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돈으로 밥 먹던 버릇
장자가 노자를 끌어와 공자를 씹으면서 했던 우화들의 주제는 다른 게 아니다. 공자가 그토록 “인의예지”를 강조한 이유는 세상에 “인의예지”가 땅에 떨어졌기 때문이라는 것. 한 사회에서 가장 부족한 것이 가장 강조되는 것은 필연적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보면 한국사회에 무슨 “민주주의”라는 말을 앞에 붙인 단체와 조직이 만연하는 건 아마도 이 사회에 민주주의가 제대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겠다. 마찬가지로 정의가 없으니 정의가 강조되고, 차별이 만연하니 평등이 강조되는 것이리라.
세칭 ‘김영란법’이 세간에 설왕설래되고 있다. 법 제정 전후는 물론 합헌판결이 난 후에도 이래저래 논란은 계속된다. 게다가 이 법의 시행을 앞두고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벌써 나돈다. 법적 구조에 대한 논의는 차치하고, 이런 법이 만들어졌다는 것 자체가 한국사회의 현실을 웅변한다. 온갖 부정부패가 만연하고, 그것이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당연시 되는 풍토가 논란의 법을 만들어낸 배경이다.
이 법이 만들어진 이유는 별 거 없다. 바로 내 뱃속에 들어가는 건 내 돈 주고 먹어야 한다는 상식이 깨졌기 때문이다. 밥값을 3만원으로 하든, 선물을 5만원으로 하든, 경조사비를 10만원으로 하든. 이 금액이 많으냐 적으냐라는 논쟁은 실은 불필요한 논쟁이다. 제 돈 주고 밥 먹으면 될 일이고, 쓸데없이 선물 주고받지 않으면 될 일이다. 경조사야 기쁜 마음과 슬픈 마음을 나누면 그만이고.
정치권, 행정부, 법원, 검찰, 경찰, 기업 등 사회 각계에서 남의 돈으로 밥 먹고 치장하는 일이 만연한다.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소비가 위축된다는 둥, 농축해산업이 붕괴된다는 둥의 겁박이 종횡한다. 그냥 제 돈으로 사고 먹으면 될 일이다. 지금까지 남의 돈으로 해왔던 걸 제 돈으로 하려니 속이 쓰린 사람들이 제법 되는 듯 싶다. 하긴 기업 접대비로 연간 10조원이 넘어간다는 계산이 있는 걸 보면, 그 엄청난 돈을 남의 주머니에서 털어먹던 입장에선 여간 아쉬운 게 아닐 듯도 하다.
하지만, 이런 마음 씀을 일컬어 ‘도둑놈 심보’라고 한다. 헌법은 제46조 제1항에서 국회의원에게 청렴의 의무를 부과한다. 더불어 양심에 따라 직무를 수행할 것과 지위를 남용하여 재산상의 이익을 도모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다시 말해 남의 돈으로 먹고 살지 말라고 아예 못을 박고 있는 것이다. 제7조는 공무원들이 국민전체의 봉사자가 될 것을 명령한다. 대통령을 비롯한 모든 공무원들은 국민을 위한 봉사자일 뿐이므로 국민의 돈으로 제 배를 불려서는 안 된다. 당연히 공무를 수행하는 판사, 검사도 예외는 없다.
남의 돈으로 제 배를 불리는 자들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목도하고 있는 요즘이다. 기업 주식을 무상으로 뜯어내 수백억의 차익을 버는 검사장, 직위를 이용하여 온갖 부패를 저지른 청와대 민정수석, 전관예우라는 악습을 이용해 돈을 긁어모았던 변호사, 여기에 돈 갖다 바치면서 더 많은 돈을 긁어모은 기업까지. 그 와중에 사람이 죽어간다. 세월호 참사를 일으킨 청해진 해운이 2013년도 접대비로 쓴 돈이 6천만 원을 넘는다고 한다. 반대로 그 한 해 동안 선원들에 대한 안전교육 등에 들어간 돈은 54만원에 불과했다고 한다. 그리고 바로 그 다음해인 2016년 4월 16일에 세월호는 가라앉았고, 3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생으로 목숨을 잃었다.
그런데 법이 시행되기도 전에 벌써 국회가 나서서 이 법을 무용지물로 만들고자 한다. 8월 1일 더불어민주당의 우상호 원내대표는 법 시행령을 고쳐 밥값은 5만 원으로, 선물은 10만 원으로 가격대를 상향하자고 주장했다. 결국 내 돈 주고 내 밥 먹는다는 기초적인 상식은 전제되지도 않았다. 국민과 ‘더불어’ 함께 하겠다던 정당이 기껏 한다는 짓이 부패와 ‘더불어’ 가던 구태에 연연하는 모습이 보인다. 이 자들이 정권을 잡아봤자, 헌법 제7조와 제46조 등이 제 가치를 찾을 것이라고 기대하기 어려워지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