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장 시민후보론에 대한 단상
1)
일전에 서울/부산/(경남?) 보궐선거에 시민후보를 내는 것이 어떨까하고 아이디어를 내본 적이 있었다.
실제로 그런 움직임이 있다. 지난달 말경부터 각계의 사람들이 모여서 시민후보 논의를 진행했다. 지켜보고 있었는데 어느 정도 진척이 있었나보다. 그렇게 해서 최근 서울시장에 시민후보 제안자 참여를 요청하는 문건 하나를 돌리고 있다. 그런데 아마도 이게 완성된 제안문인 듯한데 영 껄끄럽다.
일단 "뜻을 같이 하는 시민 개개인, 시민사회단체, 진보정당 모두가 참여"하자는 틀에는 별 이견이 없다. 보수양당에 대한 문제제기 역시 별반 특이한 점은 없고.
그런데 제안문을 보다보면, 왜 이런 사달이 벌어지게 되었고 거기에 어떤 입장이 있어 이런 사업을 하게 되었는지가 명확히 보이지 않는다. 그냥 통상 장삼이사들이 할 수 있는 비판 수준에서 양 보수정당을 비판하고 있을 뿐, 시민후보 논의까지 나오게 된 결정적 계기에 대해선 그냥 두리뭉술하게 넘어가고 있다.
게다가 서울 시장 뽑자고 모이자면서 제시하는 여러 의제들은 대선후보 선출하자고 제안하는 게 아닌지 헷갈릴 정도다. 무슨 미국에 굴종적인 태도가 나오고 생명멸종에 거대한 이야긴 다 나오는데 그런 문제들이 죄다 응축된 곳이 서울이란다.
뭐하자는 건가? 지구적 위기의 응축형태로 퉁치고 넘어갈 정도로 이 제안문 준비한 사람들이 서울이라는 지정학적 위치에 대해서는 별다른 이해가 없다는 것으로밖에 보이질 않는다.
게다가 시민후보로 만들어보자는 서울의 비전이 '스마트 시티 서울'이라니... 이거 전 시장의 주력 사업 아니었나? 게다가 통상 이야기하는 '스마트 시티'가 무엇인지에 대해선 거의 고민이 없는 듯한 이 제안문에는 '자유롭고 평등한 스마트 시티'라는 수식어가 달려 있다.
누구의 자유? 어떤 평등?
이런 조잡한 제안문으로 서울시장 시민후보를 만들어보자고 한다는 건 서울시민을 아주 우습게 여긴 게 아닌가 싶은데.
서울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으면 서울에 대해 잘 아는 사람 찾아가 삼고초려하는 성의라도 보여야 하지 않나? 누구에게 찾아가야 할지 모르겠다면 내 서너명 당장 추천해줄 수도 있는데. 보수 양당에 얽매이지 않은 사람들 중에서.
안타까운 건 한국 시민사회의 역량이라는 게 이 수준이라는 것이 들통났다는 거다. 지난 총선에서도 일단의 '시민사회' 내지 '시민 원로'라는 분들이 위성정당 만들자고 삽질을 하는 통에 망신도 그런 망신이 없었는데, 그 망신살이 실은 시민사회의 보편적 수준이었다는 걸 이 제안문이 보여준다는 거.
이러니 이젠 어디 가서 다시 시민후보 만들어보는 게 어떨까 말 꺼내기가 민망해진다. 이게 한계인가...
2)
'서울'시장보궐선거에 '시민후보'를 내고자 한다면, (i) 그 배경 또는 원인 (ii) 정세에 대한 판단 (iii) 대안, 이런 것들이 제시되어야 한다.
링크한 글은 얼핏 이 요소들을 다 갖춘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서울'에 관한 이야기는 거의 없다.
(i) 왜 '서울' 시장 보궐선거가 치러지게 되었는가? 어쩌다 이렇게까지 시민후보를 이야기할 상황이 되었는가? 이것이 이야기 되어야 한다. 전 시장의 공과도 검토해야겠고, 공석이 발생하게 된 상황에 대한 평가도 해야 한다. 그래야 보궐선거가 발생하게 된 원인을 없애겠다는 대안과 이어진다. 링크한 글에는 그게 없다.
(ii) 어떤 정세에 대한 판단이 필요한가? '서울' 시장 보궐선거니 당연히 '서울'에 대한 정세판단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링크한 글에는 그게 전혀 없다. 기껏 글 말미에 "강남과 강북이 고르게 잘 사는" 정도만 언급된다. 그게 '자유롭고 평등한 스마트 시티, 서울'이라는 비전에서 나오는 '서울' 이야기의 전부다.
- 물론 이건 은연중에 내면화된 '서울중심주의'의 단면이다. "서울=한국"으로 생각하니 이렇게 되는 거다.
- 또한 시민후보를 준비하자는 분들이 정작 '서울'에 대해선 전혀 아는 게 없다는 것을 드러낸다.
(iii) 그렇기에 링크한 글에서는 '서울'에 대한 대안이 없다. 시장직이 공석이 된 원인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해선 일언반구도 없다. '서울'의 현안을 놓고 시민들의 호응을 불러 일으킬 부분이 전혀, 정말 전혀 없다.
이런 식의 소위 '시민참여정치'가 어떻게 흘러 갔는지는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누차 확인한 바 있다. 거악퇴치 우선, 통 큰 단결, 차선의 선택, 그리하여 민주당에 흡수...
이런 전례를 염두에 두자면, 왜 이 시민후보 제안이 앞에 열거한 몇 가지 요소를 두리뭉실하게 넘어가고 있는지 눈에 보인다. 이 시민후보는 결코 민주당과 싸우지 않는다. 싸울 수가 없다. 싸우면 안 된다. 그래서 처음부터 싸우게 될 상황은 피해놓고 시작하는 거다.
이러면 안 된다. 대안후보를 내고 싶다면 그에 걸맞은 제안을 해야 한다. 시간이 얼마 없다. 이런 식으로는 "새로운 사회의 지평을 열고 진보를 재편하고 시민사회를 조직화하는 굳건한 디딤돌을 놓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