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맥락
한국에서 정치인들의 존재는 안주거리로 빛난다. 그렇게 소줏집 한 구석에서 안주삼아 정치인들을 씹는 맛의 백미는 그들이 한 말의 꼬투리를 잡는 거다. 그런데 대부분 그 와중에 씹히는 정치인이 한 말의 맥락이라는 건 소실되거나 왜곡된다.
가장 대표적이었던 케이스가 이명박의 "바치겠읍니다" 사건. 이명박의 맞춤법이 틀렸다는 게 언론에 나오자 이명박을 씹었던 자들이 다 들고 일어나 이명박을 조리돌림했다. 아니 대통령이 맞춤법을 틀렸다고? 이런 나라 말아 먹을 놈이 무슨 대통령이여? 거의 이 수준. 이럴 때 양념처럼 등장하기 좋아하는 이외수 같은 자들은 논술학원 강사의 혼이 빙의한 듯 맞춤법 교정한 걸 또 공개하고. 그나저나 이외수는 아직도 화천에서 엉덩이 붙이고 연명하고 있는갑네.
솔까 난 이 대목에서 어이가 없었던 게, 아니 그 나이 또래 학교다녔던 사람들 중에 과연 "바치겠습니다"라고 배운 사람 몇이나 되는지 한 번 따져나 보고 주접들을 싸던가. 내가 어쩌다가 이명박을 옹호하게 될줄이야 꿈에도 몰랐다만, 정도껏 까야지. 물론 어륀지 사태를 겪은 후의 인심이라는 게 영어교육 강조하기 전에 한글교육부터 제대로 배우고 오라는 분노가 고조된 상태였다지만, 그냥 웃고 넘어갈 헤프닝을 무슨 정권교체라도 해야 할 일처럼 설쳤던 건 오바 중의 오바였다.
뭘 하든 욕을 처먹는 게 정치인의 숙명이라고 하지만, 깔만한 일이 아닌 걸 들이까다 보면 정작 까야 할 일을 까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서 모두까기인형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얼마전에 황교안이 죽은 개를 추모하며 "작고"라는 표현을 썼다가 또 여러 사람 입길에 올랐다. 그런데 그 말을 할 때의 상황을 보면 그가 의도했던 건 개만도 못한 인간들에 대한 혐오가 발동해서 그렇게 이야기한 게 아니라 그냥 웃자고 한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이번엔 정세균 총리가 시장에서 한 말이 입길에 오른다. "손님이 적으니 좋으시겠네"라고 한 표현때문인데, 이게 얼핏 들으면 장사 안 되서 죽을 지경인 상인의 염장을 긁어놓는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당시의 정황이라든가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을 보면 이게 상인들의 처지를 몰라서 한 말이라거나 상인들을 약올리려고 한 말이 아님을 금방 알 수 있다. 그런데 이걸 두고 온통 난리가 난다.
물론 정치인의 말 한 마디는 무거운 것이어서 그 표현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는 걸 부정하진 않는다. 하지만 정치인도 사람이고, 표현을 실수할 때도 있다. 당연히 그거 하나 하나 따져 묻는 시민들이 있을 때 정치인들은 스스로를 경계하고 자신을 쳐다보는 사람들을 신경쓰게 된다. 기자들이 있는 곳에서는 더욱 조심할 수밖에 없고. 그런데 맥락을 소거한 채 비방을 위하여 말꼬투리를 잡는 것도 너무 심하면 지겹다. 되려 입길에 오른 정치인들이 불쌍해보이기까지 하다.
이명박이나 황교안이나 정세균을 안타까워할 이유가 없는데 이런 따위로 불쌍해보이면 내가 더 처량해진단 말이지. 거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