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정 합의가 무산되어 안타깝다는 문통
노사정합의 때문에 말이 많은데, 뭐 이걸 '사회연대'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꽤 있긴 하지만, 아무튼 그냥 노사정 합의라고 하고. 문통이 이거 무산된 것을 두고 민주노총에게 불만을 표한다. 글쎄다, 뭐 불만이 있을 수야 있겠지. 정부 입장에서는 이 감염병 경제위기국면에 노동계가 한 발 양보해야지 뭐 하는 거냐, 이런 기분일 수도 있겠다. 예전에 "이 가뭄에 웬 파업이냐" 이러면서 레미콘 파업 씹어대던 조선일보가 떠오르긴 한다만.
문대통령 "노사정합의 무산 대단히 아쉽다", 민주노총 비판
노동운동계 일각에서도 이번 노사정합의가 물 건너 간 것에 대해 아쉬움을 표하는 사람들이 있더라. 맨날 입에 투쟁만 물고 살면서 실제로는 쥐뿔도 못하는 것들이 조금이나마 뭐라도 하려는 사람들 발목만 잡고 있다는 불만도 나오는 듯하고. 그럴 수 있다. 작은 거 하나라도 차근차근 만들어가야 나중에 더 큰 거 만들어낼 수 있을 거 아니냐는 그런 취지겠지. 그 선의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 이거다.
1998년 노사정 당시를 반추해보자. 지금은 코로나로 난장판이 벌어졌지만 그 때는 IMF였다. 아주 당장 나라가 절단 날 듯한 상황과 분위기가 팽배했었고. 따져보자면 난 그 때보다 오히려 지금이 더 문제적 상황이라고 생각하지만 이건 그냥 패스하고. 암튼 간에 그 때도 경제위기 극복하자면서 노사정이 모였더랬다.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그해 6월에 노정합의가 이루어졌고, 민주노총이 참여하는 노사정이 재개되었더랬다. 사실 여기까지 오는 과정에서 민주노총 내부는 극심한 갈등이 있었고 지도부가 죄다 엎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적어도 당시 민주노총 내부에서는 총파업에 대한 의지와 정부와 자본의 기만적인 경제극복방안을 투쟁으로 저지하겠다는 의지가 있었다. 그 덕분에 적어도 6.5 노정 합의가 나올 때까지만 해도 금융기관 민영화에 브레이크가 걸리기도 했고, 민주노총 등 노동계가 요구하던 일단의 의제들이 논의의 핵심으로 부상하기도 했다.
그런데 말입니다. 6.5 노정 합의가 이루어지고 본격적으로 노사정 2기 시작된 후에 무슨 일이 벌어졌던가? 아 그전에, 6.5 노정합의문부터 다시 꺼내보자. 죄다 읊을 수는 없지만, 아무튼 중요한 건 이렇게 되어 있었다. 몇 가지 성과물도 없진 않았다. 대표적인 것이 전교조 건. 98년 정기국회에서 관련 법을 마련하기로 한 것이 그것이다. 그런데 그 외에 건들은?
예를 들어 정리해고와 파견제.
정리해고제․파견제에 대하여
1) 정리해고제․파견제와 관련하여 노사가 제기하는 문제점과 남용방지에 필요한 제반방안을 논의한다.
2) 사용자가 해고회피노력을 다하도록 하고 고용보험 등 다각적인 지원방안을 노사정위원회에서 논의․보완토록 한다.
3) 파견제시행에 있어서 기존근로자의 고용불안 및 노조활동 침해방지에 적극 노력한다.
4) 고용안정 및 경쟁력강화를 위한 노사정공동노력방안을 집약시킨 종합적 모델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한다.
"논의한다", "논의 보완한다", "노력한다", "노력한다"... 뭐 제대로 딱부러지게 어떻게 하겠다는 이야기는 없고. 노력하겠다는 말만 있다. 특히 저 3)번 항목을 보면, 저 문구는 기본적으로 정규직 노동자들의 지위안정을 중심에 놓는 것이 전제되는데, 기실 바로 이러한 방향성이 정규직과 비정규직, 원청노동자와 하청노동자를 분할 지배하는 기본적 방침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 일들이 벌어졌다. 이 노정합의 이후 어떻게 상황이 흘러갔는지를 전부 복기할 필요는 없을 거다. 복기고 자시고 간에 오늘날 상황을 보면 저 합의의 결과가 무엇인지 다들 뼈저리게 느끼고 있을 테니.
적어도 여차하면 1996 연말 1997 연초에 보여줬던 위력적인 총파업이 재개될 수 있다는 저력이 있었던 상황에서조차 일이 이렇게 흘러갔다. 그런데 그때나 지금이나 그다지 차이가 없는 합의안을 저지할 수 있는 의지조차 보여주지 못하면서 덥썩 물었다가 그 이후에 뭔 일이 벌어질지 감당이 안되는 거다. 더구나 이번 합의 내용을 두고 '사회연대'로 칭하는 건 아무리 봐도 과대포장일 듯하고.
감당도 못하면서 투쟁만 입에 물고 다니는 것에 동의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합의를 하겠다면 그 전에 참여 당사자들이 서로에게 납득할만한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 최소한 정부가 과거 IMF때와는 다르게 이번에는 자본편을 들지 않고 노동의 입장에 서겠다든가 뭐 이런 거라도 있어야지. 아, 물론 그렇게 되면 자본측이 손 털고 나가려나? 어쨌든 신뢰할 수 있는 뭔가가 있어야 합의고 사회연대고 하는 거지 이건 뭐 노사정 시작도 하기 전에 노동계가 완전 양보하고 들어오면 좋겠다는 말을 총리가 내뱉는 상황에서 내용도 IMF 당시보다 그닥 나아진 게 없는데 뭘 믿고 합의를 하겠다는 건지 잘 모르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