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팔찌
한나라당, 여론 80%의 찬성을 얻는 놀라운 정책을 발표했다. 성폭력범죄자들에게 전자팔찌를 채워 수시로 감시하겠다는 거다. 재범율이 83% 이상을 상회하는 성폭력범죄자들의 팔목마다 위치추적이 가능한 팔찌를 채워 24시간 감시함으로써 재범을 막고 잠재적 피해자들을 보호하겠다는 거다. 아니, 한나라당에서 어찌 이리 기특한 발상을?
취지는 그럴싸한데 내용을 보면 하나도 기특하질 않다. 오히려 얘네들이 그럼 그렇지 하는 정도의 생각만 들 뿐이다. 어째 하는 발상이 쿠데타정권 국민통제하던 그 시절의 수준에서 한치도 벗어나질 못하고 있는지... 영국, 미국, 호주 등의 사례를 들면서 외국에서도 이러한 사례가 있다고 선전질을 하는데, 갖다 붙일 것을 붙여야지, 그래 잘 못한 것도 외국이 하면 따라해야 하는 건가?
우선 전자팔찌라는 전자적 감시도구를 사용해서 성폭행범죄자들을 감시한다는 발상, 이거 인기끌기에는 탁월한 효과가 있는지 몰라도 별로 신선한 이야기는 아니다. 워낙 이런 거 하자고 주장한 사람들도 많았고, 특히 경찰관계자들이 예전부터 계속 떠들어왔던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동안은 한 마디 말도 없었던 한나라당이 왜 갑자기 이 신선하지도 못한 이야기를 들고 나온 걸까?
한나라당, 그동안 성폭력범죄자들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었는지 잘 모르겠다. 알고 싶어도 별로 이야기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성폭력범죄자들에 대해 매우 경미한 수준의 양형이 계속되고 있었을 때 한나라당의 입장은 뭐였을까? 밀양이나 기타 지역에서 집단 성폭행사건이 죽죽 벌어지고 있을 때, 한나라당은 어떤 입장을 취했었나? 성폭행범죄 피해자들이 2차, 3차 가해를 입고 있는 것에 대해 한나라당은 어떤 입장일까? 형법상 친고죄로 규정되어 있는 현행 제도상의 문제에 대해 한나당은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을까?
알 수가 없다. 왜냐? 이런 거에 대해 그동안 별반 이야기도 없었던 것이 한나라당이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성매매관련 특별법 시행과 단속이 이루어질 경우 여성비하적 발상의 발언을 의원들이 틱틱 던질 때 입 닥치고 아무 소리도 하지 않았던 것이 한나라당이었다. 그랬던 한나라당이, 갑자기 성폭력범죄에 대하여 대오각성,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래도 그런 관심 없는 것보다는 많이 발전한 거 아닌가??
가해자의 인권 운운하고 싶지는 않다. 이성적으로는 가해자의 인권을 이래서 지켜줘야한다는 이야기를 할 수 있지만, 감정적으로는 성폭력범죄라는 파렴치한 죄를 지은 사람들에게 동정심이 별로 가지 않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해자 인권을 빼고라도 전자팔찌 이전에 해야할 일이 너무 많다.
우선, 현행 법제도다. 형법이 성폭력범죄를 친고죄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 아주 잘못되었다고 이야기하긴 어렵다. 나름대로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까지 성폭력범죄의 피해자들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각이 저열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쉽게 이야기하면 '당했을 땐 당할만한 이유가 있다'는 식의 생각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다는 거다. 지난번 경남 지역에서 벌어졌던 집단 성폭행 사건 당시 가해자의 부모들이 보여주었던 행동이 그 대표적인 경우다. 이런 상황에서 피해자가 더 이상의 모욕 등을 당하기 싫어 고소를 하는 등의 대외적인 피해사실 확인작업을 하지 않겠다고 한다면 이를 충분히 보장해주어야 한다. 친고죄 규정을 둔 이유 중의 하나다.
그러나 바로 이 친고죄 규정으로 인하여 현재 우리나라에서 성폭력범죄가 고소 고발되는 건수는 전체 범죄의 5%도 되지 않는 것으로 추정된다. 성폭행범죄자들이 활개를 칠만한 제도적 불비가 분명히 존재하는 거다. 피해자들에게 이루어지는 2차 3차 가해를 최대한 피할 수 있는 방법을 만들어내면서 친고죄 규정에 대한 재검토가 반드시 이루어져야만 한다.
수사과정이나 재판과정에서 벌어지는 문제도 성폭행범들에게 유리할지언정 피해자들에게 유리하지는 않은 것이 현실이다. 수사과정에서 아직까지도 피해자들의 인권이 충분히 보장되지 않는다. 신고했다가는 되려 '나쁜 년'으로 낙인찍히기 딱 알맞은 거다. 이런 상황에서 자발적인 신고 또는 고소가 원활하게 이루어지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재판과정에서 터무니 없는 양형이 이루어지는 것도 문제다. 정신지체장애인인 친딸을 수년간 성폭행해왔던 친부에 대해 어처구니 없을 정도의 경미한 죄책을 물은 최근의 사건에서도 이러한 문제가 여실히 드러난다.
성폭행범죄자들에 대한 교정 교화작업이 매우 불성실하게 이루어지고 있거나 아예 이루어지지 않는 것도 문제다. 재범율이 지극히 높다는 것은 그만큼 재범의 유혹에 쉽게 넘어갈 수 있는 여건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까놓고 말해 '재수 없어서' 걸리지만 않으면 성폭력범죄만큼 위험부담이 적은 범죄가 없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 제도적인 정비만으로는 부족하고, 가해자들로 하여금 자신의 죄가 얼마나 위험천만한 것이며 한 사람의 인생을 여지없이 망치는가를 인식하도록 교육하여 다시는 재범을 저지를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유도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연전에 여성부가 이러한 교육프로그램에 대한 계획을 내놓은 바 있지만 구체적인 진척이 이루어지지 않은데다가 여성부의 계획 자체가 의무적 교정교육을 설정한 것이 아니라 문제가 있다. 하루 속히 구체적인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성폭행범죄자들은 물론 성폭력예방교육의 전면적 실시가 이루어져야 하겠다.
가해자의 인권을 운운하지 않더라도 이렇게 선행되어야할 과제가 산적해있다. 그런데 지금 한나라당, 이런 선행과제에 대해서는 한 마디 언급도 없이 덜컥 전자팔찌 운운하고 있다. 지들이 공안기관인가? 도대체 정책과 비전을 제시하고 법률을 제정해야 하는 입법기관의 자세가 되먹질 않았다.
선행되어야할 조치가 분명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무시한 채 최후의 수단을 사용하는 것은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과잉침해금지의 원칙을 위반하는 것이다. 입법기관인 국회의 의원들이라면 바로 이러한 측면에서 고민에 고민을 한 후에 법제를 마련해야만 한다. 그런데, 지들의 의무는 방기한 채 다른 여타의 방법에 대한 고민도 없이 최후의 수단으로 사용해야할 24시간 상시 감시체제를 구축한다는 것은 한나라당 스스로가 헌법수호기관으로서의 의무를 하지 않겠다는 것을 선언하는 것이다. 이게 지난 대선에서 법치주의를 부르짖었던 한나라당의 참모습이다.
외국의 사례 너무 좋아한다. 한나라당이 예를 든 몇몇 국가의 사례 이외에 또 어느 나라가 이런 식의 전자감시시스템을 도입했는가? 도입한 그 국가들에서는 얼마만큼의 실효성이 있었는가? 한나라당, 여전히 이렇게 자신들에게 불리한 측면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다.
그렇다면 한나라당이 갑작스레 이런 정책을 발표한 그 저의가 의심스러워진다. 왜 하필 이 시점에서 이런 정책을 발표했을까나? 그러고보니 며칠 후 430 보궐선거가 있다. 그동안 열우당과 택도 없는 거 가지고 허벌나게 싸움질이나 하던 한나라당, 뭔가 여론으로부터 반짝하고 지지를 얻을 방법을 고민했던 거다. 그리하여 나온 것이 전자팔찌. 성폭력범죄를 예방하고 재범을 방지하겠다는데 이거 반대할 사람이 대한민국에 몇 명이나 되겠는가? 테마는 아주 그럴듯 하게 잡아냈다. 성폭력범죄의 피해자들이 겪는 피해, 가해자들을 빙자하여 이루어지는 인권침해에 대한 고민보다는 정치적으로 이용해먹을 이슈를 개발하는 차원에서 성폭력범죄가 동원된 거다.
차라리 전자팔찌를 국회의원들에게 먼저 시범적용해보자. 국회의원의 손목마다 전자팔찌 채워서 24시간 위치를 파악해보자. 맥박감지기를 설치해서 갑자기 맥박이 높아지는 현상이 발생하면 무슨 일인지 신속히 확인해보자. 운동을 하는 건지, 병세가 발작한 건지, 아니면 2세 생산작업이나 허리하학적 쾌감만족행위를 하고 있는지 확인해보자.
더 나가서 국회의원들에게 전자마스크라도 좀 씌워보자. 24시간 내내 이 인간들이 어디서 무슨 말을 하고 다니는지 낱낱히 모니터링이라도 좀 해보자. 인민들의 삶을 고민하면서 훌륭한 정책을 만들고 있는지, 뭘 먹고 있는지, 아니면 2인 1설(舌) 혀감기 운동을 하고 다니는지 그런 거 확인해보자.
그래서 실효성이 있으면 까짓거 적용하자. 국회의원들이 뻘짓하지 않고 뻘소리 하지 않도록 하는 효과가 탁월하게 나타난다 싶으면 한 번 적용해보자. 국회의원들의 헛짓거리도 예방이 된다는데야 다른 범죄자들에겐 더 없이 탁월한 효과가 발생할 거 아니겠는가? 박근혜 대표를 비롯하여 한나라당 의원들에게 우선 적용했으면 한다. 자신들이 제안한 것이니 스스로 몰모트의 역할도 좀 해볼만 하지 않겠는가?
* 이 글은 행인님의 [전자팔찌] 에 관련된 글입니다. 한나라당에서 상습 성범죄자들에게 전자팔찌를 채우겠다는 기막힌 소식을 들은 나의 반응은 일단 실소였다. 전자팔찌라는 무시무시한 제
* 이 글은 행인님의 [전자팔찌] 에 관련된 글입니다. 이건 엄연한 인권 침해다. 무슨 배틀로얄 목걸이냐-_- 솔직히 범죄자의 인권을 보장한다는걸 조금 웃긴일일지도 몰라. 근데
* 이 글은 행인의 [전자팔찌] 하고도 관련된 글이라고 할 수 있다. 1. 예전에... 예전에 들락거리던 어느 사이트에서 '성소수자의 성적 경향이 왜 발현하는 것인가'에 대해 논쟁이 있었다. 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