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사법화는 누가 만들었나?
경향신문에서 흥미로운 연재를 시작했다. 만사의 사법화가 어느 정도로 이 사회를 장악하고 있는지를 분석한다.
경향신문: [만사법통에 기댄 사회] (1) '사법만능' 대한민국
시리즈물 1화가 다룬 사안은 조영남의 대작사건과 신경숙의 표절사건이다.
경향신문:[만사법통에 기댄 사회] (1) "대작 표절... 논쟁으로 풀 문제를 법에 맡기는 순간 예술의 본질은 실종"
예술부터 시작된 이 만사 사법화의 시리즈물에서 정치의 사법화도 다루어질 모양이다. 그렇다면 이 정치의 사법화를 유발한 주체는 누구인가?
예로부터 경향각지의 장삼이사들은 분쟁이 일어나 시시비비를 가리다가 자력으로 상황에 대한 판단을 내리지 못하게 될 경우 이렇게 말을 하며 언성을 높였다.
"법대로 해! 법대로!"
대학입시를 앞두고 어떤 전공을 선택해야 할지 몰라 방황하며, 결정을 잘 못하는 자신을 자책하며 소주 한 잔 하고 있을 때, 옆자리에서 다투던 술꾼들이 "법대로 하라고!"라고 하길래 "그래, 결정했어!"를 외치며 법대를 택했다는 웃기지도 않는 이야기도 있고...
문제는 이게 장삼이사들이 그냥 술김에 내뱉는 말로 끝나는 게 아니라는 데에 있다. 가장 최근 "법대로!"를 가열차게 주장했던 자들이 누구였던가? 바로 정치인들이었다. "그가 무슨 법을 위반했나?". "위법이 없으면 되는 거 아닌가?"라는 주장들. 정치적 문제가 법적 문제로 전환되는 순간 자신들이 할 일이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이따위 짓을 서슴없이 한다.
더 웃기는 건, 예를 들어 국회법 제165조에 회의방해금지를 규정하고 166조에는 그 처벌을 규정했다. 문제는 이 처벌규정이 의원들 간의 분쟁에도 적용됨으로써 지난번 패스트트랙 사건처럼 수십명의 의원들이 서로 고소고발을 하고 죄다 수사대상이 되고 그러면서 왜 경찰이 부르는데 안 가냐고 상대를 힐난하거나 가긴 갈 건데 안 갈 수도 있고 이러면서 뻗대는 일이 벌어진다. 이 와중에 정치인이자 변호사인 하승수 같은 분들은 본인이 직접 고발을 하고 수사촉구를 하고 난장판이 벌어진다.
여기서 서로에게 지적되는 말은 이거다. "왜 법을 안 지키느냐?" 물론 법은 지켜야지. 그런데 저런 규정을 만들어 놓고 뻑하면 검찰로 법원으로 달려가게 만들거나 직접 달려가는 자들이 누구? 바로 정치인들 자신이다. 이래놓고 정치의 사법화를 걱정한다.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다.
예술의 사법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시리즈물 첫 편에서 '사법자제'라는 말이 나온다. 이는 사법적극주의와 사법소극주의의 논란과도 연결될 수 있는 주제인데, 어찌되었든 사법부가 사법자제를 하는 건 기본적으로 사법판단을 하기 전에 해결할 수 있는 건에 대해서는 그러한 전치가 있은 후에야 사법적 판단을 하겠다는 것이어야지, 무슨 국익이 어쩌고 전문성이 어쩌고 하니 이런 저런 말 많이 나올 것 같은 사건에 대해서 사법부는 한 발 빼겠다는 의미가 아니다. 사법자제와 만사의 사법화 문제는 아주 크게 사회적 논란이 될 필요가 있다.
어쨌거나 간에, 이번 시리즈물을 한 번 잘 들여다봐야겠다. 중요한 논의가 시작된다. 난 어떤 사안의 확대와 대중선전 등의 필요로 인하여 사법부를 이용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그것은 힘 없는 다수가 힘 있는 소수와 싸울 때 필요한 일이지, 굳이 법정으로 가지 않고도 해결할 방법을 손에 쥐고 있는 자들이 뻑하면 법대로 하자고 법정으로 튀어가는 건 심각한 문제다.
아, 여기서 "굳이 법정으로 가지 않고도 해결할 방법"에서 폭력 등은 제외된다. 폭력에 의거해 문제를 해결하는 건 양아치들의 덕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