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날, 대구
비오는 날엔 대구탕을 먹자...라는 뭐 그런 이야기가 아니라, 엊그제 비오는 날 대구를 돌아다녔다는 뭐 그런 이야기다. 일 없이 대구를 찾은 건 아마 한 10년은 된 듯 싶다. 그 사이에 몇 차례 들락날락 했는데 그건 다 특정하게 일이 있어서였다. 그러다보니 대구라는 곳에 드문드문 와보긴 했는데 도통 뭐가 있는지는 잘 모르는 그런 처지다. 게다가 뭐 일 없이 올만한 메리트가 그동안 없기도 했고.
그러다가, 지난 연말에 무려 16~7년 만에 연락이 닿은 동생이 대구에 산다. 여차저차한 사정으로 인해 말도 없이 귀향을 했고, 연락이 뚝 끊겼고,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고 지내다가 어찌어찌 연락처를 아는 동생을 만났고, 그 동생을 통해 연락이 닿았고, 그 덕분에 이번에 대구를 찾게 된 것. 물론 마산에 일이 있어 가는 김에 겸사겸사한 내막도 있다만.
어찌 사는지 노상 궁금했던 동생과 생사확인을 하게 되었으니 그것도 기쁜 일이고, 아무 생각 없이 대구를 돌아다녀보게 된 것도 삼삼하다. 짧은 일정인지라 여기저기 많이 돌아다니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이런 기회에 별 예정 없이 발길 닿는 곳 여기 저기 가보게 되니 좋기도 좋다. 하필 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통에 우산도 없이 돌아다니니 좀 으슬으슬하고 그렇긴 했는데, 오히려 비가 오니 좋은 구경도 있는 법이다.
다른 이야긴 뭐 그렇고, 그동안 벼르고 별렀던 김광석 거리를 가보게 된 건 아주 걍 기분이 좋으다. 다시 듣고 싶다. 김광석의 목소리. 그저 벽화 좀 보고 그의 얼굴 그림 좀 보고 그러고 온 거지만 애틋한 마음이 설렁거려서 좀 슬프기도 했다.
입영열차 조형물이 있었는데, 그 앞에서 이렇게 거수경례 붙이고 있는 예비훈련병의 입상이 있었다. 빗물이 어찌 이상하게 맺혀 그런가, 아니면 언젠가 군대 가던 생각이 나서 그런가, 암튼 뭐 기분이 묘해지더라.
이틀간 대구의 몇 안 되는 동네를 돌다가 느낀 것 크게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대구를 덮고 있는 박정희의 그림자. 이건 어찌 극복이 잘 안 되는 일일까 싶기도 하지만, 어떤 시공간에 안에서 공유되는 집단적 기억이라는 것은 상반되는 가치관이 묘하게 맞부딪치면서도 또 어떻게든 엮이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예컨대 이런 아이러니가 있다.
대구 사범대 지나오다 본 두 조형물이다. 바로 옆에 붙어 있다. 위에 거는 대구사범학교 항일학생의거 순절동지추모비고 밑에 거는 만주에서 큰 칼 차고 독립군 때려잡던 박정희가 써갈긴 휘호를 돌에 새겨 놓은 거. 세계의 모순은 이렇게 바로 옆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혼란스러워한다. 이 박정희 기념비는 대구사범 동문들이 세워놓았는데, 2005년에 이런 기념물을 세웠다는 것도 기가 차지만, 21세기에 들어와서도 "우리 민족의 위대한 영도자"로 박정희를 추앙하는 행위가 공공연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마당에 이순자가 전두환이를 민주주의의 아버지라고 횡설수설하는 것도 뭐 어색한 일이 아닌듯 싶기고 하고.
대구 돌다가 또 하나 크게 깨달은 것은, 앞으로 대구 음식 맛 없다고 하면 안 되겠다는 거다. 난 아주 예전에 몇 차례에 걸친 불상사로 인하여 대구 음식에 대해서는 일종의 트라우마가 있었는데, 이번 길에서 그 상처를 깔끔하게 치유할 수 있었다. 대구에 맛난 거 많다. 이제 대구 음식 맛없다는 이야기는 앞으로 절대로 하지 않겠다.^^
그 중에서도, 김광석 거리 바로 옆에 있었던 수제 맥주집. 여기 맥주 밑 기타등등을 다 털기 위해서라도 빠른 시간 안에 대구행을 다시 구상해봐야 하겠다. 외관만 찍고설랑은 맥주 맛보는데 급급해 정작 맥주관련 인증샷은 준비를 못했다능....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