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발로 호치민 5 - 오토바이와 보행자
항상 놀라는 거지만, 이 동네에서 보는 그야말로 오토바이의 파도는 언제나 장관이다. 오래전 하노이에서 봤던 것만큼은 아니지만, 작년의 다낭이나 이번의 호치민에서도 수많은 오토바이들이 도로를 누빈다. 강물이 흘러가는 것과 다를바 없는 물결이다.
이번에 찍은 사진으로는 그 장대한 스펙타클을 표현할만한 걸 못 건졌다. 아쉽긴 하다. 어쨌거나 무쟈게 많은 건 사실이다. 호치민시 인구가 약 850만이라는데 등록된 오토바이만 700만대라고 한다. 그야말로 손가락에 힘 줄 정도만 되면 죄다 오토바이를 타고 있는 형국이다. 요람의 애기들과 병원의 환자들을 빼고는 다들 오토바이를 탄다는 거다. 수송부 출신이었던 어떤 넘 말대로 "3보 이상 탑승"의 개념은 바로 여기 베트남에서 오토바이에 해당하는 개념이었다.
차량도 제법 많다. 시내를 관통하거나 돌아가는 노선버스도 꽤 된다. 다음에 올 때는 버스타고 호치민을 해볼 생각이 들었다. 이곳에는 오토바이 그랩도 활성화되어 있어서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오토바이 뒤에 앉아 돌아다닐 수도 있고 가격도 저렴하다. 오토바이를 아예 대여해서 타고다닐 수도 있는데, 곳곳에 오토바이 주차와 주차요금 수수 등이 번거로워서 그닥 땡기는 않을 듯.
하긴, 이전 하노이에서 발바닥이 닳도록 돌아다니다가 숙소까지 돌아가는게 너무 힘들어 오토바이를 탔었는데, 그 때 느낌이 내가 마치 무슨 배달되는 짐처럼 느껴져서 오토바이 자체를 별로 타고 싶은 생각이 없기도 하고.
그러고보니 이곳 베트남이야말로 배달의 민족이다. 하다못해 버블티 한 잔도 오토바이로 배달을 한다. 돌아다니다보면 도시락 같은 것 들어있는 비닐 봉투 하나 달랑 배달하는 오토바이를 수도 없이 보게 된다. 사람 '배달'은 일상이다. 남한의 오토바이들이 배달민족의 기상을 톡톡히 보여준다고 생각했었는데 이곳이야말로 그 진면목을 보여주고 있다. 베트남과 한국의 친연성이 여기서도 보인다고나 할까.
호치민 시내에서 숙소로 걸어들어오다보면 큰 도로를 몇 번 건너야 한다. 시내 중심가를 제외하면 신호등도 없거니와 설령 신호등이 있다고 한들 신호를 지키는 오토바이나 차량도 없다. 이 상황에서 10차선 도로를 횡단해야 하는데 이거 난제도 이만저만이 아닌 난제다. 그런데도 교통사고가 나는 걸 직접 보진 못했다. 나도 잘 피해 다녔고.
이건 요령이 있다. 우선 차량은 될 수 있는 한 먼저 보낸다. 다음으로 오토바이는 운전자와 눈을 맞춘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물결을 타면서 횡단한다. 이 세 가지만 맞추면 사고가 나지 않는다.
오토바이 운전자들은 상당히 조심해서 운전을 한다. 좌우에 같이 흘러가는 오토바이와 차량은 물론 보행자를 의식한다. 그래서 보행자와 눈이 마주치면 눈빛과 몸짓으로 의사소통이 이루어진다. 오토바이가 알아서 비켜가거나 속도를 늦추거나 한다.
그런데 차량은 다르다. 차량은 속도를 쉽게 줄이지도 방향을 쉽게 바꾸지도 못한다. 보행자 피해준다고 방향을 틀 경우 오토바이보다 상대적으로 회전반경이 큰 차량들은 진행의 흐름을 방해한다. 자칫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라 차량들은 자신의 속도와 진행방향을 유지한다. 그래서 차량이 달려오는데 그 앞으로 들어서는 건 서로 매우 위험하다.
이렇게 주의하면 별 일이 생기지 않는데, 무엇보다도 오토바이와 차량이 뒤섞여 흘러가는 상태에서 차량의 속도나 오토바이 속도가 그리 빠르지 않다. 시내 최대 주행속도가 웬만해서는 40km/h가 넘지 않는단다. 통상은 20~30km/h 정도라고 하고. 어쩌면 차라리 이게 더 나은지도 모르겠다. 물론 서로의 안전을 위하여 노상 뛰뛰빵빵 하는 경적을 울리며 다니니 좀 시끄럽긴 하다만. 그러고보니 상대적으로 하노이에 비해서 이곳은 경적소리가 그리 많지도 않은 듯 하다. 하노이도 지금은 나아졌으려나.
걸어다니다보면 이곳의 보도는 상태가 매우 열악하다는 걸 알 수 있다. 관리가 잘 되어 있지도 않을 뿐더러, 보도 위에는 죄다 오토바이가 주차되어 있거나 노점상들이 장악하고 있다. 노점상들이 보도 위에 포장이나 리어카를 얹어놓고 판을 벌리면 보도에는 사람이 걸어갈 공간이 없어진다. 노점주들이 당연한 듯 보도 위에 자리를 깔고 앉거나 아예 해먹을 걸어놓고 누워 있기도 하다.
이게 가능한 게, 아까도 말했듯이 발목 까닥꺼릴 힘만 있으면 죄다 오토바이를 타니 도보에 사람이 거의 없다. 나처럼 겁없고 물정 모르는 여행객들이나 걸어다닐까, 웬만해서는 걸어다니는 사람들이 없다. 하긴 매연이 심해서 기관지 튼튼하다고 자부하는 나조차도 숨이 막히고 가래가 끓는 판에 보도로 오래 걸어다닐 사람이 많지 않은 것도 이해가 된다.
호치민에서 대중교통이 이동수단으로 차지하는 비율은 10%가 안 된다고 한다. 하노이와 호치민에 조만간 전철이 생기고, 정부차원에서 오토바이를 줄여나가는 계획을 수립하고 시행한다는데 그렇게 되면 보행자들에게 좀 친숙한 공간이 될 수 있을까?
호치민은 걸으면서 보기에 훌륭한 공간들이 많다. 달리기를 하면 좋은 도시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금은 이 도시에서 달리기를 할 수 없다. 공기도 매우 안 좋거니와 사고난다.... 도시화가 급속하게 진행되는 것이 바람직하진 않지만, 언젠가는 호치민 여기저기를 조깅하면서 돌아다닐 수 있게 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