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설)의 미학
난 음쩜셋을 기다리고 있다. 음쩜셋의 구라가 그립다. 그가 사건을 보는 관점은 독특하다. 이해의 폭이 다르다. 다른 이들과는 전혀 다른 언어로 자신의 생각을 드러낸다. 이 모든 장점과 더불어 그는 매우 찰지면서도 우아하게 욕(설)을 한다. 가끔 그가 싸질러놓았던 글들을 훑어보기도 하는데, 아, 최근에는 좀 뜸했다만, 그 때마다 느끼는 카타르시스가 있다. 욕을 하려면 이렇게 해야 한다. 말년이 구차하게 되어서 그렇긴 하다만, 김지하가 오적을 썼던 당대의 그 욕지거리의 재주를 음쩜셋이 뛰어넘었으면 넘었지 못하진 않다고 생각한다. 음쩜셋을 향한 사미인곡은 여기서 줄이고.
황산벌이라는 영화가 오래 기억에 남는 이유는 너무나 주옥같은 대사들이 기억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신라군과 백제군의 욕설 배틀 장면 중 하나. 남도 어느 곳에서 끌려 온 병사 셋이 그 동네의 특장점이라고 할 수 있는 욕설을 시전하기 위해 성루에 오른다. 그 중 세 번째 병사의 드립, "우리는 한 끼를 먹어도 반찬이 사십 가지가 넘어, 이 XX럼들아!" 육두문자 섞어서 Fxxx이나 쌍시옷 들어가는 욕지거리도 많지만, 아마 내 기억에 이보다 더 아름답고 화려한 욕은 더 이상 없을 거다. 영화를 보다가 이 대목에서 나는 기절을 할 정도로 웃고 말았는데, 반찬 사십 가지가 저 콩고물 안 묻힌 반찬은 김치밖에 없는 영남 산골에서 온 병사들의 사기를 얼마나 조져놓았을지를 생각하면 눈물이 앞을 가린다.
과거 정치인들의 토론이 은근히 재미졌던 이유는 그들이 매우 아름다운 말을 하지만 실은 그게 기냥 장문의 욕지거리였음에도 그럴싸하게 현학적으로 포장되었기에 느끼게 되는 흥미로움이었다. 아, 욕을 해도 이렇게 우아하게 할 수 있는 거구나. 박상천, 박희태, 박지원...그러고보니 죄다 박씨구나, 골프장 캐디를 딸같아서 성희롱했다던 자도 껴있네, 암튼 그렇고, 이들이 토론하는 거 보면 어차피 다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는 생각을 하다가도 참 욕들도 찰지게 한다는 생각을 했던 게 한 두번이 아니다.
그런데 요새는 이렇게 그럴싸하게 욕을 하면서 서로를 얼르고 뺨치는 모습들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저 노골적으로 상대를 모욕하고, 저잣거리 뒷골목 생양아치들 정도나 할 수 있는 수준의 언어능력을 구사하면서 쌍심지를 켠다. 뭔가 욕이 가지고 있던 어떤 미학이라고나 할까 뭐 그런 게 잘 보이지 않는다. 욕설을 아름답게 할 수 있었던 대표적인 정치인이 노회찬이었다. 예를 들면, 2014년 7.30 재보궐 선거 당시 민주당 기동민과 후보단일화를 하게 된 노 후보에게 나경원이 질문을 했다. 정치노선이 다른 후보끼리 선거연대를 하는 것이 적절하냐는 힐난이었다. 이에 대해 노 후보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외계인이 쳐들어오면 일본하고라도 손을 잡아야 한다"
당시 노 후보의 동작출마에 대해 상당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비판하던 입장이었던 나지만, 이 이야기를 듣고 포복절도하고 말았다. 욕을 해도 이렇게 해야 하는 거다.
당시 노회찬으로부터 외계인 취급을 받았던 나경원은 이후 지속적으로 외계인 수준의 언어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얼마 전에는 선진국에서 비례대표제를 채택한 나라가 없다는 해괴한 발언을 하더니 오늘은 문재인을 김정은 대변인이라고 표현한다. 정치관계법 개혁논의를 없던 일로 만들려는 차원에서 거짓뉴스를 퍼뜨리는 건 책임있는 정치인으로서 할 일이 아니다. 이건 양심의 문제를 떠나 일단 상도덕을 위반하는 거다. 하지만 현직 대통령이 김정은의 입장을 과하게 배려하고 있다는 비판이야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김정은의 대변인 운운 하는 건 그냥 쌍욕을 해대는 것일 뿐이다. 욕을 하려면 좀 그럴싸하게 더 우아하면서도 오히려 더 날카롭게 할 수 있는 방법도 있었을텐데 말이다.
하긴 자신이 하는 이야기가 뭔 이야긴지 모르는 사람에게 제대로 된 이야기를 하라고 요구하는 건 무리인데다가, 기왕 하는 욕지거리라면 그걸 또 좀 그럴싸하게 해주길 바라는 건 언감생심이겠다. 나경원 정도 한 방에 외계인으로 만들어버릴 줄 알았던 노회찬이 더 보고싶어지는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