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 술하기 좋은 날
비도 추적추적 오고, 양철지붕에 비 듣는 소리도 그럴싸하고, 창밖 한 뼘 처마 끝으로 떨어지는 물바울도 찬란하니 딱 낮술 하기 좋은 날이다. 만은, 여차한 사정으로 우리에 갇힌 심정으로 회의를 하고, 괜실이 족쇄에 묶일까 잽싸게 튀었으나 어디 따로 갈곳이 없어 짐만 싸고 말았다.
그나마 마침 보고잡다는 넘들이 호출을 하여 쐬주 한빵울 하려 모교앞으로 왔다. 시간 남아 커피 한 잔 하려는데 후문 주변 기억에 담아뒀던 커피숍은 죄다 사라졌구나. 아, 세월이여...
시간은 흘러 알던 풍광은 모두 사라지고, 변하고, 그 자리엔 다른 무엇들이 섰다만, 언젠가 이 부근에 추적추적 내리던 그 비와 오늘 내리는 이 비가 비슷하니 그걸로 됐다.
낮술은 못했으나 초저녁 술 하기도 좋은 날이다. 비는 여전히 추적추적 내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