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왜 하는 거야?
밤샘작업하다가 한시간 남짓 졸고, 새벽같이 집으로 향했다. 정확히는 집이 아니라 집 근처의 초등학교. 민방위 소집훈련을 하는 날이다. 민방위 6년차... 45세까지 이 지긋지긋한 짓을 해야하다뉘... 그래도 도장만 찍고 오는 거니까 빨리 찍고 다시 당사로 돌아와 일을 해야겠다고 맘 먹고 훈련장소인 초등학교로 향했다.
훈련장으로 들어가는데 어째 분위기가 이상하다. 영 어색한 현수막이 걸려있는 거다. 민방위 소집훈련 시범 어쩌구 하는 내용인데, 좀 재수없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 사람들이 죄다 모여 있었다. 보통 소집훈련은 통지서에 도장받고 그냥 가는 건데, 왜 사람들이 운동장에 모여 있는지 궁금해진다.
게다가 운동장 앞쪽 구령대(맞나? 사열대 같이 생긴 거...) 앞으로 통장들이 자기 통번호가 씌여진 팻말을 들고 주욱 서있다. 이거 도대체 뭔 일일까?? 구령대 옆에는 누런 공무원 작업복을 입은 머리 희끗희끗한 사람들이 줄지어 서있다. 이거 상당히 껄쩍지근한 느낌이다. 저사람들은 도대체 뭘까?
알고봤더니 이번에 우리 동네가 민방위 비상소집 시범지역으로 선정되어 구청장을 비롯하여 다른 동의 동장들과 공무원들이 죄다 총출동한 것이었다. 하여튼 별 쓰잘데기없는 짓들은 골라가면서 한다. 꼭두새벽부터 사람들 불러낸 것도 모잘라서 쑈를 벌이고 앉았다. 예행연습까지 한다. 이거 뭔짓들인가?
민방위의 목적
- 적의 침공이나 전국 또는 일부지방의 안녕 질서를 위태롭게 할 재난(민방위사태)으로부터 주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하여 응급적인 방재, 구조, 복구 등의 활동을 전개하여 민방위사태를 수습하는데 그 목적이 있음
민방위의 편성
- 만20세~45세의 남자 중 군인, 학생, 예비군 등 당연편성제외자를 제외한 의무편성대상자 전원
민방위대의 임무
- 평시 : · 거동수상자 및 민방위사태 등의 신고체제 유지
· 민방위 장비 · 물자의 관리 및 시설보호
· 민방위 교육 · 훈련
· 기타 민방위사태 예방에 관한 사항
- 사태발생 및 발생할 우려 시
· 경보 및 대피
· 교통통제 및 주민소산
· 소화활동
· 인명구조 및 의료활동과 피해시설 등 복구
· 기타 민방위사태 수습을 위해 필요한 사항
민방위 교육
- 교육대상 : 민방위대 편입 1~4년차 대원
- 교육시간 : 8시간(상 · 하반기 각 4시간)
- 교육편의제도 운영
= 상설교실 : 지정일자에 교육참석 곤란한 대원을 위한 제도
= 일요 및 야간교실 : 평일에 교육참석 곤란한 대원을 위한 제도
= 현지교육 : 체류지에서 교육받을 수 있는 제도
민방위대 소집훈련
- 훈련대상 : 민방위 교육대상자(1~4년차)를 제외한 전대원
- 훈련횟수 : 년1회
※ 현지훈련 : 타 구에서는 받을 수 있으나, 관내 타동에서는 받을 수 없음
민방위의 날 훈련
- 민방공 대피훈련 : 정기훈련, 불시훈련, 훈련시간, 훈련내용
- 방제훈련 : 훈련횟수, 훈련시간, 훈련내용
※ 훈련경부 없음
민방위 훈련 굳이 할 필요가 있다고 보이나? 이런 거 비상사태시에 골목 돌아다니면서 확성기 틀어놓고 좀 모여주십사 하는 것으로 끝난다. '민방위사태'가 벌어졌는데, 자기 집구석 돌볼 틈도 없이 민방위 깃발 아래 굳게 굳게 뭉칠 정신이 어디있는가? 황산벌 결전에 임하는 계백의 결단처럼 '민방위사태'때문에 공포에 질린 가족들을 향해 민방위사태의 발생으로 인하여 국가가 나를 부르고 있으니 너거들은 공포에 떨던지 말던지 간에 국으로 방구석에 잘 처박혀 있어라 하고 바람처럼 소집장소로 달려가야 하는 건가?
완전 삽질이다. 평소 소집점검 백날 해봐야 유사시에 민방위사태 수습하기 위해 나오는 사람들 몇 명이나 될 것인가? 게다가 오늘 나누어준 민방위대 찌라시를 보면 절로 웃음이 나온다. "테러, 아는 만큼 보입니다!"라는 타이틀 아래 이런 내용이 있다.
대피요령
머뭇거리지 말고 즉시 대피하세요.
공무원이나 유도 요원이 안내하는 대피경로를 이용하세요.
집이나 대피소 등 실내로 대피하면모든 문과 창문을 닫고 환기장치를 끄세요
전원이 차단되면 고립될 수 있으므로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지 말고 계단을 이용하세요
사전계획
가족끼리 서로 연락하고 만날 방법을 정하세요
집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경우 주민자치센터, 도서관, 종교시설 등을 1차 재회장소로 정합니다.
다른 시도에 살고 있는 친척집을 2차 재회장소로 정합니다. 시내통화량이 폭주되면 시외전화로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는 것이 더 빠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내용들 이외에 장장 3페이지에 걸쳐 하나마나 있으나 없으나 알건 모르건 별 상관이 없는 '테러대비행동요령'이 실려있다. 테러발생하는 이유가 뭘까? 지들이 테러당할 짓을 하지 않으면 되는 거 아닌가? 테러당할 짓은 지들이 골라서 다 하면서 국민들에게 위험하다고 협박질 하는 것은 도대체 무슨 버르장머리일까?
암튼 이런 씨잘데기 없는 찌라시(다 보는데 5분도 걸리지 않는다)를 나눠주고 예행연습까지 하더니 기어이 본행사 진행한다. 통별로 2열 종대로 모여선 민방위 대원들, 숙연한 모습으로 행사에 참여.
행사진행순서
국기에 대한 경례
애국가 1절 제창
구청장'님' 격려사
시범훈련취지 설명(동장)
찌라시에 대한 자세한 설명(동장)
관내사업에 대한 안내(동장)
민방위대원 선서(?)
도장받고 해산
국기에 대한 경례 시간에는 찌라시를 들여다보고 애국가 부를 때는 서서 졸았다. 구청장이 격려사 한답시고 떠드는데 뭐라고 하는지 별로 들리지도 않고, 동장이 찌라시 설명을 시작할 때는 짜증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결국 "우리는"으로 시작해서 "된다"로 끝나는 민방위대원 선선지 뭔지 할 때는 혼자 춤을 추고 있었다...
그넘의 찌라시, 그거 관내 각 가정마다 집어넣어줘도 되는 찌라시들이었다. 그리고 사실 그 찌라시 다 갖다 버린다. 훈련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거의 대부분의 민방위 소집자들이 그 찌라시 다 버리고 갔다. 쓰레기만 잔뜩 양산한 꼴이다. 그거 찍을 돈 차라리 날 주지...
민방위 훈련에서 할 이야기가 있으면, 차라리 가가호호 돌아다니면서 모든 가족들이 모여 있을 때 설명해주는 것이 나을 것이다. 전시동원체제구축을 위해 만들어놓은 민방위 시스템. 이거 진짜루 재난대비를 위한 실질적인 차원의 훈련이 되지 않을 바에야 먹고 사느라고 정신이 없는 사람들 새벽같이 불러내서 도장 한 번 찍고 가게 하거나 구청장'님'의 격려사 한 판 듣게 만들려고 하는 쓸데 없는 뻘짓은 그만 하는 것이 좋겠다. 어이구... 이 짓을 45까지 해야하다뉘... ㅠㅠ
"민방위 엿같다!!"라는 말을 이렇게 친절하게, 세세하게도
설명을 해주시다니...배도 안고픈가보우~ ㅎ
그리고, 행인은 아무리 '말'로 먹고 산다고 해도 때로는
'실전' 한방이 더 약효가 크다는걸 알고나 있는지...
막걸리는 언제 "같이 먹을"건가 해서..ㅡㅡ;;
전 그래도 어서 예비군 마치고 민방위 하고 싶은걸요 쿨럭;;
어이구 그 돈 저도 받을래요!!! 받아서 구청장이름으로 여러 단체에 후원...
머프/ ㅋㅋㅋ 원래 말 많은 행인 아니요~! 그나저나 '실전' 막걸리 프로젝트 가동하기는 해야하는데, 우짤까, 이거 영 시간이... 쩝...
와니/ 아아... 예비군... 추억속의... 그나저나 예비군도 정말 징글맞게 지겹던 기억이 나네요 *^^*
덩야/ ㅋㅋㅋ 원츄~~~!!! *^^*
민방위.... --; 난 글씨.. 여직 민방위를 한번도 안받았음...
예비군끝나고 한해는 어리버리 지내고, 다음해는 학교에 잠시 다니느라 일년빠지고 그후 어찌된일인지 통지를 받아본적이 없음.
ㅜ.ㅜ 정신없이 살다보니 그런걸 받아야하는지 깜박하고 지냈는데 슬슬 걱정이 되기도하나... 걍 무시하고 살고있음
낯선/ 그거 무시하고 살 수 있으면 그게 장땡이에요. 이거떨이 누구 차별하나... 누군 쎄가 빠지게 쫓아다니면서 통지서 꾸겨넣어주고 누군 입때껏 통지서 하나 안보내고... 그래도 낯선, 이 사실 어디 가서 이야기하면 안되는데... 귀신같은 공익들이 눈치채고 통지서 받으라고 쫓아다닐지도 몰라요...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