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과 지옥이 같은 공간 안에 있을 때
제도의 설계가 어려운 건 사실이다. 정책을 해왔고, 그 중에서도 특히 입법관련 일을 했던 입장에서, 법을 만든다는 건 아주 까다로운 일임에 분명하다. 형식적인 법안을 만드는 건 크게 어렵지 않다. 형식적으로 만드는 거야 국가법령센터 한 번 들어가서 기존의 법들을 일람하면 그 구조에 말만 갖다 붙여도 얼핏 보기에 '법' 같아 보인다. 간혹 그런 식으로 법안 만들어 올리는 사람들이 꽤 있는 것도 맞고.
하지만, 법안을 만든다는 건 종합적 사고체계가 작동해야 하는 일임에 분명하다. 다른 법률과의 관계, 현실적 문제점, 여타의 대안체계 비교를 통한 형량, 이해관계자들 간의 세력분점 등 따지자면 따질 일이 한 두 건이 아니다. 여기서 좀 더 나가면 관련을 맺고 있는 다른 법률들의 현황과 실질까지 살피기도 하고, 재정추계단계에 들어가면 어떻게 구성을 해야 법안이 잘 먹힐지를 실물적 차원에서 고려하기까지 한다. 산수에 약한 경우 대개 이 마지막 과정은 생략하고 넘기기도 하지만.
요컨대 법은 그냥 그 법 하나만으로 달랑 작동하지 않는다는 거다. 법이 하나 작동을 시작하면, 다른 법과 충돌하거나 혹은 어느 한 쪽을 무용지물로 만들기도 하고, 애초에 의도하지 않았던 훌륭한 부수효과를 내기도 하지만, 이런 경우는 극히 드물고, 오히려 애초에 의도하지 않았던 뭣같은 결과가 발생하는 일이 다반사다. 이해관계자들 간의 충돌이 사회적 대립으로 비화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무엇보다도 법을 통해 수혜를 받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들이 법들 간의 상쇄효과로 말미암아 되려 부당한 침해를 받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 결과는 때론 아주 참혹한 사건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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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비극. 비극이라는 말 자체가 사건을 설명하는데 턱없이 초라해보이는 이 비극. 애써 눈을 돌리고 싶어도 자꾸만 눈이 가고, 자꾸만 먹먹해지는 이 비극은 바로 제도가 꼬이고 얽히면서 만들어낸 참화이다. 문제는 이런 일이 한 두 건이 아니며 너무나 자주 벌어지고 있다는 거다.
뉴스1: 우윳값 26만원 미남, 대출광고 전단지만...일가족 4명의 비극
여기도 비극. 비극이라는 말은 참으로 하찮은 말이 된다. 하긴 비극이라는 말 뿐이겠는가. 어떤 말로 이 참담함을 정의할 수 있을까. 이 건에 대해서는 또 여러 조사결과가 나오겠지만, 역시 문제는 이들 가족이 기댈 수 있는 시스템의 부재로 결론 날 거다.
한겨레: [단독] 탈북모자 고립.사망 때까지 '아동보호 체계' 작동 안했다
이 건 역시 제도의 작동과 관련된 문제다. 왜 법은 이들을 보호하고 이들이 사람 대접 받을 수 있는 조치들을 취하는데 그토록 취약한가? 무엇이 법의 작동을 막고 있나? 아니, 도대체 이 법들이 제대로 만들어져 있기는 한 건가?
법은 완전히 다른 얼굴로 다른 방향을 향할 때가 많다. 이들 사건들과 관련된 법들은 하나같이 형식적으로는 따뜻한 얼굴을 한 채 가난한 자들을 향해 시선을 돌리고 있다. 그러나 법은 따뜻하지 않으며, 그 법을 믿고 있을 수도 없고, 그러다가 그 법들의 작동이 엉키면서 사람들은 주저 앉는다.
반면에 천연덕스럽게 무표정한 얼굴로 만인을 향해 눈길을 두고 있지만, 실제로는 몇몇의 이익과 그 몇몇과 연루된 자들의 이익을 위해 복무하면서, 밑바닥에 깔려 압사당하기 직전에 있는 자들의 호주머니까지 털어내는 법들도 수두룩이다. 같은 공화국 안에 동시대를 살면서 동료 시민들의 삶을 옭죄는 이런 법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의 최후 항변은 이렇다.
"내가 무슨 법을 어겼나?"
저 기사들에 나온 비참한 자들 역시 누군가가 법을 어겨서 저 상황까지 몰려간 것은 아니다. 본인들도 그렇고 그 주변 사람들도 그렇고 복지업무를 담당하는 공무원들도 그렇다. 어느 누구도, 아무도 법을 어긴 사람이 없다!
이 합법성의 향연. 비극이라는 말을 더욱 쓰잘데기 없게 만드는 상황이다. 법은 작동하고 있으며, 아무도 법을 어긴 사람이 없다. 바로 여기에 합법의 테두리 안에서 천상의 행복을 만끽하는 사람들과 합법의 테두리 안에서 이승의 삶을 박탈당하는 사람들이 공존한다. 천국과 지옥이 동시에 존재하는 이 상태를 어떤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