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스라인
누구나 자신이 서있는 위치에서 이야기를 한다. 객관적 입장을 유지한다는 것은 그래서 힘들다. 오히려 객관적이라는 것은 그래서 정치적이다. 정치적으로 객관적일 수 없는 행인은 그래서 매우 주관적인 견지로 내 이야기를 한다.
시위를 진압하는 입장과 시위를 진행하는 입장은 당연히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지게 된다. 어느 한 쪽이 어떻게 잘못했느냐를 판단하는데 이 둘은 서있는 위치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집회시위를 바라보는 제3자(실상은 제3자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지만)는 두 집단 중 어느 하나의 이야기를 더 들을 수밖에 없고, 이들은 객관성을 유지하는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결국 자신이 서고 싶은 위치에 자신을 옮겨둔 채 이야기를 하게 된다.
김강자라는 분이 있다. 종암서장을 하면서 집창촌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을 펼치고 경찰주도의 청소년 선도사업을 수행했던 사람으로 잘 알려져 있는 사람이다. 이분이 자서전 비스무리한 것을 썼다. 이 책 안에 시위에 대응하는 경찰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런데 이분이 말씀하시는 경찰의 모습과 내 입장에서 바라본 경찰의 모습은 많은 차이가 있다. 이분의 책 안에 있는 내용과 내가 경험한 내용을 비교해보면 이렇다.
"시위대의 일부가 예전과 같이 쇠파이프, 몽둥이, 돌 등으로 무장하고 여경 기동대의 폴리스라인을 넘으려고 했다. ... 시위대는 아무 무장도 하지 않은 여경 기동대원들을 무너뜨렸다 그 장면을 지켜보던 청장 이하 경찰 수뇌부들은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쓰러지는 부하들을 보는 심정은 분노 그 이상의 것이었다. ... 내가 경찰 수뇌부라도 당장 최루탄 발사 명령을 내리고 싶었다. 그러나 참아야 했다. 가까스로 정착되어가는 평화적인 시위문화를 깨뜨릴 수는 없었다."
평화집회를 약속했는데, 경찰들은 닭장차로 집회참가자들을 둘러쌌다. 닭장차 저편으로는 사람들과 차량들이 지나가고 있었지만 우리의 모습과 우리의 구호는 닭장차로 둘러쳐진 폴리스 라인 안에서만 맴돌았다. 노인들이 앞에 서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무장한 전경들은 방패로 이들을 사정없이 밀쳐냈다. 힘 없이 쓰러지는 어르신들을 보는 심정은 분노 그 이상의 것이었다. 나에게 총이 있었다면 당장 쏴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참아야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방패 앞으로 머리를 들이미는 것 뿐이었다.
"경찰이 교통소통을 위해 차도를 점거한 시위대를 연행하자 그동안 자취를 감췄던 화염병이 다시 등장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경찰 지휘부는 작년 말보다 더욱 분개했다."
집회 끝나고 가두시위를 하려는데, 예정된 코스로 시위를 하려하자 경찰 관계자가 오더니 차량소통에 방해가 된다고 지하도로 가란다. 어이가 없어서 신고한 대로 하는 건데 왜 그러느냐 했더니 교통을 방해할 경우에 법대로 처리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법에 나와 있는대로 신고한 거니까 우리는 예정대로 시위를 하겠다고 했고, 그대로 진행을 했다. 순간 전경대원들이 쏟아져 들어왔고 선두에 있던 사람 여러 명이 순식간에 닭장차 안으로 끌려들어갔다.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했을까? 경찰의 지시대로 지하도로 가야하나? 그들이 법을 들이밀며 불법적인 행위를 하려는 마당에 우리가 그들의 불법적 지시를 따라야 하는가? 우리는 항의할 수밖에 없었고, 경찰들을 밀어부칠 수밖에 없었고, 닭장차에 끌려들어갔던 사람들을 빼내올 수밖에 없었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보장하는 대신 사전에 정해진 약속을 깨고 도로 점거 등의 행위를 할 경우에는 가차없이 시위대를 진압한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다르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 군복무 중인 군인을 빼다가 시위진압에 동원하는 경우가 있나? 의경이라는 희안한 제도 만들어서 젊은이들을 무상으로 부려먹는 것도 모자라 집회시위에 동원해서 폭력진압을 하도록 만드는 나라 있나? 닭장차로 시위대를 완전 차단하고 그걸 폴리스라인이라고 우기는 나라 있나? 관공서 100m 밖에서만 집회시위하라고 하는 선진국 있나? 미국 대사관 앞에서는 아예 사람들이 모여있지도 못하게 하는 나라가 있나? 정부종합청사, 국회의사당 들어가면서 정문에서부터 경찰들이 중무장한 상태로 지키고 서 있다가 개구멍으로 민원인 들어가게 하면서 소지품 검사까지 하는 선진국 있나? 어딨나? 미국? 어딨나?
이분의 말마따나 "우리나라의 경우는 다르다."
다른 부분을 봐도 이렇게 달리 본다. 김강자씨의 눈에는 폴리스라인을 뚫고 나온 시위대에게 가차없이 폭행을 행사하는 '선진국' 경찰의 모습이 아름답게 보였는지 모르겠지만. 내 눈에는 우리나라와는 완전히 다른 그들의 폴리스라인 설치가 합리적으로 보인다. 달라도 아주 다르다.
이분, 여경 기동대가 쳐 놓은 폴리스라인을 무너뜨리고 시위대가 여경 기동대 수명에게 부상을 입힌 것을 들며 분개하신다. 어제 "우리 아들 때리지 마세요"라는 피켓을 들고 평화적인 시위문화 정착을 촉구하는 대회를 여신 분들도 지난 수년 간 천여명이 넘는 전의경들이 집회시위 참가자들에 의해 부상을 입었다고 성토하셨다.
그런데 지난 수년간 집회 시위 참가했다가 전의경들에게 다친 사람은 무릇 기한가? 다른 부대는 다 제껴놓고 1001, 1002, 1003 얘네들에게 얻어 터져 죽거나 뻗었던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경찰 수뇌부가 집회시위에서 부하들이 부상 당하는 것을 걱정하는 것만큼, 전의경으로 자식을 보낸 부모들이 자기 자식이 시위대에게 부상 당하는 것을 걱정하는 것만큼, 아니 그보다 더 심각하게 집회시위에 참가하는 사람들의 두려움과 공포에 대해서 김강자씨는 단 한 번이라도 생각해본 적이 있을까?
지난 농민대회에 참가했던 한 어르신이 가지 말라고 만류하는 식구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하고 서울로 올라왔단다. 이래 해도 죽고 저래 해도 죽는 거, 내 어차피 죽으러 가는 거니까 그런 줄 알아라...
김강자씨가 이야기하는 경찰의 인내와 폴리스라인에 얽힌 전설들은 "평화로운 시위문화 정착"을 위해 헌신 노력한 경찰의 자화자찬일 수는 있지만 그 반대편에 서 있는 나같은 사람들에게는 전혀 설득력이 없다. 아마, 내 입장에 대해서도 김강자씨는 전혀 동의하지 않을지 모른다.
대충 동의하는 부분이 하나 있기는 하다.
"젊은이들이 한쪽은 화염병과 몽둥이, 돌로 무장하고 다른 한쪽은 마치 로마 병정을 연상시키는 두터운 방석복과 최루탄으로 무장하고 거리에서 맞붙어 싸워야 하는 것인지. ... 되는대로 길바닥에 주저앉아 준비한 도시락을 먹는 그들의 얼굴에는 피곤이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항상 가슴이 미어졌다."
그 모습 보면서 기분 좋은 사람은 하나도 없다. 날씨 추운 요즘 여의도 길바닥에서 닭장차 옆에 배식대를 마련하고 돌아가며 식판을 들고 밥을 받아가는 전경들 보면 뜨신 오뎅국물이라도 사다주고 싶은 심정이다. 쟤들이 뭔 죄를 지었길래 저 고생을 하나? 그런데 바로 그 앞에 늘어선 농성천막들이 보인다. 그사람들, 이 추운 겨울날 길바닥에서 먹고 자면서 투쟁을 하고 있다. 저 사람들은 뭔 죄를 지었길래 저 고생을 하나?
투쟁하는 사람들이야 자신의 생존권을 걸고 하는 싸움이므로 어떤 형태로든 그 자리에 나올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전의경들은 다르다. 걔들은 그 자리에 없어도 되는 사람들이다. 군복무를 위해 징집당하는 것도 서러운데 게다가 아스팔트 바닥에 방패하나 깔고 찬 궁둥이를 붙이고 있어야 되는 이 젊은이들, 그 자리에 사실은 없어야할 사람들이다.
피곤이 덕지덕지 묻은 전의경들의 모습, 나도 그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가슴이 미어진다. 월급 제대로 받고 있는 김강자씨의 후배들이 그 자리에 나오기 바란다. 폴리스라인도 제대로 좀 치고, 그 무거운 방석복도 좀 벗어버리고, 자유로운 집회시위도 보장하면서 경찰도 좀 인간답게 살아보자. 이 참에 경찰도 노조 만들고, 집회시위 강제진압 같은 '선진적'이지 못한 명령이 나오면 노조 이름으로 비판 성명도 좀 발표하고, 서로 그러다 보면 평화시위 저절로 정착되지 않겠는가?
<FONT color=#008000>벌써 이틀이 지났나.</FONT> <FONT color=#008000>전의경 부모들이 경찰청 앞에서 평화시위를 요구하는 시위
“어떤 내용과 형식으로 시위를 할 것인지는 시민들 스스로가 자율적으로 결정할 일이다. 그리고 그것을 판단할 우선적인 권리 역시 그들의 시위를 바라보는 다른 시민들에게 있는 것이지 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