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상식의 나라

가족사랑, 권선징악, 해피앤딩... 상당히 도식적인 할리우드의 상품들. 그런데 이에 대한 비판이 그토록 많으면서도 이런 정형화된 영화들에 대한 수요가 꾸준한 것은 뭣때문일까? 헐리우드의 정형화된 시나리오가 충성도 높은 수요층을 확보하고 있는 것은 그들에게 가족간의 사랑과 선한 자의 승리와 악한 자의 패배와 '오래도록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와 같은 동화적 상황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다. 대리만족이라고 하는 것은 영화관 스크린을 통해 쉽게 확보되는 거다.

 

장자가 공자와 그 아류들을 비웃으면서 했던 이야기는 다른 것이 아니다. 세상이 '仁'으로 가득차 있으면 구태여 왜 '仁'이 필요하겠는가? 맑스가 인권을 부르주아지가 던지는 당의정 정도로 생각했던 건, '인권'이 가지고 있는 가치 자체를 부정했다기보다는, 자신들만의 권리를 '인권'으로 포장하면서 실제 인권이 부재한 세계를 감추려는 위선에 대한 냉소였으리라.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행복을 당연히 누리게 되는 세상을 전제했던 맑스의 입장에서는, 그런 세상에서 권리 혹은 인권이라는 것 자체가 이미 의미 없는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박기성이 헌법에서 노동3권을 없애자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헌법에 노동3권이 명시된 이유는 결국 이 땅에 노동3권이 제대로 보장되어 있지 않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노동3권이라는 것이 이미 충분히 보장되어 있고, 일반의 상식으로 생각할 때 그것이 헌법적이든 법률적이든 문제될 이유가 하등 없는 그런 사회라면 까짓거 노동3권이 헌법에 규정되어 있지 않은 들 문제는 없을 거다.

 

그러나 이건 유토피아적 발상에 불과하다. 기본적으로 사회경제구조가 자본주의체제인 한, 노동자들의 권리라는 것은 자본가들의 권리 위에 있기가 원천불가능하다. 동등한 지위조차도 도달하기 어렵다. 그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국가권력이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후원인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한국은 헌법에 기본권으로서 노동3권을 적시하고 있는 거고 다른 나라들 역시 헌법과 법률로 이 권리를 보장하고 있는 거다. 이건 그냥 상식이다. 꼭 법을 공부해야만 아는 게 아니다.

 

이 와중에 박기성이, 아니 박기성이를 총알받이로 내세운 이 땅의 자본과 권력이 헌법에서 노동3권을 아예 삭제하자고 하는 것은,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노동3권이 충분히 보장되어있기 때문은 절대 아닐 거다. 오히려 정 반대로, 그들의 눈에는 자신들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는데 장애물이 되고 있는 이 규정들을 자신들의 권리보장을 위해 날려버고 싶은 욕망에 불타 이런 주장을 하는 거다.

 

영남대 박홍규 교수가 매우 분노했나보다. 하긴 제정신 박힌 사람 치고 박기성의 발언에 화나지 않을 사람이 있겠는가? 박홍규 교수는 헌법의 부정을 '몰상식'이라고 비판한다. 헌법의 정신이 상식인 사회에서 살 수 있는 날이 올까 하는 의문도 있지만, 적어도 정부의 고위관료에다가 학교에서 강의까지 하는 사람이 헌법에서 노동3권 삭제 운운 하는 것은 박홍규 교수의 말마따나 몰상식임에는 분명해 보인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9/09/24 15:53 2009/09/24 15:53
Trackback Address :: http://blog.jinbo.net/hi/trackback/12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