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표
최근들어 내 어떤 감정을 글로 실어 펴는 것이 뭔 의미가 있는가라는 생각이 계속 든다능... 그래서 그런가, 다른 이들은 트윗을 하니 페이스북을 하니 하는 어떤 대안의 동원 덕분에 블로깅을 자주 못한다는 이유라도 있지만, 이건 뭐 암 것도 않으면서 블로그를 점점 황량하게 방치하고 있다는 생각이 불현듯 든다. 그러나 그런 귀차니즘의 발로를 극복하기 위해 블로그에 글을 써야 한다는 강박을 갖고 싶지는 않고.
아마도 지난 기간 동안 블로그라는 것은 내게 있어서만큼은 공공연하게 숙제검사 받듯이 내놓던 초등학교 일기장 같은 것이었을 수도... 일기는 일기이나 그 가장 사적인 것을 누군가에게 드러내보여야 한다는 일종의 의무 같은 것이 작동하고 있는 공간이 블로그일 수도 있겠다. 어떤 속좁은 이의 인정욕구의 발로 정도? 적어도 내겐 그랬던 거 같다. 이건 마치 어릴적 어느 날, 남들이 신고 있던 운동화 한 번 신어보고 싶어 일기장에 "나도 운동화가 갖고 싶다"고 써놓고, 부모님들이 제발 그 일기장을 한 번 봐주길 바라며 은근히 눈에 잘 띄는 곳에 놔뒀던 그런 것과 비슷한...
아, 뭐 그랬다고 한들, 자식의 프라이버시를 소중히 여기는 부모님들 덕분에 운동화는 요원한 소망이었더랬다. 혹은 프라이버시를 지킬 의도였다기보다는 쩐의 궁함이 그러한 결과를 가져왔는지 모르겠으나, 후자라면 서로 속상하는 일이니 전자라고 우길 밖에. 암튼... 그러고보니 그런 저런 일들을 경유하면서 일기장이 가지는 효용성에 대해 회의를 품게 되었는지 초딩탈출 후 일기라는 것을 그닥 써 본 경험이 없는 듯...
어쨌거나 적어도 일기라는 측면에서의 유용함을 가지고 있었던 이 블로그가 차츰 방치일로를 걷게 되는 건 역시 구태의 발로였던가. 내나 뭐라고 끄적여봐야 어느날 싸지른 글이 왠지 예전에도 싸질렀던 글과 유사하다는 생각을 하게 될 때, 거기엔 나름의 견해의 발전이라는 것도 없고 내나 뭔가 이루어진 것이 없다는 한계만 남게 된다. 뭐 그렇다고...
예컨대 호모삽피엔스들의 삽질에 대해 누차 끄적인 개인적 소회는 호모삽피엔스들이 'ㅂ'탈락이라는 국문학적 과정을 거쳐 호모사피엔스로 진화하지 않는 한 똑같은 말의 반복일 뿐.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가 전쟁을 방지한다는 각하의 주옥같은 월요방송대본을 보다가 문득 깨달은 건, 차라리 이 호모삽피엔스의 정수리에 뿔이 나길 바라는 것이 훨씬 과학적인 사고이지 이걸 블로그에다가 뭐라고 긁적여봐야 어차피 똑같은 시간 낭빈데, 이쪽은 손가락 노동까지 시키면서 시간 낭비한다는 거.
뭐 그런 생각때문인지 근래 뭔가 이야기를 늘어놓고 싶다가도 막상 블로그에 들어오면 별로 흥이 나질 않는다. 2010을 정리하는 연말정산이라도 하고 싶으나, 해봤자 나오는 거라고는 연말 코메디 대상에 자연산 보온병 정도가 물망에 오른다는 시덥잖은 소리나 해쌀 거 같고.
한 해가 저물어 가는데, 어쩐지 뭔가 허전한 듯. 당분간은 이렇게 일기장이 방치될 듯한 느낌도 들고. 머리가 점점 굳는 건지 어쩐 건지...
내년엔 좀 더 즐겁게 블로깅을 할 수 있게 되길. 남에게 드러낸 일기장이라 할지라도 그나마 사람들과 접점을 가지기 위해 내게 남은 유일한 통로는 블로그 뿐인데 이거라도 좀 어떻게 유지시켜보자는 굳센(?) 의지를 다지면서 올 해 블로깅은 이걸로 마감. 혹시 또 뭔 일 생기면 끄적거릴 것이나, 어쨌거나 저쨌거나 지금 심정은 그렇다고.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