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쿨, 어디까지 가려나?

행인님의 [로스쿨로 대학교육 정상화??] 에 관련된 글.

위 포스팅에서 각 대학들이 '프리 로스쿨'을 운영하게 될 수 있고, 그 폐단이 크리라고 예상한 바 있더랬다. 사실 예상이고 나발이고 거창하게 타이틀을 달 필요도 없이 그건 정해진 수순이다. 돈 되는 장산데, 어차피 장삿속으로 '경영'하는 대학이 이걸 걍 놓고 볼 이유가 없는 거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각 대학이, 그래도 대학 간판 걸어 놓은 낯짝이 있지, 로스쿨 시작하자마자 저짓하지는 않고, 적어도 한 1~2년 지난 후에 슬금슬금 시작할 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얼굴에 철판 깐 대학에 대해 그나마 얄팍한 희망을 건 것에 불과했다. 아직 로스쿨이 정식운영되기도 전에, 벌써 '프리 로스쿨'을 시작하겠다는 대학들이 줄을 지어 나타난다.

 

성균관대, 영남대 등 유수의 대학이 소위 '로스쿨 준비 고시반'을 신설한단다. 이건 뭐 염치도 없고 예의도 없다. 선발인원이 '세 자릿수'(성균관대)라는 것으로 봐서 적어도 각 학교가 유치한 로스쿨 정원 이상의 정원으로 예비 고시반을 운영하겠다는 거다. 이들의 변이 참으로 유치찬란하다.

 

"사설 학원업체 등 로스쿨 전문기관에서 강의를 섭외해 특강을 개최하고 논술첨삭지도를 실시할 것 ... 개인적으로 준비하는 것보다 학교에서 체계적으로 로스쿨 진학 준비를 돕는 것"

 

이쯤 되면 다양한 사회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법조전문지식을 습득하여 보다 사회에 밀착한 법률문화를 형성하겠다던 기존 로스쿨 설립의 취지는 아예 공중분해되고 만다. 왜 이들 대학들이 '대학'이라는 간판을 걸어놓는지 모르겠다. 그냥 '로스쿨 전문학원' 또는 '취업, 입시, 고시 학원'이라고 커밍아웃 하는 것이 훨씬 바람직한 일이다.

 

700명이 몰려들어 성황리(?)에 진행된 서울대 로스쿨 입학설명회에서는 아예 "해외학위 소지자에게 가산점"을 준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로스쿨에 입학하기 위해서 외국으로 학위따러 가는 사람들이 줄을 잇게 생겼다. 까짓 몇 점 더 받으려고 일부러 외국 학위 따러 돈을 뿌릴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냐고 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으나 그건 모르는 말씀. 당장 몇 점 때문에 로스쿨에 들어갈 수 있느냐 없느냐가 갈리는 상황에서 그 "몇 점"이라는 확실한 밑천을 구할 양이면 그깟 몇 천만원, 몇 억원쯤 태평양 상공에 뿌릴 사람들이 줄을 섰다.

 

이렇게 돌아가는 판에 각 학교에서 설치하는 '프리 로스쿨'에 침이 흐르는 것은 당연한 일. 기왕 돈 들여 가는 로스쿨이라면 좀 더 쉽게, 좀 더 빠르게 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 헤메는 것은 수험생의 기본 생리다. 이걸 뭔 수로 막겠나?

 

괘씸한 것은 돈에 눈 먼 각 대학들의 발빠른 행보다. 이미 각 대학은 정원배분이 적어 비용이 상승했다는 이유를 들어 등록금을 최대 연간 2000만원까지 확정하고 있다.

서울 소재 로스쿨 등록금 예정액
대학 등록금 (1년)
성균관대 2100만 원
고려대 2010만 원
연세대 1950만 원
서강대 한양대 1900만 원
경희대 1860만 원
이화여대 중앙대 1800만 원
한국외국어대 1760만 원
건국대 1693만 원
서울대 1380만 원
서울시립대 950만 원
자료 : 각 대학

 

옆의 표를 보자.(동아일보 기사에서 다운) 국립대학이라는 서울대가 로스쿨 연평균 등록금을 1380만원으로 책정하고 있다. 처음부터 "반값 로스쿨"을 이야기했던 시립대조차도 연간 등록금이 1천만원에 육박한다.

 

이것도 모자라서 각 대학이 '프리 로스쿨'을 운영한다고 하는데, 이렇게 운영되는 '프리 로스쿨'은 얼마만큼의 비용이 들까?

 

아마도 이 '프리 로스쿨'은 두 가지 방식으로 운영될 것이다. 첫째는 기존 대학이 운영하던 고시반과 유사한 형태의 운영. 이렇게 되면 고시반 형태의 '프리 로스쿨' 학생은 거의 장학생이 될 가능성이 크다. 즉, 학교에서 돈과 인력을 지원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기숙사 등 편의시설까지 제공하는 형태. 이게 일반적으로 지금까지 각 대학이 운영하던 고시반의 일반적 형태다.

 

그런데, 이렇게 관리하기 위하여 들어가는 비용은 누가 대나? 로스쿨 운영경비에서 나오나? 국가나 지자체가 제공하나? 지금까지 각 대학이 운영하는 고시반의 경우 거의 대부분은 다른 학생들의 등록금에서 운영경비가 조달되었다. 즉, 로스쿨과는 하등 관련 없는 다른 재학생들이 자신에게는 아무런 혜택도 돌아오지 않는 고시반, 즉 '프리 로스쿨'을 위해 추가비용을 더 대야 한다는 거다. 맨날 '수익자 부담원칙'을 들먹이던 대학이 왜 여기에 대해선 전혀 관계없는 학생들의 주머니를 터나? '수익자' 아닌 학생들에게 '부담'을 요구하는가?

 

둘째 방식은 학원과 유사한 형태로 운영하는 것이다. 강의를 개설하고 수강생을 모집하는 거다. 그런데 학교 입장에서는 이 방식을 사용하는데 부담이 있다. 우선 "대학이 학원이냐?"는 반발에 직면할 수 있고(실상은 이미 그렇지만), 다음으로는 정예관리가 어려워진다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뻔히 돈이 들어오는 일을 그냥 놓쳐버릴 수는 없는 법. 해서 학교가 하는 방식은 '고시반'형태로 운영을 하되 대중강의를 유치하는 거다. 비록 '고시반'에 들어가지는 못했더라도 로스쿨 입학을 희망하는 다른 학생들이나 더 나가서는 타교 학생들을 강의로 유혹하고 대신 돈을 받는 거다. 물론 학원 수강료보다는 저렴한 가격일 것이다.

 

어쨌든 각 학교는 현재의 '고시반'과 유사한 '프리 로스쿨' 또는 '로스쿨 준비반'을 운영할 거다. 서울대 등 몇 학교를 제외하곤 아마도 예외 없이 이런 형태의 진학반(?)을 운영할 것인데, 이들이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짓을 할지라도 별로 제재할 방법이 없다는데 문제가 있다. 고시반을 장학제도의 일환으로 운영하는 경우 학교에 대해 행정적 제재를 가할 방법이 없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각 학교의 학생들이 이처럼 부당한 제도에 대해 항의하고 고시반 철폐를 요구하는 수밖에 없는데, 지금까지 '고시반'을 운영하던 각 학교에서 재학생들이 "고시반 철폐하라~!"며 집회 한 번 한 일이 없다는 역사적 고증(?)에 따르면 이런 가능성은 거의 '0'에 가깝다.

 

이런 현상은 일정부분 "무임승차"에 대한 기대심리에서 기인한다. 즉, "우리 학교"에서 사법고시 합격생, 혹은 로스쿨 합격생이 많이 나오고, 이를 통해 "우리 학교"의 지명도가 올라가면, 나도 취업하는데 도움되고 뭐 이러저러한 떡고물이 떨어지지 않겠는가? 하는 기대심리. 실제로 학교 이름 올라가면 괜히 어깨가 들썩거리고 사회생활하는데 도움도 받고 그랬던 사람들이 도처에 널려 있는 것을 감안하면 이 기대심리를 충족하는데 일정부분 자신의 돈이 빠져나가는 것이 썩 손해보는 장사는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세상이 그렇게 허술한가? 거저 떨어지는 자기 몫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대학이라는 가장 자율적인 공간에서조차 부당한 자신의 부담에 대해 항의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학교의 명성 덕분에 사회에서 돈방석에 올라앉는 행운을 얻을 수 있을까? 하긴 뭐 지금까지 로스쿨의 문제점이 그렇게 논의되고, 각 학교가 생돈을 들여 로스쿨 유치한다고 몇 백억씩 쏟아 붓고, 그 덕분에 여기 소요된 경비까지 포함해서 올 등록금 인상분이 정해졌다고 하더라도 로스쿨 때려부시자고 난리치는 학생들은 거의 보질 못했다.(조선대 학생들은 로스쿨에 사용된 경비를 등록금 인상요인에서 제외하라는 요구사항을 내걸었다. 내가 알기로는 등투에서 로스쿨 문제가 제기된 유일한 사례다.)

 

학생들과 학부모의 등골을 빼먹는 촉수괴물, 로스쿨. 그동안 예상했던 폐단들을 앞으로 어떻게 실체적으로 보여줄지 모르겠다. 이 상황에서 로스쿨과는 관계 없이 대학을 다니는 학생들에게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받지 못한다"루돌프 폰 예링의 경구를 들려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도대체 어디까지 가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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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4/21 21:04 2008/04/21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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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렇게 해서 변호사 판검사되면, 그 본전 뽑으려고 또 얼마나 없는 놈들의 등골을 빼서 먹으려 할까요.. 갈수록 도둑놈만 키원가는군여, 그것도 사회시스템으로..ㅠㅠ

  2. 산오리/ ㅎㅎ 완전 월드 오브 고시크레프트죵...

  3. 이번에 아파서 시험 조지고 화딱지 나서 사시는 안 하려고 그랬는데, 이 글 보니까 또 심난해지네요 -ㅂ- 저 구조라면 서민 등골 빼먹는 변호사 숫자가 앞으로 훨씬 늘어날 것 같은데, 한 사람이라도 정상적인 변호사를 늘려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에 공부를 다시 해야 하나 뭐 그러네요 -ㅂ-
    저 구조에서 굳이 변호사가 되려는 사람은 대부분 김앤장을 추구할 것이라는 사실 하나는 확실하네요. -_-

  4. 자폐/ 다시 하실 수 있다면 하시는 것에 원츄~! 조국교수는 최근 자기 저서에서 서울대 법대(앞으로는 법학전문대학원)에서 김앤장을 추구하는 집단과 조영래를 추구하는 집단이 계속 나올 거라고 썼더군요. ㅎㅎㅎ 조국교수, 벌써부터 장래 자기변명거리를 만들어놓는 것 같아요. ㅋㅋ

    지난 수차례 로스쿨 포스팅을 하면서 제 나름대로 계산한 바에 따르면 현재 사법시험을 준비하는 사람을 모델로 할 때, 대학재학, 로스쿨 예비반, 로스쿨재학, 변호사시험 준비 등의 코스로 평균 2억 이상의 비용이 소요될 것으로 보이더군요. 10년 간 2억 쓰신 분들께 김앤장이 아니라 조영래의 길을 가라고 요구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ㅡ.ㅡ+