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뚜기와 조윤선

별다른 간식거리가 없던 시골에서 늦여름부터 가을까지 가장 인기가 있었던 메뉴는 메뚜기였다. 물 뺀 논바닥에서 볏단을 헤집고 돌아다니며, 잎에서 잎으로 폴짝폴짝  뛰어다니는 메뚜기를 잡아채는 것은 어린이들의 놀이였고, 그렇게 잡힌 메뚜기들은 간식거리이자 반찬이자 어른들의 안주거리기도 했다.

 

농약범벅이 된 시골에서 메뚜기는 자취를 감췄더랬다. 그러다가 그 시골에 농약칠 사람이 사라지고 나니 메뚜기들이 다시 나타났다. 그때는 이미 대가리가 굵을 대로 굵어버린 때였고, 메뚜기 말고도 먹을 것이 천지인 때가 되어 그닥 메뚜기를 잡아먹고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지금도 그렇고.

 

언젠가, 행인이 말술을 퍼마시고 다니던 시절에, 을지로 인쇄골목 어름의 작은 호프집에서 메뉴판에 올라 있는 메뚜기를 보고 무척 반가웠던 일이 있다. 그게 볶음이었는지 튀김이었는지 잘 기억은 나지 않는데, 어쨌거나 오랫동안 잊혀졌던 동무를 만난듯 반가워 메뚜기 몇 접시를 비워가며 맥주를 퍼마셨더랬다. 흠... 간만에 만난 동무들을 죄다 먹어치운다니, 이건 좀 엽기성이 있다만... 어쨌든...

 

때아니게 국회에 출몰한 메뚜기들 때문에 설왕설래가 있다. 지난 날치기때, 한나라당 의원들이 메뚜기처럼 오가며 투표를 했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이미 상당량의 증거를 확보한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다. 표결과정에서 메뚜기들이 설쳤다는 것이 확인되면, 헌재에 들어가 있는 가처분신청과 권한쟁의에 꽤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거다. 고로, 지금 한나라당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 셈이다.

 

재밌는 것은 한나라당의 반응이다. 일이 화급해지자 당 대변인씩이나 하고 있는 조윤선은 "최종투표가 본인이 한 것"이라면 대리투표가 있었다고 한들, 또는 본인이 수차례 투표, 취소, 투표를 반복했다고 한들 다 합법이라고 주장한다.

 

이 발언은 두 가지 측면에서 의미를 가진다. 하나는 한나라당 대변인의 입을 통해 실제 메뚜기들이 설쳤다는 것이 확인되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거대여당의 대변인이 합법과 불법에 대한 기준을 풀섶에 메뚜기 뛰어다니듯 지 멋대로 들고 나온다는 거다.

 

놀라운 사실은, 이렇게 법적 판단 기준을 제 멋대로 해석하고 들이대는 사람이 무려 변호사출신이라는 거다. 그것도 국내 최대 로펌인 김&장 출신이다. 이거 이래서 앞으로 김&장에 의뢰할 수 있겠나. 하긴 뭐 행인 주제에 김&장 끌어들일 수 있을만큼 돈 되는 송사가 생길리 만무하다만.

 

낟알이 여물어가는 황금빛 들녘에 뛰노는 메뚜기들이, 추억을 회상하는 사람들에겐 일종의 가을의 정취일지는 모르겠으되, 봄에 씨뿌려 모내고 여름에 김메는 수고로움을 견디고 이제 추수를 기다리고 있는 농부들에겐 웬수같은 존재다. 그래서 그 메뚜기들을 잡아 먹는 것은 위법행위가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어른들이 애들에게 잡아오라고 종용까지 했던 거다. 하긴 국회부의장씩이나 하는 어떤 이는 "종용"이라는 말을 "종료"라고 알아듣고 이 사단을 벌였다는 충격적인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긴 하다만.

 

고로, 메뚜기는 잡아야 한다. 기름에 바삭하니 튀겨 설탕가루 솔솔 뿌려 술안주거리로 삼아야 하는 거다. 메뚜기노릇을 역사적 결단이라고 희희낙락하는 메뚜기들은 버들강아지 풀로 꿰어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물론 그 때가 오면 조윤선은 '제 멋대로 기준'을 들이밀며 변론서를 작성하고 있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래봐야 똑같은 메뚜기긴 하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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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28 11:51 2009/07/28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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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도 메뚜기 조아하는데... 설탕가루보단 소금가루가...ㅡ.ㅡb
    중요한 거슨... 맛은 방아깨비가 더 좋았다는 것...

  2. 김앤장;;

  3. 메뚜기 맛나요..ㅎㅎ
    역시 설탕보다는 소금 좀 뿌려서...ㅋ

    • 애들 취향은 소금보단 설탕이죠. 소금은 술안주감. 그래서 저는 아직 어린가봐요 ㅋㅋ

  4. 나경원의 '주어가 없다'도 있었는데요 뭐..

    • 그쵸. 나경원이나 조윤선이나... 근데 이 두 사람이 법조계출신이라니 정말 믿거나 말거나죠...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