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를 하는 건지...
대통령이 농민 두 분의 사망과 관련하여 공식적인 사과를 했다. 허준영 경찰청장에 대해서는 자신이 직접 해임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지 손에 피를 묻히지는 않겠다는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실제 법률적으로도 대통령이 경찰청장을 맘대로 해임하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니까 여기까지는 이해해주도록 하자. 행인, 그동안 이해심 굉장히 많아졌다...
그런데, 사과하는 거 가만히 보고 있자니 이게 사과를 하는 건지 타는 가슴에 불을 지르는 건지 분간이 가질 않는다. "폭력시위문제가 우발적인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준비해서 폭력을 휘두르는 모습을 자주 본다.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 정당성에 대해 어떤 근거를 가지고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그리고 그와 같은 상황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 시민사회단체의 책임의식에 대해서도 납득할 수 없다." 대통령 말씀이시다. 아름다운 사과 되겠다.
농민대회 당시 여의도 공원에서 집회하고 있는 순간 갑자기 방패 휘두르고 곤봉 후려치며 대응도 하지 못하는 농민들을 두드려 팬 것에 대해서는 잘 몰랐나보다. 경찰의 이런 짓거리가 하루 이틀이 아니다. 특히, 1001, 1002, 1003 얘네들 이짓거리 진짜 잘 한다는 거, 청와대 고즈넉한 집무실에 앉아 격조있는 눈으로 세상을 관망하는 대통령은 잘 모르시나보다. 옛날에 백골단은 기억하고 계실라나?
소위 물량이라는 것이 있다. 꽃병(화염병), 빠이(쇠파이프), 짱돌 기타 등등 시위에 동원되는 "폭력시위용 준비물"들을 이렇게 일컫는다. 택이 잡히고 일정이 결정되면 때에 따라서 이 물량을 준비하게 된다. 물량을 왜 준비하냐고? 대통령께서 지적하신 바, "폭력시위"할라고 그러는 거지 뭐 별 거 있겠냐? 그런데 왜 이걸 준비할까? 텔레비전이고 신문이고 라디오고 인터넷이고 간에 "폭력시위"한 넘들, 빠질 틈도 없이 말 그대로 "폭력배" 수준으로 비난을 받게 되는데 그거 뻔히 알면서 왜 물량을 준비할까?
물량이 준비되는 경우는 의외로 간단하다. 그건 그 집회시위가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그 당시의 상황이 어느 정도 위험한 것인가에 따라 달라진다. 요 근래에 노동자대회나 메이데이에 물량 준비해서 나가는 경우는 본 적이 없다. 이건 거의 공식행사로 진행되는 것이라 물량, 이게 근본적으로 이젠 필요가 없는 경우 되겠다. 그러나 농민집회의 경우는 말이 달라진다. 평택 미군기지 반대 투쟁이나 지난 2002년 철도, 발전 파업 당시 같은 경우, 또는 그 훨씬 전에 90년대 후반까지 진행되었던 지하철 파업 등의 경우 등등 대규모로 물량이 준비되었던 몇몇 시기가 있었다. 아, 96년 크리스마스 다음날 노동법이 날치기로 통과되었을 때 물경 약 3개월 간을 물량 대느라고(?) 정신이 없었던 시기도 있었다.
각각의 경우를 일일이 살펴보는 것은 무리고, 물량과 관련한 이야기만 한다면, 이런 투쟁 때마다 경찰의 대규모 진압이 이루어지는데, 진압이 시작되면 사실 노동자고 농민이고 그대로 앉아서 당할 수밖에 없다. 뭔수로 잘 훈련된 진압부대를 피할 수 있을 것인가? 이런 진압이 언제나 있어왔고, 그 강도 역시 엄청났고, 과거 대우자동차 파업 당시 무저항의 노동자들, 웃옷을 벗고 연좌해서 항의하던 그 노동자들에게, 저항조차 하지 않았던 그 노동자들에게 가해졌던 그 폭력이 계속 이어진다.
다른 노동자들을 피신시키거나 경찰의 진압을 최대한 저지하거나 하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이 동원되는데 이 과정에서 필요한 것이 물량이다. 어떤 미친 놈이 재미로 화염병 던지고 파이 휘두르나? 그저 한 때의 호승심으로 보도블럭 깨고 짱돌을 던지나? 그런 놈이 단 한 명도 없다는 소리는 하지 않겠다. 하지만 물량을 준비하는 그 이면에는 바로 이렇게 터무니 없이 강력한 무력을 행사하는 공권력이 있기 때문이었고, 더 나가서는 '자식'같은 전경들을 총알받이... 아니 화염병 받이, 쇠파이프 받이로 내몰아 놓고 뒷구멍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노동자 농민의 피를 빨 궁리를 하는 정권과 자본이 있기 때문이었다.
피를 말리는 심정으로 시위를 하러 나온 노동자와 농민, 최소한 뭐라도 들고 가지 않으면 졸지에 떡이 되도록 두들겨 맞고 쫓겨날 것을 알고 있는 이들이 어떻게 해야하나? 그냥 집회고 시위고 포기하고 까라면 까고 주는 대로 받아 먹으며 방구석에 틀어박혀 있어야 하나? 이들이 물량을 준비하고 나가는 그 밑에는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는 절박함이 자리하고 있다.
시민사회단체들, 이 사정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 중재라도 한 번 해보려고 하고 정부와 만나 설명이라도 해보려고 한다. 그러나 안 된다. 안 되고 안 되기 때문에 느끼는 절망감은 노동자 농민과 단체들이 다르지 않다. 그런 단체들이 노동자 농민이 물량 쓰는 것에 대해 뭐라고 이야기해야할까? 어떤 책임의식을 가져야할까?
기자회견 말미에 노무현이 이런 이야기를 한다. "정부도 그와 같은 사태에 대해 책임이 있다. 정부가 이 책임을 제대로 하는 데에는 시민사회의 동의가 필요하다" 얼핏 당연한 이야기를 하는 듯 하다. 그러나 노무현, 지금 엉뚱하게 지가 져야할 책임을 시민사회에 떠넘긴다. 시민사회가 어떻게 하라는 건가? 정부가 하는 일에 동의를 해달라는 건가? 그렇게 시민사회가 정부의 쌀개방과 비정규직화 같은 일련의 정책에 동의를 해주면 과격시위 할 사람들이 없어진다는 이야긴가?
"쇠파이프를 마구 휘두르는 폭력시위가 없었다면 이러한 불행한 결과는 없었을 것"이라는 헛소리는 집어 치우기 바란다. 그들로 하여금 쇠파이프를 들고 나오지 않을 수 없게 만든 자기 자신들에 대해 통절한 반성을 하기는 커녕 죽은 사람은 죽을 이유가 있었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사과가 아니다. 아니, 약올리는 거다.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국민들 약이나 올리라고 만들어 놓은 자리가 아니다. 자꾸 약을 올릴 수록 쇠파이프의 숫자는 점점 더 불어난다는 사실을 노무현은 깨달아야 한다.
딱이다. 너스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