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사노위, 첫발을 디딜 수 있을런지
페이스북에서는 몇 번 언급을 했더랬는데, 현행 경제사회노동위원회법(경사노위법)은 경사노위를 의결기구로 규정하고 있지 않다. 경사노위는 어디까지나 그 목적이 "대통령의 자문 요청에 응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것이고, 이 목적을 위한 경사노위의 활동범위는 "협의"하는 수준에 머문다. 경사노위법 제1조에 그렇게 되어 있다.
경사노위법 제1조 목적 조항은 찬란한 미사여구로 가득차 있다. 마치 경사노위가 잘 운영되면, 이 기구가 "사회양극화를 해소하고 사회통합을 도모하며 국민경제의 균형 있는 발전에 기여"하게 될 듯하다. 그러나 이 목적조항은 그냥 말 그대로 미사여구에 불과하다. 목적 규정이 미사여구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이 위원회가 어떤 실질적인 권한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그 권한행사가 관철될 수 있는 방안이 존재해야 한다. 노동쪽에 유리하건 자본쪽에 유리하건 간에 뭔가 이 위원회가 어떤 위원회-자본을 위한 위원회 혹은 노동을 위한 위원회-라는 것을 스스로 드러낼 수 있는 방안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 법 전체를 다 들여다봐도 그런 내용은 전혀, 전/혀/ 없다.
이 위원회에서 나오는 어떤 논의 사항은 대통령의 판단을 위한 자료에 불과하다. 이 위원회에서 나온 많은 의견을 종합하여 대통령은 지 맘대로 결정하면 된다. 대통령이 위원회의 논의사항에 완전 배치되는 결정을 지 맘대로 하지 못하도록 할 수 있는 방안은 이 법률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 법률에서 그나마 약간의 강행성을 가진 규정은 제14조에 국한되어 있다. 이 규정을 보면 제1항에서 "위원히는 업무수행을 위하여" 관계 당사자, 공무원, 전문가에게 출석하여 의견을 진술하도록 하거나 이들로부터 자료를 제출하도록 "요구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요구를 받은 대상은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요구에 따라야 한다."
법률에서 위원회가 하는 행위의 거의 모든 사항에 대해 "할 수 있다"로 끝나는 것과는 조금 차이가 나게 "따라야 한다"라며 마치 강행규정처럼 정해놓은 것인데, 달랑 강행규정처럼 보이는 규정은 이 하나에 불과하고 그나마도 안 따를 때 뭘 어떻게 할 방도가 없다. 경사노위법은 이렇게 되어 있다. 이 법에 따라 저 목적, 즉 "사회양극화를 해소하고 사회통합을 도모하며 국민경제의 균형 있는 발전에 기여"하겠다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방안은 오로지 대통령이 아주 기냥 막 착한 대통령이 되어서 위원회에서 나오는 어떤 흐름에 대해 충실히 따라 줄 때만 가능하다. 그런데 그런 대통령이 나와주기를 바라는 건 백년 하청이고, 노사가 팽팽하게 맞서게 될 사안이라면 애초부터 대통령이 따를만한 경향이라는 게 나오기 힘들다. 그래서 이 법 제1조의 저 아름다운 말들은 그냥 아름다운 말로 끝날 가능성이 100%에 수렴한다.
하지만, 법이 그렇다고 해서 이런 기구를 아예 만들지도 않고 그냥 필드에서 박터지게 싸움질만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법은 만들어져야 했고, 기왕에 만들어진 법이니 법에 따라 일이 진행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렇게 일이 진행되려면 작으나마 참여대상들이 발을 들여놓을 명분과 신뢰가 따라야 한다. IMF 직후 DJ 정부가 사회적 대타협을 이야기하면서 노사정위원회를 만들었을 때, 서로 고통을 분담하자면서 노동측을 끌어들여놓은 후 벌어졌던 일들은 노동측을 호구로 만들었던 것이었다. 최소한 그런 상황을 조성하지는 말아야 경사노위에 노동쪽이 마음을 돌릴 가능성이 생긴다.
문 대통령은 양대노총을 만나 경사노위 가동을 위한 노력을 당부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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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계가 경사노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그래도 어느 정도 이 기구에 참여하는 것이 하지 않는 것보다는 득이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이 자리에서 노동계가 요구하는 현안관련 사항을 중심으로 많은 이야기가 오고갔다고 한다. 대통령과 양대노총 위원장이 이야기한 거의 대부분의 주제는 어차피 경사노위에서 다루어져야 할 것들이다. 다만 이 자리에서 대통령이 그러한 주제들이 향후 경사노위에서 잘 다루어질 수 있도록 정권차원의 노력을 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었길 바란다.
하지만 대통령의 이러한 행보와는 별개로, 자본쪽은 그다지 이 기구를 제대로 운영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이 노동계를 만나던 그 때 자본쪽은 아예 노동조합을 하지 말라는 취지의 요구안을 노사관계제도관행개선위원회(노개위)에 제출했다고 한다. 이 제출안의 핵심적 내용은 ▲ 노동조합의 부당노동행위 신설 ▲ 유니온숍 조항의 삭제 ▲ 부당노동행위 처벌조조항 삭제 ▲ 단체협약 유효기간 확대 ▲ 쟁의행위기간 중 대체근로 허용 ▲ 사업장 내 쟁의행위 금지 ▲ 파업찬반튜표 유효기간 등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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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 골때리는 요구안이, 어느 기자의 표현을 빌리면 "어떤 자신감에서 나왔느냐"는 거다. 기실 이러한 요구안을 당당하게 내미는 자본측의 자신감은 그동안 문재인 정부가 보여준 친자본적 행보에서 기인한다고 보인다. 최근 청와대에서 경제인들(?)을 만난 자리에서 문재인 정부는 이 정부가 결코 재벌을 견제할 의도가 없으며, 자본을 배제하거나 노동친화적 태도를 취할 생각이 없다는 사인을 분주하게 보냈다.
현정부의 중점과제 중 노동은 선순위가 아니라는 건 더 이야기할 바도 없겠으나 기왕에 정부부처의 노력도 미진하다보니 기껏해야 취업률에 대한 말만 무성한 채 그 외 현안은 언론에 나오는 것만큼의 비중조차 가지지 못한 노동부의 평가가 최저수준으로 나오는 게 당연한 일이다. 여당인 더민당 역시 스스로 노동현안에 대해 기대만큼의 역할을 하지 못했음을 자인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 자본이 저런 주장을 턱하니 내놓게 되는 거다. 그리고 이 문제에 대해 정부와 여당은 결연하게 끊어내는 태도는커녕 민감하게 반응하는 모습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경사노위에 노동측이 참여하는 것이 적절한지를 떠나 최소한 참여를 위한 동기부여가 가능할지조차 의문이다.
적어도 대통령이 대선공약이나 취임초기 입장에 준하는 수준에서 노동사안에 대해 관심을 표명하고, 대북 및 대미관계에서 보여준 적극적 행보의 만분의 일만이라도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준다면 경사노위에 노동계가 참여할 명분이 주어질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정부와 여당이 여기에 호응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고. 하지만 대통령은 밋밋하게 밥 한 번 먹으며 덕담하는 수준에서 머물고, 정부여당은 대통령만 바라보며 별다른 행보를 보이지 않고, 자본은 노동계가 치욕스럽게 여길만한 제안을 요구안이랍시고 덜컥덜컥 내놓고 있는 현시점에서 과연 경사노위가 제대로 구성될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