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지놀이의 한계

시민25님의 [조승수 전의원 판결시비에 관한 단상] 에 관련된 글.

조승수 의원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과 이로 인한 의원면직을 둘러싸고 많은 비판이 제기되었다. 대부분의 비판은 대법원의 행위가 매우 몰상식한 행위이며, 법률적으로도 하자가 많은 행위라는 것이다. 더구나 대법원의 행위는 최고심급의 그것으로서는 제대로 함량미달이다보니 비판을 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비판할 재료조차 찾기 어려운 황당한 경우였다. 그러다보니 대법원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대법원이 보수화 되고 있다'는 말도 하고 있다. 사실 대법원은 '보수화'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모든 기관 중에 단연 가장 보수적인 곳이 대법원임은 익히 아는 사실이니까.

 

그런데 대법원 비판자들에 대해 '딱지놀이'를 하고 있다는 평가가 있어 주목된다. 즉, 조승수 의원 사건과 관련하여 일부 사람들이 진보는 '진리'이고 대법원은 '보수'라는 '딱지놀이'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볼 때, 진짜 '딱지놀이'는 이분이 하고 있다. 누군가가 '딱지놀이'를 하고 있다는 '딱지놀이'. 시민25라는 분의 앞 글의 부재는 이렇다. "진보진리교와 대법원보수딱지 붙이기"

 

적어도 이 분이 이렇게 특정한 비판세력을 '딱지놀이'하는 자들로 분류하려면 그들의 '딱지'질이 어느 정도나 '딱지놀이 수준'인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 분, 막연하게 '그럴 것이다'라는 전제 하에 대법원 판결에 대한 평가를 한 후 그것을 합법이냐 악법이냐 하는 식으로 엉뚱하게 입법부의 문제로 회귀시킨다.

 

우선 그는 대법원의 판결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대법원의 업무가 양형의 가감인 것처럼 판단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이 비판은 일견 타당하다. 그런데 그 문장 말미에 그 역시 "(하급심에서) 심히 부당하게 양형사항을 배제했다든가 하는 경우에" 대법원 역시도 양형에 대한 검토를 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하급심이 양형사항을 배제한 재판상의 위법이 있었는가를 검토해야 한다. 그 검토를 위해서는 대법원 역시 사실관계에 대한 판단을 해야만 한다.

 

이번 사건에서의 문제점은 하급심에서 사실관계에 대한 오해로 인하여 법률의 적용에 하자가 발생했음을 변호인단이 지적했음에도 불구하고 대법원이 이를 무시한 채 하급심 재판과정의 법리적용과정만을 살폈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왜 대법원이 오인된 사실관계에 대해 침묵하고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는가가 비판되는 것이다.(사실관계에 대한 간단한 언급은 이전에 한 바 있으므로 여기서 재론하지 않는다.)

 

이러한 과정을 무시한 채 "강금실씨 등을 변호인으로 동원했는데 그것을 뒤집지 못했다면 필시 명백한 법률위반임이 분명하다"는 단정을 시민25는 하고 있다. 논리적으로 전혀 타당치 않은 주장이다.

 

강금실(과 같이 유명한 변호인)이 변호를 했다 →원심을 뒤집지 못했다→법률위반이다

 

전형적인 전제오류다. 이런 부당한 삼단논법을 통해 "법률위반"임을 증명한다는 것은 시민25의 이하 주장에 신뢰성을 부여할 수 없게 만든다.

 

사람들이 사안 자체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다분히 감정적으로 대법원에 대한 비난을 제기하고 있다면 시민25의 주장은 그 논리적 타당성의 결여에도 불구하고 경청해야할 부분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시민25가 제기하는 3가지 문제를 검토하더라도 시민25의 '딱지놀이'는 동의하기가 어렵다. 그 3가지 문제만 분석해보자.

 

1. 무능한 국회의원들이 만든 해당 선거법이 문제가 있는지

- 공직선거법(구 공직선거및선거부정방지법) 자체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이 지적된 것은 한 두 해의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이 법률을 뜯어 고치는 일이 그렇게 만만한 일이 아니라는 것은 시민25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현행 선거법의 내용이 이렇게 위헌적 요소의 규정마저도 가지고 있게 된 배경은 그동안 각종 선거과정에서 발생한 문제점이 너무나 컸고, 그러한 문제점들에 대해 국민들의 분노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 있다.

 

사전선거운동 금지의 내용이 통상적 정치행위까지 규제할 수 있을 정도로 가혹한 점에 대해서도 위헌시비는 끊이지 않는다. 조승수 의원의 사건 이전에도 이 부분은 항상 논란의 대상이 되어 왔으며, 개정요구가 계속되었다. 그럼에도 쉽사리 개정이 되지 않고 있는 이유는 불법적인 사전선거운동에 대한 제한을 다른 방식으로 어떻게 가능하게 할 것인지에 대한 대안이 마련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간단히 정리하면 선거법에 문제가 있고, 특히 조승수의원의 사건과 관련하여 통상적 정치행위가 사전선거운동으로 규제될 수 있다는 점에서 분명 이 법은 문제가 있다. 그런데 지금 이 입법행위에 대한 논란은 조승수의원 사건의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이미 이 법률에 의할지라도 "통상의 정당활동"(제59조제1항제4호)은 '선거운동'에 해당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당연히 "사전선거운동"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역구민들의 요구사항은 조승수 의원의 국회의원 당선여부와 관련 없이 정당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수용하고 검토해야만 하는 정치적 사안이었다. 이에 대해 해당지역의 정당 지구당이 이 문제에 관심을 보이고 지역구민들의 의사에 따라 처리하겠다고 의견을 표명한 것은 어떤 관점에서 보든 "통상의 정당활동"일 뿐이다.

 

따라서 지금 이 문제는 입법의 불비 또는 악법의 시행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사항이다. 법리해석에 오류를 범한 사법부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시민25의 제1번 문제제기, 즉 선거법 자체의 문제는 여기서 논할 일이 아니게 된다. 이번 사건이 사법부의 문제를 입법부의 문제로 치환할 수 있는 사건이 아니라는 점을 시민25는 간과했다.

 

2. 노무현 정권의 검사가 구형에서 유사사건들과의 형평성을 잃었는가?

- 검사의 의무는 범죄사실을 적발하고 이를 수사한 후 기소하는 것이다. 따라서 조승수 '후보'의 행위가 위법한 것이었음을 발견했을 경우 이를 기소하고 구형을 하는 것은 검찰의 당연한 의무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소위 '형평성'이 어떻게 작동했는지를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시민25의 주장대로라면 대한민국 검찰은 조승수 이외에 대한민국의 모든 공직선거과정에서 발생한 선거비리사범 일체를 직접 조사하고 직접 기소하여야만 한다. 그것이 형평성의 원칙에 부합한다. 그런데, 왜 다른 선거사범의 경우 선거관리위원회의 고발이나 수사의뢰에 의해 선거사범 수사에 나섰던 검찰이 유독 조승수에 대해서만은 선관위와 관련없이 직접 수사를 하고 공소제기까지 하였는가가 의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시민25는 형평성을 이야기하면서 검사의 '구형'에만 논의를 한정하였는데, 이러한 범위의 한정이 사실은 '형평성'을 잃은 주장이라는 것이다. 시민25가 '형평성'을 이야기하고 싶었으면 당연히 검사의 혐의포착 및 수사착수에서부터 그 '형평성'의 문제가 제기되어야 한다.

 

대한민국 검찰 상당히 바쁘다. 다른 사건들도 한참 많고, 때마다 국정감사철이 되면 주성영의원과 폭탄주 마시고 뉴스거리도 만들어줘야하는 참으로 공사가 다망한 사람들이다. 그러다보니 선거사범에 대한 직접수사를 선거철마다 천명을 하더라도 혐의포착부터 수사개시를 직접 담당하기 너무나 어려운 사람들이다. 그래서 선관위의 고발에 목매달고 선거사범 수사를 하는 거다.

 

그렇게 바쁜 검찰이 하필 민주노동당에 대해서만큼은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선관위조차 문제제기를 하지 않은 사안에 대해 수사를 진행하고 공소제기까지 하게 되었는가? 왜 이런 친절을 베풀까? 이것에 대해 시민25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실까?

 

한 가지 덧붙이자면 이 의문에 "노무현 정권의 검사"라는 수식어를 더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노무현 정권만의 문제로 본질을 희석시키기 때문이다. 전두환 정권때는? 노태우 정권때는? 김영삼정권이나 김대중정권때는 특히 검사들이 형평성을 잃지 않고 있었나? 노무현 정권에 대한 비판은 따로 제기해야할 문제이다. 이런 식의 수식어를 통해 문제의 외연을 확장하는 것은 전형적인 물타기일 뿐이다.

 

3. 법원이 정실이나 이해에 따라서 형평성을 잃고 부당한 양형을 가했는가?

- 시민25가 전제하는 것처럼(사실 그 전제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점은 위에서 지적했지만) 법률을 위반한 것이 사실이라면 조승수 의원에 대한 형량을 가볍게 요구할 것이 아니라 다른 선거사범에 대해서도 강력한 처벌을 할 것을 주장하는 것이 논리상 타당할 것이다. 그런데 대법원에 대한 비판 중 다른 선거사범에게 내려진 결정에 대한 비판은 없나? 전혀 아니다. 사실관계를 허위로 기재한 유시민은 무죄다. 향응접대 등을 행한 다른 의원들의 경우는 형량이 과도하다는 이유로 파기환송되었다. 이에 대해 사람들이 비판하지 않고 있나?

 

물론 다른 의원들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는 과정에서 조승수 의원에게 내려진 형량이 과도하다는 비교론이 등장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그 비교론은 궁극적으로 '조승수에 비해 다른 의원들의 형량이 약하다'는 논리가 아니라 왜 '조승수에게는 가혹하면서 다른 의원들에게는 관대한가'에 대한 의문이다. 시민25가 제기한 의문처럼 혹시 "법원이 정실이나 이해에 따라서 형평성을 잃고 부당한 양형을" 가한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바로 이 점에 대해 궁금해하고 있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결이 있었으므로 당연히 위법한 행위를 한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면 이 의문은 가질 필요가 없다. 위법한 짓을 했으면 당연히 처벌을 받아야 하는 것이고, 그 위법성의 정도를 판단한다면 법원의 양형은 형평성 이전에 법률의 규정에 따른 당연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양형과정의 부당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가장 결정적인 원인은 "통상의 정당활동"이 왜 선거법 위반으로 처벌되었어야 하는가이다.

 

 

시민25의 글 중 마지막에 해당하는 부분에서는 사실 어이가 없다.

"정의감이 앞선다면 범죄자를 옹호하지 말고 구체적인 문제점을 들어 형평성 시비를 벌이거나 법률을 제정한 국회를 비난해야할 것이다"

 

조승수가 위법행위를 했다는 전제 하에서만 가능한 판단이다. 누가 지금 '범죄자'를 옹호하고 있는가? 누가 지금 '구체적인 문제점'이 아니라 추상적이고 자의적인 판단으로 사건을 재단하고 있는가? 왜 사법부의 문제가 분명한 사건을 입법부의 문제로 치환해야 하는가? '딱지놀이' 그만하시길 바란다. 조승수 의원 면직사건과 관련하여 대법원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범죄 옹호자' 딱지를 붙이는 것은 별로 좋은 모습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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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0/01 13:41 2005/10/01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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