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는 원래 파란색
"보편적 vs 선별적" 복지론
"증세 vs 세금폭탄" 재원확충론...
재밌는 것은 이 과정을 지켜보는, 혹은 여기서 한 소리씩 하는 소위 이 땅의 보수라는 집단의 사고구조.
김기식의 말마따나 서구 복지국가의 복지시스템이 최소한 진보 또는 좌파정권의 역할이었다는 것은 동의할 수 있으나 여기서 빠진 맥락은 그걸 겉으로는 지지하지 않았지만 최소한 묵인은 해준 것이 보수였다는 거.
박근혜가 복지는 돈이 아니라 관심의 문제라면서, 어려운 사람에 대한 봉사 운운하던데, 이건 복지를 논할 때 흔히 동원되는 시혜라는 측면의 복지필요론에서 한 발짝도 더 나가지 못하는 것이다.
애초 복지라는 것은 선별적이냐 보편적이냐 하는 문제의 차원이 아니었다. 복지라는 건 그 말과 개념 자체가 그 사회 구성원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지 누구에게는 적용되고 누구는 배제하고 하는 문제의 것이 아니었다. (물론 여기에는 그 사회 구성원이어야 한다는 한계가 먼저 구획된다.)
당연히, 돈이 흘러 넘치는 사람에게는 복지제도라는 거 자체가 별로 의미가 없다. 사회복지체계를 이용하는 것보다 제 돈으로 해결하는 것이 훨씬 쉽고 더 효율적이라면 그는 사회복지체계가 어떻게 되어 있던 아무런 상관이 없다.
복지를 이야기하는 것은 이러한 예외적 상황을 전제하고 진행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복지가 보편적이어야 하느냐 혹은 선별적이어야 하느냐는 원래 논쟁거리가 되지 못한다.
오히려 복지가 문제가 되는 것은 그것이 어떤 정치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가 문제가 될 터인데, 이런 측면에서는 흔히 생각하듯 복지가 좌파의 논리가 아니라 우파의 논리라는 것을 보아야 할 듯. 애초 자본주의체제를 극복하고자하는 의지로 무장한 좌파에게는 복지라는 것은 사회구조의 정의로운 재편에 의해 당연히 도출되어야 하는 결과일 뿐이다.
반면 자본주의체제를 발전시키거나 최소한 유지하고자 하는 우파의 입장에서는 자본주의를 지탱하는 근간을 보호할 필요가 있는데, 그 방법으로서 유용한 것이 복지다. 근본적으로 자본주의는 소비가 없으면 운행되지 못하는 체제. 케인즈가 공산주의 혁명하려고 케인즈주의를 도모한 것이 아니다.
인간에게는 최소한 두 가지로 구분될 수 있는 필요가 있는데, 하나는 생존을 위한 필요, 다른 하나는 개별적으로 추구하는 삶의 질을 위한 필요. 후자는 전자가 충족된 이후에 비로소 가능하다. 아무리 삶의 질을 이야기한다고 한들,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삶의 질 운운은 언제나 배부른 소리일 뿐이므로.
복지는 특히 전자의 문제에 더 많은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 그 사회가 구성원들의 생존적 필요를 충족시키지 못할 때 삶의 질을 향한 관심은 발생할 수 없고, 결국 사회 자체가 위험해진다. 그 위험은 어차피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죽는 건 매한가지인 사람들에게 도래하는 위험이 아니다. 그 사회구조를 통해 생존은 물론이려니와 자신의 부와 명예를 취하는 자들에게 돌아갈 위험이지.
결국 복지라는 것은 없는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지만 있는 사람에게도 생존을 위한 문제인 동시에 자신의 처지를 유지 발전시킬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다. 잃을 것이 더 많은 사람에게 이 문제는 중장기적으로 자신이 가진 것들을 유지하고 증가시킬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된다.
그러므로 복지는 좌파의 혁명적 운동의 산물이라기보다는 우파의 자존심 혹은 우파의 영악함이라는 측면에서 바라보아야 할 듯. 그런 고로 현재 진행되고 있는 사회적 논란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건 이 땅의 우파는 자존심도 없을 뿐만 아니라 멍청하기까지 하다는 것. 물론 우파의 담론에 빠져 허우적 거리고 있는 좌파 역시 이러한 비판에서 자유롭지는 않고...
까놓고 우리 헌법이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며서 각종 기본권을 두고 있는 건 그것이 선별적으로 적용되라고 의도한 것도 아니다. 게다가 그 조항을 만든 건 좌파가 아니라 우파고.
세금폭탄논리도 마찬가지. 누진적 세제를 추진하는 건 가진 자들에게 폭탄을 안기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보험. 김기식이 언급했듯이 있는 제도나 제대로 지켜도 재원이 마련될 수 있겠지만, 조세제도를 정비하는 것 역시 우파에겐 손해가 아닐 것.
오히려 지금 이야기해야 하는 건 보편적 복지냐 증세냐의 문제라기보다는 감히 가카의 존엄을 해치면서 쥐덫 이야기를 하는 오세훈에게 서울 시장직을 걸고 신임투표를 할 것인지를 먼저 묻는 것. 기왕에 포퓰리즘소리를 들을 바에는 아예 그냥 그 욕먹을 각오 하고 다이다이로 붙어보자고 하는 게 어떨지. 괜히 삘 안나는 복지얘기는 좀 그만들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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