한 해결과제로 제시된 것이 주민등록번호체계와 사용의 문제였다. 그 이전에 논의되었던 주민등록번호문제는 차치하고라도 1996년부터만 따져서 10년이 경과할 동안 행정자치부가 한 일이 무엇이었을까?
주민등록제도의 주무부처인 행정자치부는 그동안 주민등록법 개정을 통해 주민등록번호의 불법사용이나 주민등록번호생성기 이용에 대한 벌칙규정만을 강화했을 뿐이다. 그런데 이렇게 주민등록번호의 이용에 대한 제한규정을 주민등록법에 두었다고 해서 어떤 효과가 있었는지에 대해서 행정자치부는 어떤 결과보고도 한 바가 없다. 해가 갈수록 벌칙은 강화되었고, 최근 행정자치부는 주민등록번호 불법이용으로 인한 정신적 피해에 대해 위자료를 배상하는 내용의 규정을 정한 주민등록법 개정안을 국회에 상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보통신부나 경찰청 사이버수사대의 보고에 의하면 주민등록번호 불법이용은 확대일로를 걷고 있다. 다시 말해 행정자치부가 수행했다는 주민등록번호 보호대책은 전혀, 아무런 효과도 거두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건 당연한 결과인데, 주민등록번호의 불법사용이라는 것은 원천적으로 주민등록번호가 너무나도 광범위한 형태로 우리 사회에서 이용되고 있기 때문이고, 더 나가서는 주민등록번호 자체가 강력한 신원확인도구로 인정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주민등록번호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은 주민등록번호의 부여체계를 변경하는 것이다. 이것이 불가능하다면 적어도 주민등록번호의 조합방법을 변경하던지 아니면 최소한 민간영역에서의 주민등록번호 사용에 일정한 제한을 두던지 했어야 한다. 그러나 행정자치부, 지금까지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은 채 오히려 전자정부사업을 추진하면서 더욱 광범위하게 주민등록번호를 사용하도록 조장하고 있었다. 더 나가 아예 전자적 인식방법을 통해 주민등록번호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전자주민등록증사업까지 재추진하고 있는 실정이다. 행정자치부, 완전히 정신 나간짓을 하고 있는 것 아닌가?
정보통신부가 온라인상에서 주민등록번호 대체수단을 강구하는 것은 행정자치부가 주민등록번호체계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을 하는 것과 전혀 별개의 문제다. 주민등록번호는 주민행정의 편의와 주민의 편리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따라서 별도의 원칙 없이 무제한적으로 민간영역에 이용되는 것은 그 자체로 주민등록번호제도의 원래 취지와 전혀 부합하지 않는 현상이다. 그렇다면 행정자치부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일정한 브레이크를 걸 수 있어야 하고 당연히 그렇게 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행정자치부, 지금까지 쥐뿔 한 것이 없다. 한 거 없으면서도 한 거 많다고 징징거린다. 벌칙규정 강화한 거? 그렇게 해서 도대체 어떤 성과를 얻었냔 말이다.
아닌 말로 돈과 인력과 강제력을 가지고 있는 행정자치부가 10년 넘게 주민등록번호문제에 대해 근본적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면서 지금까지도 시간이 어쩌구 한다는 것은 누가 보더라도 웃기는 짓이다. 10년이라는 기간이 짧다면 도대체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인가? 지금까지 문제해결을 위한 준비조차 하지 못했다는 것은 아예 개념이 없다는 이야기에 불과하다. 그럼 이제부터 개념 탑재하고 주민등록번호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방안을 고민한다면 또 앞으로 한 10년 기다려 줘야 하나?
5. 게임업체만의 잘못인가?
이번 사태와 관련하여 리니지를 운영하는 해당 게임업체에 비난의 화살이 쏟아지고 있다. 물론 이 게임업체, 욕먹을 짓 많이 했다. 아이템 현찰거래로 인해 사회적인 문제가 발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이 게임사는 바로 그 아이템 현찰거래라는 미끼를 이용하여 유저들을 유혹해왔다. 아이템 현찰거래는 게임의 프로그램에 따라 얼마든지 제한하거나 아예 불가능하게 만들 수도 있다. 그러나 리니지를 운영하는 이 업체는 아직 그럴 생각은 전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아이템 현찰거래나 무한 PK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 중 하나는 현실세계에서의 범죄다. 아이템 거래를 빙자한 사기가 속출하거나 PK에 대한 불만으로 인해 유저들이 서로 찾아다니며 폭행을 하는 등의 사태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PK의 경우에도 얼마든지 프로그램에 따라 조절할 수도 있다. PK구역을 따로 정한다던가 PK를 할 수 있는 레벨에 차이를 둔다거나 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그러나 그렇게 될 경우 고레벨 유저들의 메리트가 줄어들게 되고 아이템 획득에도 장애가 발생하기 때문에 이 업체는 별도의 대책을 강구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강력한 중독증세를 유발하는 이러한 게임 프로그램에 대해 일정한 도의적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대규모 신원절도현상까지 발생시킨 이 업체에 대한 비난과 비판은 그래서 일정하게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분노의 화살이 이 게임업체로 집중되는 것은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 결국 이 게임업체가 이런 식의 영업을 할 수 있었던 배경은 행정자치부를 비롯한 관련 정부 기관이 지들 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게임에 대한 직접적 규제권한을 가지고 있는 정보통신부나 문화관광부에 대한 논의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주민등록번호 문제에 대해 아무런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행정자치부는 이 기회에 매우 쳐야 한다. 국민의 혈세를 갖고 국민을 위해 쓰는 것이 아니라 지들 편한 짓만 하려고 한다는 것은 국가기관의 자세가 아니다.
차제에 행정자치부가 대오각성하여 주민등록번호에 대한 근본적인 대안을 내놓지 못하면 이번 사태는 계속 재연될 것이다. 아니, 더욱 강력한 사건들이 벌어질 것이다. "음모론적 수준"에서 한 가지 가정을 해보자. 위에 언급했던 중국의 업체(?)들이 얼마나 한국 국민들의 개인정보를 가지고 있을까? 지금까지 언론에 보도된 것만 따져봐도 한국국민 전체의 주민등록번호가 적어도 한 번 이상은 유출된 것으로 계산되는데, 그 정보들 중 얼마만큼이 중국에 흘러들어갔을까? 쟤네들이 장난질 쳐서 입수한 개인정보를 이용해 한국에 계좌개설하고 카드만들고 휴대폰 만들고 허위공문서 만들어 농간질 하면 그 때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까? 인터폴에 협조의뢰하고 중국 공안과 협력하여 잡아낼 건가? 피해 본 국민들에 대해서는 또 어떻게 보상할 건가? 국가가 전액 배상해 줄건가?
이게 단순히 "혹시 그럴지도..."의 수준에서 제기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은 이미 실제 벌어진 여러 사건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중국교포를 이용하여 허위호적등본을 만들고 이거 가지고 사기친 사건도 있었다. 얼마든지 가능한 일인 것이다. 이렇게 될 때까지 그저 주민등록번호 없으면 간첩은 어떻게 잡느냐는 해괴한 논리 계속 들이대며 책임 회피만 하고 있을 건가?
자, 이 시점에서 우리의 행정자치부, 어떤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날지 기대된다. 환골탈태한 모습으로 근본적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일지, 아니면 여전히 모르쇠로 일관하면서 쌩깔지 두고볼 일이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후자일 것 같은 느낌은 나만 그런 것일까??
여기저기 기사에서 리니지 명의도용 사건으로 난리길래... 뭐, 이런 일이 안 생기는 게 이상한 거지... 하고 있었다. 그런데... 옆 사람이 자기도 도용당했다고 하길래 나도 해봤더니만!
[주민번호 도용당했다] 에 관련된 글. 오늘 사무실에서 다섯병이 자신의 주민번호가 도용되어 리니지에 가입되었다고 다른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