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의 침묵과 전태일의 부활
프레시안에 가슴아픈 기사가 실렸다. 울산 현대미포조선 해고노동자 김석진씨의 큰 딸이 대법원장에게 보낸 편지가 올라온 것이다. 가슴이 멍해진다.
카피해서 붙일려고 하다가 길지 않은 문장이라 모두 옮겨 워딩을 했다. 그런데 이 짧은 문장을 키보드로 쳐내려가다가 그만 울컥하고야 말았다.
소연이는 '전태일 아저씨'가 왜 분신했는지 이해가 간단다. 16살 그 어린 나이에 뼈속까지 각인된 고통의 상처가 30여년 전 제 몸을 불살랐던 한 노동자의 심정과 코드를 맞춘다.
소연이는 '전태일 아저씨'가 왜 존경을 받는지 이해가 간단다. 스스로 노동해방의 깃발이 되어 산화해간 모든 노동자들의 한이 전태일이라는 이름으로 대표되고 있음을 이 소녀는 알고 있다.
미래의 단 꿈에 젖어 있어도 모자랄 나이의 소녀에게 이런 각성을 안겨준 것은 자본의 착취이며 정권의 폭력이며 법의 무능이다. 자꾸만 자꾸만 새로운 전태일을 탄생시키는 복제기능을 갖춘 이 자본과 정권은 지들의 이해를 달성하기 위해 법이라는 무기를 이용한다.
사법판단의 책임을 맡은 법원은 손배가압류, 접근금지, 구속, 징역, 벌금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노동자들의 손발을 묶는다. 자본의 이익이 분명한 사안에 대해서는 이러한 방법들을 동원해 신속하고 강력한 조치를 취한다. 그러나 자본의 이익이 분명치 않은 사안에 대해서 법원은 늘상 그렇듯이 침묵하면서 시간을 끈다. 노동자의 피가 말라 붙을 때까지.
언제까지 우리의 전태일은 계속 부활해야 하는가... 왜 전태일은 모란공원 한 구석 자신의 자리에서 편안히 안식을 취할 수 없는가? 그렇게 전태일을 부활시켜야만 자본과 정권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는가?
오늘 소연이의 편지 한 구절 한 구절을 보면서 가슴이 아프다.
눈물이 난다.
답답해서 한숨만 나온다....
대법원 재판장님께
대법원 재판장님께 드립니다. 저는 울산 현대미포조선에서 97년 해고되어 8년째 복직투쟁을 하고 있는 김석진 해고노동장의 큰딸 김소연(중2, 16세)입니다. 8년 전 저와 동생이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다닐 때 아빠는 해고되었습니다.
해고 후 지금까지 아빠는 8년간 생계비 한 푼 지원받지 못했습니다. 얼마전 아빠와 노조활동을 같이했던 대의원들이 아빠가 복직되면 회사 8년 무분규 전통이 깨어질 우려가 있다면 아빠의 복직을 반대한다는 진정서를 대법원에 제출했을 때 아빠와 엄마는 정말 괴로와 했습니다.
아빠는 혼자서 변호사를 사서 지금까지 소송을 하여 왔습니다. 아빠께서 회사정문에서 180여 일간 철야노숙과 43일간 단식을 할 때 저는 엄마와 동생과 함께 나서기도 했습니다. 그 당시에 아무것도 모르는 동생과 저는 농성장에 찾아오는 아저씨들의 용돈과 과자가 좋아서 함께 있었습니다.
8년이 지난 지금 저는 중학교 2학년이고 동생은 초등학교 5학년이 되었습니다. 저는 몇 개월 전 간단하게 쓰여진 전태일 아저씨 관련 책을 읽고 난 후 아빠께 부탁해서 전태일 평전을 구하여 읽어보았습니다. 그 당시 전태일 아저씨가 왜!! 분신을 하셨는지, 왜!! 2005년 지금도 전태일 아저씨가 존경을 받고 있는지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이해가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아빠는 울산과 부산법원에서(1, 2심) 복직판결이 났는데 대법원에서 3년 3개월 째 판결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아빠 말씀대로 굉장히 어렵고 복잡한 정치사건이 아닌 생계사건은 1년 정도면 다 판결이 난다고 합니다.
아빠는 저희들에게 한 달이 지나면 한 달만 더 기다려보자 했고 계속 3년 동안 동생과 저에게 똑같은 말씀만 하여왔습니다. 3년 동안 동생과 저는 가지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꾹 참고 한 달 한 달 아빠 말씀대로 기다려 왔습니다. 동생이 투정을 부리면 아빠께서 힘들어 하실까봐 동생을 달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얼마를 더 기다려야 합니까.
아빠께서 복직투쟁하는 모습을 보고, 전태일 평전도 읽어보고, 대법원의 판결이 왜!! 늦어지는지 들으면서 법은 힘없는 사람들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엄마는 가끔 친구분들과 전화할 때 하루 하루 피를 말리는 심정으로 대법원 판결을 기다린다고 합니다. 돈이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될지 모르지만 8년을 해고가족을 살아온 저희 가족에게는 가족 전체의 희망과 절망이 걸린 중요한 문제입니다.
존경하는 대법원 재판장님, 하루 빨리 판결을 받아 아빠께서 회사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2005. 5. 29. 큰 딸 김소연(16살)
동감합니다.
하지만 한숨보다는 소연이에게 희망을 느낀답니다. 훨씬 더 아름답고 즐거우면서도 자신의 능력을 스스로 발휘할 수 있는 세상을 꼭 소연이와 그녀의 친구들은 누려야만 할 것 같아요.
좀 쓸데없이 이상적이긴 하지만, 모두 많이 노력하면 결국 되지 않을까요?
hand/ 그럼요~! 희망도 있습니다. 이상적인 거 아니라고 보구요, 그래서 우리 모두 노력하고 있는 거 아닐까요~~ *^^* 다만 기사보면서 아프고 쓰렸던 거는 어쩔 수가 없네요... ㅠㅠ
아... 동심의 나이에 벌써 어른이 되어버렸네요...
대법원이 재판을 질질끄는게 한쪽에서는 또 이런 피해를 입는군요. 업무방해나 집시법으로 기소된 경우에는 마냥 대법원에서 재판을 하지 않는게 노동자가 유리할 때도 있던데 말이죠. 하튼 대법원은 법원이 아니라 정치꾼들이에요..
not/ 어떤 계기고 어른이 되는가에 따라 축하를 해줄 수도 있겠지만... 이건 너무 아파...
산오리/ 그렇더라구요. 헌법재판소 재판관들, 대법원 판사들... 법과 양심에 따라 판결을 하겠다던 선서는 어디로 가고, 도망다니고 피해다니면서 자리보전이나 하는 방법으로 법을 이용하는 이들은 정치꾼들하고 다를 바가 없죠. 참 치사한 인간들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